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78화 (78/473)

78화. DOWN

쐐엑!

귓불을 스치며 지나가는 사로카의 주먹.

뭐… 뭐냐.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한 번의 공격 후 다시 멈춰 서 있는 사로카.

끈적.

귓가로 흐르는 피가 느껴졌다.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 했네.

오른손에 들려있는 면도칼을 내려다봤다.

사로카와 얼굴을 마주한 순간 본능적으로 면도칼을 꺼내 들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사로카의 주먹에 얼굴이 날아갈 뻔했다.

숨기고 있던 건가.

호흡을 가다듬으며 사로카를 살폈다.

갑주의 생김새만 변한 게 아니었다.

이동을 포함한 모든 움직임의 속도가 월등히 올라갔다.

피렌조 만큼은 아니지만… 위험하다.

지금은 피가 없어 잭 더 리퍼와의 동기화도 불가능한 상황.

사로카의 파워에 더해 빨라진 속도는 피렌조 때보다 훨씬 더 큰 위험으로 느껴졌다.

저벅.

한껏 여유를 부리던 사로카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몹시나 여유로운 걸음걸이.

이 정도 속도로 가도 충분히 널 죽일 수 있다는 여유가 느껴졌다.

“크르… 으!!”

쿠웅!

여유롭게 걷던 사로카가 순식간에 앞까지 쇄도해왔다.

!!

이번에는 죽이겠다는 생각일까.

쐑! 쐑! 팡!

쉴새 없이 사로카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한 방 한 방이 엄청난 바람 소리를 내며 휘둘러지는 치명타였다.

혹시 모르니까…!

스륵… 카앙!

아니나 다를까.

틈을 이용해 휘두른 면도칼이 갑주에 튕겨 나왔다.

돌기 형태로 바뀌며 방어력은 내려가길 바랐는데.

지금 손으로 전해진 느낌으로 봐선 면도칼로 사로카에게 데미지를 입히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팡! 팡! 팡! 팡!

사로카의 주먹이 도착하는 곳에선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나 파워가 세면 공기와 마주치며 저런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걸까.

집중하자.

계속해서 날아드는 주먹을 피하며 사로카의 동작을 살폈다.

사로카의 방어를 뚫을 수 있는 건 유탈라스의 비늘 뿐이었디.

리스크가 있다면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

그 뒤로는 쿨타임에 걸려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무조건 맞춰야 한다.

속도와 파워는 강력하지만 사로카의 공격은 단순했다.

특수한 기술이나 변칙적인 공격 없이 피지컬에 의존한 공격.

지금도 맞출 수 있을 것 같지만.

팡!

방심은 금물이다.

더 완벽한 상황을 만들어 때려야 했다.

이쯤이면 되겠지 하고 휘두르기엔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가 너무 컸다.

스윽.

곁눈질로 오른쪽에 있는 분화구를 바라봤다.

얼마나 깊은지 모르겠지만 떨어지면 어느 정도의 체공 시간은 보장될 것 같았다.

사로카는 날지 못한다.

몸이 뜨는 순간 날지 못하는 사로카는 피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조금 더 명확한 상황이 만들어지면 좋을 텐데.

공격을 피하면서도 계속해서 주변을 살폈다.

조금이라도 더 마지막 공격의 성공 확률을 높이고 싶었다.

부릉!

…!

그때 도착한 차량 한 대.

차에서 내린 건 밑에 있던 료코였다.

“산사태는 처리했습니다!”

말과 동시에 바닥으로 손을 짚는 료코.

료코의 손을 시작으로 눈보라가 일어나 사로카와 내 사이로 날아들었다.

드득…!

“크르…!!”

팔꿈치부터 엉겨 붙기 시작한 눈 때문일까.

사로카의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졌다.

지금이다.

일단은….

[앤 보니&메리 리드 - 작열탄]

도발.

사로카가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사이.

두두두두두두---!!

리볼버를 쏟아부었다.

뚫리면 베스트.

뚫리지 않더라도 도발의 효과는 있을 테니 상관없다.

콰가가아아아!!

단거리에서 쏟아져서일까.

부딪힌 탄이 굉음을 내며 폭발하기 시작했다.

