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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49화 (249/473)

249화. 아이작 뉴턴의 공간

박물관에서 건틀릿 모형을 보며 꽤 크다고 생각했었는데.

안에서 나온 본체 역시 크기가 상당했다.

뭐로 만든 거지.

일반적인 광석은 아닌 것 같았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영롱한 빛을 잃지 않은 건틀릿.

흑색과 청색이 섞인, 갓 해가 떠오르는 어스름한 새벽 느낌을 주는 빛이었다.

악마의 손… 같은 느낌이랄까.

손가락 끝부분은 날카롭게 만들어졌으며 손등 부분엔 복잡한 회로가 그려져 있었다.

선을 따라 희미한 빛이 흐르는 걸 보아 회로 역시 폼으로 그려진 건 아닌 듯했다.

“….”

잠시 건틀릿을 바라보다 손을 뻗었다.

생김새 구경은 끝냈으니 나머지 궁금한 건 들어가서 물어볼 생각이었다.

화아아악…!

손을 대기 무섭게 주변으로 빛이 번져나갔다.

무기를 얻을 때마다 마주하는 순간이지만 뭐랄까.

이제 곧 새로운 무기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항상 두근대는 순간이었다.

사아아.

빛이 옅어지나 싶더니 공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무언가 보이기 전에 먼저 느껴진 건 냄새였다.

오래된 듯한 나무 냄새.

그렇다고 역하거나 맡기 불편한 냄새는 아니었다.

오히려 왠지 모를 정겨움이 느껴지는 냄새였다.

나무로 만들어진 건가.

천천히 만들어지는 공간을 둘러봤다.

일부러 색깔을 맞춘 건지 사방이 연갈색 나무로 만들어진 방이었다.

연구실이구나.

나무로 만들어진 선반 위엔 각종 실험 도구와 책들이 놓여있는 것은 물론.

바닥으론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종이가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복잡한 식이 적혀 있는 걸로 보아 무언가를 계산하는데 사용한 느낌이었다.

스으으…!

서서히 옅어지던 빛이 완전히 사라지자.

연구실 중앙으로 커다란 책상이 나타났다.

….

지금까지 눈에 보인 건 가구들과 어지럽혀진 도구들뿐이었으나.

이젠 아니었다.

슥슥.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끄적거리고 있는 작은 체구의 남자.

내 눈에 들어오는 건 뒤통수뿐이고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너무 익숙한 백발 더벅머리였다.

씨익.

나도 모르는 사이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탁.

내가 왔다는 걸 느껴서일까.

집중해서 무언가를 써 내려가던 녀석이 펜을 내려놨다.

“내가 말했었지.”

뒤이어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은 내 쪽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 말을 건네고 있는 더벅머리.

“너라면 또 만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든다고.”

건네어진 말이 공기로 완전히 흩어질 때쯤.

빙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이자 르네상스 마지막 연금술사인 아이작 뉴턴이.

내게 몸을 돌리며 얼굴 한가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서 와, 친구.”

* * *

후릅.

“오…?”

“어때? 내 황금 비율의 커피가.”

아이작의 물음에 엄지를 치켜세웠다.

과연 황금 비율이라 부를만했다.

나름 여기저기 다니며 많은 커피를 마셨었는데.

이렇게 구수함과 달콤함의 조화가 완벽한 커피는 처음이었다.

“뭐 하고 있었어?”

내가 오기 전 아이작이 열심히 적던 책상을 바라봤다.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위대한 과학자이자 연금술사인 아이작 뉴턴.

그런 아이작이 몹시 열중했던 만큼 분명 엄청난 걸 하고 있었을 게 분명했다.

“아 저거.”

손을 뻗은 아이작이 책상에 있던 종이를 내게 내밀었다.

“오오!”

일단 탄성을 내뱉고 봤으나.

복잡한 계산식과 영어가 적혀 있는 만큼 수포자인 내가 알아볼 순 없었… 응?

# 커피3, 프림2, 설탕2.

# 환상의 3:2:2 비율.

익숙한 단어에 조금 더 들여보니.

아이작이 하고 있던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스윽.

