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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86화 (286/473)

286화. 쏘아 올리다

허옇게 질린 이수천을 바라봤다.

말을 잃은 건 물론이고 어버버거리는 걸 보니 잘못 본 게 아닌 모양이었다.

제대로 봤구나.

난중일기의 기억 속.

거들먹거리는 원균의 면상을 본 순간 깜짝 놀랐었다.

수염이나 머리 등을 제외하곤 회장 이수천과 너무 똑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공기 아까운 새끼가 왜 이렇게 오래 산 거야.

이미 비슷한 이를 여럿 봐온 터라 오래 살았다는 사실 자체가 크게 놀랍진 않았으나.

아주 작은 공기조차 아까운 놈이 이토록 오래 살아왔다 생각하니 몹시 마음에 안 들었다.

“그, 그걸 어떻게…!?”

입술까지 떨어가며 말하는 원균을 응시했다.

원균이 놀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정체를 숨기고 여러 이름으로 살아왔을 테니.

자신이 원균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 확신했을 터였다.

“그런데 이번 이름은 좀 아니지 않아?”

놀란 원균에게 몸을 숙였다.

꼬라지를 보면 옛날에도 나라를 여러 번 팔아먹었을 듯하지만.

그건 내가 모르는 일이니 아무래도 좋았다.

하지만 이번 신분은 용납하기 힘들 정도로 몹시 괘씸했다.

“네가 이순신 장군님의 이름을 팔아? 최악의 상황에 장군님을 팔아먹은 새끼가?”

원균이 이순신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는 난중일기에서 톡톡히 봤었다.

직접 침을 튀겨대며 아무 말이나 짖어대는 걸 보고 있노라면 없던 분노 조절 장애도 생길 판이었다.

“너, 넌 무기왕…!”

칼데아 윙 때문인지 날 알아본 원균이 손을 올렸다.

“대한민국 국가 소속 헌터가 이, 이런 짓을 해도 되는 거냐!?”

“….”

이번엔 내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지금까지 숱하게 팔아먹은 건 물론 나라 버리고 망명하려던 새끼가 저런 말을 하다니.

매국노 새끼는 뻔뻔함이란 재능을 타고나야 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엄청났다.

“이거 완전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 새끼네.”

콰악!

“끄…끄으!!”

망설이지 않고 원균의 뒤통수를 움켜쥐었다.

한국은 유교의 나라였으나, 상관없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일본 땅이니까.

[도윤 - 비전 수리검]

다른 한 손엔 수리검을 꺼낸 후.

원균의 머리를 움켜쥔 손으로 힘을 주기 시작했다.

“끄…끄아아아아!!”

머리털이 다 뽑히는 고통 때문인지 비명을 지르는 원균을.

후우우우우웅!!

온 힘을 다해 하늘 위로 던져버렸다.

찢어져라 비명 지르며 높은 상공까지 올라간 원균.

[이순신 - 쌍룡궁]

그런 원균을 바라보며 쌍룡궁으로 바닷물을 모아갔다.

재활용이 불가능한 만큼 원균이란 새끼가 살아있었다는 작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을 생각이었다.

“심판이라고 생각하진 않아.”

모여 가는 바닷물을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난 이순신 장군님 본인이 아니니까.”

기억 속 이순신은 원균을 국가를 위해 함께 싸우는 한 명의 장군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존중해줬었다.

모든 이가 이순신의 사람이었던 만큼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야말로 바다에 가까운 자비와 아량.

예상컨데 만약 지금 이 자리에 장군이 있었다면 원균을 죽이는 것에 반대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설령 이순신 장군이 이걸 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난 뒤끝 쩌는 밴댕이 소갈딱지라서 말이야.”

한국이란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으로서.

이순신 장군이란 위인의 업적을 봐오며 커온 사람으로서.

이젠 평생을 함께해야 하는 동료가 된 사람으로서.

난 저놈을 살려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드드드득!

쌓아왔던 분노를 담아 활시위를 끝까지 잡아당겼다.

더 이상 당겨지지 않는지 심하게 요동치는 활시위.

“속죄하길 바라지도 않으니까 그냥.”

당장 튀어 나가고 싶어하는 활시위를 놓으며.

원균에게 쏘아지는 성난 바다를 응시했다.

