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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56화 (256/473)

256화. 피의 향연

스르르…!

사방에서 모여드는 피를 바라봤다.

바닥으로 흘러내린 것뿐만이 아니었다.

죽어있는 시체에 있는 피까지 모조리 끌어당기고 있는 잭 더 리퍼.

두근.

피가 스며들수록 심장이 뛰는 속도 역시 빨라지고 있었다.

동시에 몸을 채워나가는 묘한 쾌감과 충만함.

데몬의 땅 이후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후우.”

호흡을 고르며 감각에 집중해나갔다.

그때 느꼈던 것과 똑같은 감각이었으나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훨씬 안정적이네.

눈앞까지 피로 물들며 광기를 뿜어냈던 처음과는 달랐다.

피가 차오르며 광기가 커지고는 있으나 그때처럼 집어 삼켜질 것 같진 않았다.

데모닉이 추가되며 무기고의 힘이 늘어났고, 주변의 피가 데몬의 땅에서보단 적었다.

히죽.

물론, 광기에 집어삼켜지지 않았다고 해서 몸을 가득 채운 쾌감과 황홀함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뭐에 공격당하든 피가 존재하는 이상 절대 죽지 않는다는 안정감.

그리고 그 안정감에서 오는 우월함까지.

애써 억누르려고 해도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으아아아!”

고개를 들어 소리 지르고 있는 드락스를 응시했다.

드락스 역시 포리페에서 열심히 힘을 끌어모으는 중이었다.

꾸드드득!!

검은 기운을 흡수할수록 변형되고 있는 드락스의 갑주.

크기가 커지는 것은 물론 날카로운 뿔이 사방으로 솟아나고 있었다.

숭하네.

원래도 기괴했던 갑주였는데.

이젠 흉측하다는 생각이 드는 중이었다.

“끄아아아아아아!!”

비명을 질러대며 힘을 모으고 있는 드락스.

바로 달려가 공격할 수도 있지만, 기다려 줄 생각이었다.

힘을 모으며 스스로의 오만함에 취하고 있는 저 얼굴을 보고 있자니 뭐랄까.

스스로가 생각하는 최대치에 도달했을 때 제대로 박살 내주고 싶었다.

저벅.

응?

초록색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사신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피로 뒤덮인 내 모습에 겁먹은 다른 사신들과는 달리, 눈에서 전투 의지가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 사신이었다.

“덤비게?”

“…!”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길래 넌지시 물어본 건데.

성질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눈썹을 꿈틀거리며 품에서 무기를 꺼내는 초록 머리의 사신.

스릉. 스릉.

그 사신을 기점으로 주춤거리던 녀석들도 무기를 꺼내 들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커지는 드락스의 갑주에 자신감을 얻은 것 같았다.

“폼으로 꺼낸 거 아니면.”

무기로 날 겨누고 있는 사신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빨리 덤벼.”

“그게 소원이라면…!”

파아앗!

“죽여주마!”

초록 머리 사신의 외침을 신호로.

힘을 모으고 있는 드락스를 제외한 모든 사신이 내게 달려들었다.

쐐에에에엑---!!

힘을 두른 각자의 무기를 내지르는 사신들.

“….”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공격이었지만.

푸푸푸푹!! 푹!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공격을 맞이했다.

두 번짼데도 신기한 감각이야.

눈은 사신들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내 신경은 몸으로 꽂힌 무기들로 쏠려있었다.

맨몸으로 공격받았을 때와는 달랐다.

파고든 무기가 장기나 근육을 찢는 게 아닌, 그저 고여있는 피 웅덩이 한복판을 찌른 느낌이었다.

“…?!”

너무 쉽게 공격이 성공한 탓일까.

무기를 내질렀던 사신들이 고개를 들어내 얼굴을 바라봤다.

초록 머리 사신을 포함해 녀석들의 얼굴엔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

녀석을 가만히 응시하다.

스르륵.

피를 모아 거대한 이빨을 만든 후.

“!!!”

콰직!

뒤로 물러나려는 초록 머리 사신의 목을 갑주와 함께 물어뜯었다.

푸화아악!

허공으로 솟은 사신의 선혈이 주변 녀석들에게 흩뿌려졌다.

