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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64화 (64/473)

64화. 이미 충분

어둠이 깔린 회의실.

#….

#….

화상 회의엔 많은 이들이 참석하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

그건 연수정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불만을 가지고 회의에서 날카로운 뱉어내던 연수정이지만, 오늘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 대신, 조금 전 들은 보고를 다시 한번 되물을 뿐이었다.

“… 히무라 님이 죽었다는 게… 사실입니까?”

조금 전에 들었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같은 목적을 위해 일시적으로 모이긴 했지만, 화상 회의에 있는 모든 이들이 미래의 경쟁자였다.

그렇기에 필요한 정도만 협력하며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 위험한 노인네야.

그중에서도 연수정이 가장 경계했던 게 히무라였다.

일본의 보이지 않는 큰 손.

정치, 경제 등 히무라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없었다.

- 위험한 암살대까지 거느리고.

연수정을 포함한 다른 이들에게도 사적으로 부릴 수 있는 헌터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히무라의 암살대는 위험했다.

개방이란 게 나타나기 전부터 히무라는 암살대의 육성에 엄청난 돈과 시간을 쏟아부었기에 시노카의 규모와 강함은 항상 위험이 되는 요소였다.

# 한칼에 목의 대동맥과 대정맥이 끊어졌습니다. 발견했을 땐 몸에 있는 피가 대부분 빠져나간 뒤였다고 하더군요.

“….”

# 그리고 현장엔 약 700명 가량의 시노카 암살대의 시체들이 늘어져 있었고요. 그 시체들도 대부분 몸에 피가 남아있지 않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런 히무라가 죽어버렸다.

그것도 혼자 비명횡사 한게 아니었다.

누군가 대저택을 지키고 있던 시노카 암살대 700명을 뚫고 죽인 것이었다.

# 시노카를 포함해 히무라까지… 전부 똑같은 상처였습니다.

제일 기가 찬 부분이었다.

시노카 암살대를 능가하는 병력이 습격한 거였다면 오히려 납득을 했을 것이다.

어떤 전력이든 그 전력을 뛰어넘는 이들이 항상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처가 모두 같다는 건 한 가지를 의미했다.

‘히무라를 포함해 시노라 암살대를 전멸시킨 건… 단 한 명.’

명확한 증거가 있었지만 쉽게 믿기지 않는 진실이었다.

‘대체 어떻게?’

전해 들은 순간부터 고민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들 중 일본에 있던 이는 아무도 없다.’

물론 저런 일이 가능한 사람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국가 소속 1급 헌터들이나 각 기업을 지키는 기둥급 헌터들, 혹은 타 국가의 비슷한 수준의 헌터.

이미 세간에 이름을 날리고 있는 괴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수정의 정보망에 의하면 그들은 어젯밤 일본에 있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괴물이 하나 더 있다.’

지금 연수정을 겁에 질리게 만드는 요소였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보이지 않는 위험.

리스크를 가늠할 수조차 없기에 두려움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 모임은… 잠시 멈추도록 하죠.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건 연수정뿐 만이 아니었다.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 보이지 않는 괴물의 칼이 자신들에게 향할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말이다.

# 지금은… 숨을 죽여야 할 때입니다.

평소라면 겁쟁이라고 비난했을 테지만 오늘은 달랐다.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하죠.”

고개를 끄덕인 연수정이 버튼을 눌러 회의를 종료했다.

꿀꺽.

‘대체 누구냐…!’

연수정의 등 뒤로 식은땀이 한줄기 흘러내렸다.

* * *

와구와구!

리필되어 나온 닭다리를 집어 들었다.

와작!

시원한 소리와 함께 닭다리의 살이 쏘옥 분리되었다.

히라이 쇼고가 대산의 인원들을 위해 차려 준 만찬.

정확히는 대만찬이었다.

상다리가 안 부러지는 게 신기할 정도로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들이 차려져 있는 식탁.

단기 기억상실증인가.

회담 직전에 먹었던 밥을 제외하고는 오늘까지 제대로 먹은 게 없었다.

여기저기 쏘다니느라 바빴기 때문.

