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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35화 (135/473)

135화. 불을 가진 남자와 혼돈을 다루는 소년

송곳니에서 시작된 초록빛이 문에 새겨진 문양의 틈을 채워가며 천천히 퍼져나갔다.

반짝이는 빛이 흐르며 문양을 완성 시켜나가는 듯한 광경이었다.

뭘 그린 거지.

어두운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빛의 향연.

서서히 완성되어 가는 문양에 집중했다.

사람…?

빛이 가장 먼저 그려낸 건 거대한 한 명의 사람이었다.

손에는 이글거리는 불을 들고 있는 남자.

그 남자의 발아래엔 수많은 이들이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그들 위에 떠 있는 거대한 태양까지.

태양의 신, 라.

어떻게 생긴 지 본 적은 없어도 라임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집트 신화에서 태양과 불꽃, 그리고 숭배가 가리키는 건 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츠츠츠…!

라와 숭배하는 사람들에게서 조금 떨어진 위치.

그들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소년이 그려졌다.

라에 비해서는 몹시 작은 체구를 가진 소년.

라의 손에서 불꽃이 이글거렸던 것처럼 작은 체구의 소년 주변에도 무언가 일렁이고 있었다.

선으로 이루어진 문양이다 보니 정확히 뭔지는 알 수 없지만, 라가 들고 있는 불꽃과는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다크메타.”

선으로 이루어진 문양으로만 봐도 뜨거움이 느껴지는 듯한 라의 불꽃.

소년이 들고 있는 건 라의 불꽃과는 반대의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단순한 선임에도 목을 억죄는 불편함과 몸을 저릿하게 만드는 한기의 일렁임.

다크메타에서 느낄 수 있었던 기운이 그대로 문양을 통해 전달되고 있었다.

키이이이!

어느새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문의 문양이 완성되었다.

철컥.

공간으로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던 문이 움직이며 만들어낸 소리였다.

…!

잠시 후.

화아악…!

열린 문 사이로 빛이 터져 나오며 머릿속으로 무언가의 기억이 전달되기 시작했다.

* * *

끈적하고 기분 나쁜 공기가 가득한 사막 구석의 동굴.

저벅.

뜨거움이 느껴지는 붉은 머리와 태양과 비슷한 노란 눈동자를 가진 남자가 동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무미건조한 남자의 상체엔 의미를 알 수 없는 휘황찬란한 문양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크르르…!”

동굴 안에서 무언가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소리를 들은 남자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

- 저흴 구해주소서! 태양의 신 라여!

- 아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부디 신의 응징을!

동굴 안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 남자, 라의 귀에 들리고 있는 건 무언가의 울음 소리 따위가 아니었다.

귀를 가득 채우고 있는 건 이곳으로 향하기 전 자신을 바라보던 수많은 사람의 외침이었다.

“크르… 르…!”

시야가 닿지 않는 동굴 안쪽.

동굴의 침입자인 라가 더 가까이 다가왔음에도 무언가의 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마치 다가오고 있는 라를 위협하기보단 점점 가까워져 오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듯한 울음이었다.

화륵.

얼마나 더 안쪽으로 들어갔을까.

라의 몸에 새겨진 문신에서 불꽃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닿는 모든 걸 태워버릴 것 같은, 어떤 어둠이든 밝힐 수 있을 듯한 불꽃이었다.

“크라라라!!!”

안쪽에서 두려움에 떨던 무언가가 라를 향해 몸을 날렸다.

이집트에서 사톤이라 불리는 존재였다.

악에 집어 삼켜져 사라져야 하는 대상이 된 존재.

“사라지거라.”

가벼운 손짓이었다.

라가 손을 젓자 상체의 문신에서 시작된 불꽃이 사톤에게 옮겨붙었다.

“키아아아아아악!”

꺼지지 않는 불꽃에 휩싸인 사톤.

사톤의 절규가 동굴을 가득 메웠다.

“….”

점점 타들어 가는 사톤을 바라보던 라.

풀썩.

숯덩이가 된 사톤이 쓰러지자 라가 들어왔던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욱씬!

“…!”

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에 라가 걸음을 멈추고 상체를 수그렸다.

