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67화 (167/473)

167화. 비늘과 수리검

로튼은 겁에 질려 몸이 굳어버린 것 같았다.

이제는 악을 쓰며 소리 지르는 것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

대신 로튼은 의아해하고 있었다.

현재의 상황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한 눈.

로튼의 눈엔 여러 가지 의문이 담겨있었다.

어째서 눈앞에 있는 내가 자신의 무효화 능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건지.

어째서 과거에 자신을 무릎 꿇렸던 존재가 했던 말을 똑같이 읊을 수 있는 건지를 말이다.

“다… 당신 역시 알고 있을 텐데요. 인간이 스스로를 영생이라 여기는 순간 얼마나 오만해지는지를요…!!”

바들바들 떨며 간신히 울부짖는 로튼을 보며.

샤마크라에서의 대화를 떠올렸다.

분명 내가 한 말이었다.

회귀 전 겪었던 사람들의 탐욕과 갈취.

로튼이 말하는 오만과 같은 맥락인지는 모르겠으나 평생 살 수 있다는 사실이 가져다준 폐해가 어떤지는 누구보다 잘 봐왔었다.

“알고 있지, 알고 있는데.”

이제는 눈동자마저 떨고 있는 로튼을 향해 고개를 저어 보였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야.”

회귀하기 전에 봤던 기태랑의 영상과 뉴스들이 생각났다.

죽는 순간까지 데몬을 처치했었던 1급 헌터 기태랑.

기본적으로 헌터는 데몬을 처치하는 존재였지만 모두가 인류를 위해, 타인을 위해 싸운 건 아니었다.

루트.

사람들 사이에 우스갯소리로 떠돌던 헌터의 루트란 게 있었다.

헌터로써 어느 정도 명성과 권력을 얻게 되면 정부 혹은 대기업의 스카웃 제의를 받게 되고, 스카웃이 된 이후로는 이전처럼 데몬과의 전투에 나서지 않게 되는 루트였다.

대부분의 헌터가 이 루트를 탔었다.

- 전 오늘부로 헌터에서 은퇴하겠습니다.

부와 명예까지 모든 걸 얻어 풍족해진 그들은 더 이상 싸우려 하지 않았다.

정부나 기업의 높은 자리를 꿰차 행복한 삶만이 남아 있는 상태.

굳이 위험한 전장에 나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유명한 헌터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데몬과 싸우는 전력은 줄어드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졌다.

- 1급 헌터 기태랑입니다!

하지만.

기태랑은 달랐다.

데몬이 강하든 강하지 않든.

기태랑은 항상 나타나 데몬을 처치했고 사람들을 구해냈다.

그렇기에 영웅이라 불린 것이었다.

등장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고 사람들을 지켜온 존재였다.

- 영웅 기태랑 님의 죽음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렇기에 기태랑이 죽었을 때 사람들은 안타까워하는 걸로 끝내지 않았었다.

진심으로 슬퍼하며 오랜 시간 동안 기태랑을 위한 추모 행렬을 이어나갔다.

그만큼 기태랑에게 구해진 이들이 너무나 많았다.

“당신 혹은 당신과 친한 이는 예외라는 건가요!”

“난 아니야.”

솔직한 마음이었다.

난 기태랑과 달랐다.

인류를 구한다거나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무모한 희생을 한다거나 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난 그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려는 것뿐이고. 그 하고자 하는 일에 태랑 님을 죽지 않게 지키는 게 있는 거야. 그것뿐이다, 내가 널 막는 이유는.”

으드득.

로튼의 얼굴엔 더 이상 온화함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진심에서 끌어 올려진 분노로 잔뜩 일그러진 얼굴.

개무섭네.

나 때문에 누군가가 저런 표정을 지었다는 게 약간 놀라울 따름이었다.

“인간의 오만함을 알면서도 자신에겐 예외를 두다니! 그것이야말로 진짜 오만이거늘! 너 역시 오만하구나!!!”

오만이라.

저번 대화까지를 떠올려보면 오만이란 단어를 참 혐오하는 거 같으면서도 좋아하는 로튼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말하는 로튼을 보니 나 역시 궁금한 게 생겼다.

“그러는 넌?”

“…?”

“그렇게 영생을 오만이라 꾸짖으며 혐오하면서 말이야.”