“사라져라.”

* * *

“미, 미안.”

후두둑 젖은 채 나란히 부둣가에 앉은 쿄스케를 바라봤다.

원균을 향해 쌍룡궁을 쏜 것까지는 좋았는데.

쏘아 올려진 태풍급 바닷물이 다시 아래로 떨어질 거라는 건 잠시 망각했었다.

“아니에요. 시원하고 좋네요.”

날개 집어넣지 말고 비라도 막아 줄 걸 하는 사이.

괜찮다고 대답한 쿄스케가 작은 박스 하나를 건넸다.

“뭐야 이게.”

방금 가져온 것처럼 뜨끈한 온기가 느껴지는 박스.

박스 뚜껑을 열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대왕 만두가 모습을 드러냈다.

“쉬잍! 마안듀!”

호다닥 만두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음!? 이건 히메지 성 만둔데?”

“맞아요. 귀신같이 맞추시네요.”

밝게 웃은 쿄스케도 만두 하나를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만두는 어디 성능 좋은 보온 가방에라도 넣어온 건지 뜨끈한 육즙이 제대로 살아있었다.

“백운 님은 볼 때마다 말도 안 되게 강해지네요. 저번에 훗카이도 영상 보면서도 깜짝 놀랐었거든요.”

“하하…. 그, 그렇지.”

머쓱타드하구먼.

갑자기 훅 들어온 칭찬에 머리를 긁적였다.

“너도 저번보다 파워가 엄청 올라간 거 같은데?”

일부러 없는 칭찬을 만들어낸 건 아니었다.

밀항선 뒤엔 이수천의 따까리 두 명이 동동 떠 있었다.

쿄스케의 언력 한방에 온몸이 박살 난 탓이었다.

이거 좀 사기 아닌가.

같이 만두를 우물거리고 있는 쿄스케를 흘끔거렸다.

명석한 머리를 가진 건 물론 말 한마디로 뼈를 뽀개는 능력이라니.

약간 언밸런스 한 거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매일매일 목에 피가 날 때까지 수련 중이거든요.”

순간 득음을 위해!? 란 드립을 칠 뻔했으나.

왠지 모르게 진지한 쿄스케에 터져 나오려는 말을 간신히 집어삼켰다.

“전 아직도 히메지 성에서의 일을 잊지 못했어요. 백운 님이 없었다면 끔찍하게 죽었을 그 순간요.”

만두를 한 입 더 베어 문 쿄스케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무기력했으니까요. 누군가를 지켜야 하는 놈이 목소리가 안 나오나고 멀뚱멀뚱 가만히 서 있기나 하다니.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어요.”

나도 모르게 숙연해져 쳐다보고 있자.

뭘 그렇게 보냐는 듯 쿄스케가 활짝 미소를 그려 보였다.

“이제부터 안 그러면 되는 거니까요. 전 어떻게든 흘러가는 시간에 비례해서 열심히 강해질 예정이니…. 이런 미약한 힘이라도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쿄스케가 하나 남은 만두를 내게 건네며 다른 손으로 엄지를 치켜세웠다.

“언제 어디서 부르든 도와드리러 갈 테니까요.”

“….”

나의 아주 오래된 친구 쿄스케.

쿄스케와 내밀어진 만두를 번갈아 바라보다.

덩달아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우케이! 마이 프렌도!”

* * *

기무라의 저택.

사이조에 협력했던 관료들이 모인 자리로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기무라 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수천 회장까지 사라지다뇨.”

“사이조의 자금만 믿고 이것저것 벌려 놓은 게 많은데 참으로 큰일입니다.”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끊기지 않을 상수라 생각했던 자금줄이 사라지며 돈을 받아먹던 이들이 곤경에 처한 상태였다.

꾸득.

관료들의 징징거림을 들으며 기무라가 두 눈을 감았다.

앞으로의 일도 문제였지만 일단은 이수천부터였다.

‘누구냐 대체…!’

모든 관료가 모였던 그 날 밤.

회의에서 의논됐던 내용이 외부로 유출됐었다.

덕분에 기무라는 오키나와에서 이수천의 털끝조차 구경하지 못했고 말이다.

‘회의 중에, 아니면 끝나자마자 유출한 거다.’

