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소화 완료
자신을 연금술사라 소개하는 남자.
카사락이 남자를 응시하며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원래라면 법칙을 어기는 힘을 가졌으니 바로 소멸시키는 게 맞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흥미롭다.’
이유는 간단했다.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한낮 인간이 망자의 세계와 인간 세계를 잇는 문을 열다니.
남자가 가지고 있는 연금술이란 힘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거기다.
‘어떻게 저리 덤덤할 수 있는가.’
카사락의 흥미를 끈 것은 한 가지 더 있었다.
카사락과 망자의 군대를 마주했음에도 남자는 겁에 질리지 않았다.
겁에 질리긴커녕 오히려 무덤덤한 얼굴로 카사락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다르구나.’
눈앞의 남자는 보통의 인간과는 달랐다.
단순히 문을 연 힘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보통의 사람은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하며 어떻게든 오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기 마련인데.
남자는 반대였다.
다른 이를 위해 제 발로 걸어 들어온 것이었다.
- 내… 내보내 줘! 내 실수야!
물론 종종 가족이나 연인을 위해 제 발로 들어온 사람이 있긴 했었다.
얼마 안 가 카사락과 군대를 마주하며 내보내달라고 울부짖었지만 말이다.
“이곳이 어딘지는 알고 있는 게냐?”
남자가 별 걸 다 묻는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가 그걸 알아야 해?”
“하!”
헛웃음을 터뜨리는 카사락에 남자가 말을 이어나갔다.
“아까 말했듯이 난 원하는 걸 얻었고 대가를 치룬 것뿐이야. 이곳이 어디든 상관없어.”
허세 같은 게 아니었다.
남자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다는 얼굴로 카사락을 응시하고 있었다.
씨익.
잠시 생각하던 카사락이 입을 열었다.
“법칙을 어겼으나… 난 널 소멸시키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키지 않았다.
법칙을 어긴 것을, 망자의 세계에 온 것을 후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
그런 인간을 소멸시킨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가만히 듣고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는 질서를 위협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변수 그 자체였다.
세계를 어지럽히는 변수를 극도로 싫어하는 카사락에게는 혐오스러운 힘이었으나.
상관없었다.
‘앞으로 사용할 수 없을 게다.’
남자가 그 힘을 사용하는 일은 앞으로 절대 없을 터였다.
“밖으로 나간 여자는 너에게 소중한 사람이겠지.”
카사락이 남자가 나타나기 직전 망자의 세계로 전이되었던 여자를 떠올렸다.
카사락이 연 문에 휘말려 빨려 들어온 여자.
분명 앞의 남자에게 있어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일 터였다.
그렇지 않다면 이 정도의 자기희생은 불가능했을 테니.
다그닥.
남자를 향해 걸음을 옮기며 카사락이 말을 건넸다.
“이곳은 망자의 세계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모든 걸 망각하게 되는 세계지.”
다그닥.
“넌 이곳에서 홀로 살아가며 소중했던 모든 것을.”
카사락의 입가로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서서히 잊어 갈 것이다.”
* * *
가만히 서 말에 타고 있는 카사락을 바라봤다.
노운을 연금술사라고 부르며 말이 없어진 걸 봐선 과거에 대해 회상 중인 듯했다.
둘 사이에 무슨 과거가 있으려나.
솔직히 궁금했다.
다른 이의 과거 이야기가 원래 재밌는 것도 있었지만.
인간에서 멀어져도 너무 멀어진 듯한 카사락과 일반인의 조합이라니.
정말 흥미로웠다.
이런 상황임에도.
무슨 관계시고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저도 좀 알면 안 될까요?
라고 슬쩍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
하지만 진짜 입을 열거나 하진 않았다.
지금 흐르고 있는 시간은 노운과 나의 편이었다.
카사락이 최대한 가만히 있어 주면 좋은 일이니 괜히 말을 걸어 자극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스윽.
뜨끔.
들렸나?
갑자기 돌아보는 카사락에 나도 모르게 움찔거리고 말았다.
둘 사이에서 인지되지 않고자 공기처럼 조용히 있었는데.