고개를 돌려 아이작을 바라봤다.

종이를 보여주며 뿌듯하게 웃고 있는 아이작.

아이작은 계산에 의한 결과물이 몹시 흡족한 모양이었다.

“뭐랄까, 약간 김빠지는 느낌이랄까. 우주 괴수 상대용 도구라도 만드는 줄 알았거든.”

“응? 그런 걸 왜 만들어, 귀찮게.”

내 손에서 종이를 다시 가져가 주머니로 소중히 챙겨 넣는 아이작.

톡톡.

사랑스럽다는 듯 몇 번 주머니를 두드린 아이작이 내게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잘 찾아왔네. 장갑 찾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쉽지 않았지.

거쳐온 과정을 설명하는 대신.

힘들었다는 의미로 눈을 질끈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날 폭삭 젖게 만든 게 화장실 물이란 건 굳이 말하지 않았다.

“어떻게 찾은 거야?”

원래도 호기심이 많아서일까.

아이작이 눈을 반짝이며 물어왔다.

여러 가지 과정이 있었으나 말해 줄 필요가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줄리아 님이 알려줬어.”

“…!”

가장 소중한 사람의 이름을 들어서일까.

아이작의 눈이 커졌다.

“줄리아가… 살아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런던 도착 후 줄리아를 만나기까지의 이야기를 해줬다.

“소설이라고?”

아이작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줄리아는 글 못 쓰는데.”

“….”

약간 감동을 깨는 말을 못 들은 척하고.

줄리아는 아이작을 기리고 있는 사원 앞에서 살고 있다는 걸 마저 이야기했다.

“… 외로워하거나 그러진 않았어?”

“전혀! 엄청 좋아 보였어. 줄리아 님도 말했었거든, 널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며 정말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다행이네.”

줄리아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작.

그런 아이작을 잠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망자의 세계 이후에 어떻게 된 거야?”

조금 전 만났을 때부터 궁금했다.

아이작은 악귀참도에 닿으며 망자의 세계에서 사라졌었다.

잠깐 쫄았었지.

뒤돌아있는 더벅머리를 보며 반가움을 느낌과 동시에, 약간 떨렸었다.

혹시나 아이작이 날 기억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해서였다.

같은 생김새지만 망자의 세계에서 사라졌던 만큼 다른 아이작 뉴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아 그때.”

그날을 떠올리려는 건지 허공을 바라보며 턱을 슥슥 문지르는 아이작.

“신기한 감각이었어. 빛이 되어 몸이 흩어지는 느낌이랄까? 그게 가장 먼저 났었고, 그다음엔 빛이 된 내 몸이 어딘가로 움직이기 시작했거든. 뭐랄까… 가야 할 곳으로 인도받는 느낌이랄까.”

끼익.

의자로 몸을 기댄 아이작이 연구실을 둘러봤다.

“눈을 떴을 땐 이곳이었어. 내가 살면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던 친숙한 공간이지.”

“오… 신기하구만.”

“처음엔 어째서 여기로 보내진 건지 몰랐었는데. 조금 있다 보니까 본능적으로 알겠더라고. 내가 완전히 소멸하는 대신 이곳으로 인도된 이유.”

“이유?!”

약간 뜸을 들이는 아이작에 눈을 반짝였다.

대체 무슨 원대한 이유가 있기에 망자의 세계에서 이곳으로 옮겨진 걸까.

스윽.

아이작이 내 두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기다리는 것.”

“응?”

뜬금없는 말에 되물었으나.

아이작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죽음과 망자만이 가득한 세계에서 날 구해 준 친구이자, 모든 것의 위에 군림하는 왕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아이작의 입가로 미소가 그려졌다.

“그게 내가 소멸되지 않고 이곳으로 오게 된 이유야.”

* * *

처음 도착한 연구실의 지하.

아이작은 따라오라고 말하더니 연구실 바닥에 손을 짚었고.

- 파지직!

망자의 세계에서 봤던 스파크가 일더니 연구실 바닥이 반으로 갈라지며 계단이 나타났었다.

계단을 쭉 내려오자 드러난 공간에 입이 벌어졌다.

