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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66화 (66/473)

66화. 요정? 데몬?

“후우.”

흐물흐물해진 몸을 이끌고 바위로 올라갔다.

온천에 조금만 더 담그고 있다간 흐물흐물을 넘어 몸이 풀어 헤쳐질 것 같았다.

뽀득뽀득.

뭐지, 힐링수인가.

한껏 반들반들하게 된 팔뚝을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얼마나 만족스러운 온천이란 말인가.

자 그럼.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 뒤 두 눈을 감았다.

화아악…!

깜깜한 밤하늘과 대비 되어 밝은 듯 하지만 동시에 시린 느낌이 드는 달빛.

익숙한 달빛에 반가움을 느끼며 눈을 떴다.

왕의 무기고.

이전까지는 의식 너머로 보기만 했을 뿐 무기고의 공간으로는 직접 들어오지 못했었다.

그랬던 무기고가 스이카를 얻은 뒤엔 최소한의 자격을 얻은 건지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해졌다.

역시 왕좌는 없구만.

사실 있을 거라 기대도 하지 않았다.

맨 처음 만났을 때 카이안이 앉아있던 황금색의 왕좌.

얼마나 모아야 나오려나.

왕좌 주변에 수북하게 쌓여있던 무기를 떠올렸다.

아득하구먼.

왕좌에 앉아보려면 삼만 년은 걸리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걸어 주변을 둘러봤다.

흐뭇.

보기만 해도 기분이 뿌듯해지는 나의 작고 소중한 무기들이 꽂혀 있었다.

잭 더 리퍼의 면도칼.

쿨타임이 없어 이제는 내 기본 무기가 되어버린 무기다.

동기화 이후로는 별 기미가 없네.

피렌조와 싸울 때 발현된 기술, 동기화.

이후 기술도 일반적으로는 발현되지 않는다는 건가.

무기들에 공통점이 있다면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경험치 비슷한 게 쌓여 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치가 가득 해지고 적절한 조건이 갖춰졌을 때 무기는 다음 기술을 발현하는 듯했다.

슥.

고개를 돌려 유탈라스의 비늘을 바라봤다.

이건 또 이해되지 않는 타이밍에 발현이 됐었다.

갑자기 만땅이 됐단 말이지.

분명 비늘의 게이지는 한참 부족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순간 만땅으로 차버린 게이지.

비늘은 게이지가 만땅으로 변함과 동시에 용의 숨결이 발현되었었다.

아주 그냥 제각각이구먼.

알다가도 모르겠는 무기고였다.

너는 왜 얌전하니.

면도칼 옆에 놓여 있는 앤 보니와 메리 리드의 리볼버가 눈에 들어왔다.

사용 시간의 차이 때문인지 리볼버는 면도칼에 비해 게이지가 늦게 차고 있었다.

히메지 성에서 꽉 채우긴 했는데.

야금야금 차더니 저번 히메지 성에서의 사용으로 가득 차게 된 게이지.

그럼에도 리볼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 넌 은연 중에 거부하고 있더군.

동기화를 발현했을 당시 잭이 한 말이 떠올랐다.

음… 이거 때문은 아닌 거 같은데.

면도칼의 경우엔 본능적으로 거부반응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간질간질하며 눈앞에 있는 건 다 썰어버리고자 하는 광기.

천 명 넘게 썰어버린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이 광기를 처음 접하는 일반인에게는 거북스러울 수밖에 없는 기분이었다.

보니와 리드는 착하니까 그렇지 않을 거야.

- 널 구해 줄게.

서로를 껴안고 날 구해주겠다 말했던 보니와 리드.

살인광 잭과 비교하는 건 몹시 미안한 둘이었다.

운명에 맡겨야 하나.

면도칼과 비늘의 발현도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됐었다.

피렌조에게 목이 그이지 않았거나 마운티거를 만나 하늘에서 추락하지 않았다면 계속 발현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기다릴 테니까 빨리 되렴.

사삭.

조심스럽게 리볼버를 쓰다듬었다.

마치 얼른 부화하기를 바라는 어미 새의 느낌으로 말이다.

기분 나빠하려나.

보니와 리드를 떠올리니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에 호다닥 손을 뗐다.

“후우…!”

달빛이 가득한 하늘로 고개를 돌렸다.

올 때마다 참 신기한 장소였다.

넓은 세상 속에 혼자만이 존재하는 듯한 고립감.

