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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46화 (246/473)

246화. 표식

“으음.”

안경은 안 쓰고 있으나.

스윽.

안경을 치켜올리는 척하며 앞에 놓인 화이트보드를 응시했다.

줄리아와 헤어진 이후로 줄곧 화이트보드 앞을 떠나지 않았었다.

여러 가지 가설을 세우고 화이트보드에 그려도 보며 시뮬레이션 해보는 중이었다.

“인적이 없을 때를 노려 박물관에 리볼버를 갈긴다.”

원하는 대로 박물관이 무너지긴 하겠으나.

굳이 내가 무기왕이다! 하며 광고할 필요는 없었다.

밤인 만큼 리볼버의 이펙트는 멀리까지 퍼질 테니까.

“삭제.”

촥촥!

경우의 수 1에 엑스표를 그으며 다음으로 넘어갔다.

“어디든 가서 데몬을 집어다 박물관에….”

짜악!

스스로 뺨을 올려쳤다.

나도 모르게 무기에 눈이 멀어 괴물이 될 뻔했다.

“삭제.”

풀썩.

두 번째 경우의 수를 삭제하며 바닥으로 드러누웠다.

아직 몇 개 더 남긴 했지만 다 고만고만한 놈들이었다.

박물관에 손해를 입히지 않고 가지고 나오는 게 가장 베스트겠지만.

내가 무슨 홍길동도 아니고.

불가능한 일이었다.

호텔에서 런던 박물관에 대해 검색해봤었다.

보안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 오!?

보안 관련된 정보다 보니 제대로 나온 게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상세한 내용이 박물관 홈페이지 떡하니 적혀있었다.

- 시벌.

쭉쭉 읽어내려가니 대놓고 적어 놓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 같은 놈한테 보여주기 위해 적어 놓은 것이었다.

보자마자 포기를 떠올리게끔 압도적인 철통보안을 자랑하면서 말이다.

숨겨진 게 더 많겠지.

밟으면 화살이 날아온다든가.

갑자기 군 대장급 능력자들이 들이닥친다던가.

“하아.”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깊은 한숨이 나왔다.

이러니저러니 하며 경우의 수를 그려봐도.

평범한 방법으로 저 보안을 뚫을 방법은 없었다.

“진짜 무너뜨려…?”

철썩.

다시 한번 뺨을 올려치며 고개를 저었다.

건틀릿 하나만 있으면 모를까.

건틀릿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수많은 유물 중 하나에 불과했다.

과거 유물관맨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데.

먹고 살려고 억지로 한 일이긴 했으나.

그렇다고 유물의 가치까지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냥 자연적으로 무너진다면 모를까 내 손으로 무너뜨리는 건 차마 못 할 것 같았다.

최대한 다른 유물에 피해를 주지 않는 방향으로 모색해야 했다.

“….”

벌떡!

잠시 생각을 하다 몸을 일으켰다.

“정했다.”

고개를 들어 호텔 천장을 바라봤다.

“천장만 뚫자.”

박물관이 문 닫기 전에 수리검을 안에 숨겨둔 후.

밤이 깊어 문이 닫히는 순간 비젼으로 이동, 건틀릿을 그대로 들고 칼데아로 천장을 뚫고 토낀다.

“훌륭하군.”

내가 가진 경우의 수 중 박물관에 가장 최소한의 피해를 주는 방법이었다.

카메라가 지천에 깔렸겠지만, 칼데아의 연기를 터뜨려 내부를 가득 채워놓고 시작한다면.

최악의 상황에 의심은 받되 증거를 남길 거 같진 않았다.

줄리아 님이 신고하는 건 아니겠지.

유일하게 범인이 나란 걸 알 만한 사람이었다.

줄리아 님, 믿습니다!

줄리아에게 들리지 않을 기도를 한 번 올리고.

문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산책이나 할 겸 런던 박물관을 조금 더 살펴볼 생각이었다.

혹시 알아.

박물관이 갑자기 무너질지.

“후후.”

그럼 냅다 집어와야지.

방법을 정했음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더러운 바람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머금어졌다.

띠리리리리리---!

끼이… 응?

문을 열려는 순간.

