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47화 (247/473)

247화. 어디 가!

“뭐… 뭐요?”

로인의 말을 들은 모두가 말을 잃었다.

표식에 대해 여러 차례 이야기를 듣긴 했으나 실제로 본인에게 새겨진 적은 없으니.

머리로는 이해하되 실감은 못 하고 있던 개념이었다.

“저희가 전부 죽을 운명이란 건가요?”

에밀리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방금까지 다 멀쩡했는데 죽을 운명이라니.

쉽게 납득되지 않는 게 당연했다.

“네.”

스윽.

…?

에밀리아에게 대답한 로인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젠 어느 정도 그러려니 하면서도, 동시에 무척 의아스럽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딱 한 명을 제외하고요.”

오.

로인에게 쏠려있던 시선이 내게로 옮겨졌다.

의사의 눈엔 너는 왜…? 라는 의문이 섞여 있었으나.

이사벨과 에밀리아는 어느 정도 납득을 하는 눈치였다.

“흠.”

에밀리아가 고개를 숙이며 눈을 감았다.

죽을 운명이란 소리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는 모습이었다.

“죽음이 어떻게 실현될지는 모르는 건가요?”

로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에밀리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죽음이 어떻게 찾아올지 모른다는 건 한 가지를 의미했다.

정해진 시간까지 구체적인 대책을 세울 수 없다는 것.

“남은 시간은 동일하게 5일인가요?”

“원래는 5일 전부터 표식이 새겨지는데 이번엔 아닙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틀 남았어요.”

허.

이런 걸 설상가상이라고 하던가.

어쩜 이렇게 악재뿐인지 신기할 정도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움직여야 한다고 판단해서일까.

에밀리아가 로인을 바라봤다.

“로인 님은 저와 동행 부탁드릴게요. 여기 있는 사람들만 표식이 새겨진 건지 확인이 필요해요.”

로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에밀리아 쪽으로 걸어가고.

“백운 님.”

떠나려던 에밀리아가 날 불렀다.

불러놓고도 입술만 조금씩 움직일 뿐 에밀리아는 바로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내게 뭔가를 부탁하거나 해야 할 거 같긴 한데.

본인도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감이 안 잡히는 모양이었다.

“런던을 떠나지 않고 기다려 주실 수 있을까요?”

“네, 그럴게요.”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에밀리아가 말하지 않았어도 난 당장 런던을 뜰 생각이 없었다.

아직 손에 넣지 못한 건틀릿은 제쳐두더라도.

이틀 뒤 런던에 죽음을 선물하러 오는 건 사신 집단, 델라르일 게 분명했다.

어차피 찾아갈 생각이었으니까.

알아서 찾아와 준다니.

갚아야 하는 빚이 있는 만큼 누가 부탁하지 않아도 런던에서 놈들을 기다릴 생각이었다.

“이사벨은 백운 님과 함께 있어.”

“네… 네! 알겠습니다!”

우렁차게 대답하는 이사벨을 뒤로하고.

고개를 숙인 에밀리아가 로인과 함께 성당을 벗어났다.

“….”

멀어져 가는 에밀리아를 확인하고.

옆에서 불안한 얼굴로 서 있는 이사벨을 쳐다봤다.

“이사벨 님, 저희는 당장 할 건 없는 거죠? 대기하는 거 말곤.”

“네 맞아요. 일단 에밀리아 님이 각자 업무 분담을 해주실 텐데… 그때까진 기다려야 할 거 같아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다 넌지시 말을 건넸다.

“이사벨 님, 그럼 우리.”

“네…?”

스윽.

몸을 돌려 박물관 방향을 바라봤다.

“잠시 박물관 좀 갈까요?”

* * *

“전부… 라는 말씀이시죠?”

흔치 않은 일이었다.

에밀리아가 말하는 중간에 망설이는 것은 말이다.

“네.”

로인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꽈악.

느껴지는 아찔함에 에밀리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성당을 나와 걸으며 생각했던 최악의 상황이었다.

원래 런던에 거주하는 이부터 놀러 온 관광객들까지.

누구 하나 빠짐없이 죽음의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특정 사람이 아니라… 런던 전체였구나.’

에밀리아가 품에 있던 테블릿을 꺼내 들었다.

