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터널을 찾아서
짹짹짹.
귓가로 참새의 지저귐이 들려왔다.
동시에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따사로운 아침 햇살.
분명 기분 좋게 맞이해야 할 아침이었지만.
“뒤지겠다.”
난 그럴 수가 없었다.
왼편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엄청난 양의 문서.
대산에게 받아왔던 악귀참도에 대한 추가 서류였다.
“전부 다 달라 그런 건 나지만, 진짜 더럽게 많네.”
이 정도 양의 서류를 작성한 대산의 연구진들이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런 걸 쓰라고 했다면 대산이고 나발이고 최소 백 번은 탈주했을 것이다.
끼익.
“후아아!”
의자를 뒤로 젖히며 몸을 기댔다.
거의 이틀 간 밤을 새 수면 부족으로 죽기 직전이었지만 어쨌든 한 장도 빠짐없이 다 살펴보았다.
“이렇게 잘 읽는데 학창 시절에는 왜 이리 공부를 못했었지.”
쓸데없는 생각을 잠시 떠올린 후.
앞에 놓인 노트북의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이틀 동안 문서에서 발견한 내용 중 쓸만한 것들만 추린 문서였다.
“휴.”
문서를 보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세 줄.
이틀 동안 쓸만하다고 생각한 내용의 전부였다.
척준경이 생전 살았다고 알려진 위치와 가족 관계도였다.
이러니 못 찾지.
새삼스레 대산이 못 찾을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기업의 유리함은 어디까지나 풍부한 정보의 양이었다.
그런 대산조차 이 정도 밖에 못 모았으니 중도 포기를 선언한 건 어찌보면 당연한 결정이었다.
슥.
고개를 돌려 어찌저찌 그려진 그림 한 장을 쳐다봤다.
검날의 기억에서 봤던 터널을 머리에서 사라지기 전 열심히 그려낸 것이었다.
이틀 동안 본 자료보다 이게 더 유용할지도 모르겠어.
그림을 집어 들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얼추 비슷하게 그려내긴 했는데 이걸 가지고 어떻게 찾아야 할까 하는 고민이었다.
장소를 특정 지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말 그대로 없을 무였다.
작은 간판이라도 있어야 언어를 보고 위치라도 유추할 텐데.
깊고 구석진 산속에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했다.
그나마 도울 될 수도 있는 건 산세와 식물인가.
순간 구룡산에서 유탈라스의 옹달샘을 찾아줬던 할아버지 덕문을 떠올렸다.
손을 짚기만 해도 해당 산의 지리를 모두 그려낼 수 있는 능력.
하지만, 어디까지나 특정되는 산이 있었을 때나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예상 가는 산이라도 생기면 연락해보는 걸로 하고.
식물 전문가가 누가 있었지.
이마를 짚고 열심히 머리를 굴려봤지만 떠오르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얼마나 인물이 없었으면 로튼 전에서 불태워버렸던 유리아가 떠오르는 걸까.
“식물 전문가를 어딜 가서 찾아봐야 하나.”
아직 시작조차 못 했는데 막힌 느낌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렇게 하염없이 핸드폰의 뒤지던 중.
응?
회귀하고 열심히 적어놨던 노트가 눈에 들어왔다.
회귀 전에 봤던 뉴스 기사들을 생각나는 대로 기록해뒀던 노트였다.
슥.
혹시 뭐라도 건질게 있을까 싶어 노트를 펼쳤다.
이미 지난 것들은 스킵한 후.
오늘 날짜 이후에 봤던 뉴스를 살폈다.
음?
# 부산 금정산을 뒤덮는 엄청난 수의 데몬 출현. 수많은 희생자가 생겼지만 헌터들의 합세로 진압됨.
회귀 전에 봤던 거라 정확히 기억이 안 나서일까.
기사는 정확한 날짜나 사건의 원인 같은 특징이 적혀 있지 않았다.
아직 발생하기 전일 테고.
그저 회귀 후 똑같은 뉴스를 본 적이 없기에 아직 일어나지 않았구나를 알 수 있을 뿐이었다.
뭐… 내가 나서서 다 구할 순 없으니까.
회귀하며 처음부터 정리해뒀던 나 스스로의 스탠스였다.
내 목적은 모든 인류를 구하는 게 아니었다.
구해야 하는 이들만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날짜도 부정확한데 금정산에 가 죽치고 있을 시간 또한 없었다.