이사벨이 건넸던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 * *

“드락스 님, 직접 다녀오신 겁니까?”

초록색 머리를 늘어뜨린 사신, 리안나가 드락스를 바라봤다.

“궁금해서 갔다 와보았다.”

“역시… 죽은 건가요?”

드락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델라르를 이끌고 있는 드락스가 런던으로 내려간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느껴졌었기 때문이다.

휘하에 있던 사신 일곱 명의 기운이 사라진 것을 말이다.

“대체 누가…? 델라르에 합류하지 않은 다른 사신일까요?”

가장 합리적인 추측이었다.

리안나가 아는 한 사신을 볼 수 있는 건 같은 사신뿐이었다.

아니라면 존재를 인지조차 못 할 터였다.

“델라르에서 도망친 녀석일 수도 있겠군요.”

드락스가 델라르를 정복하는 날.

이런 이변을 눈치채고 쥐새끼처럼 빠져나간 사신들이 있었다.

드락스와 마찬가지로 먼 옛날부터 사신으로 존재해 온 장로였다.

“아니다.”

“네…?”

뜻밖의 대답에 리안나가 고개를 들었다.

“사신의 흔적은 없었다.”

드락스가 성당에서 본 광경을 떠올렸다.

사신이 한 짓이라면 흔적이 남아있을 테고 드락스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힘의 종류도 사신의 것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힘이었지.”

“사신이 아닌데… 사신을 본 것도 모자라 갑주까지 부쉈다니.”

리안나가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로 고개를 흔들었다.

런던에서 죽은 사신들이 그리 뛰어난 인원들은 아니었으나.

서로 싸우다 죽은 경우를 제외하곤, 이제까지 사신이 죽임당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드락스가 차가운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런던의 상공.

밝게 빛나고 있는 런던이 두 사람의 아래에 있었다.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고.”

드락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런던에 있던 녀석들이 강하든 아니든.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사신.

그들이 사신이란 게 중요했다.

“사신은 모든 것의 위에 서야 하는 존재다. 그런 존재를 죽인 대가는 치러야겠지.”

“드디어… 시작하는 건가요?”

“그래.”

드락스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뒤에서 드락스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수백의 사신들.

사신들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이제부터 일어날 일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흩어져 있는 사신들을 불러들여라.”

“예!”

명령을 받은 몇 명의 사신이 자리를 떠났다.

세계 각지에서 목숨을 거두며 힘을 모으고 있는 사신들.

이젠 때가 되었기에 한자리에 모여야 했다.

‘….’

드락스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넓은 땅이었다.

기존에 사신이 머물고 있는 땅과는 비교도 안 되는 크기였다.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드락스는 옛날부터 의문을 품었었다.

어째서 사신은 강한 힘을 가졌는데도 이런 좁은 곳에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말이다.

규율을 열심히 지킨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거나 감사해 하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오래 기다린 만큼, 너희도 오랫동안 그 혜택을 누렸을 테니.’

꽈악.

드락스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제 그만 자격이 있는, 가장 우월한 존재에게 넘기도록 해라.’

조용히 모아놓은 힘도 충분했다.

지금껏 드락스를 방해했던 사신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남은 건 곧 자유와 땅, 모든 걸 빼앗길 녀석들뿐이었으니.

‘모든 건 나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날 막을 수 있는 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드락스가 확신하며 옅은 미소를 그렸다.

“드락스 님.”

리안나의 부름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드락스가 입을 열었다.

사신들이 드락스의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작은.”

스윽.

드락스가 손을 들어 아래에 있는 런던을 가리켰다.

“런던이다.”

* * *

“끄아아아아!”

“사… 살려줘!”

“그만!! 제발 그마안!!”

뭐야 이거.

전화를 받고 간 성당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도착하자마자 들려오는 비명과 고통에 찬 울부짖음.

사방에서 수많은 사람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백운 님.”

현장을 살피고 있던 에밀리아가 내게 걸어왔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모르겠습니다.”

성당 쪽을 바라보며 에밀리아가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연락이 안 돼서 와봤을 땐 전부 이 상태였어요.”

저 너머에서 헌터들을 살피던 의사가 걸어왔다.

“외상은 전혀 없어. 정신계 능력에 당한 거 같아.”

