34화. 광산에 가두어진 것
서울 헌터 중앙처.
“기태랑이 요즘 아주 한가하지?”
대한민국 헌터의 대표이자 각 부서를 관리하는 헌터부 장관, 강태황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강태황 앞에서도 기태랑이 주눅 드는 것 없이 귀를 후비고 있었다.
“한가하면 다행이죠. 제가 한가하지 않다는 건 그만큼 위험한 놈이 나왔다는 거니까요.”
“그렇긴 하지.”
생각보다 쉽게 수긍을 하며 강태황이 몸을 앉혔다.
“그래도 세상 참 좋아졌어. 처음엔 데몬 무섭다고 아무도 안 싸우려고 했었는데 말이야.”
능력의 개방과 함께 등장한 데몬이란 존재.
처음에 사람들은 이런 데몬을 피해 도망치기 바빴었다.
맞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안고 싸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었죠. 평범하게 살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괴물들을 상대로 싸우겠어요.”
“넌 싸웠잖냐.”
모두가 패닉에 빠져 데몬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을 때.
도망치는 사람들과는 반대로 가 데몬에게 맞선 이들이 있었다.
1세대 헌터들.
지금 중앙처에 있는 대부분의 1급 헌터들은 이때 처음으로 데몬에게 맞섰던 1세대 헌터였다.
“하긴 넌 좀 미쳤으니까 그럴 수 있는 건가.”
“제가 미친 거면 장관님도 똑같은 거죠. 같이 싸웠으면서 무슨.”
“크하하하!”
강태황이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강태황 역시 기태랑과 함께 처음부터 싸운 1세대 중 한 명이었다.
“요새는 데몬을 무슨 돈벌이 수단으로 밖에 안 보니…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어.”
국가가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데몬을 잡아 주니 고마운 일이었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됐다.
“잊어서겠죠.”
작은 한숨을 내쉰 기태랑이 입을 열었다.
지금 사람들이 인기와 돈을 벌겠다며 애써 데몬을 찾아다니며 영상을 찍을 수 있는 이유.
잊었기 때문이었다.
“또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기태랑의 말에 강태황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노네임드 데몬.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이 잊어버린 존재였다.
“끔찍한 소리를 잘도 하는구만.”
재수 없는 소리를 한다며 콧방귀를 뀌었지만, 강태황도 알고 있었다.
어디서 왔는지, 왜 나타난 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던 만큼 노네임드가 언제 어디서 다시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그래도 과거에 나타났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국가의 전력도 많이 강해지지 않았나? 싸움에 나설 기업이나 시민들도 많고.”
강태황의 말에 기태랑이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과거에 비해 전력이 늘어나고 너도나도 데몬을 잡겠다며 나서고 있는 건 맞았다.
수적으로는 분명히 많이 늘어난 상황.
하지만, 중요한 건 수가 아니었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때 1세대를 포함해 얼마나 많은 헌터들이 죽었는지요.”
“….”
한국에 나타난 노네임드는 고작 네 마리였지만.
그 네 마리에 너무나 많은 생명이 죽고 말았다.
일반 시민들까지 포함하면 정신이 아득해지는 숫자.
“기우면 좋겠지만…. 지금 분위기가 그때와 비슷합니다.”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개방과 능력에 조금씩 적응해 가며 데몬이란 존재를 느슨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던 중 나타난 네 마리의 노네임드.
돈과 인기에 눈이 먼 헌터들은 특이하게 생긴 노네임드에게 너나 할 것 없이 먼저 달려들었다.
그리고, 모두 죽고 말았다.
노네임드의 몸에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한 채로, 무참히 찢겨서.
“지금 상황에 노네임드가 나타나기라도 하면 지난번처럼 대참사가 일어날 겁니다.”
“흐음.”
깊은 한숨을 내쉬며 끄덕이는 강태황.
강태황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기태랑의 말대로였다.
데몬에 대한 경각심이 흐려져 있는 지금, 지금이 가장 위험했다.
“역사는 항상 반복 된다지만….”
강태황의 이마로 깊은 근심의 주름이 그려졌다.
“이번은 아니었으면 좋겠군.”