상황이 달라지며 스케일도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렸다.

더 이상 런던 인원으로 조사하고 말고 할 때가 아니었다.

‘어떻게 보고해야 하지.’

테블릿의 버튼을 누르기 전, 에밀리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직속상관을 시작으로 국가의 수뇌부까지 뻗어 나가야 하는 보고였다.

런던 헌터청 장관이야 에밀리아를 신뢰하기에 적극 지원해 주겠지만, 그 위는 아니었다.

런던이 위험하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해야 움직일 텐데.

지금 에밀리아가 가진 건 로인이 볼 수 있는 죽음의 표식뿐이었다.

스윽.

테블릿을 도로 집어넣은 에밀리아가 방향을 틀었다.

상관에게 직접 가 보고 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

에밀리아를 따라 걷던 로인이 걸음을 멈췄다.

“로인 님?”

“먼저 가세요, 전 나중에 따라가겠습니다.”

잠시 로인을 바라보던 에밀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본부에서 뵙겠습니다.”

“네.”

가볍게 목례를 건넨 에밀리아가 멀어지고.

로인이 갑주를 두르며 고개를 돌렸다.

바라보고 있는 곳엔 갑주를 두른 네 명의 사신이 있었다.

“델라르?”

“호오… 그 이름을 아는가.”

가장 나이 들어 보이는 사신이 흥미로운 듯 미소를 지었다.

“제대로 보셨네.”

“!!”

채앵!

로인이 낫을 꺼내며 입술을 깨물었다.

‘벌써 올 줄은.’

백운에 의해 표식의 운명이 달라진 적은 많지만.

그 외엔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당연히 이틀 뒤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빨리 나타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진정하게, 정확히는 델라르였던 늙은이니까.”

“…?”

“내 이름은 하만, 태초의 사신 중 한 명이자 델라르를 이끌었던 장로 중 한 명이라네.”

하만의 소개에 로인이 치켜들었던 낫을 내렸다.

나타난 이유는 모르겠지만 당장 싸울 생각은 없어 보였다.

“이름이 뭐지?”

“로인.”

하만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하만을 로인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다.

무슨 일로 찾아온 건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허허.”

한차례 웃어 보인 하만이 입을 열었다.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델라르에 속하지 않고 사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로인, 자네뿐만이 아니야.”

스륵.

하만이 손을 흔들자 허공으로 세계지도와 비슷한 홀로그램이 그려졌다.

지도의 곳곳엔 적지 않은 수의 반짝임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만이 손을 들어 반짝임을 가리켰다.

“단도직입적으로, 난 자네와 같은 사신들을 모으고 있는 중이고 말이야.”

“모으다니…?”

“규율을 지켜야 하는 델라르가, 규율을 깨부수는 걸 막기 위해서지.”

하만이 고개를 돌려 런던을 둘러봤다.

“마지막 기회야.”

로인이 설명이 필요하단 표정을 지었다.

“지금 델라르를 이끄는 건 드락스란 사신이야. 내 눈을 피해 규율을 어기며 힘을 쌓아온 자… 규율의 선을 정확히 이해하는 자였기에 아주 오랫동안 천천히… 힘을 쌓아 경계를 넘겨버렸어.”

하만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규율을 어기고 있다는 걸 눈치챘을 때까지만 해도 난 드락스를 막을 수 있었어. 단둘의 싸움이었다면 말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하만은 말했다.

80% 이상의 델라르 사신이 드락스에게 붙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날 따르던 이들이 대부분 죽었고, 난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지.”

“마지막 기회라는 건…?”

“드락스가 이곳에 있는 모든 목숨을 거둬 가는 순간, 드락스는 전혀 다른 경지에 오르게 될 거야.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거지.”

무언가 생각하던 로인이 하만의 눈을 응시했다.

공공의 적을 가지고 있는 듯했기에.

처음보단 하만에 대한 경계가 많이 누그러진 상태였다.

“드락스가 다녀간 곳에서 권능이 느껴졌습니다. 승산은 있는 싸움입니까?”

“많은 사신이 함께 싸우기 위해 런던으로 오고 있어. 그리고 내가 드락스와 마주할 기회만 만들어진다면.”

하만의 눈에 확신이 깃들었다.

“승산이 있네. 그러니.”

