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연금술사
오래된 이야기였다.
“그아아…!”
카사락이 자신의 앞에 무릎 꿇고 있는 망자들을 내려다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를 죽이기 위해 이빨과 무기를 휘둘렀던 사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툭.
카사락이 들고 있던 누군가의 머리를 집어던졌다.
선대 왕이었던 망자의 머리였다.
조금 전까지 카사락과 왕의 자리를 두고 겨루었던 자.
데구르르.
방금 전까지는 왕의 머리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그저 가지고 있던 모든 걸 잃고 바닥을 뒹구는 패배자의 잔해일 뿐이었다.
“그어어!!”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망자들이 고개를 치켜들며 포효를 내뱉었다.
갑자기 나타나 원래부터 제 자리였던 것처럼 왕의 자리를 차지한 카사락.
모두가 새로운 왕의 탄생을 인정하며 내지르는 포효였다.
“잘 들어라.”
포효하는 망자들을 향해 카사락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매우 낮은 목소리였지만 카사락의 말은 수십, 수백만의 망자들에게 똑똑히 전달되고 있었다.
“앞으로 망자에게 죽음은 없다.”
왕의 자리에 도전하기 전.
카사락은 항상 궁금해함과 동시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망자의 세계에서 망자라는 존재가 가지는 위치.
카사락이 생각하기에 망자는 세계를 이루는 중심이 되는 존재였다.
세계는 망자를 위해 존재했고, 망자는 그 세계에서 가장 우대받아야 함이 마땅했다.
- 콰직!
그럼에도 전대의 왕은 자신 외의 망자를 소모품 정도로 여겼다.
기분이 나쁘거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망자를 소멸시켰고.
그렇게 세계를 구성하고 있던 망자는 한 줌의 재와 빛이 되어 하늘로 사라져야만 했다.
- 이대로는 안 된다.
전대 왕의 횡포를 보며 카사락은 힘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단순히 왕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니었다.
왕의 행동이 망자의 세계에 있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았기에 힘을 키운 것이었다.
“망자는 망자를 죽이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카사락은 전대 왕을 꺾고 규칙을 정할 수 있는 새로운 왕의 자리에 올랐다.
망자들에게 있어 왕의 규칙은 절대적이었기에.
지금 카사락이 전달하고 있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곧 세계의 규율이었다.
“이곳에서 망자가 소멸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애초에 망자를 죽일 수 있는 건 같은 존재인 망자뿐이라는 세계의 법칙이 있었기에.
카사락의 규율이 지켜진다면 이곳에서 망자가 죽는 일 따위는 더 이상 일어날 리 없었다.
“이것이 나의 규율이자 질서이다.”
질서를 위한 세계의 새로운 규율.
규율은 새로운 왕과 함께 탄생했다.
* * *
세계엔 망자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때때로 다른 세계에서 봉인을 당해 육신을 잃은 자들이 흘러들어왔다.
세계의 법칙에 의해 흘러들어온 자들이었기에 카사락은 이들을 가마에 가두고 망자들에게 지키도록 명령했다.
왕이기 이전에 세계에 속한 자로서 지켜야 하는 질서이자 규칙이었다.
“여… 여긴 어딥니까! 절 내보내 주십시오!”
물론 흘러들어오는 모두를 가둔 건 아니었다.
그럴 가치조차 없는 존재들이 있었다.
찌꺼기.
카사락은 그들을 찌꺼기라 불렀다.
어떤 룰에 의해선지는 몰라도 죽음 이후에 그 어느 곳으로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낙오자들.
필시 자신이 살던 세계에서 추잡한 밑바닥 생을 살아 모든 곳에서 거절당한 낙오자가 분명했다.
콰득.
찌꺼기에 대한 카사락의 생각은 확고했다.
무자비와 방치.
눈에 거슬리면 죽였고 그게 아니라면 끝없는 세계를 떠돌게 하며 모든 걸 망각하게 만들었다.
굳이 기억할 가치도 없는 삶을 살아온 존재들이기에 그에 맞는 삶을 선물해준 것이었다.
‘신경 쓸 가치도 없는 하찮은 존재들.’