어차피 내가 안 가도 뉴스를 본 헌터들이 합세해 진압할 테니까.
그렇게 터널 찾기에는 별 도움 안 되는 노트를 덮었다.
….
뉴스라.
노트를 덮은 뒤 당시 봤던 뉴스의 내용을 떠올렸다.
금정산에서 엄청난 데몬의 군세가 나타났으니 전투가 가능한 헌터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요청하는 뉴스였다.
그리고 그 뉴스를 접한 국가직, 프리랜서 헌터들이 대거 금정산으로 지원을 갔었고 말이다.
띠링.
# 한튜브에 새로운 동영상이 올라왔습니다.
마침 핸드폰 위로 떠오르는 한튜브의 푸쉬 알림.
지금 가장 유명한 헌터는 누구지?
무언가를 올렸을 때 가장 큰 반응을 얻을 수 있는 헌터는?
한튜브의 알림을 보며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답은 별 고민 없이 쉽게 내려졌다.
무기왕.
의도하진 않았으나 바로 이틀 전 가짜로 인해 최고의 화제가 됐었던 헌터.
바로 나였다.
무기왕인 걸 숨기고 도움을 요청하면 그냥 묻혀버리겠지.
엄청난 수의 헌터가 동영상을 올리는 시대였다.
아무런 이름도 없는 내가, 국가직 10급 헌터 백운이라는 존재로 도움을 요청하더라도 반응해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무기왕은 달랐다.
필요할 때 써먹으려고 이틀 전에 이미지 보호까지 한 건데.
호다닥.
빠르게 그렸던 그림과 필요한 내용들을 깔끔하게 문서 하나로 정리하고 옆에 있던 가면을 썼다.
그리고.
삑.
지체 없이 한튜브의 스트림 시작 버튼을 눌렀다.
* * *
쏴아아아… 끼익.
뜨신 물을 쏟아내던 샤워기가 멈추고.
철컥.
출근 준비 중인 송유빈이 화장실에서 걸어 나왔다.
“늦겠다 늦겠어.”
위잉.
아직까지 물기가 뚝뚝 흐르는 머리를 말리며 송유빈이 한튜브를 켰다.
자는 사이 재밌는 동영상이 올라왔나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띠링.
한튜브에 접속함과 동시에 뜨는 알람에.
‘!!’
꾹.
송유빈이 열심히 돌아가던 드라이기를 꺼버렸다.
현재 시간은 오전 9시.
침대에서 일어난 직장인들이 한참 출근을 하거나 출근 준비를 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무기왕이 왜?’
동영상이 올라온 게 아니었다.
뜬금없는 아침 출근 시간.
무기왕이 라이브 스트림을 켠 것이었다.
꾸욱.
출근 준비 중이었다는 걸 잊은 채 송유빈이 스트림 방으로 입장했다.
@ 뭐야 이거? 또 가짜임?
@ 한튜브 무기왕인데? 진짜인 거 같네요.
먼저 방에 입장한 사람들도 송유빈과 마찬가지였다.
무기왕이 이 시간에 무슨 일이냐고 궁금해하면서도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삑.
잠시 후.
가면을 쓴 무기왕의 얼굴이 화면에 나타났다.
다른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라이브 스트림을 하더라도 항상 무언가와의 전투를 보여주었던 무기왕인데.
오늘은 차분한 자세로 앉아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 안녕하세요, 무기왕입니다.
무기왕의 음성이 흘러나오자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긴가민가하던 사람들이 진짜 무기왕임을 깨닫자 난리가 난 것.
# 오늘은 여러분께 부탁이 있어 스트림을 켜게 되었습니다.
부탁이 있다며 무기왕이 한 장의 그림을 화면에 비추었다.
못 봐줄 정도는 아니지만 예술에 조예가 깊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는 그림이었다.
‘터널… 인가?’
그래도 최대한 자세히 묘사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특히 전체적인 터널의 느낌과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식물을 자세히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 터널의 느낌으로는.
이어서 터널에 대한 무기왕의 설명이 들려왔다.
신기한 느낌이었다.
어딘지는 모르고 가지고 있는 거라곤 직접 그린 그림 한 장뿐인데.
무기왕은 실제로 터널을 본 적 있는 사람처럼 상세히 묘사하며 설명하고 있었다.