그래서인지 앞에 나온 만찬을 본 이후로 지금까지, 약 20분 가량의 기억이 끊어져 있었다.

흥건.

손에 범벅이 되어있는 기름과 든든한 배를 보니 기억이 사라진 사이에 뭘 했는지는 명확했다.

음! 제대로 먹었구만.

만족하며 다시 음식으로 손을 뻗으려는 찰나.

“….”

왠지 모르게 고요한 공기에 슬쩍 눈을 돌렸다.

자신의 입에 음식을 넣는 것조차 까먹고 있는 사람들.

사람들의 눈은 전부 날 향하고 있었다.

“저… 정말 잘 드시네요, 백운 님. 안에 있는 요리사가 기뻐하겠군요.”

쇼고에 이어 유난히 눈동자의 흔들림이 잘 보이는 전수희도 입을 열었다.

“백운 님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른 느낌이에요.”

“하하….”

멋쩍게 웃으며 옆에 놓인 냅킨에 손을 슥슥 닦았다.

늦은 것 같지만 이제부터라도 지성인답게 식사를 할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다들 잘 못 먹는구만.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바로 며칠 전에 죽을 뻔한 건 물론이요 피가 허공으로 흩뿌려지는 걸 정면으로 봤으니 말이다.

스윽.

고개를 들어 최리아를 바라봤다.

다른 사람들보다도 특히 음식에 손을 못 대고 있는 모숩.

좀 미안하네.

- 차라리 죽여!! 이 악마 새끼야!!

창고에서 절규하던 나카지.

고문 스킬이 부족해서인지 거의 하루 넘게 괴롭혔는데도 나카지는 주인에 대한 정보를 말하지 않았다.

그때 떠오른 게 최리아의 암시였다.

정말 아쉬운 소리 하고 싶지 않았지만, 쿄스케에게 잠정적인 위험이 될 수 있는 놈들을 남겨두고 떠날 순 없었다.

한국으로 갈 때 한 번 더 사과해야겠다.

토벌전에서의 일은 토벌전에서의 일이었다.

그것과 별개로 끔찍한 걸 보게 했으니 다시 한번 사과를 할 생각이다.

“백운 님, 식사가 끝나면 잠시 뵙도록 하죠.”

예의 바른 쇼고가 말을 건네왔다.

아마 어젯밤 부탁했던 것 때문이리라.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자 쇼고가 뒤에서 대기 중인 요리사를 바라봤다.

“백운 님 자리에 닭고기 좀 더 가져다 주실래요?”

* * *

즐거운 식사가 끝난 후.

끼익… 탁.

쇼고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어제 하인들과 함께 관련된 기록을 찾아보았습니다.”

- 사사키 코지로에 대한 기록을 찾아봐 주실 수 있나요?

어젯밤, 꽤 오랜 시간동안 스이카에서 본 것들을 쇼고에게 이야기해줬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경청한 쇼고.

- 일단 기록을 찾아보겠습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쇼고는 기록을 찾아보겠다며 방을 나섰었다.

탁.

쇼고가 서랍에서 한 뭉치의 서적을 꺼내 들었다.

얼마나 오래된 책인지 여기저기가 헤지고 찢어져 있었다.

제대로 된 기록이라기보단 개인적인 일기장 느낌이 더 강하게 나는 책.

“선조인 히라이 테즈카 대에 쓰여진 일기입니다. 역사를 기록하던 서기의 개인적인 내용이죠.”

쇼고는 테즈카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들려주었다.

승기를 확실히 잡은 듯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적들의 동맹에 밀려 결국엔 일본을 손에 넣지 못했다는 이야기였다.

굴욕적인 협약을 통해 히메지 성을 포함한 좁은 영토만을 제외하고 모든 걸 잃어버리게 된 것.

“그리고, 여기에 쓰여져 있더군요. 백발의 귀신에 관한 이야기가요.”

“…!”

“솔직히 백운 님의 말을 들었을 땐 믿기지 않았습니다. 단 한 명이 어떻게 그런 힘을 가지고 있으며, 수백 년은 더 된 이야기를 백운 님은 어떻게 다 알고 있는지도 의문이었으니까요.”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다.

