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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8화 (38/473)

38화. 킥

푸화악!

피렌조의 오른쪽눈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키르르!”

고통스러운지 피렌조가 비명을 지르며 미친 듯이 단검을 휘둘러댔다.

느껴진다.

방향을 가리지 않고 사방에서 쇄도해 왔지만, 피렌조의 단검은 더 이상 내게 닿지 않았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왜 내가 단검을 피하지 못했었는지.

단순히 피렌조의 공격 속도가 빨라서?

아니다.

겁 먹었고, 동시에 생각이 너무 많았다.

찰나의 반응으로 모든 게 판가름 나는 한 끗의 전투.

보이지 않는 단검이 어디 갔을까를 고민하며 행동을 결정할 만큼 전투는 여유롭지 않았다.

그런 전투에서 이리저리 눈알이랑 머리만 굴려댔으니 베일 수밖에.

본능에 맡긴다.

생각하는 걸 멈추고, 눈앞의 피렌조에게 집중했다.

또 베이면 어떡하지란 걱정을 멈추고, 보이는 빈틈으로 쉴 새 없이 면도칼을 찔러 넣었다.

걱정을 멈췄다가 또 베이면?

베이면 된다.

아픈 건 익숙해졌다.

그 대신, 적에게 더 큰 상처를 안겨주면 된다.

쑤욱.

왼뺨을 지나 뒤로 뻗어진 피렌조의 팔과 단검.

스륵.

그대로 피렌조의 밑으로 파고들어 면도칼을 휘둘렀다.

목표는 뻗어져 있는 오른팔과 노출된 옆구리의 혈관들이었다.

푸확!!

“키라아악!”

피가 분수처럼 치솟으며 녀석의 오른팔이 축 처졌다.

스윽.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양팔을 못 쓰게 된 녀석의 다리로 다가가 빠르게 중요 혈관들을 끊어나갔다.

털썩.

무릎 뒤의 혈관까지 끊자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릎을 꿇게 된 피렌조.

“키륵… 키르….”

녀석의 입에서 소리가 새어 나왔지만.

아까와는 다른 소리였다.

더 이상 피렌조는 웃고 있지 않았다.

고통에 의해 새어 나오는 신음.

곧 죽을 거라는 공포에서 새어 나오는 절규.

양 귀까지 걸렸던 입꼬리도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왜 안 웃어?”

“키리…!?”

패배를 직감해서일까.

아니면 눈앞에 있는 날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아서일까.

미세하지만 녀석이 떨고 있는 게 느껴졌다.

두근.

그럴 이유가 없는데.

그럴 상황이 아닌데.

심장이 두근거렸다.

동시에 온몸으로 퍼져 가는 희열.

조금 전까지 날 가지고 놀며 비웃어대던 녀석이 지금은 날 보며 떨고 있었다.

스으.

“키…키르…!”

쿠드득.

면도칼이 다물어져 있는 피렌조의 입을 뚫고 들어갔다.

이제 잘 느껴지네.

맞닿아 있는 면도칼을 타고 올라오는 피렌조의 공포.

너도 공포란 걸 느끼는구나.

“킥.”

나도 모르는 사이.

입가엔 소름 돋는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면도칼을 잡은 손에 서서히 힘을 줬다.

“웃어라.”

푸화아아아악!!

* * *

광산 2번 도어 밖.

화려한 옷차림의 남자가 도어로 다가갔다.

은갈치를 연상케 하는 화려한 머리와 은색 정장, 그리고 선글라스까지.

영락없는 관광객으로 데몬이 나오는 광산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개판이네, 개판이야.”

도어로 다가간 남자가 고개를 내저었다.

안에서 뭘 본 건지 잔뜩 겁에 질려 정신이 나가 있는 사람들.

눈물 콧물까지 줄줄 쏟아내고 있는 걸 보니 다시 회복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다.

“문 여세요.”

“레버 건들지 마!!”