세계의 질서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하찮은 존재였기에 카사락은 이들에게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지나가다 밟아 죽일 수도 있는 벌레 정도로 생각했다.
‘질서는 확고히 유지되고 있다.’
세계의 법칙과 맞물려 안정을 가져온 자신의 규율에 카사락은 만족했다.
세계의 중요 구성체인 망자는 더 이상 죽지 않았고, 관리되어야 하는 이들 역시 빠짐없이 카사락의 손 아래에 있었다.
‘나의 세계다.’
그 누구도 질서와 규율을 깰 수 없는.
오로지 왕인 카사락만이 질서의 유지와 혼란을 정할 수 있는 세계.
‘앞으로도 세계의 질서는 나의 관리하에 지켜질 것이다.’
모든 게 카사락의 아래에서 돌아가고 있었기에.
카사락은 세계의 질서와 평화가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다.
드드드!
콰아앙!
정확히는 그렇게 확신했었다.
‘….’
그들이 탄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세계에 질서가 확립되었다고 생각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망자의 세계엔 새로운 존재가 탄생했다.
토라소라는 지역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검은 연기로 이루어진 생명체.
“키아아아악!!”
“크르르!”
카사락이 눈앞에서 서로를 물어뜯고 있는 생명체들을 바라봤다.
순수한 본능만을 가진 존재들이었다.
식탐과 생존.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에서 태어나기 무섭게 서로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그들에겐 동족포식에 대한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설계되었다는 듯이, 그들은 서로를 먹으며 몸집을 키워갔다.
‘위험하다.’
세계의 규율인 만큼 저들은 망자에게 어떠한 위해도 끼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카사락이 위험하다 느낀 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제어가 불가능하다.’
저들이 망자를 죽이지 못하듯, 망자 또한 저들을 죽일 수 없었다.
서로에게 손을 댈 수 없는 존재의 공존.
질서와 규율을 중요시하는 카사락에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였다.
쿠웅!!
콰가가가가!
실제로 세계는 흔들리고 있었다.
거대한 크기만큼이나 생명체들의 싸움은 치열했고.
그럴 때마다 세계는 폭풍우라도 만난 것처럼 거칠게 요동쳤다.
우우우우우---!
‘…!’
특히 생명체 중에서도 몇 번의 동족포식을 해낸 개체가 있었으니.
토라소의 폭풍이라 불리고 있는 칼데아였다.
검은 연기로 이루어진 거대한 날개.
칼데아가 가는 곳은 언제나 폭풍이 일었고, 망자를 제외한 모든 존재가 칼데아의 먹이로 바스러져갔다.
‘내보내야 한다.’
칼데아는 죽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란 걸 알았기에.
카사락은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망자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칼데아를 다른 세계로 튕겨 내버리는 것.
목적지가 어디가 될지, 칼데아가 도착한 세계엔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내 세계의 질서를 위하여.’
카사락은 망자의 세계를 다스리는 왕이었고.
세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야 할 책임이 있었다.
“망자들을 모아 찌꺼기들의 혼을 거두어 와라.”
들어올 순 있지만 나가는 건 불가능한 세계.
카사락은 질서를 위해 이 규칙을 한 번 어기기로 마음먹었다.
‘저들을 내보낼 수만 있다면.’
다시 한번 세계가 자신의 손 아래로 들어올 수만 있다면.
문을 엶으로 생기는 부수적인 파장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고오오….
카사락이 푸른 안광을 빛내며 토라소를 노려봤다.
“토라소에 문을 연다.”
* * *
“크라아아아!!”
“키아아아아아악!!”
엄청난 울음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카사락과 망자들에 의해 열린 하늘의 문과 문으로 빨려 들어가는 검은 연기의 존재들.
드드드득…!
토라소의 모든 존재가 문으로 빨려 들어갔음에도.
칼데아는 문의 끝자락을 놓지 않고 끝까지 버티고 있었다.
거스를 수 없는 문의 힘조차 버텨내다니.
다시 봐도 위험한 존재였다.
‘난 틀리지 않았다.’
그런 칼데아를 보며 카사락은 확신했었다.
이것이 망자의 세계를 위한 최선임을 말이다.
고오오오오---!
“…!”
엄청난 울림이었다.
