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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33화 (332/473)

333화. 검은 얼음엔

오늘 왜 이러지.

멍한 얼굴로 도망치라 말하는 여자를 쳐다봤다.

화장실 앞에서 만났던 파밀라부터 옆에 앉은 여자까지.

뜬금없는 타이밍에 나타나 너무나 뜬금없는 말을 건네고 있었다.

“믿기 힘들 거란 건 알지만 당신, 안 도망치면 죽을 거예요.”

점점 한술 더 뜨는 여자에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도망치는 것과 죽는 건 옛날의 나라면 모를까 지금의 내겐 몹시 낯선 것이었다.

“위험한 사람들이에요. 공항부터 그쪽과 동행한 사람들요.”

국가 헌터청 소속 헌터를 위험하다고 부르는 여자.

객관적으로 봤을 때 더 의심스러운 건 눈앞의 여자였지만, 어째서일까.

눈에 깃든 절박함이 내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스윽.

무언가를 더 묻는 대신 고개를 들어 술집을 둘러봤다.

“….”

언제부터였을까.

술집이 이렇게 고요해진 건.

조금 전에 나간 클로다를 마지막으로 술집에 남은 사람은 나와 옆의 여자뿐이었다.

“더블린 사람들은 일찍 자러 가나요?”

“네? 그게 무슨…!!”

내가 한 말의 의도를 알아차린 건지 여자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갔다.

“나가야 해요!”

자리에서 일어난 여자가 몸을 돌리는 순간.

쐐에에에에에엑----!

귓가로 공기를 가르는 파열음이 들려왔다.

한두 발이 아니었다.

아주 작정하고 쏟아붓는 듯한 느낌.

“역시 내가 문젠가.”

가는 곳마다 사건을 일으키는 만화 영화의 주인공.

지난번 생각했던 걸 떠올리며 미소를 그렸다.

일단 빠져 나가볼까.

손을 뻗어 옆에 선 여자의 어깨를 붙잡았다.

공격하는 게 누군지, 내가 왜 공격받는 건지는 아직 의문이었으나.

이건 차차 알아나갈 참이었다.

“좀 빠를 거예요. 멀미 날 수도 있….”

“멀미 날 거예요.“

팟!

에?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이었다.

술집 안에 있던 내 몸이 순식간에 밖으로 옮겨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방금까지 안에 있던 술집의 지붕 위였다.

뭐야.

약간 벙찐 얼굴로 옆의 여자를 바라봤다.

몸이 순식간에 옮겨지는 것 자체는 익숙했으나 자의가 아닌 타의로 이렇게 이동된 적은 처음이었다.

퍼어어엉!!

약간은 낯선 감각에 적응하기 무섭게 커다란 파열음이 들려왔다.

동시에 큰 폭발이 일어나며 술집 건물이 휘청였다.

“달려요!”

내 손을 붙잡은 여자가 지붕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일단 따라 가볼까.

여자가 이끄는 대로 발을 내디뎠다.

방금 한 순간이동을 떠나 잘 달리는 것이 아일랜드에 소속된 특수요원이 아닐까 싶었다.

그나저나.

달리면서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근처는 아니지만 아주 먼 곳에서부터 포격이 날아들고 있었다.

완전 미친놈들이네.

누가 바이킹의 나라 아니랄까 봐.

좀 동떨어져 있다곤 해도 나름 시내의 술집인데 이렇게 갈겨대다니.

완전 노빠꾸의 정석이었다.

팟!

오씨.

몇 걸음이나 달렸을까.

다시 한번 몸이 옮겨졌다.

지붕 몇 개를 건너뛴 거리였다.

단거리 텔레포트 같은 건가.

텀을 두고 이동하는 걸 보니 바로바로 사용하는 건 불가능한 것 같았다.

이동 후마다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걸 봐선 체력이 꽤 소모되는 듯했고 말이다.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계속 아무 말 없이 손잡고 달리는 것도 어색하여 내가 왜 공격당하는지나 물어보려고 했는데.

점점 거칠어지는 숨을 보니 지금 묻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닐 듯했다.

팟!

이번에 옮겨진 건 어느 으슥한 골목 아래였다.