머리를 감싸고 있다가 문 열라는 소리에 광분하는 남자, 김대석.

눈에 광기 가득한 김대석이 남자를 향해 대검을 내밀었다.

“손목 잘라버리기 전에! 물러나!”

“….”

그런 김대석을 쳐다보던 남자가 천천히 선글라스를 벗었다.

“…!”

위에서 아래로 왼쪽 눈을 찢어 놓은 커다란 흉터.

남자가 남은 오른쪽 눈을 번뜩이며 김대석을 노려봤다.

“니가 한 번의 판단에 손목이 날아가는 그 순간을 알아?”

“뭐… 뭐라는….”

“문 내가 열 테니까 꺼져, 새끼야. 뒤지기 전에.”

걸걸하게 욕을 뱉어낸 남자가 레버로 걸음을 옮기고,

“거… 건들지 말라고!!”

제정신이 아닌 김대석이 대검을 치켜들었다.

“1월과 2월, 알리.”

쿠득.

“꺼억…!”

찰나의 순간이었다.

은발 남자의 주변으로 1월과 2월의 화투 패가 나타났고, 동시에 김대석이 거품을 물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

그 모습을 본 몇몇의 헌터가 입을 벌렸다.

워낙 신출귀몰이라 동영상에서 자주 등장하진 않지만 본 적이 있었다.

“비… 비광이다!”

“비광? 그 국가 1급 헌터?”

“살았다… 살았어!”

1급 헌터가 도착했다는 사실에 헌터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비광이 그런 헌터들을 조용히 응시했다.

“안에 사람들이 있나요?”

“네… 네! 동료와 게스트 헌터들이 있습니다! 어서 안으로 가서….”

“그런데 문을 닫았어?”

“…!!”

비광의 말이 존댓말에서 반말이 된 건 순간이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천천히 레버로 걸어가는 비광.

“무… 문은 김대석이….”

“그렇게 주저앉아서 콧물 눈물이나 질질 짤 거면.”

철컥.

“기어 나와서 헌터라고 까불지 말고 이불 속에 처박혀 있어라. 겁쟁이 새끼들아.”

“!!”

비광의 한 마디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도어 밖의 헌터들.

문을 열고 들어간 비광이 정면을 바라봤다.

“허…?”

예상 밖의 상황에 비광이 미간을 찌푸렸다.

두어 시간 전.

카지노를 즐기고 있던 중 강태황 장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 노네임드 급으로 추정된다.

전화를 받기 무섭게 하던 판을 뒤엎고 달려 나왔다.

꽤 오랜 시간 나타나지 않았던 노네임드 급 데몬.

‘다 죽었겠군.’

문을 열기 전까지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

비광이 비관적인 성격이어서는 아니었다.

단지, 그렇게 생각하는 게 현실적이었다.

노네임드와 한 공간에 존재하는 생명체.

기적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하는 게 정상이었다.

‘뭐냐… 저건.’

그런 비광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

헌터로 보이는 사람들은 조용히 앉아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 열렸네요.”

‘와씨.’

하마터면 공격해버릴 뻔했다.

온몸을 시뻘겋게 물들이고 있는 남자.

인간이 아니라 데몬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소름 끼치는 모습이었다.

“백운 님, 정말 괜찮으세요?”

“하하. 네, 괜찮아요.”

마주치자 꾸벅 인사를 하고 도어로 향하는 백운이란 남자.

잠시 멈춰 서 있던 비광이 천천히 걸어나갔다.

“….”

누군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엉망진창이 된 데몬을 중심으로 사방에 흩뿌려져 있는 엄청난 양의 피.

직접 보진 못 했지만 이곳이 죽음의 경계를 사이에 두고 싸움이 일어난 장소였다.

스윽.

손을 뻗어 데몬의 얼굴을 살폈다.

입으로 들어가 목의 급소를 찢어 놓으며 나온 날카로운 무언가.