* * *
[잭 더 리퍼]
면도칼을 꺼내 최대 속도로 내달렸다.
“크롸.”
서걱!
데몬이 나왔다고 놀랄 틈 따윈 없었다.
순식간에 혈관을 긋고 각 도어의 헌터들이 모이고 있을 중앙홀로 향했다.
틱. 틱. 틱.
순식간에 점수를 역전당해서일까.
김대석과 대산 헌터들의 점수가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위기감을 느끼고 닥치는 대로 데몬을 잡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런 씨. 몰이하던 거 놔두고 올 걸 그랬나.
빨리 가야 하기도 했고 혹시나 몰고 간 데몬들 때문에 다른 게스트 헌터들이 다칠까 걱정이 되어 전부 쓸어버린 건데.
그러면서 올라간 내 점수가 오히려 대산 헌터들에게 불을 지핀 모양이었다.
쾅! 쾅! 쾅!
얼마나 달려온 걸까.
저 멀리로 먼저 도착해 있는 헌터들이 보였다.
내가 있던 3도어를 제외하곤 전부 무리 지어 있어서인지 빠르게 도착한 듯했다.
“후웁…!”
폐에 최대한의 공기를 모은 뒤.
“잡지마아!!!”
모여있는 헌터들을 향해 소리를 내질렀다.
* * *
“빨리 잡아!!”
백운의 점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다급해진 김대석과 팀원들.
팀원들은 카메라에 들키지 않게끔 조금씩 김대석에게 데몬을 몰아주고 있었다.
쾅!
김대석이 앞에 있는 데몬을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마음이 조급했다.
조급해도 너무 조급했다.
‘여기서 지면 개망신이다!’
쉬지 않고 대검을 휘두른 탓에 이마에는 땀이 가득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말도 안 되게 올라가 있는 백운의 점수.
‘최리아 이 년은 일을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속으로 욕지기가 터져 나왔다.
오늘 아침, 배정된 도어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었다.
왜 무기왕한테 단독 도어를?
거품 투성이인 무기왕이 단독 도어의 이점을 제대로 취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괜한 변수를 주는 거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물론, 최리아가 백운에게 암시를 걸었다는 걸 알고 있는 김대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 독한 년.
단독 도어를 줘 아주 제대로 매장 시키겠다는 생각이었다.
마음에는 안 들지만 역시 일 처리 하나는 기가 막히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무기왕: 1141.
하늘에 떠 있는 저 말도 안 되는 점수는 대체 뭐란 말인가.
저 정도 숫자면 단독 도어에 있는 데몬을 거의 몰살시킨 거나 다름없었다.
빠득.
쿵!
머리로 밀려오는 아찔함을 느끼며 김대석이 대검을 내리찍었다.
지금 있는 곳은 광산의 중앙 공간.
각 도어에서 출발한 헌터들이 모이는 공간이었고, 가장 많은 데몬이 존재하는 장소였다.
“똑바로 막아, 한 마리도 건드리지 못하게.”
“알겠습니다.”
김대석이 옆에 있는 팀원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뒤늦게 도착한 게스트 헌터들.
김대석의 1팀 팀원들은 의도적으로 그들에게 붙어 데몬 사냥을 방해하고 있었다.
물론, 보는 사람은 알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행동.
여러 토벌전에서 항상 해오던 거라 무척이나 익숙한 듯한 모습이었다.
“팀장님! 3번 도어 쪽에…!”
“…!?”
고개를 돌리니 백운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원래도 저렇게 빨랐나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 안 되는 스피드.
“뭐라고 외치고 있는데요?”
옆에 있던 팀웜이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잡지말라고오오!!”
“!?”
어째선지 잡지 말라며 소리를 지르고 있는 백운.
팀원이 한참 대검을 휘두르고 있는 김대석을 바라봤다.
“자… 잡지 말라는데요?”
“미친 새끼!”
점수가 모자른 자신을 놀린다 생각해서일까.
분노한 김대석이 대검으로 힘을 모았다.
“다 비켜서라!!”
얼마나 얕잡아 봤으면 잡지 말라는 헛소리를 한단 말인가.
“다 밖으로 나와!”
