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79화 (79/473)

79화. 특이 케이스

CBC의 방송 데스크.

송유빈이 밝은 얼굴로 게스트를 소개했다.

“오늘은 국가직 2급 헌터이면서 동시에 신입 헌터들의 훈련을 담당하고 있는 이명훈 헌터 님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명훈입니다.”

짧은 스포츠 머리에 우람한 체격을 가진 이명훈이 고개를 숙였다.

주에 한 번씩 송유빈이 진행하는 헌터 관련 프로그램.

오늘은 격투와 헌터들의 양성에 조예가 깊은 이명훈이 초대되었다.

“안녕하세요, 명훈 님. 지금까지 수많은 신입 헌터들을 키워내셨는데요. 제자였던 헌터들이 싸움에 훌륭히 임하는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그야 정말 자랑스럽죠. 처음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햇병아리처럼 삐약거리던 녀석들이. 지금은 여러 현장에서 활약하며 명성을 얻고 있으니까요.”

“국가직 사관학교 출신의 헌터분들은 가장 무서웠던 교관으로 명훈 님을 뽑는데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어려운 질문이라는 듯 턱을 문지르는 이명훈.

잠시 후 이명훈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아마 제일 많이 때리기 때문이 아닐까요?”

“때… 때린다고요?”

놀라는 송유빈에 이명훈이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물론 훈련에서입니다. 제가 격투 담당이니까요.”

그제야 아아 하는 얼굴로 송유빈이 웃음을 터뜨렸다.

“어쩔 수 없이 때리게 되겠군요! 훈련을 실전처럼 한다고 들었었는데 그래서 더 혹독하게 하시는 걸까요?”

“맞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이명훈이 말을 이어나갔다.

“실전처럼 훈련하지 않으면 막상 상황이 닥쳤을 때 몸이 굳기 마련이니까요. 공포가 몸을 잡아먹더라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몸에 새겨 넣어야 하는 것이죠.”

“그런 깊은 이유가 있었군요! 훈련을 실전처럼!”

“그리고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

조금 전보다 사뭇 진지해진 이명훈의 모습.

송유빈이 긴장한 얼굴로 이명훈의 입을 응시했다.

“패배를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패배… 를요?”

첫 번째 이유와 달리 두 번째 이유는 쉽게 납득하기 힘든 말이었다.

승리만을 각인 시켜줘도 모자랄 판에 패배라니.

“내가 질 수도 있다는 사실과, 그 사실을 마주했을 때 함께 밀려오는 공포와 무력감. 이것들을 이겨내는 게 헌터들의 가장 큰 숙제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명훈이 몇 가지의 사례를 들어 설명을 이어나갔다.

승승장구하던 헌터들도 단 한 번의 패배에 멘탈이 나가 다시는 싸울 수 없게 되는 케이스가 많다는 설명이었다.

“몇 번의 승리는 정말 달콤합니다. 누구와 싸우든 절대 지지 않을 거란 착각을 불러오거든요.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오는 패배가 위험합니다. 운이 좋게 살아남았는데도 정신이 죽어 다시는 못 싸우게 되는 거죠.”

고개를 끄덕이던 송유빈이 몇 가지 통계 자료를 본 뒤 질문을 건넸다.

“각종 영상 사이트를 보면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사라진 프리랜서 헌터들이 많은데요. 이것도 말씀하신 이유 때문일 가능성이 있을까요?”

“어디선가 죽임 당한 게 아니라면, 대부분이 동일한 이유일 거라 생각합니다. 처음이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자신에 대한 믿음이 크면 클수록, 겪어온 승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충격은 더 크게 다가오니까요.”

꿀꺽.

머릿속으로 어느덧 팬이 되어버린 무기왕을 떠올려서일까.

‘마운티거 이후로 무기왕이 잠잠한데.’

설마…? 라는 생각 때문인지 괜히 긴장되는 마음.

송유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멘탈이 나간다는 건, 다시 못 싸우게 된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이명훈이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두들겼다.

“완전히 무너지는 겁니다. 다시는 데몬을 마주할 수도, 자신이 이길 수 있을 거란 자신감조차 완전히 사라진 채로요.”

* * *

입을 안 연지 얼마나 됐을까.

입안으로 지독한 단내가 느껴졌다.

