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유물관 방문
“세계 각국에서 성명 발표를 재촉하고 있습니다.”
“훗카이도에서 발생한 에너지는 무엇인지 관심이 많은 거 같습니다.”
일본의 총리 관저.
곳곳에서 빗발치는 문의에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발표가 늦으면 괜한 오해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벌써 협정에서 금지했던 무기 실험을 한 게 아닌지 의심하는 국가도 있습니다.”
각 관리의 보고에 일본 총리 야구치 토야마가 이마를 짚었다.
모두가 잠이 들었던 새벽 시간.
훗카이도에서 발생한 에너지에 긴급으로 소집된 회의는 아침 해가 밝아오는 시간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엄청난 일이 벌어질 뻔했다니.’
등 뒤로 올라오는 아찔함에 토야마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안일한 대처였다.’
오타루에서 일이 벌어졌을 때.
토야마는 가장 신뢰하는 장관인 료코를 조용히 파견했었다.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기에 공식으로 오타루의 일을 발표하지도 않았었다.
자칫 잘못하여 국민이 패닉에 빠질 것을 우려한 것이었다.
‘료코를 볼 면목이 없군.’
두 번째 도시가 날아갔을 때 료코는 지원을 요청해왔다.
당연히 토야마는 가용한 모든 병력을 곧장 파병하고자 했으나.
- 그랬다간 나라가 패닉에 빠질 겁니다!
-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용히 보내야 합니다! 료코 장관의 예상일 뿐입니다!
- 훗카이도가 한순간에 날아간다는 건 신빙성이 없습니다!
각 관리의 강한 반대에 막혀 빠르게 지원을 보내지 못했었다.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쉰 토야마가 고개를 들었다.
“보고서 작성은 얼마나 걸릴 거 같습니까?”
“료코 장관으로부터 보고서는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고칠 부분이 좀 있습니다.”
“고쳐야 할 부분요…?”
관리의 말에 토야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료코가 보낸 보고서라면 따로 손 보고 할 필요가 없을 터였다.
“다른 부분은 다 괜찮지만, 마지막 부분이 문제입니다.”
보고서를 건네받은 토야마가 마지막 부분을 읽었다.
훗카이도가 날아갈 뻔한 위기를 한국의 헌터가 해결했다는 내용이었다.
‘….’
토야마가 눈살을 찌푸렸다.
관리의 말대로 보고서에 문제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단지 문제가 있다 말한 관리의 속내가 뻔히 보여서였다.
“보고서를 조작하자는 말씀이십니까?”
“조작이 아닙니다. 이대로 나가면 국가의 위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완전히 제하진 않더라도 도움을 준 정도로 하고 료코 장관과 정부가 주도적으로 해결한 걸로 방향을 수정해야 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국가의 무능력을 제 입으로 알리는 꼴입니다.”
“저도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토야마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총리로 부임한 지는 아직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으나.
토야마는 이런 회의를 할 때마다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해왔었다.
‘지원마저 늦추게 하더니… 감사하는 마음조차 없는 건가.’
물론 보고서를 봤을 때 지원의 속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리 많은 병력이 빠르게 갔다 해도 훗카이도가 날아가는 건 피할 수 없었다.
무기왕이란 헌터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말이다.
‘보고서마저 건드렸다간 정말 료코를 볼 낯이 안 남아나겠지.’
마음을 정한 토야마가 입을 열려는 순간.
벌컥.
문이 열리며 보좌관 한 명이 달려 들어왔다.
“회의 중이신데 죄송합니다! 뉴… 뉴스를!”
다급해 보이는 모습에 토야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삑.
회의실 중앙 모니터로 긴급 속보가 띄워졌다.
“료… 료코 장관!?”
모여있던 관리들의 얼굴로 경악이 번졌다.
료코는 훗카이도에서 벌어질 뻔한 일에 대해 현지 언론과 인터뷰 중이었다.
오타루부터 오늘의 일까지 설명을 마친 료코에게.
언론사의 기자가 질문을 건넸다.
# 장관님! 그런 데몬의 공격을 막아냈다니… 훗카이도를 구해낸 건 누구입니까?
화면을 똑바로 응시하던 료코가 입을 열었다.
