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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5화 (35/473)

35화. 피렌조

수리검을 던진 건 거대한 삿갓의 남자.

“도윤!”

“물러나십시오.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도사들이나 입을 법한 나풀나풀한 도복과 어깨까지 오는 단발머리.

스님들에게 도윤이라 불린 남자가 데몬에게 다가갔다.

“킥….”

그런 도윤을 기다려 주겠다는 듯 공격을 멈추는 데몬.

“도윤, 우리도 같이….”

“아닙니다. 저 혼자 싸우겠습니다.”

“하지만 몸이….”

딱 봐도 도윤의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몸 곳곳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고 노출된 상체에는 붕대 투성이었다.

“괜찮습니다, 스님들은 준비를 부탁드립니다.”

“아… 알겠네!”

도윤이 중앙에 서 있는 데몬을 바라봤다.

“피렌조, 끝을 내자꾸나.”

이름?

데몬을 이름으로 부른건가?

“키르르.”

피렌조라 불린 데몬도 이름을 알아듣는 듯한 반응이었다.

저 시대에 데몬이 있는 것도 모자라 이름이 있다니.

대체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 헷갈렸다.

콰앙!

잠시 후 피렌조와 도윤의 싸움이 시작됐다.

상체만 한 수리검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피렌조의 단검을 받아치는 도윤.

뭐야 이게….

내가 지금까지 알던 싸움이 아니었다.

한 번의 스탭, 한 번의 공격에 따라 생사가 갈리는 살얼음판 위의 싸움.

도윤과 피렌조의 공격엔 서로를 죽이겠다는 살의 외엔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았다.

아.

도윤과 피렌조의 싸움을 보고 있자니 묘한 괴리감이 느껴졌다.

- 오늘은 늑대 계열 데몬인 하인드를 잡아 보겠습니다! 타임아웃 걸어놓고 오늘도 100마리 도전!

시간이 지나며 헌터들의 동영상 컨텐츠는 점점 다양화되었다.

처음엔 데몬만 잡아도 사람들이 멋있다며 조회수를 올려주고 좋아요를 눌렀지만, 이젠 아니었다.

더 자극적이고 더 참신하지 않으면 아무도 봐주지 않게 된 것.

- 탕탕! 벌써 두 마리 잡았습니다! 탕! 한 번에 세 마리!

마치 게임 컨텐츠를 즐기듯 데몬 사냥을 하고 있는 헌터들.

순간 이게 맞는 걸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도 별다를 건 없네….

구룡산에서도 마지막 옹달샘에서는 정말 죽을 뻔했지만, 크럭커나 다른 데몬들과 싸울 때는 아니었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단지, 쉽게 생각했었다.

내가 죽을 거라는 생각 없이 임했던 싸움들.

꿀꺽.

그래서일까.

목적이 있었다곤 하나 최리아가 제안한 토벌전에도 편한 마음으로 참가했었다.

들어가는 광산에 데몬이 많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내가 강해서?

아니야.

지금까지 싸웠던 데몬들이 약했고, 그래서 착각하게 된 것이었다.

콰앙!

눈앞에서 펼쳐지는 싸움을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깨닫고 말았다.

지금까지 만난 데몬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키르륵!”

푸확.

피렌조가 휘두른 칼이 도윤의 오른쪽 어깨를 베고 지나갔다.

처음에는 비등을 넘어 도윤이 앞서는 것 같았는데 시간이 흐르자 형세가 점점 피렌조 쪽으로 기울어 가고 있었다.

“헉… 헉….”

피렌조에 비해 확실히 지쳐 보이는 도윤.

둘러져 있는 붕대에선 붉은 피가 스며 나오고 있었다.

푹!

푸확!

서걱.

싸움이 중반으로 접어들자 도윤은 피렌조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꺾여선 안 되는 방향으로 휘어지며 들어오는 피렌조의 다채로운 공격.

“도윤!! 완성됐습니다!!”

도윤이 얼마 버티지 못하겠다 싶은 순간.

스님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후웅… 콰앙!

스님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피렌조를 밀어내는 도윤.

도윤이 몸을 한 바퀴 회전시킨 뒤 있는 힘을 다해 들고 있던 수리검을 전방으로 내던졌다.

날아가 수백 장의 부적이 붙어있는 문으로 꽂히는 수리검.

유일한 무기를 왜?!

푹!!

아니나 다를까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찔러 들어온 피렌조.

