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50화 (250/473)

250화. 존재의 정체

아이작이 손을 들어 올리자 황금빛이 주변을 감쌌다.

오…?

빛에 의해 변하고 있는 건 공간뿐만이 아니었다.

공간의 중심에 서 있던 나와 아이작의 몸 역시 입자로 흩어지며 빛 일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신기한 감각이네.

고개를 내려 손을 바라봤다.

빛에 흡수되고 있음에도 몸이 부서지거나 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저 빛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 속하기 위해, 내 몸이 잠시 빛으로 변환되는 느낌이었다.

“망자의 세계에서도 비슷한 감각이었어.”

아까 아이작의 말을 들으며 빛으로 흩어진다는 게 어떤 건지 내심 궁금했는데.

이렇게 빨리 궁금증이 풀리게 될 줄은 몰랐다.

스윽.

온몸이 빛으로 사라지기 전.

아이작이 내게 고개를 돌렸다.

“무서운 건 아니지?”

“에이, 사람을 뭐로 보고.”

솔직히 다른 곳에서 이런 상황에 빠졌다면 무서웠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일이 일어나는 장소는 나의 공간이었다.

나의 공간에서 내가 피해 입을 일은 절대….

이… 있나?

불현듯 유탈라스를 처음 만났을 때 폭삭 젖었던 일과 일본 유물관에서 투구를 만진 후 해일에 휩쓸릴 뻔했던 게 떠올랐다.

호달달.

쫄보의 동공지진을 눈치채서일까.

아이작이 역시 재밌는 친구네라는 듯한 미소를 그려 보였다.

“겁먹을 필요 없어. 잠시 과거의 내가….”

사아아…!

시야가 빛으로 가려지고.

흐릿해진 아이작의 마지막 말이 들려왔다.

“되어보는 것뿐이니까.”

* * *

똑… 똑… 똑.

얼굴로 떨어지는 차가운 물방울에.

스륵.

천천히 눈을 떴다.

‘또 여기서 잠든 건가.’

아이작이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아무렇게나 구겨져 잠든 탓인지 안 그래도 억센 더벅머리는 난리가 나 있었다.

“으음.”

대충 머리를 정리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구석에 두툼하게 쌓여 있는 볏짚과 농기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 네 마음대로 사용하거라, 아이작.

원래는 농사에 사용되는 여러 기구와 보관이 필요한 작물들이 놓이는 마구간이지만.

농부인 아버지가 호기심 많은 아이작을 위해 공간을 마련해준 것이었다.

“어디까지 했었지.”

엉금엉금 기어 마구간의 중앙으로 움직였다.

아버지의 손길이 닿아 정리정돈이 잘된 구석과는 달리.

아이작에게 주어진 마구간 중앙은 엉망진창으로 어지럽혀져 있었다.

난리가 난 더벅머리도 한 수 접어 줄 정도로 말이다.

슥슥.

잠에서 깨며 어제 하던 일을 간신히 떠올린 뒤.

작은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 준비해뒀던 유리 렌즈를 두 개의 받침대 위로 끼워 넣었다.

- 그게 도대체 왜 궁금하니?

오래 살아온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며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었다.

또래 친구나 어른 할 것 없이 아이작을 보는 사람들은 미간을 찌푸리기 일쑤였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왜 궁금하냐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질문을 들을 때마다 아이작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었다.

그리고, 오히려 되묻고 싶었다.

‘당신은 어떻게 이것들이 하나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있나요?’

물론 실제로 되물은 적은 없었다.

어린 나이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걸 물어봐야 원하는 대답은 나오지 않을 것이며 저들은 더 화낼 것이란 걸 말이다.

탁.

조립을 마친 아이작이 작은 몸을 일으켜 마구간의 창문을 열었다.

아주 미세하게 열어서 최소한의 빛줄기만을 들어오게 해야 했다.

끼이익.

섬세한 손놀림으로 창문을 열자.