# 대한민국 국가직 소속 헌터입니다. 본명은 알지 못합니다만… 한국에선 그분을 무기왕이라고 부르더군요.
쾅!
인터뷰를 보던 관리들이 책상을 내리쳤다.
“당장 연락해서 인터뷰 멈추게 하고! 더 퍼지지 못하게…?”
흥분하는 관리들 앞으로.
총리의 손이 뻗어졌다.
“료코 장관이 올린 보고서 그대로. 각국에 보내세요. 성명 발표도 같은 내용으로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총…!”
“그만.”
토야마가 단호한 표정으로 관리들을 쳐다봤다.
“토씨 하나 틀린 것 없이, 그대로 보내세요. 긴급회의 마칩니다.”
* * *
딸깍… 딸깍.
CBC의 리포터 송유빈의 오피스텔.
송유빈이 턱을 괸 채로 영혼 없이 마우스를 클릭했다.
딸깍.
“음…!? 감히?”
영혼 하나 없던 얼굴로 전투력이 치솟기 시작했다.
# 무기왕 거품입니다. 국가에서 여론을 업고 영웅 만들기 하느라 치켜세우는 거예요.
타다다다다다다!
송유빈의 키보드가 불을 뿜었다.
여기저기 커뮤니티를 돌아다니고 있던 이유였다.
어딜 감히 욕할 사람이 없어 무기왕을 욕한단 말인가.
몇 번이나 한국을 위기에서 구했는데!
# 꼭 길 가던 중 어디에 걸려 넘어지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그 쓸데없이 텅 빈 머리통에 작은 자극이라도 갈 테니까요^^.
“킁!”
마지막 문장을 작성한 송유빈이 콧바람을 내뿜었다.
가소롭기 짝이 없는 놈이었다.
끼익.
의자에 몸을 기댄 송유빈이 천장을 바라봤다.
“하아… 무기왕님은 어디서 뭘 하고 계시려나.”
아직도 무기왕과 함께 했던 비행이 잊히지 않았다.
한여름 밤의 꿈을 꾼 것처럼 달콤하고 신비로운 시간이었다.
“또 만나….”
띠링.
띠링.
띠링.
미친 듯이 울리는 핸드폰에.
“응? 야밤 중에 어떤 개념 없는…!?”
한 바가지 욕을 하려던 송유빈의 눈이 커졌다.
후다닥!
다시 컴퓨터로 향한 송유빈이 문자로 온 일본 채널을 틀었다.
채널에서 인터뷰 중인 건 일본의 데몬 대응 장관으로 유명한 니시다 료코였다.
쉽게 믿기지 않는 상황에 대해 브리핑을 마친 료코의 입에서.
# 한국에선 그분을 무기왕이라고 부르더군요.
무기왕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 뭐야 지금? 무기왕이라고 말한 거야?
@ 아침이라서 잘못 들은 건가? 이상한 이름이 들렸는데.
@ 대한민국 국가직 소속 헌터에 무기왕이면… 우리가 아는 그 무기왕 아니야?
“헐.”
어리둥절 해하는 댓글창보다 한술 더 떠서.
송유빈의 몸이 석화빔을 맞은 것 마냥 굳어가기 시작했다.
저번엔 그리스 대통령 카풀라가 방송에 나와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더니.
이번엔 유능하기로 소문난 일본 장관이 똑같은 자세로 무기왕에게 감사하다 말하고 있었다.
@ 한국이랑 관련된 건 일단 부정하고 보는 일본이?
@ 저 료코라는 장관 엄청 유명한 사람인데…?
@ 실화냐구 이거…!!
“대박.”
아득한 기분에 송유빈이 이마를 짚었다.
온몸으로 소름이 돋으며 찌릿찌릿한 기분이 들었다.
“뭐야 대체.”
싱글.
무료함만 가득했던 송유빈의 얼굴로 바보 같은 함박웃음이 그려졌다.
“이거 완전….”
@ 무기왕! 무기왕!
@ 이게 대한민국의 헌터다 자식들아!!
불이 제대로 붙은 댓글창을 보며.