피렌조의 단검이 도윤의 등에 꽂혔다.

“하아….”

덥썩.

그런 피렌조의 두 손을 붙잡는 도윤.

“같이 가자.”

“키르!?”

도윤의 읊조림과 동시에 둘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정확히는 꽂혀 있는 수리검으로 순간이동 해버렸다.

드드드드드!

도윤과 피렌조가 이동하기 무섭게 부적이 붙어있는 문에서 수천 개의 손이 뻗어 나와 둘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키르라라라!!!!”

괴로운 듯 비명을 지르는 피렌조와,

“도… 도윤!!”

“안돼!!”

함께 끌려가는 도윤을 안타까운 얼굴로 바라보는 스님들.

잘은 모르지만 이미 손 쓸 수 있는 단계는 지난 것 같았다.

“후우… 후우… 절대… 이곳에 피가 흐르게 해선… 안됩니다….”

도윤이 생명이 다 해가는 와중에도 힘을 줘 강조한 것.

피렌조가 갇힌 문이 있는 곳에 피가 흐르지 않게 하라였다.

쿵.

그렇게 문이 닫힌 뒤.

도윤과 피렌조가 사라진 문밖에는 튕겨 나온 수리검만이 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 * *

그다음 기억이 보여 준 건 시간이 지나며 문이 있는 장소가 어떻게 변했는지였다.

문 위로 토사와 암석이 쌓이며 평평한 땅이 되어버린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이 바로 헌터들이 모여있는 광산의 중앙 홀이었다.

우우우우웅!

김대석이 죽인 데몬들의 피가 빠르게 땅 아래로 흡수되어 갔다.

다들 어디서 이런 빛이 나오는 건지 어리둥절 해하고 있었다.

그놈이 나온다.

“다들 도망쳐요!!”

뜬금없는 내 외침에 더욱더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

“거기 있으면 다 죽는다고! 나오라…!!”

데몬들의 피가 스며들고 얼마나 지났을까.

대산의 헌터 한 명이 어깨를 으쓱 올려 보였다.

“저건 또 뭐라고 소리 지르는 거야, 야 들리냐? 뭐라고 하는지?”

“대… 대리 님. 뒤… 뒤에….”

“뒤에 뭐…!?”

그게 등장한 건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붉은 빛이 잦아든다 싶은 순간, 대산 헌터의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피렌조.

“키릭….”

스아아아!!

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한기가 피렌조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감각이 예민한 사람이든 예민하지 않은 사람이든 예외는 없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죽는다.

“어… 어… 너 뭐….”

푹.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상처 하나 없이 데몬을 여유롭게 잡던 대산의 헌터들.

그중 한 명의 목에 오래되고 녹슨 단검이 박혔다.

“이 대리님!!”

“뭐야 이 새끼는!”

바로 옆에 있던 서너 명의 헌터가 무기를 휘둘렀다.

스륵!

물이 흐르듯 부드럽게 움직여 헌터들의 공격을 피해내는 피렌조.

스가악!

그다음에 벌어질 일은 정해져 있었다.

피렌조가 기괴한 팔의 움직임으로 주변에 있는 헌터 네 명을 도륙해버렸다.

“으… 으아아아!!”

“한 번에 덮쳐!!”

“원거리 스트라이커들은 거리를 벌려라!”

“지원 계열은 뒤로 물러나서 서포… 꺼억.”

포지션을 잡는 와중에도 빠르게 달려들어 헌터들을 베어나가는 피렌조.

기억에서 보단 움직임이 둔하다.

지금도 기괴하고 따라잡기 힘들지만, 기억과 비교하면 피렌조는 몹시 약해져 있었다.

오래 갇혀 있어서인지, 아니면 여전히 몸에 묶인 부적과 사슬들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약해졌더라도.

여기 있는 인원이 이길 적수가 아니었다.

“싸우지 말고 도망쳐!!”

“으… 으아아!”

“살려줘!”

조금 전의 살육을 봐서일까.

이번엔 내 목소리에 즉각 반응해 도어가 있는 곳으로 내달리는 사람들.

“티… 팀장님!”

“대석 팀장님!”

“대석이 형!”

피렌조와 대치하며 서서히 거리를 벌리는 헌터들이 김대석을 찾았지만.

주춤.

김대석은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객관적으로는 현재 여기 있는 헌터들 중 가장 강한 헌터인 김대석.

