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피라미드의 밖.
쾅!
비칼이 다가오는 데몬을 찍어 누르며 인상을 찌푸렸다.
‘끝이 없군.’
지원 나온 헌터들과 쉴새 없이 잡고 있었지만, 데몬의 수는 점점 더 늘기만 할 뿐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꿀렁.
데몬이 죽는 순간 튀어나오는 다크메타.
비칼 역시 알고 있었다.
저 다크메타를 없애지 않는 이상 이 싸움은 끝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비칼 님…! 사라지지 않습니다.”
화기를 든 헌터가 비칼에게 다가와 고개를 내저었다.
보고를 들으며 한숨을 내쉬는 비칼.
‘건물도 날리는 화력에도 안 없어진다라.’
미사일이 떨어져도 다크메타는 사라지지 않을 거라 말했던 셀린과 백운의 말대로였다.
모래뿐만이 아니라 어떤 공격에도 다크메타는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다른 공간에 존재해 이쪽에서의 간섭을 완벽하게 회피하는 느낌이었다.
드드드…!
그렇게 뚜렷한 방법 없이 데몬의 진군을 막고 있을 때.
비칼의 발아래로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비… 비칼 님…!”
“…?”
부하의 부름에 고개를 돌리는 비칼.
“이런.”
비칼의 얼굴로 난처함이 드리워졌다.
웬만한 일엔 눈 하나 깜짝조차 안 하는 비칼이었지만, 눈앞의 광경엔 어쩔 수 없었다.
다른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공격하는 걸 잠시 멈출 정도로 놀란 표정이었다.
드드!!
도시 카이로로 밀려오고 있는 거대한 모래 폭풍.
어디서부터 나타난 건지 도시를 덮고도 남을만한 거대한 폭풍이었다.
고오오…!
거대한 폭풍 안에서 선명하게 빛나고 있는 다크메타.
지금까지 봤던 어떤 다크메타보다도 거대한 크기였다.
데몬에게 들어가 있는 녀석들이 최소 몇백 개는 합쳐진 느낌이었다.
“저… 저런 게 도시로 갔다간… 끝입니다.”
부하 헌터의 말대로였다.
워낙 갑자기 악화된 상황에 도시의 사람들은 대피를 시작조차 못 한 상황.
저런 게 갔다간 대참사를 떠나 다시는 회복될 수 없는 피해를 입을 터였다.
저벅.
“비칼 님…?”
“여길 막아라. 저건 내가 알아서 해볼 테니.”
짧은 한마디를 남긴 후 비칼이 폭풍 쪽으로 걸어갔다.
아무리 비칼이라해도 다가오고 있는 건 규격 외의, 소멸되지 않는 폭풍이었다.
콰득.
손을 들어 올린 비칼이 엄지손가락을 깨물었다.
슥… 슥.
비칼이 손가락 끝으로 맺힌 피를 이용해 양손등에 문양을 그렸다.
평소엔 사용하지 않는, 위험하기에 꺼내지 않았던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짧은 순간에 강한 화력을 낼 수 있는 만큼 그에 대한 리바운드를 각오해야 하는 모래의 문양.
다른 방법이 있다면 사용하지 않았겠지만, 다가오고 있는 폭풍을 상대로는 그런 걸 따지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턱.
모래 바닥에 손을 댄 비칼이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양손을 기점으로 모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웅…!
서서히 강해지기 시작한 모래 바람이 태풍으로 모습을 바꾸어갔다.
다가오고 있는 것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는 거대한 힘.
‘….’
모래 폭풍을 응시하던 비칼이 고개를 돌려 백운이 있는 피라미드를 응시했다.
‘빨리 끝내라.’
쿠와아아아아…!!
‘오래 못 버티니.’
* * *
콰앙! 쾅!! 쾅!
거 더럽게.
으득.
무겁네!!
수리검으로 밀려드는 다크메타를 밀어냈다.
기억에서 봤던 대로 칠흑에 가까운 흑발과 눈동자를 가진 세트.
여전히 세트에겐 표정이 없었다.
말이라도 걸어볼라 했는데.
헛된 희망이었다.
모습을 드러내기 무섭게 다크메타를 휘두르기 시작한 세트.
대화를 떠나 이 공간으로 침범한 날 당장에라도 죽이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흔적에서 봤던 불꽃의 위치는 저쯤인데.
저쯤이라 해도 무언가 보이는 건 아니었다.
시야가 닿는 모든 곳을 세트의 다크메타가 덮고 있는 상황.
그 덕에 현재 서 있는 곳의 위치와 방향감각마저도 잃어버릴 판국이었다.
