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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65화 (65/473)

65화. 온천은 따듯하다

히메지 성을 떠나는 날.

“백운 님, 한국에서 봐요.”

다음 회담을 위해 머지않은 시일 내에 한국으로 방문할 예정이라는 쇼고와 쿄스케.

쿄스케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좀 못 본다고 모르는 척하지 마시고요.”

“어허, 모르는 척이라니.”

덥석.

쿄스케의 손을 잡으며 다른 손으로 엄지를 치켜세웠다.

“배 터질 때까지 맛있는 거 먹여 줄 테니까 얼른 오도록.”

“좋습니다, 비싼 걸로만 먹을 테니까 준비하고 있어요.”

쿄스케와 편하게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

옆에선 최리아와 쇼고가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으나 분위기가 훈훈한 걸로 보아 덕담을 주고받는 듯했다.

다행이네.

밝게 웃고 있는 쇼고를 보고 있자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히메지의 중앙성은 기자와 학자들로 가득 찼었다.

그들을 향해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최선의 행동을 보여 준 쇼고.

- 선대의 오점을 바로 잡으려는 용기 있는 장군!

- 그 누가 히라이 쇼고보다 더 솔직할 수가 있겠는가!?

그런 쇼고를 향해 여론은 우호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쇼고가 그런 결정을 내리는 데까지 내 지분이 컸던 건 사실.

이번 일로 여론이 돌아서고 쇼고가 큰 곤경에 처했다면 잘잘못을 떠나 매우 미안했을 것이다.

“저희가 공항까지 모셔다 드리면 좋을 텐데요.”

쇼고의 말에 최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대산에서 인원을 보내준다고 해서요. 곧 도착할 때가 되었습니다.”

아, 맞네.

어제 얼핏 들었었다.

히메지 성에서의 일을 보고 받은 대산이 인원들의 안전을 위해 헌터 한 명을 보내준단 것이었다.

그나저나 한 명이라니.

처음에 들었을 땐 좀 의외였다.

받았던 공격 규모를 봤을 땐 한 트럭 정도는 보내줘야 할 것 같은데.

“그럼 백운 님은 이쪽 차량으로 타시죠.”

두근.

어젯밤 일이었다.

첫 해외여행을 사람만 썰다 돌아가기가 왠지 아쉬웠던 찰나.

이제 대산과 동행할 필요도 없는데 잠시 관광이라도 즐기고 가자는 마음이 들었다.

온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일본 여행하면 뜨끈한 노천 온천이 생각나는 게 당연했다.

- 쿄스케, 공항 가는 길에 온천 없어? 난 거기서 좀 내릴까 하는데.

순간 흔들렸던 쿄스케의 동공을 잊지 못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개고생을 한 이후 한시라도 빨리 안전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할 텐데 온천을 가겠다니.

난 돌아갈 집이 없단다.

고개를 끄덕이며 집이 없음을 눈빛으로 전달했고,

- 온천은 유후인이라고 하던데.

유후인을 원한다는 간접적인 의사도 잊지 않았다.

“하하… 이거 차까지 준비해주시다니.”

예의상 말은 했지만 몸은 이미 준비된 차량으로 슬금슬금 나아가고 있었다.

온천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봤을 뿐인데 차와 료칸의 예약까지 진행해 준 쇼고와 쿄스케.

- 엄청 비싼 곳이에요.

쿄스케에게 슬쩍 듣기로 쇼고가 예약해 준 곳은 유후인에서도 손에 꼽히는 호화 료칸이라고 했다.

두근두근 하구만.

첫 해외여행에서 호화 료칸이라.

뜨끈한 온천에 몸을 담군 채 따듯하게 데운 사케를 한 잔.

크으.

벌써부터 취기가 올라오는 느낌이다.

“나중에 또 봬요, 백운 님.”

이제는 대산 인원들과도 헤어져야 할 시간.

찹살떡이 먼저 인사를 건네왔다.

“네, 수희 님 조심히 가세요.”

스윽.

쇼고와 이야기를 마친 최리아도 천천히 고개를 숙여왔다.

-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어제 최리아에게 창고에서의 일을 사과하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과거는 묻어 두고서라도 너무 멘탈 나갈만한 장면을 보여준 건 사실이니 한 건데 의외로 무덤덤한 모습이었다.

- 최소한의 보답을 한 거니까요.

목숨을 구해준 것에 대한 보답.