눈앞에 보이는 건 이송 되어온 병원의 흰색 천장뿐이었다.

똑똑.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했다.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끼익.

문이 열리며 들어온 몇 명의 사람들.

“아직도… 인가요?”

료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을 차린 후 가장 많이 찾아온 사람이었다.

좀 미안하네.

료코에게 무슨 악감정이 있어서 이러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고마웠다.

사로카와 싸울 때 근처에서 날 도와줬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 있고 싶었다.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예, 몸에 큰 이상은 없는데… 아직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 혹시 몸이 아니라 다른 곳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도 있나요?”

“예…. 그 사로카와 맞서 싸우다 죽기 직전까지 갔었으니까요. 충격이 컸다면… 못 깨어나거나, 깨어나더라도 폐인인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그건 아니에요, 선생님.

전 멀쩡합니다.

너무 멀리 가는 건가 싶어 눈을 떠볼까도 싶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끼익.

그렇게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몇 마디를 더 나누다 방을 나가는 료코와 담당의.

죽기 직전까지라.

분화구 안에서의 싸움을 떠올렸다.

비늘이 사라지고 몸은 충격 때문에 삐걱거렸었다.

제때 헌터들이 안 왔으면 죽었겠지.

료코가 말했던 1급 헌터들이 도착했고.

그들이 분화구에 있는 사로카를 공격해 물러나게 만들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들이 아니었으면 내가 사로카로부터 살아남았을 확률은 희박했다.

아무리 동기화를 가능했다 한들 안 썰리던 갑주를 벨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몸 상태 역시 최악이었었다.

전해진 충격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고, 그 상태에서 제대로 움직일 수 있었을 리 만무했다.

산 게… 다행이구만.

“하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한심하네.

함정으로 빠트렸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빠진 거였다니.

생각도 못 했다.

사로카가 말을 할 줄은.

그것도 모르고 바로 앞에서 료코한테 계획을 떠들어댔으니.

사로카에게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할지 알려준 셈이었다.

그리고, 직전에 페샨을 만났었음에도 사로카가 말을 할 거라 단정 지어버린 내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 그저 수많은 종족 중 하나일 뿐이당.

수많은 종족 중 하나.

사로카도 페샨과 마찬가지일 수 있었다.

살의만을 가지고 살육을 저지르는 괴물… 이라고 생각해서인가.

페샨을 본 이후 어떤 데몬이든 말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사로카를 포함해 지금까지 본 데몬들은 예외일 거라 생각했다.

정확히는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그런 괴물 같은 놈들이 언어를 사용할 줄 안다는 걸 왠지 모르게 인정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스윽.

천장으로 든 손을 바라봤다.

패배.

무척이나 낯설 게 느껴지는 단어였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언제든 내게 닥칠 수 있는 거였는데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 걸까.

지금까지 다 이겨서 그런가.

하운드를 시작으로 크럭커와 괴물 거북이, 마운티거, 거기에 피렌조까지.

간사이 지방에서 유명하다던 나카지까지 발도 두 방에 보내버렸다.

- S급 데몬, 사로카입니다.

그래서인지 후지산에서 료코의 말을 들었을 때도 질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었다.

일단 부딪히면 어떻게 해서든 내가 이길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기고만장했네.

회귀 전에 S급 데몬의 뉴스가 나올 때면 나도 모르게 겁을 집어먹었었다.

눈앞에 저런 게 나타난다면 무조건 죽음 확정이니까 말이다.

그랬었는데 고작 10번도 안 되는 싸움 이겼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승리했을 때도 억지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당장 피렌조만 봐도 그렇다.

만약 그 순간에 잭 더 리퍼의 동기화가 생기지 않았다면.

이미 목을 베였던 내가 피렌조와 다시 싸울 수나 있었을까?

싸우긴 뭘 싸워 그냥 죽었겠지.

피렌조 때는 진짜 운빨이었다.

침통한 깨달음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새삼스럽게 무기들한테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엄밀히 따지면 이번 패배는 무기의 성능 차이가 아니었다.

무기를 사용하는 주인이 문제라 진 것이었다.

무기는 사용하는 건데.

사용하는 인간이 이 모양이니.

- 얼른 일어나세요, 백운 님!