나보다 아래에 있는 로튼을 내려다보며.

얼굴 한가득 조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넌 어째서 무릎까지 꿇어가며 목숨을 구걸한 거냐?”

“!!!”

“넌 신이니 대리인이니 그래도 된다는, 그딴 변명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스윽.

“살고자 무릎 꿇고 목숨을 구걸한 놈이. 스스로를 심판자니 대리인이니 멋드러진 단어로 치장하고 영생을 원하는 사람들을 심판한다는 거.”

드드드…!

“그게 가장 큰 오만이다.”

오만이란 단어가 자신에게 향하자.

“주….”

온몸을 떨어대던 로튼이 있는 힘을 다해 소리 질렀다.

“죽여라아아아!!!”

“크르르르!!”

손으로 막고 있는 검을 통해서.

로튼의 고함에 반응하려는 칸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회귀 전 기태랑을 베어 넘겼던 칸의 칼.

그 칼이 지금은 내 손 앞에 놓여 있었다.

콰악.

“크르…!?”

칸이 칼을 빼기 직전.

비늘이 둘러진 손으로 칼을 붙잡았다.

드드드…!

빼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꼼짝도 하지 않는 칼.

칸의 얼굴로 당혹감이 번져나갔다.

“너도 신났을 거야. 장막 안에서는 못 베는 게 없었을 테니까.”

휙… 덥썩.

“크… 크르… 크…!”

검을 포기하고 빠져나갈지도 몰랐기에.

검을 당겨 칸의 얼굴을 반대 손으로 붙잡았다.

후우.

칸을 붙잡으니 예상치 못한 안도감이 몰려왔다.

기태랑을 베어 넘겼던 장본인, 칸.

드디어 붙잡았다는 사실에 느껴진 안도감이었다.

스윽.

울부짖는 칸을 뒤로하고.

고개를 돌려 로튼을 응시했다.

“너무 원망하진 마라.”

드드드…!!

“크르으그!! 크라아아!!”

손아귀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서로 지키려는 이가 다른 것뿐이니까.”

콰드드드득!!

“….”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 칸의 울음소리.

동료의, 혹은 부하의 허무한 죽음 때문이었을까.

로튼의 얼굴엔 미묘한 표정이 그려져 있었다.

“외롭진 않을 거야. 두 명 먼저 가 있거든.”

“!!”

두두두두두…!

발아래로 진동이 느껴졌다.

조금 전 로튼의 외침을 듣고 사방에 있던 데몬들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지상은 물론이고 하늘마저 빼곡히 덮고 있는 많은 수의 데몬.

모여들고 있는 데몬들을 잠시 바라본 후, 로튼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잠시 구경하고 있어라.”

이미 패닉에 빠진 로튼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유탈라스 & 비젼수리검]

칸의 검을 막아내느라 몸을 뒤덮게 해놨던 유탈라스의 비늘.

몸에 있던 비늘을 해제시켜 반대 손에 있는 수리검으로 붙여나갔다.

드드드.

수리검을 빼곡히 채운 뒤에도 한참 남아있는 유탈라스의 비늘.

남은 비늘은 수리검 주변에 머물며 시린 푸른 빛과 함께 흩날리고 있었다.

사아아…!

비늘을 통해 전해지는 수리검의 감각을 느끼며.

수리검을 쥐고 있던 손을 천천히 펼쳤다.

[용천검]

* * *

처음부터 목소리가 들린 건 아니었다.

태어나며 눈을 떴을 땐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였다.

휘이이이이.

어떻게 해서 여기에 있는 건지.

누구로부터 태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태어났고, 태어났기에 여기에 있다는 사실만이 로튼이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

로튼이 태어나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로튼은 자신이 머물고 있는 세계에 대한 룰을 알게 되었다.

약육강식.

이 세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룰이자 법칙이었다.

콰직!

로튼이 무미건조한 얼굴로 달려드는 데몬을 죽였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 중 하나였다.

무언가 로튼을 노린 채 달려들면, 로튼은 그 무언가를 죽였다.

이런 일상을 반복해가며 로튼은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강함.

약육강식만이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 자신은 매우 높은 위치에 있단 깨달음이었다.

- 네놈이냐? 주변의 데몬을 학살하고 다닌다는 게.