송유빈이 천장을 향해 두 팔을 쭉 뻗었다.
“글로벌 히어로 다 됐잖아!!”
* * *
“료코 님 곤란해진 거 아니에요?”
나란히 걷고 있는 료코를 바라봤다.
무언가 지침이 내려온 것 같지도 않은데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시원하게 인터뷰부터 갈겨버린 료코.
인터뷰를 마친 료코의 얼굴은 정말 홀가분해 보였었다.
“아니에요, 뭐가 됐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알려져야 하니까요. 국민도 어느 게 진실인지 알 권리가 있고요.”
대단하구먼.
작은 걱정조차 안 하는 료코에 고개가 내저어졌다.
자신이 올린 보고서를 두고 총리실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훤히 꿰뚫은 료코였다.
“그런데 료코 님 엄청 피곤하신 거 아닌가요? 아침부터 온종일 시달리시던데.”
고개를 돌린 료코가 묘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무슨 소리 하냐는 얼굴이었다.
“정말 백운 님은 뭐랄까요… 대단하세요.”
계속 걸음을 옮기며 제가요? 하는 표정을 짓자.
료코가 말을 이어갔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두 번째 날아간 도시를 보면서 아무리 백운 님이 강해도 저건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충분히 그럴 수 있죠.”
그럴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순간에 재가 되는 도시를 보며 나도 놀랐었으니까.
“그만큼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해내셨잖아요.”
“그… 그렇죠.”
“그런데도 정말 이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게… 별거 아니라는 듯 바로 다음 스텝으로 발을 뻗는 게. 정말 대단하고 경이로워요.”
“하하… 이거 참.”
뒷머리를 슥슥 긁적였다.
바로 옆에서 대놓고 찬사가 쏟아지니 낯이 뜨거워졌다.
“아, 거의 다 왔네요. 저곳입니다.”
료코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여기에 있었구만.
반환 요구를 하면서도 실존 여부를 100% 장담하지 못했던 유물들.
유물이 숨겨져 있는 장소는 훗카이도에서도 최고 구석탱이에 숨겨져 있었다.
- 유물관으로 바로 가시죠.
빨리 유물관 갔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정부에 보고를 올리고 인터뷰까지 마친 료코가 말을 건넨 것은 말이다.
불이 나고 있는 전화기마저 가방 깊숙한 곳으로 넣어버리며 날 유물관으로 데리고 와 준 료코.
“그런데… 정말 없어져도 괜찮나요?”
불안한 눈으로 다시 한번 질문을 건넸다.
료코에게 유물관에 가고 싶다고 말했을 당시.
내가 제시한 조건이 하나 더 있었다.
유물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
내 입으로 말하면서도 입술이 떨렸었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유물이 어디 소꿉장난감도 아니고 훔쳐도 되느냐 물어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어쩌겠어.
황금빛에다가 그게 무기 본체면 훅 사라져버릴 텐데.
그때 가서 황금빛 무기를 발견하고 없애버리는 것보다.
들어가기 전에 양해를 구하는 게 좋다는 판단이 들었다.
만약 료코가 아니라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면 국제 범죄자가 되는 한이 있어도 냅다 들고 날랐을 테지만 말이다.
- 그럼 제가 같이 가야겠네요.
내 질문에 료코는 안된다는 말 대신 함께 가자는 대답을 했었다.
뭐가 사라지든 자기가 책임져 줄 테니 걱정 말라는 대답이었다.
“백운 님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니 필요하다면 가져가세요.”
그 날과 다를 것 없는 대답을 하며 료코가 맑게 웃어 보였다.
“훗카이도와 수백만 국민을 구한 영웅께 유물 하나 못 드릴까 봐요.”
“하하….”
드드득.
료코의 말에 멋쩍게 웃고 있던 찰나.
도착한 유물관의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꼴깍.
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나도 모르게 마른침이 넘어갔다.
아마 임진왜란 이후 처음으로 유물과 마주하는 한국인일 터였다.
드득.
긴장한 상태로 문을 바라보고 있길 잠시.
완전히 열린 문 사이로 많은 유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번쩍.
선명히 보이는 빛 하나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그려졌다.
조으아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