“게스트 분들도 나오세요!”
썰물처럼 순식간에 중앙에서 벗어나는 헌터들.
그 때문인지 데몬들의 어그로가 전부 김대석에게로 쏟아졌다.
“크아아아아아!! 어스 브레이크!!”
잠시 후, 김대석이 기합과 함께 치켜 들었던 대검을 땅으로 내리찍었다.
콰아아아아아!!
김대석이 기술에 붙인 이름은 어스 브레이크.
몸 안에 있는 힘을 한순간에 집중시켜 파괴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기술이었다.
띠리리리리리!!
한순간에 솟구치는 김대석의 점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아껴뒀던 필살기인데…!’
백운이 달려왔기에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몇 마리만 더 잡으면 점수는 따라잡…
우우우웅!
‘?’
다음 데몬에게 대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광산의 중앙이 붉은 빛을 띠기 시작했다.
* * *
망했다.
붉은 빛을 띠는 중앙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저 김대석 무식한 새끼!!
그렇게 잡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는데.
들은 척도 안 하고 마지막 큰 기술까지 내리 꽂아버린 김대석.
김대석의 기술을 마지막으로,
우우우!
조금 전 기억에서 봤던 장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 *
뭐야, 여긴.
부적을 통해 들어온 공간.
조금 전까지 서 있었던 광산이 아니었다.
한국에 이렇게 큰 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거대한 사찰이었다.
무슨 무기의 흔적이길래 절이 나오지?
염주 같은 건가.
“준비되셨습니까?”
?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찰 뒤쪽에 모여있는 열댓 명의 스님들.
분명 고기 못 드실 텐데.
스치기만 해도 뼈가 나갈 것 같은 엄청난 두께의 팔 근육들.
모여있는 스님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근육을 자랑하고 있었다.
“장소는 준비되었습니다.”
“도윤은…?”
“광산에서 미리 준비하고 있겠다 하셨습니다.”
대답을 들은 스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스님들의 얼굴에는 엄청난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그럼… 출발하시죠.”
화악!
출발하자는 말과 함께 배경이 바뀌었다.
여긴 광산.
구조가 좀 변하긴 했지만 토벌전을 치르던 광산이었다.
쾅! 쾅! 쾅!
…!
조금 전 사찰에서 봤던 스님들이 무언가와 싸우고 있었다.
가까이 보기 위해 조금 더 다가가자 선명하게 보이는 스님들의 적수.
데… 데몬!?
지금까지 봐왔던 데몬들과는 체형이 많이 달랐지만, 분명 데몬이었다.
데몬이 왜 지금…?
아까 봤던 사찰만 얼추 봐도 공간의 배경은 최소 수백 년 전이었다.
개방이나 능력이 나타나기 전일 텐데 어떻게 데몬이 있는 걸까?
캉! 캉! 빠악!
어떻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삐쩍 마른 사람 체형에 눈을 제외한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는 데몬.
엄청… 강하다.
스님들도 분전하고 있지만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말도 안 되게 부드럽고 빠른 움직임으로 스님들에게 상처를 쌓아 가는 데몬.
“키킥!”
!!!
웃었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스님을을 향해 양손에 든 단검을 휘두르고 있는 데몬.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데몬의 입가는 길게 찢어져 있었다.
즐… 기고 있다.
스님들에겐 목숨을 건 혈투였지만, 적어도 저 데몬에게는 아니었다.
여유롭게 스님들의 공격을 회피하며 이따금씩 칼을 내뻗고 있는 데몬.
일부러다.
충분히 스님들을 전투불능으로 만들 수 있음에도 데몬은 그러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싸움을 즐기려는 듯, 스님들이 조금이라도 더 힘들어 하고 고통스러워 하게 만들려는 듯 싸움의 템포를 조절하고 있었다.
“피하십시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휘릭!!
목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데몬이 있던 장소로 날아들었다.
잠시 먼지가 일어나며 찾아온 정적.
!!
먼지가 걷힌 후, 조금 전 날아든 것의 정체가 눈에 들어왔다.
회귀 전 대산의 발표 기사에서 봤던 무기.
비전 수리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