“으…!”

몸에 꽂혀있는 무기를 통해 느껴지고 있었다.

놈들의 손에서 전해지는 떨림이 말이다.

스르릉.

양손에 피로 된 검을 만들어내고.

콰자자작!!

근처에 있는 놈들을 베기 시작했다.

콰직! 콰드득!

“거… 거리를…!”

위험을 느꼈는지 무기마저 내버린 채 사신들이 뒤로 물러섰지만.

시작한 이상 아까처럼 가만히 놔둘 생각은 없었다.

스아악!

피 웅덩이로 위로 미끄러지며 물러나는 놈들에게 검을 꽂아 넣었다.

“으아!!”

쐐에에엑--!

공중으로 피하려는 놈이 있으면 닥치는 대로 검을 집어 던졌다.

피가 있는 이상 검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었다.

콰직! 콰직! 콰득!

“키하하하하하하!”

닥치는 대로 검을 던지고 휘두르며 놈들을 도륙하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광기 어린 웃음이 터졌다.

여전히 광기에 삼켜지거나 한 건 아니었으나 머리가 즐거움으로 가득해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촤아아아악!

놈들의 피가 사방으로 뿌려지면 뿌려질수록.

검이 만들어지고 휘둘러지는 속도도 점점 빨라져 갔다.

처음엔 어떻게든 공격을 막으며 반격하려던 녀석들도.

“도망쳐!!”

“괴… 괴물!!”

“못 이기… 꺼억!”

이젠 휘둘러지는 검의 범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허겁지겁 내달리고 있었다.

“어딜 도망….”

콰직!!

등으로 꽂히는 묵직한 공격에 고개를 돌렸다.

부하들이 썰려 나가는 동안 힘을 다 모은 모양이었다.

드락스의 갑주는 처음과 비교할 수도 없이 거대해졌고, 들고 있던 낫은 거대한 두 자루의 대검으로 변해있었다.

“사지를 찢어주마! 죽이진 않을 거다! 그 상태로 평생 고통에 몸부림치게 해주마!!”

고함을 지르는 드락스를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고새 또 우쭐해져가지고.”

“입 다물어라!!”

후우우웅!

드락스가 거대한 대검을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한방 한방이 위협적인 소리를 내는 공격이었다.

난타전이라.

빠르게 내리꽂히는 대검을 바라보며.

좋지.

양손에 든 피의 검을 치켜들었다.

콰지직!

휘둘러진 드락스의 대검을 몸으로 받아내며 손에 든 검을 빠르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대검이 쉴 새 없이 휘둘러지거나 말거나.

피하거나 막지 않고 계속해서 드락스의 갑주로 검을 꽂아 넣었다.

“!!”

처음엔 어느 정도 내 공격을 방어하는가 싶더니.

서서히 쪼개지고 갈리며 떨어져 내리고 있는 드락스의 갑주.

드락스도 그걸 느낀 건지 이를 악물고 휘두르는 대검에 더 큰 힘을 실었다.

갑주가 전부 부서지기 전에 날 죽일 수 있다고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왕이란 새끼가.”

콰드드득!

다시 한번 갑주로 면도칼을 박아 넣으며 미소를 그렸다.

“이렇게 견적을 못 내서야.”

“뭐…!!”

남은 한쪽 눈을 부릅 뜨는 드락스를 향해.

계속해서 최대 속도로 검을 휘둘러나갔다.

* * *

난타전을 시작하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서로를 두들기던 굉음은 사라지고 없었다.

방금까지 전투가 벌어졌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조용해진 전장.

“허억…! 헉! 허억.”

전장에서 들려오는 건 누군가의 가쁜 숨소리뿐이었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 호흡 한 번 내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워 보이는 소리였다.

“끝이야?”

무릎 꿇은 채 거칠게 호흡하고 있는 드락스에게 물었다.

어느새 갈리고 갈려 맨몸만 남기고 완전히 산산조각 나버린 드락스의 갑주.

힘이 바닥난 탓인지 드락스가 가지고 있던 대검 역시 가루가 되어 바람에 흩날리는 중이었다.

“말도… 허억… 안된…다.”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날 올려다보는 드락스를.