귀로 들리는 게 아닌, 몸 전체를 울려대는 칼데아의 울부짖음.
그게 무슨 감정인지는 알 수 없었다.
고향으로부터 추방당하게 한 카사락에 대한 분노일 수도 있었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었다.
“가거라, 무질서의 존재여.”
드드드… 드.
그렇게 카사락이 열었던 하늘의 문이 닫히고.
토라소에서 태어난 포식자들이 모두 다른 세계로 튕겨 나가졌다.
“….”
문의 닫힘과 칼데아의 사라짐을 확인하고 등을 돌리려는 순간.
문이 열렸던 건축물 옆으로 주저앉아 있는 소녀가 카사락의 눈에 들어왔다.
“아…!”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을 하고 있는 소녀.
‘휘말린 건가.’
이제까지 흘러들어온 찌꺼기들과는 달랐다.
소녀의 육신은 멀쩡했다.
그럼에도 망자의 세계로 들어오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조금 전 카사락이 억지로 연 문 때문이었다.
문의 파장에 휘말려 운이 나빴던 소녀는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
스릉.
잠시 소녀를 바라보던 카사락이 들고 있던 검을 꺼내 들었다.
육신을 가진 이는 이곳에 있어선 안 됐다.
소녀 또한 질서를 어긋나게 하는 존재였기에 사라져야만 했다.
다그닥.
그렇게 소녀를 죽이기 위해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파지직.
“…!?”
닫혔던 문에 붉은 스파크가 일었고.
콰앙!
“!!!”
열릴 리 없는 하늘의 문이 다시 한번 열어젖혀 졌다.
파지지지직!!
문으로부터 뻗어 나온 붉은 스파크가 소녀의 몸을 휘감았다.
“감히…!”
소녀를 데려가려는 힘에 카사락이 검을 휘둘렀지만.
사락.
“!!”
카사락의 검은 스파크에 둘러싸인 소녀를 베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스파크는 카사락마저 간섭할 수 없는 새로운 규칙임을.
파직!
그렇게 건드릴 수 없는 붉은 스파크가 소녀를 문밖으로 끌어당기고.
쿵!
소녀가 사라짐과 동시에 잠깐 열렸던 하늘의 문이 굳게 닫혔다.
그리고.
스으으…!
소녀가 앉아있던 곳엔 새로운 인물이 서 있었다.
하얀색 더벅머리를 한 채 초록색 눈동자를 빛내고 있는 소년이었다.
카사락을 앞에 두고 있음에도 조금의 동요조차 않는 모습이었다.
“넌 무엇이냐.”
카사락이 먼저 소년에게 질문을 건넸다.
소녀와 달리 소년은 세계의 질서에 어긋나지 않았다.
방금 전에 잃은 탓인지 약간의 기운이 남아있긴 했지만, 소년에겐 돌아갈 육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굳이 죽일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방금 뭘 한 것이냐.”
자신의 검조차 간섭하지 못하는 힘.
그 힘의 정체는 분명 소년의 것이었다.
질문을 들은 뒤 잠시 카사락을 보던 소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등가교환의 법칙.”
알아들을 수 없는 말에 카사락이 인상을 찌푸리자.
조금의 떨림도 없는 목소리로 소년이 말을 이어나갔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내줘야 한다.”
“….”
소년의 말을 들은 카사락의 입가로.
묘한 미소가 그려졌다.
“바꾼 게로구나…!”
갑자기 사라진 소녀와.
육신이 사라진 채 갑자기 등장한 소년.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곳은 흐르는 시간과 함께 모든 걸 잊어버리는 땅이다.”
조용히 말을 건네는 카사락에도 소년은 동요하지 않았다.
“후회는 없어.”
툭툭.
오히려 태연한 모습으로 하얀색 셔츠에 묻은 모래를 털어낼 뿐이었다.
“원하는 걸 얻었고, 대가를 치뤘다. 그뿐이야.”
스윽.
고개를 든 소년이 카사락을 응시했다.
“아까 내가 무엇이냐 물었지? 난….”
그런 소년을 조용히 바라보는 카사락.
잠시 뜸을 들인 소년이 입을 열었다.
“연금술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