“하아…! 하아…!”

멀뚱히 서서 숨을 고르는 여자를 바라봤다.

일단 감사하다고 해야겠지.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의 바르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뭔진 몰라도 날 구하기 위해 능력 사용부터 달리기까지 해준 것이었다.

“하아.”

여자의 호흡이 어느 정도 안정될 때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저는 왜 공격받는 건가요?”

이건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여러모로 내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야 많겠지만 그 영역이 아일랜드까지 도달했을 리는 없었다.

“오늘 영국 왕실 전세기 타고 들어오셨죠.”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가 머리를 넘기며 말을 이었다.

“그게 이유에요. 저들은 명분이 필요하거든요.”

“명분이라 하면…?”

“저와 제가 속한 세력을 공식적으로 쓸어버릴 명분요.”

* * *

쑥대밭이 된 맥주집.

경찰로 빼곡하게 쌓인 현장으로 청장 로컨이 모습을 나타냈다.

“로컨 청장님!”

로컨의 등장에 경찰 병력들이 고개를 숙였다.

로컨은 더블린뿐만이 아니라 아일랜드 전체를 놓고 봐도 유력 인사 중 한 명이었다.

“여긴 우리가 처리할 테니 가보도록 하세요.”

“예…? 청장님께서 직접 말씀이십니까?”

로컨이 귀찮다는 듯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아이리와 반역 세력의 짓이니까요. 담당인 우리 헌터청이 맡아서 조사하겠습니다.”

현장을 지휘 중이던 반장이 마음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조사 결과가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현장이었다.

그럼에도 전 환경부 차관 아이리의 소행이라 단정 짓다니.

거기다 사실 아이리에게 반역 세력이란 호칭은 옳지 않았다.

굳이 따지면 아이리가 속한 단체는 새롭게 구성되어 정부와 반대되는 의견을 피력했을 뿐 반역이라 할 만한 짓은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그들이 반역 세력이었나가 궁금한 거라면.”

“…!”

마음을 읽은 건지 로컨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입니다. 영국 왕실의 손님을 노리고 공격해왔으니까요. 알았으면 가보세요.”

“예… 예!”

속마음을 들켰다는 생각에 식은땀을 흘리며 빠르게 병력을 철수시키는 반장.

그런 경찰들을 뒤로 한 채 로컨이 인상을 찌푸렸다.

“빠져나간 건가?”

“예.”

먼저 와 조사 중이던 헌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술집 안엔 그 누구의 시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통 놈이 아니었던 건가?”

로컨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술집을 뒤지던 헌터 한 명이 테블릿 패드를 들고 로컨에게 다가왔다.

“그놈이 스스로 도망친 게 아닙니다.”

“뭐?”

헌터가 들고 온 건 조금 전 복원한 술집의 CCTV 파일이었다.

“포격 직전의 영상입니다.”

헌터청의 클로다가 술집을 벗어난 후 모자를 푹 눌러쓴 여자가 백운 옆으로 와 앉았었다.

“무슨 말을 나누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짧지만 분명 둘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포격이 떨어지기 직전 둘의 몸이 사라졌고 말이다.

“하!”

영상을 본 로컨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갑자기 나타나 백운을 데리고 단거리 순간이동을 할 만한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아이리 이 여우같은…!”

로컨이 인상을 찌푸렸다.

결과야 어쨌든 아이리가 자신의 생각을 읽었다는 게 기분이 더러웠다.

“아깝군요. 한 번에 둘 다 잡을 수 있었는데요.”

“상관없다.”

부하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며 로컨이 몸을 돌렸다.

“까다롭지만 무한하게 사용할 수 없는 능력이야. 아직 더블린 안에 있을 거다. 당장 더블린 전체 포위하고 밖으로 나가는 통신 다 감시해. 아이리한테 이야기를 들었다면 백운이란 놈이 영국으로 연락을 취하려고 할 수도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이번 공격은 아이리와 저항 세력의 테러로 하고. 우리 영국 귀빈분은 행방 묘연으로 하되 납치 뉘앙스로 가자고.”

“예.”

지시를 마친 로컨이 걸음을 옮겼다.