마음이 편하고 가벼워지면서도 동시에 약간의 쓸쓸함을 느끼게 하는 묘한 공간이었다.

여기도 뭔가 있는데.

분명 무언가 있었다.

무기가 늘어날 때마다 무기고도 뭔가 변해가고 있는 건 분명한데, 그게 뭔지를 알 수가 없었다.

무기마다 양은 다르지만, 확실히 쿨타임은 줄어들고 있어.

그 양이 컸던 면도칼은 이미 쿨타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

다른 무기들도 찔끔찔끔이지만 착실히 줄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뭐라고 명확하게 짚을 순 없지만 무기고의 주인으로서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각각 게이지를 가지고 있는 무기와 달리 무기고 전체에도 게이지가 하나 있는 느낌이랄까.

묘하구만, 묘해.

게이지가 무기처럼 명확하게 보이면 참 좋겠지만 무기고는 그렇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게이지가 특정 수준에 이를 때까지 무기를 모아야만 정체를 알 수 있을 듯했다.

해봐야 의미 없는 고민을 마치고 예쁘게 꽂혀 있는 무기들을 바라봤다.

내가 어디 가서 비명횡사하지 않는 이상 영원히 함께할 동반자들이었다.

흐뭇.

두 손을 모으고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 *

다음 날 아침.

일어나기 무섭게 료칸을 나섰다.

아직 이틀은 더 묵어야 하는 료칸.

3일을 내리박혀만 있을 수 없으니 마을 구경이라도 할 심산이었다.

“이거 하나 가지고 가세요.”

문을 나서려는 내게 꼬치 하나를 건네는 주인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감사히 받아들고 입으로 직행시켰다.

저벅.

우물우물.

꼬치에 있는 오징어를 우물거리며 걸음을 거닐었다.

확실히 이런 맛이 있단 말이야, 일본은.

유후인에선 고층 건물을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건물이 옛날에 지어진 전통 건물들.

그 건물들을 둘러싸고 있는 풍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느 것 하나 인위적인 만들어짐 없이 자연에 녹아 있는 다리와 강까지.

여기만 시간이 멈춘 느낌이야.

데몬도 이런 데는 안 나타날 것 같단 말이야.

끼잉….

!!

재수 없는 말을 한 탓일까.

내 말 때문에 데몬이 나타난 줄 알고 화들짝 놀라버렸다.

아니네.

소리가 난 곳엔 작은 검은색 털뭉치 같은 게 하나 널브러져 있었다.

대낮인데도 바들바들거리고 있는 털뭉치.

강아지인지 고양인지는 모르겠지만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멍멍.”

….

“냐옹.”

여전히 아무 반응 없는 털뭉치에게 다가갔다.

댕댕이 아니면 야옹이 중에 하나일 줄 알았는데.

내 소리가 잘못됐나.

쭈그리고 앉아 털뭉치에게 손을 뻗었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보드라운 털의 감촉.

순간이지만 이건 킹냥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야옹아 어디가… 허.”

여전히 낑낑거리고 있는 녀석.

녀석은 강아지도, 고양이도 아니었다.

털 북슬북슬한 고양이 같은 생김새긴 했지만, 이마 정중앙에 뿔이 나 있었다.

데몬이다.

회귀하자마자 만난 하운드처럼 강아지나 다른 동물을 닮은 데몬은 많이 있었다.

발생 초반엔 데몬이 동물들로부터 생겨난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았을 정도로 종류 역시 다양 그 자체.

이건 본 적 없는데.

가운데 뿔을 떠나서 이렇게 귀여운 데몬 자체를 봤던 기억이 없었다.

하운드만 해도 댕댕이과인데도 정신 나간 미친개처럼 생겼고, 다른 과의 데몬들 역시 대부분 하운드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끼잉.

!!

심장이 아픈 느낌이다.

데… 데몬이야!

머리와 달리 난 이미 털뭉치에게 손을 뻗고 있었다.

갑자기 거대해져 날 잡아먹을 수도 있으니 긴장의 끈은 최대치로 당겨 놓은 상태였다.

덥썩.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앙증맞은 크기.

끈적.

약지에서 느껴지는 끈적함에 돌려보니 피가 묻어나오고 있었다.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날카로운 칼 같은 거에 베인 상처였다.

흐음.

묘한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만난 데몬들은 모두 만나는 순간 본능이 먼저 경고를 해줬었다.

날 공격할 것이며 당장 죽여야 한다는 경고.

애는 아니란 말이지.

새끼라서 그런가.