목숨을 구해주긴 했지만 난 타국의 이방인.

그런 이방인이 선조의 역사를 부정하며 조작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니 어찌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완벽히 일치하더군요. 주군이 무서워 공식적인 항명은 못 했지만, 역사를 기록해야 하는 자로서의 사명을 지키기 위해 남긴 일기장. 백운 님이 들려주신 것과 완벽히… 같았습니다.”

“….”

왠지 모르게 씁쓸한 미소를 짓는 쇼고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슥.

고개를 든 쇼고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이 기록을 가지고…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쉽게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그 기록의 주인공인 사사키 코지로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복수도, 잘못된 기록이 바로 잡히는 것도, 그저 오래된 일이라며 상관없다고 했었습니다.”

“… 그렇군요.”

“그리고 전 마지막으로 테즈카의 후손인 쇼고 님을 지키기 위해 스이카를 써도 되냐고 물었었습니다.”

“….”

작은 한숨을 내쉰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것도 상관없다고 하더군요. 그저… 오래된 일이라고.”

“!!”

“이런 말씀 드리기는 좀 그렇지만.”

“말씀해주세요.”

약간의 숨을 들이쉬고 솔직한 마음을 말했다.

“만약 사사키 코지로가 쇼고 님을 위해 스이카를 쓰길 원치 않았다면….”

말끝을 흐리며 쇼고의 눈을 바라봤다.

더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하하… 그렇군요.”

의자에 몸을 기댄 쇼고가 눈을 감으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등에 칼을 꽂은 자의 후손을… 살려주었다라.”

* * *

우글 우글 우글.

와작.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를 베어 물며 정면을 바라봤다.

히메지 성의 중앙에 새까맣게 모여있는 일본의 기자와 역사 학자들.

“백운 님, 엄청난 일을 저지르셨네요.”

옆에 앉은 쿄스케가 장난스럽게 말을 건넸다.

스이카를 넘긴 것도 그렇고.

좋은 장군님이야.

기자와 학자들이 모인 이유.

히라이 쇼고는 발견했던 사사키 코지로의 기록을 조금의 수정이나 숨김도 없이 세간에 공개해버렸다.

- 선조의 잘못을 바로 잡는 것도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깊이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선조가 한 행동에 대한 사과와 함께 말이다.

스윽.

옆에 있는 쿄스케에게 왕만두를 건넸다.

“….”

잠시 만두를 바라보다 웃음을 터뜨리는 쿄스케.

와작.

쿄스케가 받아든 만두를 입으로 가져갔다.

“조금 더 기뻐해도 되는 거 아니에요? 역사를 바로 잡았잖아요.”

“지금 간신히 인내하는 중이야.”

비슷한 나이에 말을 놓기로 했다.

물론 회귀 전과 마찬가지로 쿄스케는 존댓말을 계속하고 있지만 말이다.

“속으로만 기뻐하는 타입이군요.”

나도 처음 알았다.

기쁘면 항상 방방 뛰고 굴러다니고 그랬었는데.

한계선을 넘는 기쁨이 오니 이상하게 차분해졌다.

“어쨌든 속으로는 엄청 뿌듯해하고 있죠?”

“당연하지.”

물론 쿄스케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이유 때문이지만.

….

내가 뿌듯함과 기쁨을 느끼는 건 역사를 바로 잡아서가 아니었다.

고개를 돌려 쿄스케의 얼굴을 바라봤다.

흉터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

“미칠 듯이 뿌듯해하는 중이야.”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쿄스케.

쿄스케가 손에 들고 있는 만두를 바라봤다.

“그나저나 만나서부터 얻어먹기만 하네요. 백운 님 한국으로 가기 전에 제가 밥 한 번 사야 되는데 말이죠.”

“아니야, 안 그래도 돼.”

쿄스케의 입가에 흥미롭다는 미소가 그려졌다.

“와… 백운 님 사양도 할 줄 아는 분이었어요?”

“그런 게 아니라, 받았으니까.”

“네…? 받다뇨?”

의아해하는 쿄스케.

그런 쿄스케의 눈을 바라봤다.

“이미 차고 넘칠 정도로….”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충분히 받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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