원했던 만큼의 옅은 빛줄기가 미리 자리 잡아둔 유리 렌즈로 쏘아졌다.

렌즈를 지난 빛줄기가 무지개 색깔로 갈라져 퍼졌다.

싱긋.

아이작이 예상대로라는 듯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벅.

이제 내려가 갈라진 빛을 다시 모아보려는 순간.

“예상대로네.”

“!!”

또래로 보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작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어야 하는 마구간이었다.

집도 마을에서 동떨어져 있는 만큼 또래 아이가 있을 리도 없었다.

“누구야?”

아이작이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며 눈을 찌푸렸다.

‘뭐지?’

당장 알 수 있는 게 한 가지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었다.

아이작과 비슷한 덩치의 형체.

형체는 있으나 생김새는 없는, 마치 조금 전 창문으로 들어온 백색 빛줄기 같은 존재였다.

“나?”

되물은 존재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대답을 이어갔다.

“뉴턴.”

“그건 내 이름이잖아.”

“그냥 대충 그렇게 불러.”

귀찮다는 듯 아무렇게나 대답한 자칭 뉴턴이 고개를 돌렸다.

뉴턴의 시선은 조금 전 아이작이 조립하던 렌즈로 향해있었다.

“빛은 어째서 무지개색으로 갈라지는 걸까?”

렌즈를 향해 한 걸음 더 내딛는 뉴턴.

흥미롭다는 목소리로 뉴턴이 또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갈라진 빛은 어떻게 다시 백색 빛으로 합쳐지는 걸까?”

“….”

아이작이 갑작스럽게 등장한 존재를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

저벅.

렌즈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 생각에는….”

아이작 뉴턴과 스스로를 뉴턴이라 부르라는 미지의 존재.

둘의 기묘한 첫 만남은 어린 시절 마구간에서 이루어졌다.

* * *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된 아이작.

대학교 내에 있는 정원으로 걸어온 아이작이 지체없이 몸을 눕혔다.

“하아!”

한숨을 내쉰 아이작이 두 눈을 감았다.

‘지루해.’

케임브렛 대학교.

영국에 위치한 초일류 대학교라 큰 기대를 안고 입학했건만.

하나같이 지루하고 따분한 수업뿐이었다.

이미 밝혀진 이론과 법칙에 대해 반복 학습할 뿐인 수업.

수업 중에 궁금한 게 있어 질문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 그게 도대체 왜 궁금하니?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 하나 없는 대답이었다.

‘더 나빠졌나.’

생각해보니 그때보다 지금이 더 최악인 것 같았다.

- 아이작 학생, 자네가 뛰어나고 유능한 건 인정하네만.

이 말을 시작으로.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이 세우고 증명한 것들에 대해 반박하는 건 위인에 대한 겸손과 존중이 매우 부족한 행동이라는 설교가 한참 이어졌었다.

“오늘도 혼난 거야?”

“응, 존중이 부족하대.”

자칭 뉴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구간에서의 만남을 시작으로 오랜 시간 동안 아이작과 함께해온 존재였다.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였기에.

아이작과 뉴턴은 단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은 채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눠왔었다.

“위에 조심해.”

“뭘 조심….”

퍽!

“끄아…!”

이마로 느껴지는 고통에 아이작이 몸을 일으켰다.

“조심하랬잖아.”

이마를 슥슥 문지르며 감았던 눈을 떴다.

아이작이 누워있는 곳은 대학교 정원에 있는 사과나무 아래였다.

인적이 드물어 대학교 안에서도 마음 편히 뉴턴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소였다.

‘사과네.’

이마에 부딪힌 건 사과였다.

아이작의 이마를 강타한 후 약간 떨어진 곳으로 굴러가고 있는 사과.

“….”

조용히 사과를 바라보던 뉴턴이 입을 열었다.

“사과는 왜 떨어지는 걸까?”