소용없는 짓이었던 것 같다.
“넌 무엇이냐?”
“백운이다.”
간략한 대답에 카사락이 인상을 찌푸렸다.
궁금한 게 내 이름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무엇이길래 저 연금술사가 다시 힘을 사용하게 된 거냐?”
카사락이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어떻게 노운이 문을 열고 있는지를 묻는 카사락.
…?
벙찐 얼굴로 카사락을 쳐다보다가 열심히 문을 여는 중인 노운을 바라봤다.
다시 힘을 사용하게 됐다니.
노운은 원래 힘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였다는 걸까.
음… 생각해보니.
천천히 노운과 있었던 상황들을 떠올려봤다.
뜬금없는 타이밍에 손에서 스파크를 냈던 노운.
당시 노운의 표정을 봤을 때 일부러 힘을 숨긴 게 아니었다.
마치 자기도 몰랐던 힘을 새로 발견하게 된 듯한 느낌이었다.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 되찾은 쪽이었나.
“못 들은 게냐? 어떻게 했길래 망각이 사라지고 있는지를 물었….”
“나도 몰라 해골 새끼야.”
앗.
안 그래도 모르겠어서 답답한데 듣기 싫은 목소리로 계속 보채는 카사락에.
나도 모르게 욕을 해버리고 말았다.
스… 스윽.
약간 떨리는 마음으로 고개를 돌렸다.
“….”
당황한 건지 화가 난 건지는 모르겠으나 카사락은 푸른 안광을 빛내며 날 노려보고 있었다.
아까보다 안광이 짙어진 걸 봐선 화가 났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사실 네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럼 왜 물어봤지란 의문을 가지며 카사락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넌 질서를 어겼기에 소멸되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은 변하지 않으니.”
점점 차가워지는 목소리와.
“이만 나의 세계에서 사라지거라.”
음산한 말을 마지막으로.
“크아아아아악!”
대기하고 있던 망자의 군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서걱! 서걱! 서걱!
- 중요한 건 둘러싸이지 않는 것.
돌산에서 귀에 딱지가 얹도록 들은 가르침이지만.
“크라아아아아!”
지금은 이행이 불가능했다.
사방에서 날 덮쳐오는 망자의 군대.
말도 안 되는 숫자였다.
물 밀듯 밀려온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를 깨닫게 해주는 물량 공세.
콰아아앙!
“크라…!”
한 마리 한 마리 자체는 강하지 않았다.
죽일 수 없다는 법칙이 위협적인 존재였을 뿐이기에.
법칙을 무시하는 악귀참도가 내 손에 있는 이상 놈들은 평범한 해골바가지에 불과했다.
콰악…!
휘익… 스륵.
혹시나 해서 휘두른 면도칼이 그대로 통과하는 걸 확인하며.
다른 손에 들린 악귀참도를 휘둘러 두동강을 내버렸다.
무섭네.
검을 휘두르는 와중에 든 감상평이었다.
죽을까 봐 무서운 건 아니었다.
“키아아악!”
수백 수천 개의 뼈다귀 손과 무기가 휘둘러지고 있었지만.
그게 닿을까 무서운 것도 아니었다.
그냥 비쥬얼적으로 무서웠다.
“쿠와아아각!”
공포 영화에서 한 마리만 나와도 기겁할 생김새의 놈들이 수 천 마리나 달려들고 있으니.
공포 영화 수백 편을 한꺼번에 강제 주입 당하는 기분이었다.
콰직! 콰드득!
한 번의 휘두름에 열댓 마리의 망자가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먼지가 됨과 동시에 하늘로 솟구치는 푸른빛의 기운.
도윤을 구할 때도 망자 놈들치곤 아름다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기운이 사방에서 솟구치니 싸우는 와중에도 눈이 돌아가는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스윽.
고개를 돌려 문을 열고 있는 노운을 바라봤다.
붉은 스파크와 사방에서 모인 빛은 어느덧 거대한 구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구체가 커짐과 동시에 세계의 하늘에 나타나고 있는 작은 균열.
