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델라르의 섬
비전을 하기 무섭게.
쿵! 쿵! 우당탕!
“기아아아악!”
몸이 여기저기로 처박히기 시작했다.
산산조각이 나 하늘로 빨려 올라가고 있어선지 쉴 새 없이 요동치고 있는 화장실.
촤악!
정신없이 처박히는 얼굴로 물이 끼얹어졌다.
“구웨웨에엑!”
피부에 닿는 순간 엄청난 찝찝함이 느껴지는 물.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이 물의 출처가 어딘지 말이다.
화장실 말고 어디 창고에다 숨길걸!
누가 알았겠는가.
한밤중에 화장실이 날아오를 줄은.
조금만 버티자!
일단 밖으로 나가 칼데아를 꺼낼까 생각도 해봤지만,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런던 일정 범위에 있는 건물과 지반이 하늘로 빨려 올라가는 중이었다.
괜히 칼데아를 꺼내 밖으로 나갔다가 그 행렬에서 이탈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적어도 같은 장소에 떨어져야지.
분명 박물관 안에 있던 건틀릿도 어딘지 모를 곳으로 함께 빨려가고 있을 터.
다 작살난 잔해에서 찾아내긴 해야겠으나 일단 같은 공간으로는 이동해야 했다.
쿵! 쿵! 쿵! 촤악! 촤악!
그렇게 처박히고 물 처맞기를 잠시.
쿠웅!!
“끄억!”
어딘가에 도달한 건지 큰 진동이 느껴지며 화장실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트… 튼튼하네.
프라이버시한 일을 치르는 곳이라 그런 걸까.
이런 난리 통에도 부서지지 않는 화장실 칸에 새삼스레 감동이 느껴졌다.
“….”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채 위로 향해 있는 칸막이 문을 바라보다.
쾅.
발을 뻗어 문을 걷어찼다.
열린 문을 통해 새어 들어오는 바람.
어디지.
런던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바람 전문가는 아니지만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비전하기 전까지 맞고 있던 바람과 지금 불어오는 건 전혀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공간이 완전히 달라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텁.
밖으로 나가보기 위해 손을 뻗었다.
뚝… 뚝.
응?
뻗은 손으로 정체 모를 액체가 떨어지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끼얹어진 변기물과 비교해봐도 압도적으로 기분이 더러운 액체였다.
뭐야.
더 맞았다간 손이 녹아버릴 것 같은 감각에.
몸을 일으키며 칸막이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뚝… 뚝… 뚝.
“….”
손의 감각을 칭찬해주고 싶었다.
실제로 손에 떨어지고 있는 건 변기 물보다 몇 배는 더러운 액체였다.
뚝.
외계인처럼 기다란 대갈통을 가진 데몬이었다.
잘못된 턱주가리 구조 때문인지 쉴 새 없이 초록색 침을 흘리고 있는 녀석.
녀석도 갑자기 등장한 나를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크르….”
“시발!”
빠아악!
데몬이 울음소리를 다 흘리기도 전에 주먹을 뻗었다.
쿵.
처맞은 뒤 그대로 널브러지는 침 데몬 녀석.
호다닥.
그대로 녀석한테 올라타 파운딩을 갈겼다.
“침을!”
빠악!
“어디다!”
빠악!
“어디다 흘려!”
빠아악!
땅에 처박힌 데몬을 잠시 바라보다.
“후우!”
수리검을 집어넣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까 느꼈던 대로 런던이 아니었다.
사방이 스산한 공기와 어둠으로 채워진 공간이었다.
아주 다 작살이 났네.
공간 안엔 조금 전 빨려 들어온 런던의 잔해가 가득 쌓여 있었다.
대부분 산산조각 나고 부서진 상태라 무슨 건물이었는지조차 가늠하기가 힘든 지경이었다.
사신 놈들인가.
당장 떠오르는 건 델라르 뿐이었다.
런던을 공격해 올 거란 건 알았지만 시작부터 이런 스케일이라니.
생각보다 더 거침없는 놈들인 것 같았다.
거기다.
“키르르르…!”
“크라아!”
조금 전 동족이 처맞아서일까.