의사가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반복해서 다양한 죽음을 경험하고 있는 거 같아. 처음엔 가슴에 칼이 찔렸다고 소리 지르더니, 다음엔 트럭이 덮쳐온다며 손으로 눈을 가렸어. 한 번만 겪어도 트라우마가 올 텐데 계속 반복하고 있으니 저런 비명이 나오는 거고.”

“수면제나 진통제는요?”

의사가 고개를 저었다.

“몸의 고통이 아니라서 안 먹히는 거 같아. 지금은 몸부림치다 다치는 일이 없게끔 하는 게 최선이야.”

다양한 죽음을 경험하다니.

처음 들어보는 능력이었다.

“사신이에요.”

“!?”

방법이 없는 상황에 모두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뒤에서 로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걸어와 쓰러져 있는 사람을 살피는 로인.

로인의 얼굴이 급속도로 어두워지고 있었다.

“거기다… 권능을 가진 사신입니다.”

“권능?”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의 시선이 로인에게 쏠렸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제부터 들어봐야겠지만.

로인의 심각한 표정과 권능이란 단어를 봤을 때, 이미 보통의 존재는 아닐 것 같았다.

왜 그놈이 생각나지.

권능이란 단어를 들으니 떠오르는 놈이 있었다.

한국에서 기태랑을 죽이려 했던 데몬, 로튼.

로튼 역시 스스로 권능이라 칭하는 힘이 있었다.

나한테는 안 통했지만… 위험한 힘인 건 부정할 수 없었지.

약간의 아찔함을 느끼며 말을 이으려는 로인을 바라봤다.

“누구에게 들은 건 아니지만, 사신으로 각성하며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로인이 아래에 있는 나뭇가지 하나를 가져왔다.

나뭇가지 바로 옆까지 선을 긋는 로인.

“사신은 죽을 운명인 사람의 목숨을 거두며 힘을 보존합니다. 보통은 이 경계를 기준으로 부족하지 않게, 혹은 더 넘어가지 않게끔 힘을 보존하죠.”

죽을 운명인 사람이 많아 평소보다 많이 거둔다 하더라도.

경계를 넘는 건 무척 힘든 일이라고 로인은 덧붙였다.

“경계를 넘으면 어떻게 되나요?”

“보존을 넘어 사신의 힘이 비약적으로 상승합니다. 이 상승이 특이점까지 도달했을 때 얻게 되는 게 권능이고요. 사신으로 각성하는 순간 모두가 인지하게 되는 사실입니다.”

조금 이해가 안 되는 구조였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도 힘에 욕심을 안 가지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 대부분 사신은 다 경계를 넘으려 하는 거 아닌가요?”

내 궁금증을 대신 질문해주는 에밀리아에.

로인이 고개를 저었다.

“권능의 존재와 함께 본능적으로 인지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한 차례 숨을 내쉰 로인이 말을 이었다.

“규율. 경계를 넘기 위해선 상상할 수 없는 수의 생명을 거두어야 하기에, 절대 경계를 넘으려 해선 안 된다는 것. 그리고 넘으려 했을 땐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 이것이 사신에게 각성과 함께 새겨지는 규율이자 두려움입니다.”

“규율이라면… 넘으면 원래 어떻게 되는 건데?”

이번 질문엔 로인이 고개를 저었다.

자신 또한 넘으려 한 적이 없기에 모른단 것이었다.

“단지, 먼 옛날부터 집단을 이루고 있는 사신이 규율을 감독하고 있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입니다.”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사신 다비드는 말했었다.

새로운 왕이 군림하며 규율이 깨졌다고 말이다.

“세계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죽음으로 권능을 얻었다…고 보면 될까요?”

에밀리아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던 로인이.

“!!!”

놀란 얼굴로 몸을 훽 일으켰다.

깜짝이야.

갑자기 일어난 로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왜… 왜 그래?”

“아…”

성당을 둘러본 로인의 얼굴로 낭패감이 물들었다.

“표식이… 새겨졌습니다.”

“!?”

“누구한테?”

꿀꺽.

마른침을 한 번 삼킨 로인이.

손을 들어 주변을 가리켰다.

“전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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