“으… 도… 도망쳐.”

가장 강해서일 수도 있었다.

누구보다 피렌조와의 격차를 잘 느껴버린 것 같았다.

휙!

뒷걸음질 치던 팀장 김대석이 도어를 향해 몸을 돌려버리고.

“어….”

“팀장님…?”

그 순간 대산 헌터의 사기는 바닥으로 내리꽂히고 말았다.

“멍 때리지 말고 도망쳐!!”

“도망쳐!”

“도어까지 달려!”

포지션을 잡고 피렌조를 상대하려던 대산의 헌터들이 우루루 몸을 돌렸다.

푹! 푸확!

그런 헌터들을 상대로 피렌조의 일방적인 사냥이 시작되었다.

아직도 자유로워진 몸에 적응되지 않는지 동작이 부자연스럽긴 하지만.

도망가는 헌터들을 따라잡는 것 정도는 큰 무리가 없어 보였다.

으득.

이대로면 다 죽는다.

중앙홀에서 도어까지는 꽤 먼 거리.

먼저 달렸더라도 속도의 차이 때문에 금방 따라잡힐 것 같았다.

끼긱. 끼긱.

고장난 태엽 인형처럼 움직이는 피렌조.

회귀하기 전에 뉴스 좀 잘 볼걸.

뒤늦은 후회가 드는 순간이었다.

토벌전에서 저런 게 깨어났다면 분명 뉴스에 크게 나왔을 텐데.

개방 조건 찾으러 다니겠다고 그런 것들과 멀게 살던 시기였다.

만약 저놈이 도달할 때까지 도어가 닫히지 않는다면.

대참사였다.

광산 밖엔 소식을 듣고 구경 온 사람들과 기자들이 잔뜩 모여있는 상태.

거기서 더 나아가면 사북 시민들 역시 녀석의 희생량이었다.

“으아아아!”

“나 좀 살려줘!”

현재 광산에서 정신이 온전한 건 나 혼자였다.

나머지는 피렌조의 공포에 모두 정신이 나가버린 듯했다.

“후우…!”

심호흡을 하며 피렌조를 응시했다.

난 영웅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을 구해야 할 의무나 책임 역시 없다.

….

없지만,

해볼 수 있는 건 해본 뒤에 도망쳐도 늦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감성보단 이성이 앞서는 사람일지언정.

가능성을 남겨 둔 채 밖의 사람들을 몰살로 밀어 넣는 짓은 할 수 없었다.

희생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100% 불가능이라 생각했다면 도망쳤겠지만.

지금 피렌조의 상태를 봤을 때 해볼 만한 가치는 있었다.

가능성이 있다면.

저벅.

도망치지 않는다.

도망쳐오는 사람들과 함께 피렌조가 점점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보니와 리드의 리볼버는 아직 쿨타임이다.

남아있다 하더라도 저렇게 움직이는 놈을 원거리에서 맞추는 건 불가능해 보이고.

남은 건 면도칼과 유탈라스의 비늘.

지난 거북이를 때를 생각하면 비늘의 지속 시간은 딱 한 방이다.

한 방.

“키이키킥!”

피렌조는 오랜만에 피맛을 봐서인지 도망치는 헌터들에게 정신이 팔려있었다.

방심하고 있는 지금, 딱 한 방이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간다.

최대한 도망치는 헌터들과 몸을 겹치며 피렌조에게 달려갔다.

면도칼까지 들고 있기에 지금의 피렌조에겐 스피드로도 지지 않는 상태다.

호흡을 정리하며 타이밍을 계산했다.

피렌조와 나 사이에 있는 게스트 헌터 한 명.

헌터와 피렌조의 거리는 약 5보.

나와 헌터의 사이는 약 7보.

“으… 으아아! 살려줘!!!”

바로 뒷통수까지 쫓아온 피렌조에 헌터가 소리를 지르고.

마음속으로 거리를 세기 시작했다.

3보.

“으아…!!”

2보.

헌터의 목에 단검을 박아 넣기 위해 공중으로 도약한 피렌조.

“키륵!?”

그제야 피렌조가 목표물 너머의 날 발견했지만, 이미 허공에 떠오른 상태.

무조건 맞춰야 한다.

[유탈라스 - 1단계 의태]

무조건 맞춘다!

“숙여!!!”

“히익!”

도망치던 헌터가 몸을 수그리고, 공중에 떠 있는 피렌조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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