균열이 완성될 때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노운이 문을 열고 있는 장소가 건축물 위라는 것이었다.
평지였다면 밀려드는 망자들로부터 지키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을 텐데.
건축물로 오르는 길만 지켜내면 되니 수월한 상황이었다.
평지가 아니라서 다행…?
쿠르르릉…!
한참 밀려드는 망자를 베고 있을 때.
귓가로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 봤던 폭풍우의 장막을 떠올리게 만드는 소리였다.
괜한 생각을 했나.
해치웠나 같은 트리거를 발동한 건가 하는 의문을 가지며.
소리가 들리는 하늘로 고개를 들었다.
이런 샹.
어쩐지 쫄따구들만 몰려들고 대장은 조용하다 싶었는데.
카사락이 든 책에서 솟아 나온 에너지가 하늘로 모이고 있었다.
제대로 한 방 쏘아내려는 건지 어느 정도 구체가 커졌음에도 카사락은 계속해서 에너지를 모으고 있었다.
나한테 쏘려는 게 아니다.
콰드드득!
악귀참도를 크게 휘둘러 망자 무리를 떨쳐냈다.
카사락의 마법은 문을 여는 중인 노운을 노리고 있었다.
휙.
노운은 온몸에서 땀을 흘리며 문을 열고 있었다.
하늘에서 저런 게 날아든다고 해도 대응할 수 없는 상태.
내가 막아야 돼.
“크라라락!”
달려드는 망자를 베어내며 머리를 굴렸다.
벨 수 있을까.
당장 저런 에너지 구체를 막아 낼 방법이 악귀참도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베지 못하는 것을 베어내는 검.
웬만한 마법은 벨 수 없다는 게 상식이니 불가능한 가설은 아니었다.
다음 문제는.
콰직!
저 높이까지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은 수리검뿐이라는 것.
카사락은 일부러 공중에 마법을 펼치고 있었다.
만에 하나 내가 막아낼 걸 대비해서 말이다.
늦지 않게 길로 돌아올 수 있을까.
수리검 역시 쿨타임이 존재하지 않으니 듀얼로 사용한다 해도 악귀참도를 사용하지 못 하는 일은 없을 터였다.
문제는 내가 망자들로부터 지켜내고 있는 길이었다.
공중에서 마법을 베어내고 망자가 노운에게 닿기 전까지 되돌아와야 했다.
으득.
쉽진 않을 것 같았다.
수리검을 아무리 부지런하게 던지더라도 목적지까지 날아가는 약간의 텀은 존재할 수밖에 없었고.
텀 동안 나는 수리검이 빨리 도착하길 기다리며 손가락을 빨 수밖에 없었다.
날개만 있었다면.
망자의 세계에 태양은 존재하지 않았다.
언제든 꺼낼 수 있었을 이카로스의 날개.
연기만 충분하다면 말도 안 되는 이동 속도를 부여해 주는 날개였다.
수리검과 달리 다음 이동을 위한 텀도 존재하지 않으니 지금 내게 있어 가장 절실한 무기였다.
쿠아아아아!!
카사락의 마법 구체는 어느새 커져 일대를 밝히고 있었다.
저런 게 노운에게 직격 했다가는 문이고 나발이고 물거품이 되는 상황.
악귀참도로 벨 수 있을지, 수리검으로 제때 돌아올 수 있을지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일단 가야 한다.
“크라아아악!!”
이런 마음을 알 리 없는 망자놈들.
놈들은 더 신을 내며 끝도 없이 밀려오고 있었다.
못해도 천은 벤 거 같은데도 여전히 끝은 보이지 않았다.
탓…!
앞으로 나아가며 최대한 많은 망자를 베어낸 뒤.
빠르게 물러나 수리검을 꺼낼 준비를 했다.
비젼 수리…
두근.
….!
수리검을 꺼내려는 찰나.
무언가의 박동이 느껴졌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작게 시작된 박동이 몸을 완전히 메움과 동시에.
파아아아앙!!
내 시야를 가리며 사방에 존재하는 모든 걸 집어삼키는.
사아아악…!
검은 연기가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