“비밀기지야 뭐야.”

연구실이 온통 나무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지하실은 온통 고급스러워 보이는 대리석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여기에 돈을 다 썼구먼.

연구실을 보며 당대 최고 과학자인 것 치곤 검소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하실을 만드느라 돈을 다 쏟아부은 것 같았다.

“비슷해, 내 비밀 연구소거든. 나랑 줄리아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야.”

“여… 영광입니다…!”

아이작 뉴턴의 비밀 연구소 두 번째 방문객이라니.

나도 모르게 감격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저벅.

한쪽 바닥 위로 걸어간 아이작이 걸음을 멈추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복잡한 회로가 새겨진 대리석 위였다.

아까 봤던 거랑 비슷하네.

공명이 일어나기 전 장갑의 손등 위에 그려져 있던 회로와 비슷한 모양이었다.

“연금술을 연구하던 곳이야. 내가 살던 시대에 연금술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어서 몰래 해야만 했거든.”

고개를 끄덕이며 지하실을 둘러봤다.

생각하던 거랑은 좀 다르네.

대략적이지만 책에서 연금술에 대해 읽은 적이 있었다.

연금술이란 멋들어진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실제론 납이나 구리를 금으로 만들기 위한 화학 실험이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아이작의 지하실엔 화학 도구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연금술의 재료로 쓰였을 거라 여겨지는 다양한 광물과 잡동사니가 전부였다.

“네가 알고 연금술은 화학 실험이지?”

오 씨.

다시 한번 독심술을 의심케 하는 질문.

망자의 세계 때와 마찬가지로 날카로운 녀석이었다.

“화학 실험을 기조로 했던 연금술은 네가 알다시피 모두 실패했어. 납과 구리는 결코 금으로 변하지 않았거든.”

스윽.

몸을 굽힌 아이작이 바닥을 어루만졌다.

“애초에 접근부터 잘못됐던 거지. 납과 구리 같은 낮은 가치의 광물로 높은 가치의 금을 얻고자 했으니까.”

“저번에 말했던 등가교환의 법칙이구먼.”

“맞아. 연금술에 있어선 절대적인 법칙이야. 최소한 금과 동등한 가치를 가진 걸로 실험을 했어야 하는 거지.”

사삭.

아이작의 옆으로 가 쭈그리고 앉았다.

- 파지직.

아래에 그려진 기묘한 회로와 아이작이 행했던 연금술을 떠올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동등한 가치로 화학 실험을 했어도 금은 못 만들었겠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작.

아이작이 했던 건 화학 실험 같은 게 아니었다.

아이작은 망자의 세계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붉은 스파크를 뿜어냈었다.

당시엔 장갑도 없었으니, 이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뿐이었다.

“연금술은 아이작, 네 고유한 능력이구나.”

조용히 듣고 있던 아이작의 입가로 미소가 그려졌다.

내 말이 맞다는 암묵적인 동의를 알리는 미소였다.

역시 난 똑똑해!

흡족스럽게 웃고 있자 아이작이 회로를 따라 손을 움직였다.

“장갑은 증폭을 해주는 역할이지 연금술이 가능하게 해주는 건 아니야.”

장갑 이야기를 하니 아까 봤던 낯선 광택이 떠올랐다.

어스름한 새벽을 떠올리게 하는 광택.

들어가서 물어봐야지 했던 것이다.

“장갑은 뭘로 만든 거야? 철이나 그런 건 아닌 거 같던데.”

“아 그거!”

기대에 찬 얼굴로 아이작의 설명을 기다렸다.

“나도 모르는데.”

“….”

특유의 엉뚱함과 태연함을 뽐내며 말한 아이작이.

스윽.

손가락 하나를 펼쳐 하늘을 가리켰다.

“위에서 온 거거든.”

“위…?”

꿀멍한 표정으로 있자.

쭈그려 앉아있던 아이작이 몸을 일으켰다.

“가자.”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아이작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여줄게, 장갑을 만든 광석을 얻었을 때와.”

아이작이 하늘로 손을 들어 올렸다.

“내가 연금술을 사용하게 된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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