기무라가 밍기적거린 게 아니었음에도.

도착한 오키나와 항구엔 이수천이 타고 왔을 밀항선과 두 부하의 시체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정작 있어야 할 이수천은 하늘로 솟기라도 한 건지 작은 흔적 하나조차 찾을 수 없었다.

‘대체 누….’

다시 한번 머리를 쥐어짜려는 찰나.

쾅!

문이 열리며 장관 니시다 료코가 모습을 드러냈다.

“료, 료코 장관?”

“여긴 무슨 일로…!?”

비밀스러운 회담이었던 만큼 료코의 등장에 당황하는 관료들.

간신히 냉정을 유지한 기무라가 입을 열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그딴 식으로 들어오는 겁니까!?”

기무라의 외침이 울려 퍼지길 잠시.

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총리 야구치 토야마가 방으로 들어왔다.

“!!!”

토야마의 등장에 헛숨을 들이키며 기겁하는 관료들.

차가운 얼굴로 기무라를 포함한 관료들을 바라보던 토야마가 입을 열었다.

“저 몰래 무언가를 하시려고 했다면서요.”

기무라가 눈을 번뜩이며 료코를 노려봤다.

어쩐지 순순히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했었는데.

토야마에게 모든 걸 일러바친 모양이었다.

“하하…. 총리님. 그건 다름이 아니라.”

기무라가 둘러대려는 순간.

툭.

기무라와 관료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서류 뭉치가 날아들었다.

“저 몰래 뭔가를 해온 건 처음이 아니시더군요.”

서류를 펼친 기무라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사이조와 각 관료가 지금까지 주고 받아온 로비 장부.

장부엔 받은 금액과 그 대가로 관료들이 해준 일들이 빠짐없이 적혀 있었다.

“어, 어떻게…!”

“료코 장관이 오랜 수사로 알아낸 자료입니다.”

쏠리는 시선에 니시다 료코가 헛기침을 했다.

부탁이 있었던지라 입을 열 순 없지만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 안녕하십니까. 니시다 료코 장관님. 불쑥 찾아온 점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

히메지 성의 모리타 쿄스케가 료코를 찾아왔었다.

기무라가 비리 관료들과 회담을 가질 거란 정보와 함께.

모리타 쿄스케는 지금 저 테이블에 올려진 자료를 건네주었었다.

- 대가인가요? 이수천의 위치를 알려 준 것에 대한.

료코의 말에 쿄스케는 희미한 미소를 그렸었다.

- 대가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저도 누군가에게 받은 자료를 전달하는 것뿐이라서요.

누군가가 누군지는 굳이 묻지 않았었다.

사이조를 쓸어버린 하회탈… 아니, 무기왕일 게 분명했다.

- 그 누군가가 자료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분께 드리라고 했었거든요. 그럼 전 용무를 마쳤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료코가 자료를 건네고 돌아가려는 쿄스케를 불러 세웠었다.

- 히메지 성이 이수천을 찾고 있다는 거. 일부러 흘린 건가요?

이번엔 부정하지 않고 잠시 료코를 바라봤었던 쿄스케.

쿄스케는 몸을 돌리기 직전 희미하게 웃어 보임으로써 대답을 대신했었다.

‘모리타 쿄스케.’

눈을 가늘게 뜬 료코가 쿄스케의 이름을 되뇌었다.

‘무기왕의 친구…라.’

저벅.

생각을 마친 료코가 기무라에게 다가갔다.

“죄목은 따로 읊어 드리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제부터 당신들은 일본 관료가 아닌 범죄자로 다뤄질 겁니다.”

“료코!! 풋내기 따위가 감히!”

“아 그리고.”

분노하는 기무라를 바라보며 료코가 미소를 그렸다.

“기무라 님이 그토록 송환을 반대하던 유물들. 내일 아침에 바로 한국으로 떠날 겁니다.”

“뭐…! 명분도 없이 그딴 짓을! 그냥 돌려줬다간 일본이 한국에 머리를 조아린 게 되는 거다!”

“명분이 왜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미 한국엔 공식적으로 송환 이유를 밝혔습니다.”

더 이상의 대화는 없다는 듯 료코가 마지막 말과 함께 몸을 빙글 돌렸다.

“일본을 구해 준 무기왕의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함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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