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구렁텅이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
망자의 세계에 대한 내 첫 감상평이었다.
하지만.
그런 감상평을 한 게 무안해 질 정도로 눈앞엔 엄청난 수의 사람이 존재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거지.
정말 길고 긴 줄이었다.
미슐랭 쓰리스타를 받았지만 가격은 몹시 싼 맛집이 있다면 이 정도 웨이팅이 생기지 않을까 싶은 줄.
달팽이 껍데기의 소용돌이 마냥 일렬로 빙글빙글 끝도 없이 이어져 있는 행렬에 절로 고개가 내저어졌다.
“밑으로 가고 있는 거야.”
진짜네.
노운의 말을 듣고 보니 알 것 같았다.
아주 느리지만 조금씩 앞으로, 밑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
대체 밑에 뭐가 있길래 이 정도의 줄이 있는 걸까.
“우리가 필요한 건 맨 밑에 있어.”
아찔하네.
조금 더 앞으로 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엄청난 깊이의 구덩이였다.
말 그대로 끝이 보이지 않는, 들어갔다간 다시는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구덩이.
깊이보다 더 아찔한 건.
슥.
이 미친 듯한 웨이팅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음 대충 조금씩 나아가는 속도와 숫자를 봤을 때, 우리가 눈이 닿는 밑까지 내려가는 데는.”
열심히 눈알을 굴리던 노운이 입을 열었다.
“2년 정도 걸리겠는데.”
“….”
기가 차서 반박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2년이라니.
당장 망자의 세계를 나가서 뜨신 물에 몸을 담그고 싶은데 2년이라니.
말도 안 되는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내려가기 전에 굶어 죽겠다.
꾸러미에 든 식량도 문제였다.
아래를 봤을 때 존재하는 건 밑으로 내려가는 행렬뿐이었다.
중간에 밥집이 있다던가 식료품을 구할 수 있다던가 하는 건 아무리 봐도 불가능했다.
따각.
“크클… 너네들도 저기 아래로 가려는 건가?”
저걸 어느 세월에 기다리고 앉아 있나 막막해하고 있을 때.
가래가 잔뜩 낀 듯한 걸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지?
지팡이를 짚고 있는 할아버지였다.
딱 봐도 어딘가에서 요양을 하고 계셔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서라, 결국 모든 시간을 뺏기고 나처럼 될 테니까.”
기분 나쁘게 웃으며 할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다를 거야. 나는 괜찮을 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하며 줄의 맨 뒤에 섰었지.”
이야기는 더 들어봐야겠지만.
아마도 저 긴 웨이팅을 기다려본 경험자 같았다.
100세가 넘어 보이는 고령의 나이로 저걸 기다렸다니.
대단한 할아버지였다.
“아래로 내려가면 뭐가 있는데요?”
말을 길게 이어가고 싶지 않은 스타일이었지만, 정보가 필요했다.
사람들은 뭘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리며 내려가는 것이고, 다 내려갔을 때 손에 넣을 수 있는 건 무엇인지 말이다.
“그건 아무도 모르지.”
“…?”
통달한 듯이 말하길래 뭐라도 좀 알고 있나 했는데.
별 영양가 없는 대답이 들려왔다.
“아마 아무도 모를 거야. 맨 아래까지 내려가기도 전에 모두 실패하니까.”
털썩.
서 있는 게 힘에 부치는지 자리에 앉은 할아버지.
기침을 몇 번 한 할아버지가 날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몇 살로 보이지?”
몇 살 같아요?
살면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질문이었다.
딱 봐도 이렇게 어르신인 사람이 물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말이다.
낮춰야 하긴 하겠는데.
몇 살이나 낮춰야 하지.
질문은 간단했지만 답을 하는 건 쉽지 않았다.
보이는 것보다 낮춰야 하는 건 국룰이지만 얼마나 낮춰야 하는지가 문제였다.
허무맹랑할 정도로 낮게 부르면 날 놀려먹으려고 오바를 하는구나! 라고 호통을 칠지도 몰랐다.
“백….”
텁.
무언가 대답하려는 노운의 입을 막은 후.
“70살요.”