잔해 곳곳에서 엄청난 크기의 데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더럽게 크네.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거대한 덩치였다.
웬만해선 찾아보기도 힘들 정도의 크기로 한 마리 한 마리가 웬만한 건물 하나와 맞먹고 있었다.
누가 키우기라도 한 건가.
어떻게 된 게 다 크네.
한 가지 종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양한 생김새를 가지고 다가오고 있는 녀석들.
S급까진 아니더라도 A급 정도 되어 보이는 개체도 꽤 있었다.
취미 참.
누군진 몰라도 꽤 나쁜 취미를 가진 것 같았다.
이런 보기 안 좋은 놈들을 한곳에 모아놓을 생각을 하다니.
“크라아아아아!”
가장 앞에 있는 데몬이 큰 소리로 울부짖자.
쿵!! 쿵!!
잔해에서 나타났던 놈들이 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녀석들이 발을 내디딜 때마다 요동치는 땅의 진동이 느껴졌다.
아마 날 먹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저렇게 침을 질질 흘려가며 앞다투어 달려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사사키 코지로 - 스이카]
[이카로스 - 칼데아 윙]
뚜둑.
스이카와 칼데아를 꺼내고 몸을 풀었다.
여기가 어디인지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얼른 끝내자.”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은 하나.
잔해 어딘가에 파묻혀 있을 건틀릿을 찾는 것뿐이었다.
“바쁘니까.”
[발도]
끼아아아아아아악---!
* * *
“이… 이런….”
에밀리아가 믿기지 않는 광경에 눈을 찌푸렸다.
콰아아아아아--!
마치 하늘로 문이 열린 느낌이었다.
아래에 있는 모든 걸 빨아들이는, 흡사 진공청소기를 떠올리게 하는 문이었다.
‘죽을 운명이 하루 뒤고… 시작은 더 빠르단 건가.’
그나마 다행이라면 지금 빨려 올라가고 있는 곳에 남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에밀리아의 보고를 받은 런던 헌터청이 먼저 나서 시내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켰기 때문이다.
보안이 필요한 장소에도 인공지능 병력만을 남겨뒀기에 인명피해는 없을 터였다.
아직까진 말이다.
‘점점 넓어지고 있어.’
아래에 있던 대부분 건물을 빨아들였음에도.
하늘에 열린 문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점점 범위를 넓혀가며 더 많은 것들을 집어삼키고 있는 상태.
어디까지 커지는 건진 몰라도 이대로라면 런던 전체가 사라질지도 몰랐다.
“에밀리아 님!”
이사벨이 무장한 헌터들과 함께 에밀리아에게 달려왔다.
“지금 가용한 인원은 이게 전부에요. 나머지는 런던 곳곳에 배치돼서 대피를 돕고 있어요.”
“정부의 지원은 언제쯤 오는 거야?”
“바로 출발했다고 연락이 왔어요. 얼마 안 걸릴 거예요.”
고개를 끄덕인 에밀리아가 두리번거리더니 이사벨을 쳐다봤다.
“백운 님은?”
“그게… 지금 어디에 계신지 모르겠어요.”
이사벨이 난처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연락도 안 되고?”
“네… 걱정되는 건.”
고개를 돌린 이사벨이 하늘로 향하고 있는 건물들을 바라봤다.
“마지막으로 만난 게 런던 박물관이었거든요. 잠시 볼 일이 있다고 하셨어요.”
“…!!”
에밀리아도 이사벨이 바라보고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백운의 볼 일이 뭔지는 몰라도.
만약 저 장소에 있었다면 문으로 함께 휩쓸려 올라갔을 가능성이 높았다.
‘….’
에밀리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일반인이라면 휩쓸리는 것만으로도 죽었겠지만, 백운은 아니었다.
로인의 표식에서도 자유로웠던 백운이기에 지금 당장 걱정해야 하는 건 런던이었다.
휙휙.
고개를 흔든 에밀리아가 몸을 돌렸다.
“움직이자.”
“네!”
이사벨을 포함한 헌터들을 이끌고.
에밀리아가 박물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건 대체… 어디로 향하는 거야.’
지금 당장 하늘에 문이 열린 목적은 알 수 없었다.