그러던 중 로튼을 찾아온 강자.

데몬이었지만 로튼과 같이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개체였다.

- 이 구역은 내 거라서 말이야. 죽어줘야겠다.

언어뿐만이 아니었다.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데몬.

공기에 있는 물을 얼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 네놈에게 흘러 들어가는 공기. 그 공기 안에 있는 액체를 얼릴 거다. 좀 고통스럽겠지만 금방 끝나니 참아라.

그렇게 죽음을 예고하며 상대가 능력을 발동하려는 찰나.

로튼의 눈에서 퍼져나간 빛이 장막을 만들었다.

- …?

동시에 발동되다 말고 사라져버린 적의 능력.

로튼은 능력이 사라져 아무것도 못 하는 적에게 다가가 평소처럼 가볍게 죽여버렸다.

- ….

이제까지와는 달랐다.

강한 적의 능력을 완전히 없애버린 뒤 손쉽게 죽이자 지금까지 몰랐던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특별함.

- 난 특별하다.

스스로가 가진 권능과 특별함.

이 두 가지가 주는 황홀함과 만족감을 느끼며 로튼의 마음속엔 강한 탐욕이 생겨났다.

- 나만이… 특별해야 한다.

자신만이 권능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권능을 가진 자신만이 영원한 생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계속해서 특별한 존재로 남을 수 있다는 탐욕이 말이다.

- 나 이외의 것이 권능과 영생을 탐내는 건… 오만하다.

그렇게 오만에 대한 정의를 내린 순간.

[오만한 자를 죽여라!]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과거를 회상하며.

로튼이 하늘을 바라봤다.

콰드드드드드드득!

‘나만이 특별해야 하는데.’

“키아아악…!”

“끄… 끄르르!!”

‘어째서…!!’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광경에 로튼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푸른색 비늘로 감싸지더니 하늘로 솟구쳐 오른 수리검.

수리검이 지나간 곳을 수많은 푸른색의 비늘이 길을 그리며 따라가고 있었다.

우웅.

하늘로 올라가 잠시 멈춰있나 싶더니 미묘한 진동을 시작한 수리검.

그때부터였다.

비늘을 둘러싼 수리검에 의해 분쇄가 시작된 것은 말이다.

콰드드!

수리검은 땅과 하늘을 가리지 않았다.

데몬이 있는 곳이라면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날아갔다.

닿는 순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갈려버리는 데몬들.

어느 것에도 부서지지 않는 비늘은 잘게 나누어진 예리한 칼날과 같았다.

수리검의 회전력까지 얻게 되자 이젠 완벽한 이동형 분쇄기가 되어버린 유탈라스의 비늘.

위이이이이…!

범위 역시 엄청났다.

수리검 주변을 감싸고 있는 수 천개의 비늘.

마치 푸른색 비늘로 이루어진 작은 토네이도가 사방을 휘젓는 느낌이었다.

‘….’

지상엔 더 이상 온전한 형체를 한 데몬은 남아 있지 않았다.

원래부터 작은 조각이었던 것마냥 잘게 부서져 뿌려진 데몬들.

하늘에 있는 데몬도 마찬가지였다.

후두둑.

잘게 썰린 조각들이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폭우처럼 쏟아지는 데몬 조각의 한가운데.

이 끔찍한 광경을 만들어내고 있는 백운이 서 있었다.

‘….’

로튼은 말을 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앞에 서 있는 백운으로부터 느껴지는 감각.

이전에 느꼈던 절대적인 존재를 만났을 때와 같은 감각이었다.

우우우웅…!

순식간에 주변에 있던 데몬을 쓸어버리고 로튼의 머리 위에 위치한 수리검.

콰가가아아아…!

수리검이 비늘과 함께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혹시 또 무릎 꿇으려는 거면, 하지 마라.”

피범벅이 된 얼굴로 그려지는 여유로운 미소.

로튼을 향해 입을 연 백운이 손을 들어 올렸다.

“난 소인배라서 말이야.”

콰아아아아아아아!!

들어 올려진 손에 반응한 건지 더 맹렬하게 회전하는 수리검.

“살려 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휙.

백운이 망설임 없이 올렸던 손을 내리고.

콰가가가가!

피로 물들여진 용천검이 로튼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