내가 생각하던 나이에 마이너스 삼십을 한 후 대답했다.
“크하하하하!”
좋아!
크게 웃는 할아버지를 보며 속으로 나이스를 외쳤다.
미묘한 줄타기에 성공해 할아버지의 마음에 쏙 드는 나이를 말한 것 같았다.
“틀렸어.”
그렇게 스스로의 처세술에 감탄하고 있을 때.
틀렸다는 말과 함께 믿을 수 없는 말이 들려왔다.
“서른 살이다.”
거짓말하지 마!!
라고 외치고 싶었다.
농담도 정도껏 해야지 아무리 봐도 백살 이상인데 서른이라니.
단순히 노안이라는 단어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구덩이로 내려갔을 때의 대가지.”
내 반응을 덤덤한 얼굴로 바라보며.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 * *
깜빡 잠이 들었던 륭이 눈을 떴다.
‘아직도 이 정도 밖에 못 갔나.’
분명 오랜 시간을 잔 느낌이었는데.
그럼에도 눈앞의 사람은 몇 발자국 전진한 게 끝이었다.
‘언제까지 저 뒤통수를 봐야 하지.’
더럽게 지겨웠다.
더럽게 지겹다는 말로 부족할 정도로 지긋지긋한 뒤통수였다.
‘뭐 내 뒤에 있는 놈도 마찬가지겠지만.’
서로가 서로의 뒤통수를 보며 지긋지긋하다고 느끼고 있는 행렬.
륭은 수많은 인파의 행렬에 속해 끝이 보이지 않는 행군을 이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지난 거지.’
망자의 세계에 떨어지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밑으로 내려가기 위해 행렬에 속한 시간도 하도 오래되어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내려가야 돼.’
지긋지긋하고 지겨운 행렬.
저 끝에 무엇이 있고 언제까지 이렇게 가야 하는지 어느 것 하나 뚜렷한 게 없었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 바닥엔 망자의 세계를 빠져나갈 수 있는 물건이 있다.
망자의 세게에 속한 사람들에게 암묵적으로 전해지는 말이었다.
누구도 끝까지 내려가 본 적은 없기에 어디서 나온 말인지 출처는 확인 불가능했으나.
말은 돌고 돌아 어느새 기정사실화 되어 있었다.
‘나갈 거다.’
끝없는 행렬을 기다리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망자의 세계에서 벗어나 다시 지구로 돌아가고자 하는 다짐.
이 다짐 덕분에 륭은 포기하지 않고 행렬을 계속해서 이어 갈 수 있었다.
“으아아악!”
“끄악--!!”
꽤 떨어진 곳, 륭보다 훨씬 앞선 곳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꿀꺽.
이미 내려오며 수도 없이 들은 비명이었지만.
들을 때마다 모공이 송연해지며 머리가 쭈뼛 서는 소름 끼치는 비명이었다.
‘대체 앞에 뭐가 있는 거지.’
륭이 처음 행렬에 도착했을 때 가졌던 의문점이 있었다.
어차피 망자의 세계이고 어떠한 법도, 질서도 없는데 사람들은 어째서 이리도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란 의문.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륭은 질서가 지켜지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뭐라도 좀 보여라.’
다들 보고 대비하려는 것이었다.
앞에 있는 이들이 마루타가 되어 만나게 되는 것들을 뒤에서 먼저 본 후.
자신은 어떻게든 대처해 앞에 있던 사람과는 다른 결말을 맞이하고자 했던 것이다.
“으아악!”
그렇게 륭의 귓가로 몇 번의 비명이 더 들렸을까.
륭의 시야로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
거대한 입을 가진 존재였다.
실체는 없지만 흐릿한 연기로 이루어져 있는 생물체.
지구에 있는 생물 중 굳이 닮은 걸 하나 고른다면 여우였다.
여우의 입을 닮은 생김새였다.
콰득!!
앞서 가던 이들은 한 명씩 잡아먹히고 있었다.
스스로 걸어 정체불명의 아가리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니.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닥!
누군가는 달렸고.
샤삭!
누군가는 옆으로 붙어 벽을 따라갔다.