단순히 런던을 빨아들여 파괴하려는 건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지조차 말이다.
하지만 에밀리아는 한 가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시작은 분명 저 문의 주변일 것이란 확신을 말이다.
그리고.
‘….’
애써 외면하려는 중이었으나 에밀리아는 불안함을 느끼는 중이었다.
직접 봤던 강함이 아니더라도 백운은 로인의 표식에서 벗어난 유일한 사람이었다.
런던의 모든 이가 다 죽어도 유일하게 살아남을 운명이었던 백운.
그런 백운의 부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결과가 되어 눈앞에 실현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저벅.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안갯속.
어둠을 밝히던 한 줄기의 빛조차 잃어버린 채 에밀리아가 안갯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 * *
“진짜 더럽게 많네.”
휙!
검에서 끈적한 피를 털어내고.
꺼냈던 스이카와 칼데아를 집어넣었다.
투두둑.
하늘에서 떨어지는 놈들을 마지막으로.
공간에 있던 데몬들은 모두 정리가 끝났다.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숫자였다.
아비규환이구만.
주변을 둘러보고 있자니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들 잔해만 있어도 찾기가 빡셌을 텐데.
이젠 데몬 놈들의 시체까지 버무려져 난이도가 훨씬 올라가 버렸다.
“….”
사신쉨!
이제부터 개고생할 생각을 하고 있자니.
사태를 벌인 델라르 놈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짜고짜 공격을 갈긴 것만 해도 무기징역감인데 이런 고난까지 안겨주다니.
오도독.
어금니를 깨물며 숨을 골랐다.
원래는 무기징역이었지만 이젠 아니었다.
“무조건 사형.”
만나는 순간 개작살 내리라 다짐하며.
막막한 심정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일단 박물관 비슷한 거라도 찾아볼 생각이었다.
빨려 올라오며 한데 뒤섞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 언저리 어딘가에 있을 확률이 높았으니까.
내가 부수거나 한 건 아니겠지.
조금 전 데몬들을 리볼버로 갈겨버리거나 라의 불꽃으로 한방에 불태워버리면 훨씬 편했겠지만.
인내하며 팔이 빠져라 열심히 스이카를 휘두른 이유였다.
혹시나 너무 강한 화력에 건틀릿이 박살 나기라도 한다면.
나도 사형.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안되지 안돼.
절대 안 될 말이지.
무기의 중요성을 떠나서라도 결코 짧지 않은 길이었다.
일본서부터 런던까지 열심히 날아오고 수영하고, 이마에 총이 겨눠졌다가 교통사고까지 나고.
엄한 곳에서 로인을 만나 사신 놈들을 두드린 것은 물론 소설을 통해 줄리아를 찾아내기까지.
빨려오며 변기 물을 쳐맞은 건 덤이었다.
아직까지 구린내가 나는 듯한 느낌.
설마 여기 빨려오면서 부서진 건 아니겠지…?
질끈.
아찔한 생각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건틀릿이 금속 모형과 강화 유리 안에 보관된 점이었다.
아무리 여기저기 부딪히고 데몬이 밟았다고 한들 모형까지 부서질 가능성은 낮았다.
제발!
간절히 기도하며 얼마나 걸었을까.
반짝.
!?
건물과 데몬이 한데 뒤섞인 잔해 속.
빛을 반사하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호다다닥!
빠르게 달려가 잔해물들을 쳐냈다.
사사삭!
홀리… 파더.
약간 이물질이 묻긴 했으나.
조금의 구겨짐도 없이 멀쩡한 건틀릿 모형.
새삼스럽게 모형을 만들어 준 장인에게 감사한 마음이 드는 순간이었다.
[도윤 - 비전 수리검]
톡! 톡!
수리검을 꺼낸 뒤 호두 까듯이 조심스럽게 모형을 두드렸다.
꼴깍.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바로 불태운다.
만약 모형 안에 있는 건틀릿에서 빛이 나지 않는 순간.
바로 불의 각인을 새기고 공간 자체를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톡… 뽀각!
“!!”
두드린 곳을 시작으로 균열이 번져나갔다.
그리고.
“….”
갈라진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황금색 빛에.
입가로 미소가 그려졌다.
“나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