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망설임
신전의 구석.
라가 멍하니 앉아 있는 세트를 바라봤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세트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
세트는 저곳에 앉아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다.
‘….’
신전에서 시작된 라와 세트의 기묘한 동거.
말을 할 수 없는 건지 신전에 온 이후부터도 세트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웃거나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뻗으며 의사 표현을 대신할 뿐이었다.
꿀렁.
“….”
라가 세트의 몸에서 흘러나온 혼돈을 바라봤다.
세트가 무언가를 한 건 아니었다.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어도 혼돈은 세트의 몸에서 흘러나왔고, 그렇게 탄생한 혼돈은 세트를 부모라 인식한 건지 주변을 떠나지 않은 채 맴돌고 있었다.
저벅.
세트에게 다가간 라가 혼돈을 내려다봤다.
혼돈은 어떠한 공격에도 소멸되지 않았다.
단 하나.
라의 불꽃을 제외하고 말이다.
화륵.
라가 팔에서 불꽃을 일으켜 조금 전 탄생한 혼돈을 향해 휘둘렀다.
혼돈을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스르르.
순식간에 불태워진 혼돈이 검은 연기를 내며 소멸했다.
치이… 텁.
그리고, 라의 몸으로 불꽃에 의한 그을림이 생기기 전.
가만히 앉아있던 세트가 손을 뻗어 라의 팔을 감쌌다.
팔을 시작으로 퍼지려던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져갔다.
‘난 뭘 하고 있는 걸까.’
신전에서의 일상은 조금 전과 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세트의 몸에서 혼돈이 나오면 라가 불꽃을 일으켜 없앴고, 불꽃에 의한 통증을 세트가 없애주는 것.
누군가 보면 몹시 무의미하고 부질없는 행동의 반복이라고 여길만한 일상이었다.
‘….’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세트를 바라보는 라.
라는 아직도 세트가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몸에서 끊임없이 어둠과 혼돈을 뿜어내는 존재라는 것 말고는 말이다.
‘어둠의 근원.’
한 가지 더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라가 세트를 데리고 신전으로 온 이후부터, 도시 주변에서 나타나는 사톤은 눈에 띄게 약해졌다.
굳이 라가 나서지 않아도 도시의 이들이 처리할 수 있을 만큼이나 말이다.
‘세트가 사톤을 강화하던 어둠의 근원이었고, 지금은 내가 세트의 어둠을 제어하고 있기 때문인가.’
라가 자신의 팔을 감싸고 있는 세트의 손을 응시했다.
정말 차가운 한기를 가진 손이었다.
불꽃에 의해 뜨겁게 타오르던 팔의 열기를 순식간에 가라앉히는 한기.
몹시 차가웠지만, 어째서일까.
세트의 손이 자신에게 닿는 순간 라는 이유 모를 따스함을 느끼고 있었다.
“….”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저 눈.
라는 티끌의 작은 악의조차 존재하지 않는 저 눈을 좋아했다.
바라보고 있노라면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평화로움이 라를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슥.
몸을 돌린 라가 입을 열었다.
“기다리거라, 먹을 걸 가져올 테니.”
신전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라.
세트가 멀어져 가는 라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드드드!
그런 세트의 몸이 순간이지만 울룩불룩해지며 경련을 일으켰다.
터져 나오려는 무언가를 꾹꾹 눌러 담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
세트가 라의 팔을 붙잡았던 손을 내려다봤다.
손바닥 안에서 일렁거리고 있는 혼돈.
혼돈은 어째서인지 라의 불꽃을 식혀줄 때마다 증식하고 있었다.
으득.
세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결코 원해서가 아니었다.
세트는 그저 홀로 있던 자신에게 손을 뻗어 준 라가 아프지 않기를 바랐기에.
라의 몸을 태우는 불꽃을 꺼주고 싶었던 것뿐이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라의 불꽃은 서서히 약해졌고, 세트의 혼돈은 증식을 거듭하고 있었다.
‘… 안… 돼.’
함께 있으면 안 된다는 걸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함께 하는 시간이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라의 불꽃이 약해질 것이며, 불꽃에 반비례해 혼돈이 증식할 것이기에.
둘을 기다리고 있는 건 파국뿐이었다.
‘….’
라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좋았다.
혼자가 아니여도 되는 지금이 소중했다.
그렇기에.
세트는 라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 * *
“라여! 강한 사톤들이 나타났습니다! 부디 정화의 불길로 그들을 없애주십시오!”
“저희를 구해주십시오!”
신전으로 도시의 사람들이 몰려왔다.
분명 세트를 데려오며 사톤을 강하게 만들었던 혼돈은 사라졌을 터인데.
어느 날부턴가 도시의 사람들은 전과 같은 강한 사톤이 나타났다며 라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세트의 혼돈은 내가 없애고 있는데… 어째서지.’
라를 의아하게 만드는 건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전해 들은 장소로 가면 도시의 사람들이 말했던 강한 사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저 약하디약한 일반적인 사톤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자 라는 의아함을 가지게 됐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자신에겐 강하지 않은 사톤이라도 사람들에게 있어선 강하다 인식될 수도 있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알겠다.”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는 라.
그리고,
으득.
그런 라를 바라보고 있는 이가 있었다.
신전의 어두운 곳에서 잔뜩 얼굴을 찡그린 채 입술을 깨물고 있는 세트.
세트는 라가 불꽃에 태워져 고통받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저들이 오는 날이면 라는 불꽃을 사용해야만 했다.
‘….’
끊임없이 라에게 고통만을 안겨 주는 존재들.
세트가 오늘도 불꽃의 고통에 잠식될 라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지금 바로 가도록 하마.”
사톤을 없애기 위해 지체 없이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한 라.
… 그래서였다.