앞에서 벌어진 결과를 보며 나름 생각해낸 방법이었다.
하지만.
모두의 노력을 비웃듯 여우의 입은 길을 통과하려는 모든 이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집어 삼켜진 이들의 얼굴은 끔찍할 정도로 일그러졌었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미… 미쳤어.’
앞에 있는 사람이 계속해서 잡아먹히는데도 뒤에 있는 이들이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곳까지 내려오는데 너무 오랜 시간을 들였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되돌아갈 수는 없다는 생각.
그 생각이 사람들을 무모하게 만들었고 결국엔 여우에게 잡아먹히는 결말을 낳게 만들었다.
‘불가능해.’
하지만 륭은 달랐다.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라고 길을 나섰던 륭이었지만.
앞에 놓인 현실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용기가 넘치진 않았다.
주춤.
아주 오랜만에 앞이 아닌 뒤로 몇 걸음 물러난 륭.
“뭐야! 빨리 가!”
“앞으로 가!!”
뒷사람들의 목소리에 겁을 먹은 륭이.
“나… 난 안 가!!”
앞이 아닌 뒤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 * *
“이게 규율을 무시하고 뒤로 내달린 결과지.”
자신을 륭이라 밝힌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마쳤다.
무시무시한데.
엄살을 피는 게 아니었다.
사람들과 달리 아래가 아닌 위로 내달려 도망치는 동안 륭의 몸은 급속도로 노화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꼭대기에 이르렀을 땐 지금처럼 백 살에 가까운 몸이 되었다는 륭.
슥.
고개를 돌려 끝이 안 보이는 구덩이를 바라봤다.
무슨 룰이 적용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도망친 자에게 노화를 선물하는 구덩이라니.
말만 들어도 발을 들이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난 이 썩은 몸뚱이로 평생을 살아야겠지. 이렇게 되고 싶다면 내려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탁… 탁.
륭이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멀어져 갔다.
엄청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도 모자라서 내려가는 순간 정체불명의 여우에게 잡아먹히거나 할아버지가 되어야 한다라.
평소라면 고민할 것 없이 등을 돌려 후퇴했을 것이다.
망자의 세계에서 평생 살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말이다.
안될 말이지.
물론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숨을 쉬기만 해도 꿉꿉하고 찐뜩함이 느껴지는 망자의 세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곳이었다.
“내려갈 거면 줄 서자.”
옆에서 노운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륭의 말을 들으면서도 조금도 겁에 질리지 않은 목소리였다.
다행이네.
가기 싫다고 안 해서.
나야 륭이 더 심한 말을 했어도 갈 생각이었지만.
노운이 겁에 질려 고개를 저을까 봐 조금 걱정했었다.
걱정한 게 무색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라 다행이었다.
“가자.”
저벅
노운과 함께 구덩이의 입구로 향했다.
입구까지 뻗어 있는 대기열.
불가능이라 불리면서도 모두가 이곳을 벗어나겠다는 일념 하나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걸 다 기다릴 순 없지.
노운이 간략하게 했던 계산을 떠올렸다.
눈에 보이는 데까지만 해도 2년이었다.
구덩이가 더 깊을 것으로 가정했을 때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는 정말 미지수.
흐음.
구덩이를 보며 약간의 생각을 마친 후 노운을 바라봤다.
“발상의 전환이란 말 알아?”
“…?”
갑자기 무슨 말을 하냐며 노운이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말 자체는 알지만 내가 이런 말을 꺼내는 이유를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줄은 서지 않는다.”
당당하게 선포한 뒤 꾸러미를 더 꽉 조여맸다.
어디에 부딪히거나 하더라도 웬만해선 찢어지지 않는 튼튼한 소재의 꾸러미였다.
잘 샀어.
다시 한번 스스로의 선택에 고개를 끄덕인 후.
휘익!!
들고 있던 꾸러미를 구덩이로 집어 던졌다.
“!!”
나의 돌발행동에 눈이 커진 노운.
그런 노운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우리는.”
아직까지 상황파악 중인 노운에게 묘한 미소를 그려 보이며.
“지름길로 간다.”
구덩이로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