사아아…!
응…?
쉴새 없이 다크메타를 쳐내던 중.
사방에서 느껴지는 소름에 고개를 들었다.
이런 씨.
빼곡하다 못해 사방으로 가득 채워지는 검은 바늘들.
세트가 모습을 드러낸 후부터 다크메타는 필요에 따라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방어가 필요할 땐 방패로, 공격이 필요할 땐 칼 또는 주먹으로.
데몬에게 얌전히 들어 있던 다크메타가 양반으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쐐에에에엑!
[잭 더 리퍼]
콰가가가가가가!!
땅으로 내리꽂히는 바늘을 피해 세트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챙!챙!챙!
모든 바늘을 다 피할 수는 없기에 면도칼로 쳐내며 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
완벽히는 못 피하지만… 어쩔 수 없다.
팔과 어깨, 다리 언저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늘을 느끼며 세트를 응시했다.
사방이 다크메타로 가득한 이상 싸움을 오래 끄는 건 현명하지 못했다.
시간이 없어.
지금은 공간에 있는 다크메타 중 일부만이 날 공격하고 있었다.
아마 라의 불꽃을 삼키는 중이라 그런 듯했다.
불이 꺼지면 저것들이 다 날 덮치겠지.
꼴깍.
생각만 해도 아찔해지는 상황이었다.
극히 일부가 날 바라보는데도 이 정도의 화력인데, 모든 다크메타가 날 본다면 피하긴커녕 순식간에 죽임당할 터였다.
불꽃으로 달릴 틈을 안 주니.
탓!
일단 본체다…!
멍하니 서 있는 세트를 향해 몸을 날렸다.
라의 불꽃이 아닌 이상 다크메타가 사라지지 않는 건 봐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억의 마지막 순간 라는 분명 세트의 목을 붙잡았었다.
어찌 됐건 물리력이 닿는다는 증거.
상처를 입힐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해보자.
“….”
코앞까지 다가왔음에도 조금의 움직임도 없는 세트를 향해 면도칼을 그어나갔다.
서로의 몸이 지나쳐지는 찰나의 순간, 세트의 목과 어깻죽지, 얼굴 등을 순식간에 베어냈다.
느낌은 있다.
면도칼 끝으로 느껴지는 감촉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어째선지 날 공격하던 다크메타들도 모두 멈춘 상태였다.
…!
면도칼에 깊게 베였는지 세트의 목이 갈라져 옆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어깻죽지와 얼굴 역시 눈에 띌 정도로 베인 상태.
하지만, 그곳에서 솟아오르고 있는 건 피가 아니었다.
스스스스…!
짙은 농도를 뽐내며 세트의 몸에서 뿜어지고 있는 건 다크메타였다.
분명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피 대신 다크메타를 뿜어내는 존재.
다크메타… 그 자체라는 건가.
세트의 몸에서 다크메타가 뿜어진 건 아주 잠시였다.
조금 전과는 반대로 흡수되듯 세트의 몸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 주변의 다크메타들.
다크메타가 흡수됨과 동시에 갈라졌던 세트의 상처 역시 완벽히 아물어버렸다.
꿀렁! 꿀렁!
상처가 다 아물었음에도 계속해서 다크메타를 흡수하는 세트.
얼마나 많은 양을 담을 수 있는 건지 세트의 몸은 꿀렁이면서도 쉬지 않고 다크메타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스륵.
충분한 다크메타를 빨아들여서일까.
흡수를 마친 세트가 천천히 내쪽으로 몸을 돌렸다.
오싹.
[이카로스 - 칼데아 윙]
찰나의 순간.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죽음의 기운에 날개를 꺼내 들었다.
파바바박!
세트의 몸에서 다크메타로 이루어진 수천 개의 칼날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푸푸푸푸푹!!
“끄아…!”
칼데아의 연기가 많은 칼날을 방어해냈지만.
전부를 막아내기엔 무리였다.
삼켜지며 대부분의 힘을 잃었다곤 하나 여전히 태양이 존재하는 공간.
칼데아의 연기는 평소보다 훨씬 약해져 있었다.
파앙!
연기를 터뜨려 하늘로 날아올랐다.
꿰뚫린 상처에서 칼날이 뽑히며 적지 않은 피가 흘러나왔다.
급소는 피했다.
칼데아 덕에 급소가 뚫리는 건 막았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좋은 건 아니었다.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로 몸을 가득 채우고 있는 상처의 통증.
피가 흐르는 양도 적지 않아 오래 버티는 건 힘들 것 같았다.