사로카도 그냥 견디는 건 불가능한지 몸을 웅크리고 탄을 대비하는 것 같았다.

“료코 님! 눈으로 저놈 얼리는 게 가능한가요!?”

“완벽히 얼릴 수 있을진 모르지만… 시간만 주어진다면 가능합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손가락은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상황.

최소한 리볼버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여유가 생겼다.

생각하자.

날지 못하는 사로카와 적을 얼릴 수 있는 료코의 눈.

그리고 맞출 수만 있다면 한 번에 싸움을 끝낼 수 있는 내 비늘까지.

“제가 신호하면 저놈을 얼려주세요!”

“방법이… 있는 건가요?”

방아쇠를 당기며 입을 열었다.

“저놈은 날지 못합니다! 공중으로 끌어내서 싸움을 끝낼 거예요!”

“!!”

“끝낼 수 있는 공격이 있으니까 걱정말고 못 움직이게만 얼려주세요!”

“알겠습니다!”

행운이다.

매일 재수 없는 상황만 터지더니 오늘은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어 줄 원군이 생겼다.

그것도 싸움에 큰 도움이 되는 원군이 말이다.

콰가아!

리볼버가 시간을 다 하고 사라졌다.

[비전 수리검]

수리검을 꺼내 들고 앞을 살폈다.

사로카와 작열탄의 충돌로 매캐한 연기가 가득한 상태.

“크… 르…!!!”

사로카의 분노한 듯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작열탄으론 못 뚫은 건가.

연기가 걷히자 드러나는 사로카의 모습.

뚫지는 못했지만 확실히 타격은 받은 것 같았다.

새빨갛게 달아올라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갑주.

집중적으로 탄을 맞아서인지 갑주의 한쪽은 흐물흐물해져 있었다.

저기로 꽂아야겠네.

“준비 됐습니다!”

료코의 외침이 들려왔다.

“크라아!”

동시에 사로카가 땅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날 죽이고 싶어 완전히 눈이 돌아간 상태였다.

후웅!

분화구 쪽으로 수리검을 던진 뒤.

따라와라.

사로카가 내게 도달하기 직전,

[비전]

분화구의 허공으로 몸을 이동시켰다.

따라와.

혹시나 료코 쪽으로 간다면 작전은 실패다.

늦지 않게 수리검으로 료코에게 가 일단 피하고 봐야 했다.

파앙!

하지만, 눈이 돌아간 게 확실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내게 뛰어드는 사로카.

이로써 사로카도 허공에 떠오르게 되었다.

갑주가 달궈져서인지 아직 좀 거리가 있는데도 열기가 느껴졌다.

닿기만 해도 최소 화상이겠네.

약간의 거리를 두고 사로코와 내가 분화구의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상황.

“크라아!!”

위에서 나를 향해 추락하는 놈을 보고 있으니 오금이 저려왔다.

슥.

수리검을 뒤로 젖힌 후 사로카의 위쪽으로 내던졌다.

쐐엑!

사로카의 옆을 지나 위까지 나아간 수리검.

날 향해 날아들고 있는 사로카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공수교대다, 이 새끼야.”

[비전]

* * *

“크르…!?”

위아래가 뒤바뀌자 사로카가 하늘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학습 능력이 없구만.

수리검 비전으로 그렇게 이동하는 걸 봤으면서도.

눈이 돌아가 달려드는데 급급한 모양새였다.

“지금이에요!”

료코를 향해 소리지르자 엄청난 양의 눈이 분화구로 날아들었다.

스치고 지나가는 것뿐인데도 몸이 떨려올 정도의 한기가 느껴지는 눈이었다.

일반적인 눈이 아니구만.

쏴아아아---!

달궈져 있던 사로카를 뒤덮어가는 료코의 눈.

높은 온도에 눈이 기화하며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생겨났다.

“크… 크르…!”

달궈진 온도 덕에 잠시동안은 사로카가 눈을 이겨내는 듯했지만.

그것만으로 떨쳐내기엔 눈의 양이 엄청났다.

드드…드… 득!

조금씩이지만 사로카의 몸을 완전히 제압해나가는 료코의 눈.

드득.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사로카의 움직임이 완벽히 멈춰졌다.