뿔만 없었다면 그냥 불쌍한 새끼 고양이었다.

- 모두가 사람을 해치는 데몬만 있는 건 아닙니다.

회귀 전 유물관에서 논물을 발표했던 박사가 있었다.

데몬 중에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려는 종도 있었고, 이런 종이라면 우리가 거둬들여 공생해야 한다는 발표였다.

- 정신나간 년!

물론, 종말의 날을 맞은 사람들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발표였다.

쏟아진 욕이 주먹이었다면 이미 맞아 죽고도 남았을 정도로 얻어먹고 도망치듯이 유물관을 빠져나갔었다.

솔직히 그렇게 욕먹을 건 아니었는데.

대놓고 데몬을 데리고 싸우는 테이머 능력도 존재했다.

약간 다른 게 있다면 그건 공생이라기보단 힘의 차이로 굴복시켜 싸움에 내보내는 경우지만 말이다.

저번 마운티거랑 계약한 탈옥수도 그렇고.

이미 여러 사람이 능력을 통해 데몬과의 소통을 입증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본능적인 거부감은 어쩔 수 없지.

소통의 가능성을 떠나 데몬하면 무조건 죽여야 하는 걸로 인식되고 있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긋지긋하게 당해왔으니 말이다.

끼잉.

“수상한 짓하면 바로 하늘나라 행이다.”

으름장을 놓은 후 몸을 돌렸다.

돌아가서 대일밴드라도 붙여줄 생각이었다.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그때 죽여도 늦지 않는다.

“저기요!”

몸을 돌려 료칸으로 돌아가려는 길.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헐레벌떡 달려온 건지 숨을 몰아쉬고 있는 여자.

그 뒤를 따라 일행으로 보이는 대여섯의 사람들이 도착했다.

어디 굴러다녔나.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흙투성이였다.

조금 전 각개전투를 마친 CS 전투복의 느낌이다.

“그거… 저희 거예요!”

“…?”

여자가 가리키고 있는 건 내 손 위에 있는 냥냥이었다.

끼이잉.

더 진한 울음소리를 내며 내 품으로 파고드는 냥냥이.

말이 통하는 건 아니었지만 바들바들 떠는 녀석의 몸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앞에 있는 여자를 두려워한다.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인간이 도망치긴커녕 데몬을 쫓고 있는 상황이라니.

거기다,

스윽.

앞에 여자는 생글생글 웃고 있었지만 그 뒤의 일행은 아니었다.

나와 여자를 번갈아 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바들바들.

거기다 점점 떨림이 심해지는 냥냥이까지.

구린내가 나는데.

데몬 하나 잃어버렸다고 저렇게 허겁지겁 여럿이 찾아다니는 건 아무리 봐도 부자연스러웠다.

“이거 데몬이잖아요.”

“네?”

“데몬은 왜 데려가려고 하세요?”

워낙 급해 생각해놓은 이유가 없는지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짓는 여자.

잠시 후 여자가 입을 열었다.

“아! 통성명도 안하고 있었네요. 전 히리, 요시다 히리에요.”

“전 백운이에요.”

“아아 백운 님이셨군요!”

친한 척 봐라.

내가 의심병이 걸린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뜬금없는 통성명에 이은 친근하게 부르기라니.

잘생긴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면 당연히 의심해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끼잉.

“애가 좀 다친 거 같아서요. 치료부터 하고 얘기하시죠.”

여전히 머리를 굴리기만 할 뿐 말할 기미가 안 보이는 히리.

날 새겠다는 생각에 멈췄던 발걸음을 옮겼다.

….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아! 잠시만요!”

급하게 달려온 히리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흴 의심하시는 거 같으니까 같이 가게라도 해주세요. 제발요!”

조용히 히리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히리가 절박하게 말해서는 아니었다.

냥냥이의 반응을 떠나 조금 전 이 상황에 몹시 흥미가 생기고 말았다.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며 일행과 날 따라오는 히리.

그런 히리와 무리를 뒤로하고 묵고 있는 료칸으로 향했다.

이 새끼들 봐라.

조금 전 정적이 찾아온 순간.

미세했지만 들리고 말았다.

- 스르릉.

- 스릉.

분명 쇠붙이를 꺼내는 소리.

그것도 한 둘이 꺼낸 게 아니었다.

히리를 제외한 모두가 꺼낸 듯했다.

데몬 하나 안 넘겨준다고 칼을 꺼내?

씨익.

이거….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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