당연하겠지만 최리아는 며칠간 함께 한 정이나 의리 때문에 도와준 게 아니었다.

그저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줬으니, 받은 것에서 어느 정도는 다시 돌려준다는 느낌이었다.

그야말로 깔끔한 기브 앤 테이크 논리.

마음은 편하지만.

덩달아 고개를 숙인 뒤 몸을 돌렸다.

역시 어려운 사람이야.

어려운 사람.

히메지 성으로 함께 향하기 전만 해도 마음속에서의 최리아는 그저 독한 년이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많이 호전된 느낌이다.

어쨌든 진짜 볼 일 없겠지.

찹살떡을 못 보게 되는 건 좀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각자 갈 길이 다른 것을.

휘적휘적.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 * *

탁.

차 문을 닫는 최리아를 향해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이구만, 최리아 실장.”

차를 직접 운전하고 온 중년의 남자.

대산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 급 헌터 중 한 명, 장판석이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판석 님.”

“안… 안녕하세요!”

뒤이어 차에 탄 전수희에 장판석의 눈이 커졌다.

“아니 뭐야, 이 찹쌀떡은.”

“네… 네? 찹쌀떡요?”

작은 체구에 커다랗고 동그란 안경까지.

어릿어릿한 전수희의 모습에 놀란 모습이었다.

“이야.”

전수희와 최리아를 번갈아보더니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장판석.

“무슨 의미시죠?”

최리아의 물음에 장판석이 어깨를 으쓱 올려 보였다.

“둘 다 고생이겠구나 싶어서.”

머리를 긁적이며 당황하는 전수희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돌리는 최리아.

두 사람을 보며 웃은 장판석이 입을 열었다.

“죽을 뻔했다면서?”

“….”

최리아도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죽을 뻔한 걸 넘어 확실히 죽는 상황이었다.

“운명론적으로 말하자면 죽었어야 할 운명이었죠.”

“그러게 회장님 말 좀 듣지 그랬어.”

원래였다면 받아쳤겠지만 저 건에 있어선 할 말이 없었다.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있으니 장판석의 복귀를 기다렸다가 같이 가라고 말했던 소피아.

하지만 오래 기다려 온 회담인 만큼 일정을 미루고 싶지 않았기에 최리아는 강행군을 선택했다.

“부산에서 일은 잘 끝나셨나요?”

“대산이 매입한 부지 쪽은 다 정리 끝났어. 아마 잔챙이 몇 마리 정도나 남아있을 거다.”

사업 확장을 위해 대산은 부산의 땅을 매입했다.

데몬이 들끓는 곳이라 모두가 기피해 땅값이 매우 낮은 곳이었지만.

장판석이 감으로써 이젠 데몬이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변하게 되었다.

“아까 다른 차 타고 가던 게 그 유명인이고?

처음 보는 장판석에 조용히 쭈그러져 있던 전수희.

장펀석이 그런 전수희를 위해 질문을 던져줬다.

“아… 네! 맞습니다.”

“시노카 암살대를 박살 낸 것도 고놈이고?”

고개를 끄덕이는 전수희에 장판석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시노카 암살대와 나카지.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암살대치고는 큰 규모로 간사이의 호랑이라 불리는 나카지를 필두로 활약하는 살수들.

“소식 들었지? 히무라 그 노인네가 죽었고, 그곳에 시노카 암살대가 있었다는 거.”

“네, 비공식 루트로 들었습니다.”

일본 정재계에서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히무라.

그런 히무라가 암살대와 한 공간에서 죽었다는 사실이 껄끄러운 건지 일본 정부는 해당 사건을 철저히 은폐해버렸다.

워낙 큰 학살극이 벌어졌다 보니 완벽하게 숨기진 못해 이렇게 흘러나오긴 했지만 말이다.

“….”

잠시 침묵하고 있던 최리아가 입을 열었다.

“그것도 백운입니다.”

“어떻게 확신하지?”

“… 제가 도와줬으니까요.”

“!”

최리아의 말에 전수희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부탁을 받고 나카지란 남자에게 암시를 걸어줬고, 나카지가 말한 곳이 히무라 저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밤, 백운 님은 히메지 성에 없었고요.”

“그렇군.”

전수희와 달리 장판석은 그다지 놀란 얼굴이 아니었다.

그저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작은 한숨을 내쉬며 정면을 응시하는 최리아.

“찾아내야죠.”

꿀꺽.

침을 삼킨 전수희가 최리아를 바라봤다.