뒤쪽에서 커지고 있는 혼돈의 분노를 라가 눈치채지 못한 것은 말이다.
‘없어… 져… 야해.’
세트는 라를 고통스럽게 하는 모든 게 없어지길 바랐다.
* * *
라가 도시로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조금 전 전달 받은 장소에서 만난 사톤 무리.
얼마 전까지 만났던 약한 개체들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말대로 내부에 세트의 혼돈을 지니고 있는 녀석들이었다.
‘어떻게…!’
세트에게서 흘러나오던 혼돈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다.
라는 자신이 계속해서 없앰으로 근원지인 세트의 혼돈이 약해지고 있다 생각했다.
그렇기에 라는 마음을 놓았고, 사람들의 부탁이 있는 날이면 세트를 남겨둔 채로 신전을 떠날 수 있었다.
꿀꺽.
하지만, 조금 전에 발견한 사톤 무리들로 인해 라는 자신이 간과하고 있던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도시로 향하고 있는 라의 마음이 급해졌다.
‘만약 발생한 혼돈을 세트가 밖으로 내보내고 있었던 거라면.’
라를 불안하게 만드는 가능성이었다.
자신으로 인해 세트의 혼돈이 약해진게 아닌, 그저 세트 스스로가 라 모르게 혼돈을 내보낸 거라면 조금 전에 만난 사톤을 설명할 수 있었다.
‘부디… 아무 일도 없기를.’
….
정체 모를 불길함에 휩싸인 채 얼마나 걸었을까.
“아….”
검은 혼돈에 집어 삼켜지고 있는 도시가 라의 눈에 들어왔다.
“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 살려줘!!”
아비규환이었다.
어디선가 몰려든 엄청난 수의 사톤.
사톤의 몸 안엔 선명하게 일렁이는 세트의 혼돈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약해진게 아니라… 오히려 더 강해졌구나.’
조금 전 오며 떠올린 라의 가능성대로였다.
언제부터였는진 알 수 없었다.
세트의 힘은 점점 강해졌고, 동시에 몸에서 흘러나오는 혼돈을 어느 정도 다룰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라 모르게 증식하는 혼돈을 밖으로 흘려보내고 있었던 것.
“…!”
사톤이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찢고 있는 참혹한 현장의 중심.
그 모습을 무미건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세트가 보였다.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얼굴엔 어떠한 표정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
라가 처참히 무너지고 있는 도시를 바라봤다.
도시의 이들을 구하기에는 너무나 늦은 시점.
오랜 시간을 지켜온 도시와 사람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걸 보며 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화르르륵!!
불을 일으킨 라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사톤들을 잿더미로 만들며 세트에게 나아갔다.
“세트!!”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라를 바라보는 세트.
불꽃을 온몸에 두른 라가 바로 앞까지 다가왔음에도, 세트는 그저 멍하니 라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콰악!
라가 손을 뻗어 세트의 목을 움켜잡았다.
한순간에 자신의 모든 걸 앗아간 세트를 단숨에 불태워버릴 생각이었다.
“…!”
하지만, 라는 그러지 못했다.
첫 만남 때와 같이 자신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는 세트의 눈동자.
그 눈동자를 통해 알아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세트가 이런 일을 벌인 건 스스로를 위해서 아닌, 라를 위해서라는 사실을 말이다.
화르… 르.
강해지고 있는 세트의 혼돈이 약해지고 있는 라의 불꽃을 역전하기 직전.
라가 세트를 불태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
하지만, 마지막 찰나의 순간.
세트의 눈동자를 본 라는 망설이고 말았다.
그리고.
쿠아아아아!!
제어를 잃은 세트의 혼돈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터져 나와 라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 * *
전달되던 기억이 끝나며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방금 본 건 분명.
태양의 신 라와 혼돈의 신 세트의 과거였다.
문이 열리기 무섭게 흘러들어오기 시작한 기억.
엄청난 시간 동안 열리지 않았던 문이 간직하고 있던 기억인 듯했다.
사아아…!
감각이 돌아와서일까.
느끼지 못하고 있던,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온몸을 저릿하게 만드는 한기가 몰려왔다.
그리고 떠진 눈을 통해 보이는 공간.
낯익은 공간이었다.
거의 다 삼켜져 사라졌다 봐도 무방한 태양이 보였고, 그다음으로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다크메타가 눈에 들어왔다.
어둠이자, 혼돈.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다크메타의 정체였다.
- 쿠아아아아!
라를 덮치던 세트의 다크메타를 떠올렸다.
계속 버틴 건가.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지만 분명 엄청난 시간이 지났을 터.
그 시간 동안 라의 불꽃은 버텨낸 것이었다.
혼돈이 세상으로 퍼져나가는 걸 막기 위해서 말이다.
세트의 혼돈인 다크메타가 이곳을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이유였다.
꿀꺽.
긴장으로 인해 메말라버린 침이 목을 통해 넘어갔다.
사방을 가득 싼 채 미친 듯한 한기를 뿜어대고 있는 다크메타.
백운아, 이거 맞는 거냐.
입가로 묘한 미소가 그려졌다.
들어오기 전에 기억을 미리 본 게 도움이 되는 건지 안되는 건지 약간 헷갈렸다.
오히려 사기 깎아 먹은 거 같은데.
피라미드로 향하기 전에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어디까지나 가능성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은 그 가능성이 확정된 현실로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렇단 말이지.
이제부터 내가 싸워야 하는 상대.
상대는 태양의 신 라조차도 집어삼킨 신화 속의 존재였다.
드드드…!
불청객이 왔다는 걸 눈치챈 걸까.
정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다크메타가 좌우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흡사 모세의 기적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등장하셨구만.
갈라진 다크메타 속으로 어둠이자 혼돈인 세트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