모든 악한 것을 태워 재로 만들어버리는 태양의 불꽃.

불꽃이 태우는 건 악뿐만이 아니었다.

치이익…!

불꽃을 사용할 때마다 새겨지는 불꽃에 의한 그을림.

하루가 멀다하고 겪는 고통이었지만, 앞으로 수백 수천 번을 더 겪는다 해도 익숙해지지 않을 끔찍한 통증이었다.

“하아…!”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졌던 라가 참았던 숨을 뱉어냈다.

라가 태어났을 때부터 몸에 새겨져 있는 문신과 문신에서 뿜어지는 불꽃.

분명 라의 것이었음에도 인간의 몸으로는 온전히 견디는게 불가능한 불꽃이었다.

- 신이시여!

어렸을 적 라는 항상 궁금했었다.

자신은 그들과 다름없는 평범한 인간인데 어째서 고개를 조아리며 신이라 부르는 걸까.

라가 가진 거라곤 몸에 새겨진 문신과 문신에서 나오는 불꽃이 다인데 말이다.

- 저희를 구하소서!

- 라 님뿐입니다!

- 당신이 우리의 태양입니다!

라가 아무리 물어도 그들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저 큰 소리로 모여 당신은 신이며 그렇기에 당신을 숭배하는 자신들을 굽어살펴야 한다고 말해왔다.

‘….’

그래서였을까.

라는 어느 순간부터 평범한 인간인 자신이 어째서 신이라 불리고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게 되었다.

‘구해야 한다.’

‘보살펴야 한다.’

‘난 저들의 신이니까.’

오직 이 생각들만이 라의 머리를 가득 채우게 되었다.

- 마을에 사톤이 나타났습니다. 저희를 구해주십시오!

불꽃을 사용하며 태워진 몸의 통증이 가라앉기도 전, 사람들은 아랑곳 않고 라를 찾아왔다.

그렇게 사람들은 또다시 부탁해 왔고, 라는 쉬지 않고 불꽃을 사용했다.

사람들의 부탁과 불꽃의 사용, 그리고 사용의 대가로 인한 통증의 연속.

비틀.

이것들이 라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전부였다.

* * *

여전히 가라앉지 않은 고통을 안고 라가 신전으로 들어섰다.

라를 제외하곤 누구도 올라올 수 없는 곳이었다.

정확히는 올라올 생각조차 않는, 아무도 올라온 적이 없는 장소.

오로지 태양의 신 라만이 오를 수 있는, 라 이외의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고독한 장소였다.

털썩.

장소에 놓인 건 거대한 의자뿐이었다.

신전 위에서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

‘….’

라가 조용히 도시를 내려다봤다.

환한 빛이 밝혀지고 많은 이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공간.

라가 있는 곳과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벽이 있었다.

눈에 보이거나 실존하진 않지만 오로지 라에게만 적용되는 벽.

저들은 언제든 신전 아래로 와 고개를 조아렸지만, 라는 저 벽을 넘어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이것이 신으로서의 숙명이다.’

그럼에도 라는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혼자서 고통에 몸부림치고 끔찍한 고독이 느껴져도, 라는 사람들에게 서운해하지 않았다.

‘나는 저들의 신이다.’

그들은 라가 지켜야 하는 존재들이었기에.

‘난… 괜찮다.’

* * *

- 사톤의 주인입니다!

- 그를 없애면 모든 사톤도 사라질 겁니다!

- 라여! 악을 물리치고 도시를 구해주소서!

이른 아침부터 신전의 아래로 사람들이 모여들었었다.

사톤의 주인이 도시를 해치려 한다며 도움을 요청했던 사람들.

저벅.

- 알겠다.

지체 없이 신전에서 나와 사람들이 일러준 곳으로 온 라.

몹시 차갑고 숨이 막히는 공간이었다.

사톤을 잡을 때마다 미세하게 느껴졌던 한기가 가득한 공간.

“키르륵…!”

“시이이익!”

“크르르!”

사람들의 말대로 사톤의 주인이 있어서일까.

공간은 엄청난 수의 사톤으로 가득 차 있었다.

라가 나타나자마자 주인을 지키기 위해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사톤들.

일렁.