뭐로 베어야 이렇게 깔끔하게 끊어놓을 수 있는 걸까.

“요것 봐라?”

고개를 내려 데몬의 전체적인 상처를 살폈다.

인간 체형에 몹시 흡사한 데몬의 몸.

그런 데몬의 몸엔 멀쩡하게 남아있는 혈관이 없었다.

겉으로 드러나 있는, 벨 수 있는 모든 혈관이 절단되어 피가 뿜어져 나온 것.

“그래서 이렇게 피바다였구만. 그리고 이렇게 한 건….”

비광이 고개를 돌려 백운이 떠나간 도어를 바라봤다.

얼굴에 그려지는 재밌다는 듯한 미소.

“대단한 미친놈일세.”

* * *

아이고 삭신이야.

손을 들어 피렌조에게 베였던 목을 만져봤다.

끈적.

정체불명의 핏덩어리가 피가 더 새어 나오지 못하도록 상처를 틀어막고 있었다.

잠깐 죽었다고 보는 게 맞겠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이었다.

보통 사람은 목을 베이면 죽으니까 말이다.

어질어질.

피를 하도 많이 흘려서일까.

최대한 조심조심 걷는데도 시야가 약간 흐릿한 기분이다.

당장 달콤한 거랑 고기를 섭취하지 않으면 빈혈사 해버릴 듯한 느낌.

빨리 나가서 뭐 좀 먹어야….

우루루!

이제 지긋지긋한 광산 좀 벗어나겠구나 싶은 순간.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대산의 직원들이 우루루 길을 막아섰다.

또각. 또각.

광산에 어울리지 않는 신발의 소리.

에메랄드 머리를 흩날리며 최리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 독사 같은 년 저거, 왜 또 왔지.

등장과 동시에 불안한 기운을 뿜어내는 최리아.

최리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 *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요!”

“피 투성이신데 괜찮으신 건가요!”

광산 밖.

밖으로 나오자 대기 중이던 기자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저 저 독한 년 저거.

광산 안에 널렸던 게 카메라인데도 기자들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는 걸 보니.

내부에서 보여준 대산의 추함을 감추기 위해 최리아가 의도적으로 손을 쓴 듯했다.

“게스트 헌터분들! 말씀 좀 해주세요!”

“대산 소속이 아닌 객관적인 입장으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배이슬과 유연경 외 게스트 헌터들에게 마이크가 내밀어졌지만,

“….”

질문에 답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 아시겠지만 초대된 게스트 헌터 분들은 모두 서약서를 쓰셨습니다. 어겼을 때의 조항은 숙지하고 싸인 하신 거겠죠?

살아 계셔서 다행입니다란 말 대신 위반 사항에 대해 읊는 최리아.

게스트 헌터들이 밖으로 나가 안에서 있었던 일을 발설하지 않도록 미리 단도리 지으러 온 듯했다.

계속되는 질문공세에도 아무 말 못 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배이슬과 유연경.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짠한 마음이 들었다.

어쩔 수 없겠지.

대한민국에서도 손에 꼽는 대기업, 대산.

이런 대산과 척을 진다는 건 동영상과 여러 기업의 광고, 후원금을 통해 먹고 사는 게스트 헌터들에겐 치명적인 일이었다.

돈이 좀 덜 벌리는 걸 넘어 생계 자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는 일.

- 백운 님도 본인이 무기왕이라는 거, 계속 숨기고 싶으시겠죠?

가능하다면 숨기고 싶었다.

동일 인물이란 게 알려지는 순간 길을 갈 때마다 사람들이 알아볼 터였고 그만큼 행동에도 제약이 생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렇게 노골적으로 약점처럼 사용해대니 조금씩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굳이?

행동에 제약은 생길 수 있겠지만 치명적인 건 아니다.

맨날 대로변을 거닐 것도 아니었고, 아직 국가의 유물을 훔친 것도 아니었다.

언젠가 훔칠 수도 있겠지만.