# 이 터널과 주변 식물에 대해 약간의 정보라도 가지고 계신 분은 제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탁과 함께 방송을 종료하려던 무기왕에게.
한 가지 질문이 올라왔다.
@ 제보해서 정보의 유효성이 확인되었을 때 주어지는 보상도 있나요?
반 정도의 농담이 섞인 질문이었다.
# 보상이라.
질문자의 의도와는 달리 글을 보며 진지하게 고민하는 무기왕.
결정한 건지 무기왕이 입을 열었다.
# 법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 한 번. 원하시는 모든 부탁을 들어드리겠습니다.
띠링.
# 스트림이 종료되었습니다.
“허.”
말도 안 되는 보상을 말한 뒤 방송을 종료한 무기왕.
뚝 뚝.
핸드폰에 물기가 떨어지는 것도 모른 채 송유빈이 화면을 멍하니 바라봤다.
다른 이도 아닌 무기왕이 직접 부탁을 들어준다니.
말도 안 되는 엄청난 보상이었다.
휙!
이젠 출근마저 포기해버린 송유빈이 자세를 잡고 무기왕이 올렸던 그림을 응시했다.
절대 기억력을 가진 송유빈이었기에.
가지고 있는 기억을 활용해 그림과 대조해 볼 생각이었다.
‘일단 좀 살펴보자.’
다 끄집어낼 각오도 했지만.
처음부터 다 보기엔 30년 넘게 쌓인 기억이 방대했기에 조금이라도 특정할만한 걸 찾고 싶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그림을 살피던 송유빈의 눈썹이 올라갔다.
‘응?’
무기왕의 그림을 멀리 떨어뜨리며 여러 각도로 터널을 살폈다.
‘이거 분명 어디선가.’
이번엔 눈을 감고 기억의 방으로 들어갔다.
정확한 날짜까지 떠오르진 않았으나 어느 정도의 시기는 알고 있었다.
‘….!’
사진처럼 남겨진 기억 하나를 끄집어낸 후.
눈을 뜬 송유빈이 옆에 놓인 노트에 빠르게 기억을 스케치했다.
과거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부산의 산에 방문했을 때 봤던 기억이었다.
탁.
스케치를 마치고 무기왕의 그림과 비교해보는 송유빈.
송유빈이 그린 스케치엔 터널의 입구따위는 없었다.
입구 대신 놓여 있는 거대한 비석.
의미를 알 수 없는 글귀와 부적이 잔뜩 감겨있는 비석이었다.
‘비석 뒤에 입구가 있다고 친다면.’
슥슥.
송유빈이 펜으로 비석이 막고 있는 부분을 검은색 원형으로 색칠했다.
‘요것 봐라.’
자신이 떠올리고도 믿기지 않는지 송유빈이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터널을 감싸고 있는 식물이나 차오른 강의 수위가 완전히 달랐지만.
그것만 제외한다면 완벽히 똑같은 장소였다.
후닥!
송유빈이 망설임 없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 * *
“감사합니다!”
우렁차게 인사를 박은 후.
검은색 케이스를 들고 강태황의 방을 나섰다.
척사윤 검 받았고.
당장 악귀참도 찾기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척준경과 관련 있을 것 같은 인물이 만든 검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조사해볼 가치는 충분했다.
- 다시 돌려드리지 못할 수도 있는데 괜찮나요?
강태황이 건네주는 검을 받으며 혹시나 해서 물었었다.
악귀참도를 찾다 보면 검을 무사히 가져올 수 있으리라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무리할 필요는 없네.
그런 내 질문에 대한 강태황의 대답이었다.
역시나 시원시원 쿨하기 짝이 없는 답.
다시 돌려주면야 좋지만 굳이 무리하면서까지 돌려줄 필요는 없단 것이었다.
- 그래도 귀띔은 해주게나. 내가 알아야 수습할 수 있으니까.
먼저 뒷수습까지 해주겠다 말하는 강태황에.
우렁차게 감사 인사를 박은 후 방을 나섰다.
좋은 분이야.
기태랑과 비광부터 해서 헌터 중앙처는 참으로 좋은 곳이란 생각이 새삼스레 들었다.
띠링.
건물을 나서기 직전.
핸드폰으로 한튜브의 알람이 울렸다.
한튜브를 통해 전달된 메시지였다.
# 보낸이: song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