뉴턴의 질문을 들으며 아이작이 굴러가던 사과를 집어 들었다.

익숙한 패턴이었다.

뉴턴은 항상 질문했으며, 아이작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었다.

“왜 떨어진다…라.”

아이작이 눈을 가늘게 뜨며 질문을 곱씹었다.

자주 왔던 만큼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본 건 처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과는 어째서 아래로 떨어지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

조금 전까지만 따분해 죽을 것 같던 아이작의 입가로.

흥미 가득한 미소가 그려졌다.

“재밌겠는데.”

* * *

탁.

아이작이 펜을 내려놓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 사과는 왜 떨어지는 걸까?

뉴턴의 말을 들은 이후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이작은 대학교 수업까지 모두 빠지며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시간을 보냈다.

끼익.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자.

상쾌한 새벽 공기가 불어와 아이작의 뺨을 스쳤다.

“하아.”

시원한 공기를 느끼며 아이작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런던의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한 연구실.

올라오기가 힘들어 모두가 꺼리는 장소지만, 아이작은 이곳이 좋았다.

반짝.

아이작의 눈앞엔 무수히 많은 별이 놓여있었다.

저마다의 색을 뽐내며 빛나고 있는 별들.

그야말로 별들의 향연이었고, 아이작은 누구보다 가장 가까이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적어도 런던에서는 말이다.

“알아냈어?”

어김없이 들려오는 물음에.

아이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끌어당기는 거야.”

오랜 시간에 거쳐 도달했다기엔 아주 짧고 간략한 대답이었으나.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는지 뉴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윽.

아이작이 가지고 나온 사과를 공중으로 던졌다.

“땅이, 지구가 끌어당기기에.”

잠시 날아올랐던 사과가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사과는 떨어진다.”

번쩍.

마지막 말이 공기로 흩어지기 무섭게.

아이작을 감싸고 있던 하늘의 별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휘이이…!

눈부시고 화려한 꼬리를 남기며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한 별들.

수백, 수천 개의 별이 떨어지며 밤하늘로 엄청난 장관이 펼쳐졌다.

그런 장관들 사이에서 조용히 아이작을 바라보던 뉴턴이 입을 열었다.

“정답이다.”

아이작이 정답이라 말하는 뉴턴을 응시했다.

생김새는 없었지만 알 수 있었다.

지금 뉴턴은 몹시 만족해하며 해맑게 웃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뭐라고 부를 생각이야? 네가 발견한 끌어당김의 힘.”

“….”

아이작이 고개를 들어 쏟아지는 별들을 응시했다.

“중력.”

“중력이라… 좋네.”

저벅.

뉴턴이 걸음을 옮겨 아이작에게 다가왔다.

“등가교환의 법칙 알지?”

뜬금없는 물음에 아이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많은 실패 후 불가능이라 결론 내려진 연금술.

연금술의 근간이 되는 법칙이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그와 동등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스윽.

뉴턴이 손을 들어 아이작을 가리켰다.

“중력이란 커다란 깨달음에 도달한 넌, 그 대가로 무얼 받아야 할까?”

“반대 아니야? 내가 깨달음을 얻은 거잖아.”

“아니, 대가를 치른 거야. 오랜 시간 네가 도달했던 수많은 깨달음, 그것이 힘을 얻기 위한 대가였어.”

스르르.

여기까지 말한 뉴턴의 몸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뉴턴을 잠시 바라보다.

아이작이 오래도록 답에 도달하지 못했던 질문을 던졌다.

“넌 누구야?”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난 너야.”

잠시 뜸을 들인 백색 빛의 존재가 말을 이었다.

“아이작 뉴턴의 무수한 호기심과 깨달음 속에서 태어난 존재.”

흩어진 백색의 존재가 아이작 뉴턴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부르기도 하더라고.”

즐거움 가득한 존재의 마지막 목소리가 새벽 공기로 뿌려졌다.

“진리… 라고 말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