최라아가 제대로 마음먹었을 때만 나오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대가를 치르게 할 겁니다.”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장판석.

잠시 최리아를 쳐다보던 장판석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누가 더 쎈 거 같아?”

“예? 누가 더 쎄다니…?”

“나랑 백운이란 남자 중에서 누가 더 쎈 거 같냐고. 내가 싸우는 것도 본 적 있으니 대충 감이 올 거 아니야.”

장판석이 생글생글 웃으며 장난스레 질문을 건넸다.

궁금했다.

싸움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타인이 봤을 때 누가 우위에 있을지 말이다.

“….”

잠시 고민하던 최리아가 말을 시작했다.

“글쎄요, 제가 싸움에 특화된 능력자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분명한 건 한 가지 있습니다.”

장판석과 전수희가 최리아를 응시했다.

최리아의 머릿속에선 히메지 성에서 봤던 백운의 모습이 영화 필름처럼 재생되고 있었다.

회담 장소에서 나카지와 암살대를 썰어버렸던 장면과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나카지를 피떡으로 고문하던 악귀 같은 장면.

거기다 정보를 얻기 무섭게 찾아가 히무라와 암살대를 전멸시켜버린 것까지.

“절대… 적으로 돌려선 안 된다는 것.”

* * *

푸우우우우우…!

“끄… 끄아…!”

누가 들으면 칼에 찔렸나 의심할 것 같았다.

온도 머선 일이고 이거.

조금 전 입수한 료칸의 야외 온천.

나를 위해 온도를 맞춘 건가 의심이 되는 최적의 온도였다.

서서히 잠기는 발끝을 시작으로 목까지 올라오는 이 간질거림.

극락이다.

히메지 성에서도 좋은 욕실에서 샤워를 하긴 했지만, 뭔가 2% 부족한 느낌이었었다.

몸속까지 찌든 피비린내가 사라지지 않는 그런 느낌.

없어졌어.

확신이 들었다.

몸 안에 뭐가 있었든 지금은 이 온천물에 다 씻겨 내려갔다.

동동.

!?

잠시 후 온천의 한쪽 벽이 열리며 작디작은 소형 나룻배 하나가 들어왔다.

왜 밥을 안 주나 했더니.

나룻배 위에 밥이 있었다.

보통 밥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산해진미가 모여있는 거대한 나룻배.

모락모락.

그 위엔 조금 전에 데워진 건지 김이 나는 사케도 함께였다.

찔끔.

살짝이지만 눈물을 흘린 것 같았다.

백운, 성공했다 이거.

덥썩.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회를 한 점 먹은 후.

호로록.

데워져 있는 사케를 들이켰다.

“와… 뒤진다.”

육성으로 찐 감동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하아…!”

나른해지는 몸을 온천의 벽에 기댔다.

산속에 위치해서인지 별이 잘 보이는 자리였다.

구름에 가려져 달빛이 잘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이건 이거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스륵.

들어 올린 손을 바라봤다.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

사람을 몇 명이나 죽인 건지 세기도 힘들었다.

잭 더 리퍼 주니어가 되어버린 건가.

….

잠시 생각해보니 주니어가 아닌 것 같았다.

숫자의 절대치만 봤을 땐 잭 더 리퍼의 할아버지가 와도 혀를 내두를 수치.

인간 참 모를 일이란 말이야.

솔직히 놀랐었다.

사람을 죽이는데 이렇게까지 별생각이 안 들다니.

곡성에서의 탈옥수들부터 해서 이틀 전 시노카 암살대와 히무라까지.

천이 넘는 놈들을 죽여오며 난 한 번도 죄책감이라던가 망설임을 느낀 적이 없었다.

싸… 싸이코패슨가.

미간을 찌푸린 채 잠시간의 고뇌를 마친 후.

호로록!

따라놨던 사케를 쭈욱 들이켰다.

히어로 되긴 글렀구만.

지금까지 봐온 히어로들은 대부분 불살이란 규칙을 중요시하며 지켜왔다.

어기게 되었을 땐 몹시 고통스러워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말이다.

하지만,

난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아무나 죽이겠단 말은 아니었다.

단지, 내가 길을 걷는데 있어 죽여야 한다고 판단이 든다면.

망설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슥.

손을 들어 가려진 달을 향해 펼쳐 보였다.

최악의 빌런이 될지언정,

꽈악.

단 하나도 포기하거나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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