콰아아아아…!
고개를 돌려 맹렬히 추격하는 다크메타를 바라봤다.
이번엔 파도냐.
조금 전까진 칼날이었던 다크메타는 거대한 파도가 되어 날 덮쳐 오고 있었다.
슥.
빠르게 사방을 조여오는 다크메타를 뒤로 하고 아래를 훑었다.
공간에서 봤던 불꽃이 있던 위치를 찾기 위해서였다.
세트 자체가 다크메타로 이루어졌으니 공격은 무의미하다.
남은 방법은 라의 불꽃을 찾는 것뿐이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찾는다.
흔적으로 봤을 때 보다 이미 많이 삼켜진 건지 작은 불씨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
다크메타만이 가득한 공간에서 어떻게 불꽃을 찾아야 할지 막막했다.
[… 화륵]
!?
짧은 순간이었지만 피부로 느껴진 온기.
단순히 온기만 느껴진 게 아니었다.
흔적 때처럼 목소리가 들린 건 아니었지만, 마치 불꽃이 나를 부르고 있는 듯한 감각이었다.
어디냐…!
쫓아오는 다크메타로 인해 멈출 순 없었기에.
계속해서 움직이며 조금 전의 감각을 다시 느끼기 위해 집중했다.
[화르르…!]
… 찾았다.
보다 명확히 느껴진 열기에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까진 몰랐었는데 집중해서 보니 알 것 같았다.
공간에 있는 다크메타가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장소.
다시 나올 수 있나.
저기로 들어갔다간 다시는 못 돌아올 거란 생각이 절로 드는, 그런 곳이었다.
저기에 있다.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확신이 들었다.
이제 곧 사그라들 불꽃이, 억겁의 시간동안 혼돈의 발을 붙잡고 있던 불꽃이 저곳에 있다는 확신.
아이러니 하구만.
등 뒤에서 밀려오는 다크메타를 피해 하늘로 올라왔는데, 그 다크메타가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니.
어느 방향으로 보나 무모한 행동이었다.
눈에 보이는 태양 역시 이미 완전히 삼켜진 상황.
본능에 의한 확신만을 따라 다크메타 속으로 들어간다 해도 불꽃이 아직까지 남아 있을 거란 보장도 없었다.
….
아주 잠깐이지만 저 멀리로 들어왔던 문이 보였다.
칼데아가 있기에 마음만 먹으면 문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상황.
애초에 이집트를 구하겠다거나 하는 원대한 정의를 가지고 들어온 게 아니었기에, 불꽃만 포기한다면 미련 없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 걸 알기에.
불꽃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안될 말이지.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무기들이 나에게 있어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게 말이다.
그렇기에, 불꽃을 여기에 홀로 내 버려둔 채 나갈 순 없었다.
무조건.
파앙!!
같이 나간다.
불꽃이 있을 거라 생각되는 곳으로 칼데아의 연기를 터뜨렸다.
아래를 향해 빠르게 쏘아지는 몸.
콰아아아아!
그런 내게 위협을 느껴서일까.
아래에 있던 다크메타가 파도가 되어 하늘을 덮쳐왔다.
* * *
세트가 공간에 침범했던 남자를 바라봤다.
어떻게 안 건지 불꽃이 있는 위치에서 아래로 향했던 남자.
콰드득.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불꽃을 덮고 있는 다크메타에게 도달하기 직전, 아래에서 솟아오른 다크메타에 삼켜졌기 때문이다.
뒤이어 추격해오던 엄청난 양의 다크메타에게까지 추가로 삼켜졌기에.
남자의 등장은 잠시의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
하늘 위에서 남자를 삼킨 채 뭉쳐 있는 다크메타 덩어리.
덩어리를 잠시 응시하던 세트가 몸을 돌렸다.
드득.
“…?”
이상한 느낌에 세트가 고개를 돌렸다.
남자를 감싸고 있는 다크메타의 덩어리가 어딘지 이상했다.
꿀렁.
어째선지 심하게 요동치고 있는 다크메타.
무언가에 의해 다크메타가 부풀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두두… 두두두두두두!!
다크메타의 안에서부터 엄청난 양의 빛이 터져 나왔다.
공중에서 내려오며 사방으로 탄환을 쏘고 있는 세 사람의 형체.
빛의 탄환은 다크메타를 소멸시키진 못했지만, 잠시 물러나게 하기엔 충분했다.
파아아앙!!
믿기 힘든 광경에 세트가 잠시 머뭇거린 사이.
날개의 연기를 터뜨린 남자의 몸이 불꽃이 있는 곳으로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