라의 몸에서 터져 나온 불꽃이 순식간에 공간에 있던 사톤들을 태워버렸다.

드러냈던 이빨을 제대로 한 번 써보지도 못한 채 재가 되어버린 녀석들.

“…?”

라가 재가 된 녀석들의 뒤쪽으로 눈을 돌렸다.

어쩐 일인지 라의 불꽃이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 있는 일에 의아함을 느낀 라가 공간의 안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쿠아아아아아!

계속 소멸해가면서도 필사적으로 라의 불꽃을 막아서고 있는 검은 물체, 혼돈.

끈적이고 일렁이는 혼돈들이 무언가를 감싸고 있었다.

“넌 누구냐.”

소년.

그것들이 감싸고 있는 건 작은 체구의 소년이었다.

칠흑 같은 흑발과 눈동자, 그에 상반되는 새하얀 피부를 가진 소년.

사톤을 움직이는 혼돈이 지키는 존재이자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한기의 정체였다.

사람들이 말했던 사톤의 주인임이 분명했다.

스윽.

라가 더 강한 불꽃을 일으키기 위해 소년에게 손을 뻗었다.

“사라…!!”

불꽃을 일으키려는 순간, 멍하니 있던 소년의 눈동자가 라를 향했다.

너무나 순수하고 맑은 눈동자였다.

너무 맑아 악함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눈동자.

그 어느 것에도 더럽혀지지 않은 깨끗함이 소년의 눈동자에 깃들어 있었다.

슥.

라가 망설이는 사이.

소년이 뻗어져 있는 라의 팔에 손을 얹었다.

사르르….

“…!”

신기한 일이었다.

일렁거리던 라의 불꽃이, 힘의 사용에 대한 대가로 느껴지던 고통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무슨….”

소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째선지 소년의 눈동자는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스스로를 고통으로 밀어 넣고 있는 불꽃을 더 이상 사용하지 말라고 말이다.

‘없애야 한다.’

분명 없애야 하는 존재였다.

지금까지 도시와 사람들을 괴롭혔던 사톤의 주인이었다.

‘뭐 하는 거냐 라여, 넌 그들의 신이다.’

몹시 낯선 감각이었다.

무언가를 태우기 전에 망설였던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없애야 하는데.’

없애야 하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들어 올렸던 손이 서서히 내려가고 있었다.

라의 고통은 아랑곳 않고 불꽃의 사용을 종용해왔던 사람들.

눈앞에 있는 소년은 사람들과 달랐다.

사람들과 반대로 불꽃을 집어넣고 더 이상 고통스러워 하지 말라는 듯한 눈동자와 손길.

‘….’

처음이었다.

처음이었기에, 라는 눈앞에 있는 소년을 죽이지 못했다.

* * *

라의 신전.

“….”

라가 여전히 아무 말도 없는 소년을 바라봤다.

손을 뻗자 아무런 대꾸도, 반항도 없이 조용히 라의 손을 붙잡았던 소년.

소년은 조용히 라를 따라 신전까지 오게 되었다.

‘난 뭘 하고 있는 거지.’

사람들 몰래 소년을 신전으로 데려온 라는 몹시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옳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라는 소년을 죽일 수 없었다.

유일하게 자신의 불꽃을, 끔찍한 고통을 사그라들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넌 무엇이냐.”

라는 궁금했다.

소년의 정체가 대체 뭐길래 자신의 불꽃을 사그라들게 만들 수 있었던 걸까.

“이름이 무엇이냐.”

여전히 아무 말 없이 라를 바라보고 있는 소년.

‘….’

같을 리 없는 존재였다.

태양의 불꽃을 다루는 라와 어둠이 혼돈을 다루는 소년.

분명 상반되는 존재였지만, 라는 어두운 공간에서 홀로 머무르고 있던 소년에게서 홀로 지내던 자신의 쓸쓸한 모습을 엿보고 있었다.

‘이름조차 없는 존재.’

쓸쓸함을 넘어 소년에겐 이름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소년을 보며 잠시 고민하던 라가 입을 열었다.

“세트.”

“…?”

의아해하는 소년을 향해 라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세트, 너의 이름이다.”

“…!”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세트의 입가로 작은 미소가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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