당장 원하는 바는 이루지 못했으나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아이리가 더블린에 있다는 것,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손에 들어올 거란 사실이었다.

“아 참.”

잠시 걸음을 멈춘 로컨이 고개를 돌렸다.

“얼음으로 만든 그놈들. 이번에 한 번 실험해보자고.”

로컨의 입가로 소름 돋는 미소가 그려졌다.

“말 잘 듣는지도 볼 겸 해서 말이야.”

* * *

버려진 폐허 안.

대충 먼지를 털어낸 침대로 몸을 앉혔다.

“완전 썅놈이네요!”

주먹을 불끈 쥐며 고개를 흔들었다.

조금 전 아이리는 내가 공격당한 이유를 상세히 이야기해줬었다.

로컨인가 로칸인가 안되겠구먼.

“문제는 지금부터에요. 로컨은 아직 우리가 더블린에서 빠져나가지 못했다는 걸 알고 있을 거예요. 포위망을 좁혀오겠죠.”

벽에 기댄 아이리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 능력은 체력 소모도 심하고 사용과 사용 사이에 딜레이가 있어요. 아깐 적이 방심해서 도망칠 수 있었지만, 만약 제대로 조여온다면….”

그늘진 얼굴의 아이리를 보며 조금 전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 이전에 전 아일랜드의 환경부 차관이었어요.

무척 의외인 신분이었다.

당연히 아일랜드 특수부대 소속일 줄 알았는데 차관이라니.

운동을 꾸준히 하신 모양이었다.

- 검은 얼음이 위험하다는 의견을 내며 배척당하기 시작했죠.

“저 아까 해주셨던 검은 얼음 말인데요. 왜 위험하다는 의견을 내신 건가요?”

“아. 거기부터 말씀을 안 드렸었군요.”

삑.

핸드폰을 꺼낸 아이리가 사진 한 장을 띄워 내게 내밀었다.

동그란 안경을 쓰고 흰 가운을 걸친 남자의 사진이었다.

“이름은 필립. 저와 함께 일하던 과학자에요. 물질을 분해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개방했죠. 필립이 능력을 이용해 검은 얼음을 분석했었어요.”

“결과는 어땠었나요?”

“극도로 위험하다…. 라고 필립은 말했었어요. 단순한 얼음이 아니라는 말과 함께요.”

단순한 얼음이 아니다…?

말을 곱씹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음 안엔 정체불명의 힘이 깃들어 있었대요. 그 힘이 얼음을 살아있는 생물처럼 만들었고, 그걸 토대로 얼음은 시간에 비례해 커지며 영역을 넓혀나갔고요. 그리고 필립은 그 정체불명의 힘과 비슷한 걸 전에 본 적이 있다고 말했어요.”

삑.

“데몬?”

“네. 아일랜드에 나타났던 노네임드, 지금은 피락카 라는 이름이 붙여진 S급 데몬이에요. 당시 토벌이 완료되고 필립이 그 데몬을 분석했었거든요. 그 피에서 발견했던 성분과 비슷하다고 말했어요.”

“검은 얼음은 데몬이 만들었다 라는 거군요.”

“네. 확실하진 않지만 S급에 필적하는 녀석일 가능성이 크겠죠.”

이쯤되니 의문이었다.

이런 분석 결과가 나왔는데 왜 아무런 대처가 없는 건지 말이다.

심지어 대처는커녕 관광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게 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런데 왜…?”

“보고가 올라간 후 필립이 사라졌어요.”

“!?”

“연구 자료와 함께 깨끗이 사라졌죠. 원래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요. 보고서는 분명 환경부 꼭대기까지 올라갔었지만 장관은 그런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하는 중이고요. 필립과 친해 구두로 들었던 거라 제게도 딱히 그럴만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요. 그리고 이건.”

삑.

아이리가 다음 사진을 띄워 내게 보여주었다.

“필립이 사라지기 직전 제게 남긴 메시지에요.”

“…!”

사진의 쪽지엔 급하게 휘갈겨 쓴 듯한 글씨가 남겨져 있었다.

# 검은 얼음이 아일랜드를 집어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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