스윽.

- 알아들으신 걸로 알겠습니다. 이 가면 쓰고 조용히 나가세요.

일단은 최리아가 건네준 가면을 쓰고 밖으로 나왔다.

나오면서도 잠시 고민 중이었다.

앞으로 대산에게 뽑아먹을 게 많은데 나라고 굳이 이제 와서 척을 질 필요가 있나 하는 고민이었다.

어차피 피렌조는 뒤졌고 난 살아남았으니까.

꼴 보기는 더럽게 싫지만 이쯤에서 그냥 넘어….

“무기왕님! 한 말씀 해주세요! 안에서 강한 데몬을 처치하고 사람들을 구한 게 대산의 김대석 팀장이라고 들었습니다!”

뭐?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정말 강한 데몬이었습니다.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전 싸웠습니다. 뒤에서 절 믿어 주는 팀원들과 공포에 질린 게스트 분들이 계셨기 때문이죠!”

어느새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고 쏟아지던 눈물 콧물을 닦아낸 뒤 인터뷰에 임하고 있는 김대석.

….

개미굴에서 이제 갓 10급이 된 헌터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겼다는 이유.

그 이유 하나만으로 최리아는 토벌전으로 날 초대했고, 그것도 모자라 능력을 사용해 암시를 걸었다.

도어에 혼자 배치한 것도 있지.

암시에 걸린 내게 최대한의 망신을 주기 위해 단독 도어 배정까지.

여기까지만 해도 참 지긋지긋하고 질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김대석.

어젯밤 내 맥주잔에 거품을 따르며 비아냥거리던 김대석의 모습이 떠올랐다.

후우….

그리고 제일 먼저 사람들을, 같이 일하던 팀원까지 버리고 도어까지 닫아버린 새끼가.

저런 인터뷰를 한다고? 그다음엔 다시 영웅으로 떠받들 여지고?

개더럽네.

실소가 터질 정도로 더러웠다.

“무기왕님! 정말 아무 말씀도 안 하실 건가요!”

CBC 방송의 송유빈이 애타는 표정으로 질문을 건네왔다.

….

이건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다.

아니었지만, 계속해서 이 순간이 떠올라 잠을 설칠 것 같았다.

에라이… 씨.

잠은 편하게 자야지.

고개를 들어 질문하는 송유빈을 바라봤다.

“혹시 이거 생방송인가요?”

“!? 네… 네! 전국으로 실시간 송출되고 있습니다.”

짝! 짝!

“전부 여기 좀 봐주실래요?”

“!?”

우루루.

함구하고 있던 내가 입을 열자 현장에 있던 모든 카메라가 나를 향했다.

- 그리고, 혹여나 딴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소수의 주장은 언제나 쉽게 묵살되기 마련이니까요. 증거도 없는 한 사람 주장 지우는 건 일도 아닙니다.

허술한 년.

내 몸부터 뒤졌어야지.

“기자님, 혹시 태블릿 있나요?”

“네! 여기 있습니다.”

말하기 무섭게 송유빈이 거대한 태블릿을 건넸다.

스윽.

태블릿을 건네받은 뒤 옆을 바라봤다.

뭐 하는 짓이냐는 얼굴로 눈을 부릅뜨고 있는 최리아.

만나서 더러웠고,

최리아를 보며 함박 미소를 지어줬다.

다신 보지 말자 독사 년아.

가면 때문에 보여주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이후 무기들?

대산에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편하겠지만.

됐다.

내가 알아서 다, 대산보다 빨리 어떻게든 찾아낼 거다.

삑.

송유빈이 준 태블릿에 메모리 카드를 꽂자 액션 캠에 녹화됐던 영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스윽.

재생되는 영상이 잘 보이도록 수많은 카메라 앞으로 들어 올려줬다.

“이… 이게 무슨 영상인가요!”

영상 속에선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김대석이 도어를 닫고 있었다.

씨익.

“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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