무미건조한 눈으로 내려다봤다.

“감히… 그딴 눈으로 날…!”

항상 오만하게 내려다보기만 해서일까.

드락스는 지금의 눈높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날 그렇게 쳐다보….”

“지금 내가 널 내려다보고 있다는 건.”

콰득.

“끄으!!”

드락스의 머리를 움켜쥐고 뒤로 젖혔다.

“네가 졌다는 거야, 이 패배자 새끼야.”

“으… 으… 천 번 죽어 마땅하다!!”

겁에 질린 눈으로 날 올려다보던 드락스가 외쳤다.

남은 한쪽 눈에서 기운이 흘러나오는 걸로 보아 아까 했던 걸 다시 시도한 듯했다.

“천 번 죽어 마땅하다! 천 번 죽어 마땅하다아아!!”

자신의 힘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는데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외쳐대는 드락스.

그런 드락스를 딱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가.

한쪽 손을 하늘로 들어 올렸다.

“고마운 줄 알아.”

스르르르….!

손 위로 주변에 있는 피를 끌어모아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난 널 천 번 죽일 생각은 없거든.”

피가 서로 부딪히고 회전하며 붉은 피 안개가 만들어지고.

잠시 후 회전하던 피가 메스 크기의 면도칼로 변형되었다.

못해도 수만 개는 되어 보이는 칼날 폭풍.

“아….”

넋을 놓은 드락스가 바로 위에서 소용돌이치는 피의 폭풍을 바라봤다.

이젠 조금씩 실감이 나고 있는 모양이었다.

코앞까지 다가온 죽음이란 존재가 말이다.

“잠… 잠깐. 살… 살려….”

“살려달라고?”

조소를 머금으며 드락스를 내려다봤다.

아래에 있는 건 더 이상 사신의 왕 같은 게 아니었다.

눈동자에 명확한 공포가 새겨진 채 목숨을 구걸하는, 한 명의 겁쟁이일 뿐이었다.

“싫은데.”

“!!”

눈으로 인식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도는 피의 소용돌이를.

“다시 태어나거든.”

드락스를 향해 내리꽂았다.

“겸손하게 살아라.”

콰가가가가가!!

* * *

백운과 드락스의 전투로부터 멀리 떨어진 장소.

전투를 바라보던 로인의 등 뒤로 식은땀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둘의, 정확히는 델라르 전체와 백운 사이에 벌어진 싸움.

싸움을 지켜보면서도 로인은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싸움이… 맞긴 한 건가.’

로인의 상식선에서 눈앞의 것은 싸움이라 부를 수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전력 차이에 의한 일방적인 도륙.

싸움이 아닌 학살로 정정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알고 있던 건 빙산의 일각이었나.’

백운이 강하다는 것쯤은 로인도 알고 있었다.

그리스에서 운명을 뒤바꾼 것은 물론 망자의 세계에서도 살아 나온 백운이었다.

강하지 않다면 불가능한 일인 만큼 로인의 머릿속에서 백운은 가늠하기 힘든 강자였다.

하지만.

‘부족…하다.’

조금 전 학살을 보며 로인은 깨닫게 되었다.

강자란 단어로 백운을 표현하는 건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는 것을 말이다.

- 키하아아아아아!

피의 악마.

피로 뒤덮인 백운을 보며 떠오른 이름이었다.

아무리 많은 공격을 맞아도 바로 회복해버리는 미친 재생력과.

그런 재생력을 바탕으로 한, 단순하지만 몹시 압도적인 전투 방식까지.

‘불가능해.’

로인이 가진 상상력 안에선 그려지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피의 악마가 누군가의 손에 죽임당하는 장면이 말이다.

저벅.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백운.

꿀꺽.

로인이 백운에 의해 무시당했던 드락스의 권능을 떠올렸다.

절대적인 힘인 만큼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눈앞에서 버젓이 일어나버렸으니.

새로운 가능성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게 가능하려면.’

사신의 왕이 가진 권능을 무시했다는 건 한 가지를 의미했다.

지금 걸어오고 있는 백운이 사신의 권능 따위는 가볍게 즈려 밟을 수 있는.

더 아득히 높은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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