“됐습니다! 완전히 얼었어요!”

조종하는 눈을 통해 적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는지 료코가 됐다며 소리를 질렀다.

100%.

확신이 들었다.

완벽히 얼어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추락하고 있는 사로카.

[유탈라스 - 2단계 의태]

사아아아---!

눈부신 푸른 비늘이 오른손으로 모여갔다.

오른팔로 집중되는 엄청난 힘.

이거면 된다.

몸을 감싼 채 일렁이는 비늘과 함께 사로카에게 나아갔다.

눈으로 꽁꽁 덮여있는 사로카.

녀석을 향해 젖혔던 주먹을 최대한의 힘으로 내질렀다.

끝이다.

콰아아아아아---!

비늘로 덮인 주먹이 사로카를 향해 날아갔다.

드득.

사로카는 이대로 비늘에 맞고 산산조각날 거라 확신한 찰나의 순간이었다.

…?

파아아앙!!!

주먹이 도달하기 직전.

사로카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부수고 나왔다.

“크르… 단순… 하구… 나”

!!!

완벽히 잡았다고 생각한 채 모든 걸 담아 내지른 공격이었다.

사로카는 얼어있기에 피할 거라는 가능성은 염두해두지 않은, 피해선 안 됐기에 그럴 가능성이 존재했으면 안 되는 공격.

그런 공격을 사로카가 공중에서 몸을 틀며 찰나의 차이로 비껴냈다.

파아아아앙!!

유탈라스의 주먹과 공기가 만나며 찢어지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이… 런.

완전히 피해낸 건 아니었다.

스친 것만으로도 갑주로 쌓여있던 왼팔이 사라져 있었다.

내가 끌어들인 줄 알았는데.

주먹을 휘두르느라 몸의 균형은 밑으로 쏠려있었고.

수리검을 다시 꺼내 던져낼 틈도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땅을 딛고 있지도 않기에 면도칼을 꺼내 회피할 수도 없었다.

휘릭.

옆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회전시키는 사로카가 눈에 들어왔다.

끌려 들어온 거였나.

쐐에에에에엑---!!

회전력까지 먹어 엄청난 힘을 싣고 옆구리로 날아드는 사로카의 발차기.

조졌… 네.

콰아아아아앙----!!!

“크학…!”

쿵!!!

그대로 분화구의 아래 벽면으로 처박혀버렸다.

온몸으로 끔찍한 고통이 퍼져나갔다.

유탈라스가 해제되던 타이밍이라 비늘이 완벽히 방어해주지 못한 것 같았다.

“쿨럭!”

목을 타고 입으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쿠웅!

분화구의 바닥으로 착지한 사로카.

쿵.

사로카가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움직여라.

삐걱거리는 몸에 명령을 전달했다.

움직일 때마다 마디마디가 뒤틀리는 느낌이었지만 참아야 했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

[잭 더 리퍼]

호흡조차 멀쩡하지 않은 상황.

면도칼을 꺼내 움직일 준비를 했다.

움직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움직여야 했다.

쐐에엑!! 쾅!!

!!

하늘에서 거대한 비석이 떨어져 내렸다.

“크르…!?”

갑작스러운 비석의 등장에 걸음을 멈춘 채 하늘로 눈을 돌린 사로카.

1급 헌터인가.

온다고 했던 일본 측의 헌터가 도착한 모양이었다.

스윽.

하늘을 바라봤던 사로카가 다시 내게로 눈을 돌렸다.

더 이상 다가오진 않았지만, 하등한 무언가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나약… 하구나.”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긴 채.

콰앙! 콰앙! 콰앙!

계속해서 내리꽂히는 비석을 뒤로 한 채 사로카가 땅 아래로 모습을 감췄다.

….

“----!”

나를 향해 무언가 소리 지르고 있는 몇 명의 사람들.

계속해서 소리가 들려왔지만 뭐라고 하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살아서 다행이다?

분명 늦지 않게 도착한 헌터들 덕에 목숨을 구한 것은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행이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현재의 상황에 무력감이 밀려왔다.

핑.

누적된 데미지 때문일까.

사로카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던 시야가 조금씩 땅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닥으로 쓰러지는 사이에도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패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