수염을 몇 번 쓰다듬은 하만이 로인에게 손을 뻗었다.

“함께 싸워줬으면 좋겠군.”

* * *

끼이익… 탁.

아이작의 건틀릿이 위치한 층의 화장실.

문을 닫으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침투 완료.

- 이사벨 님 먼저 나가 계세요! 갑자기 배가 아파서!

쉽지 않았어.

박물관을 가자는 말에 이사벨은 동공지진을 일으켰었다.

말로 하진 않았으나.

지금 시국에 박물관이라니요…? 라는 듯한 의문이 잔뜩 담겨있는 눈이었다.

- 전 큰일을 앞둘 때마다 위대한 사람들의 업적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거든요.

세상 비장한 얼굴로 거짓말을 술술 뱉어냈었다.

- 큰 싸움을 앞두고 있다 보니 그런 시간이 좀 필요해서요.

나의 비장함을 느껴서일까.

이사벨은 그렇군요! 하는 얼굴로 덩달아 비장해져 당장 가자며 걸음을 내디뎠었다.

휴, 혼자 들어올 수 있으면 편했을 텐데.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이사벨을 데려온 건 이유가 있었다.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였지만 박물관엔 아무나 들어올 수 없었다.

국가에 신분이 등록되어 있거나, 정식 절차를 밟아 관광 비자를 받거나, 아니면 보증된 신분을 가진 자와 동행해야 했다.

아까도 줄리아 님 아니었으면 구경도 못 할뻔했지.

[도윤 - 비젼 수리검]

수리검을 꺼내 제일 구석 화장실 칸에 집어넣었다.

조금만 참아줘, 도윤!

눈물을 머금고 문을 닫았다.

스스슥.

커다란 포스트잇과 싸인펜을 가져가 고장이라고 써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완벽해.”

일정범위를 벗어나면 비젼이 불가능했기에.

멀지 않은 곳에서 밤이 되고 조용해지기를 기다릴 생각이었다.

아일라 님이 없어서 다행이야.

건틀릿을 노려 박물관에 가려 한다는 속내를 들킬 뻔했다.

발각되는 순간 많은 사람에게 혐오를 당할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많은 사람이 이틀 뒤에 죽게 생겼는데 자기 욕심부터 챙기려 하냐고 말이다.

억울했을 거야.

나라고 아무리 무기를 원해도 싸이코패스는 아니었다.

당장 사신이 쳐들어왔고 건틀릿을 먼저 챙길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면.

당연히 사신 놈들부터 작살내고 건틀릿을 가져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거기다 강한 적과의 전투가 확정되어 있다면 그전까지 어떻게든 전력을 끌어올리는 게 현명한 선택이었다.

“암, 그렇고말고. 다들 몰라줬겠지. 이런 치밀하고도 논리적인 계산을 바탕으로 한 결정이었다는 걸.”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인슈타인이 말했었다.

천재는 고독한 법이라고.

저벅.

들어왔던 문으로 몸을 돌렸다.

이젠 밤을 기다릴 차례였다.

* * *

이거 이거…!

런던 박물관이 내려다보이는 지붕 위.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행운의 여신도 내 건틀릿 확보를 응원하는구만.

두어 시간 전.

박물관 앞으로 런던 헌터들이 도착했다.

도착하기 무섭게 주요 관광지에 있는 인원들을 전부 대피시키기 시작한 헌터들.

덕분에 지금 박물관 주변은 몹시 고요해져 있었다.

여전히 최소한의 보안은 있겠지만 말이다.

“좋아쓰.”

출발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가볼까. 비….”

지체 없이 비젼하려는 순간.

우우우웅…!!

응?

런던 상공으로.

반투명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우우우우…. 콰가아아아아아!!

불길한 소리가 들리길 잠시.

아래에 있던 건물들이 상공으로 빨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시벌…?

박물관도 예외는 아니었다.

잠시 저항하는가 싶더니 상공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솟구치는 박물관.

“어… 어디 가!! 내 박물관!”

물론 내 외침과 상관없이.

박물관은 수많은 유물과 함께 속절없이 빨려 올라가고 있었다.

“이 새끼들이…!”

하늘에 나타난 무언가를 노려봤다.

“어디서 도둑질이야!!”

[비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