- 같이 돌아가요!

몇 시간 전 찾아왔던 유연경과 배이슬.

그나마 위안이 되는 부분이었다.

지긴 했어도 내가 싸운 게 조금이라도 대피에 도움이 됐을 테니까 말이다.

“풉.”

웃음이 나왔다.

솔직히 사로카와 싸우며 얼마나 뒤에 있는 대피 행렬을 걱정했다고.

개박살 난 뒤에야 그거나마 도움이 됐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는 걸까.

“추하구만, 백운.”

지금 상태로 사로카를 만나면 어떻게 될까?

다시 싸우면 이길 수 있을까?

조금 더 신중히 유탈라스의 비늘을 맞췄다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

아니다.

잘못된 건 조금 덜 신중하고 말고의 차이가 아니다.

내가 한 건 도박이야.

애초에 사로카와 했던 건 싸움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파워와 방어력이 나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던 사로카.

사로카보다 내가 뛰어났던 건 약간의 속도와 한 방에 보낼 수 있는 비늘이 있었다는 것 뿐이다.

그리고 모든 전력이 내가 열세 했는데도 이 비늘 한 방에 의지하는 건 싸움보단 도박에 가까웠다.

물론 도박이 필요한 싸움도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어느 정도의 싸움이 성사되고 나서의 이야기였다.

시작부터 도박에만 목매달고 싸움을 시작한 건 잘못된 것이었고.

도박밖에 없는 주제 질 거라는 생각도 없이 오만했던 건 더더욱 잘못되었다.

….

싸우는 법도 모르고… 싸운 건가.

가장 뛰어나게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잭 더 리퍼의 면도칼.

면도칼을 들고 싸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면도칼로 인해 향상된 감각과 본능, 스피드에만 의지했을 뿐.

정작 나는 전투의 경험은 고사하고 싸우는 방법조차 제대로 몰랐다.

대충 휘두르고 쏘기만 했었네.

그렇게만 해도 다 이겼었으니 다행이지만.

사로카나 피렌조 같은 상대를 한 번 더 만난다면.

그때는 살아남을 거란 확신이 들지 않았다.

….

짜아악!!

볼따구가 얼얼할 정도로 양 뺨을 두들겼다.

그만 찌질대자.

찌질댄다고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스륵.

감았던 눈을 떴다.

잘못된 건.

휙휙.

잠시 몸 여기저기를 살펴본 후.

바로 잡으면 되는 법.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 * *

다시 CBC의 데스크.

완전히 무너진다는 이명훈의 말에 송유빈과 방청석은 완전히 굳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 절망적인 말이었다.

단 한 번의 패배만으로 지금까지 승리를 이어왔던 사람이 완전히 무너져버린다니.

“혹시.”

데스크에 분위기 전환이 필요해서는 아니었다.

그저, 송유빈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무너진 후 다시 일어선 케이스는 없나요?”

무기왕이 무너졌을 거라 생각해서는 아니었지만.

만약에, 만약에 무기왕이 무너졌을 때 정말 일어나지 못하면 어떡하지란 괜한 걱정이 들었다.

“그런 케이스는 없습니다.”

“아….”

자기가 왜 이러는지도 이해하지 못한 채.

송유빈이 실망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런 송유빈을 잠시 쳐다보더니 입을 여는 이명훈.

“특이 케이스가 있습니다.”

“특이 케이스요?”

누군가를 떠올린 건지 이명훈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무너지는 걸 모르는 인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송유빈의 얼굴에 이명훈이 말을 이어갔다.

“인간이라고 좀 강하게 표현한 이유는, 징글징글하거든요. 아무리 넘어뜨리고 떨어뜨려도 좌절하긴커녕 다시 기어 올라오니까요. 그런 인간들은 죽음의 위기를 겪든, 누군가에게 처참히 개박살이 나든 절대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를 막아 세운 벽을 어떻게 하면 넘을 수 있을지 고뇌하며 계속 부딪힐 뿐이죠.”

“!”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공통점이라면 어떤…?”

꼴깍.

송유빈이 이유 모를 긴장감에 침을 넘기고.

틀림없는 진리를 말하는 듯 이명훈이 확신에 찬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언제냐의 문제일 뿐… 무조건 괴물이 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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