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34화 (333/473)

334화. 여유의 근거

아일랜드를 집어삼킨다.

검은 얼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연관이 있으려나 싶긴 했는데.

이쯤되니 어느 정도 확신해도 될 것 같았다.

아일랜드는 검은 얼음 때문에 가라앉았다.

유물관에서 검은 얼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적은 딱히 없었다.

유물과 관련되었거나 정말 큰 뉴스가 아니라면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아일랜드가 순식간에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건 명확히 일어날 사건이었다.

“방금 전 노렸다는 놈들은 왜 그런 보고를 받고도 검은 얼음을 안 없애는 건가요?”

“검은 얼음은 아일랜드에 여러모로 많은 이득이 되거든요.”

“관광객 유치 같은 건가요?”

“그것도 이득 중 하나죠. 검은 얼음 덕에 이전과 비교 불가능한 수의 관광객이 쏟아지니까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자 옆으로 다가온 아이리가 사진 몇 개와 동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사진은 어느 연구 시설을 찍은 것이었다.

저번에 그리스에서 봤던 데몬 연구시설과 어찌 보면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따로 관리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증식한다는 것. 헌터청을 포함한 군대는 검은 얼음의 이 부분에 집중했어요. 이걸 이용하면 무한 동력과 비슷한 에너지를 흉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거죠.”

“오…. 대담한대요. 데몬이 만들었다 여겨지는 얼음을 군 전력에 쓰려고 한다니.”

“제정신이 아닌 거죠. 현재 세상에서 인류의 가장 큰 적은 데몬임에도 각 국가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암투가 계속되고 있으니까요.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거겠죠.”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달라도 그런 류의 인간은 여럿 봐왔었다.

당장 저번에 일본에서 만난 료헤이와 이번 그리스의 연수정만 해도 그랬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 데몬과 손잡는 건 물론 데몬을 만들어내기까지 했으니.

데몬이 만들어낸 얼음으로 무언가를 하려는 것 자체가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일단 움직이면서 계속 얘기해요.”

어느 정도 호흡이 돌아오자 아이리가 몸을 일으켰다.

포위망이 좁혀오고 있을 테니 계속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 필립이 해줬던 말을 토대로 계속해서 조사했고 이걸 알리기 위해 노력해 왔어요. 그러다 환경부에서 내쫓기게 됐고요.”

“아일랜드 정부 전체가 한통속인 건가요?”

아이리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진 않을 거예요. 알게 모르게 저희한테 도움을 주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문제는 로컨 같은 유력 인사들이 대부분 한통속이란 거예요. 그들은 대통령을 밀착 마크하며 눈과 귀를 가리고 있거든요. 저희 쪽에서도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모두 목숨을 잃었고요.”

“헌터 청장이니 권력도 엄청나겠네요.”

언제든 데몬에게 공격당할 수 있는 세상.

이런 세상에서 데몬에게 대적할 수 있는 헌터와 그 헌터의 꼭대기에 있는 청장의 권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당장 한국의 강태황 청장만 보더라도 대통령 다음이라 일컬어질 정도니 아일랜드라고 크게 다를 거 같진 않았다.

“맞아요. 로컨이 가장 큰 위협이라 할 수 있겠죠. 그 때문에 지금 행하는 일이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협력하고 있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그렇군요.”

턱을 슥슥 빠르게 문질러서일까.

머리로 간단하고도 명확한 해결책이 떠올랐다.

“로컨만 박살내면 상황이 그래도 많이 좋아지겠네요.”

“네…?”

앞장서 가던 아이리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걸 누가 모르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너무 단순무식했나.

내 딴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을 말해본 건데.

아이리 입장에선 어이가 없을 거 같긴 했다.

“헌터 청장으로서 거느리고 있는 병력도 문제지만. 로컨만 해도 절대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에요. 말도 안 되는 무용으로 청장까지 올라갔거든요.”

“그, 그렇죠.”

0세대 헌터로 한국을 지켜내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태산, 강태황.

강태황만 해도 S급 데몬을 수도 없이 때려잡은 괴물이었으니 로컨도 이와 비슷한 케이스일 터였다.

“앞으로 아이리 님의 계획은 뭔가요?”

나와 관련 없는 일이었지만 로컨이 술집에 포격을 때려 부으며 이젠 아니게 됐다.

분명 아이리에게 덮어씌우기 위해 날 어떻게든 처리하려고 할 터.

이놈부터 저 멀리 치우지 않는 이상 아일랜드에서 마음 놓고 돌아다니는 건 불가능했다.

로컨 이 쌍놈의 새끼!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로컨을 욕했다.

이 자식만 아니었어도 난 평화롭게 더블린 관광을 즐기며 도끼 탐색을 해나갔을 텐데.

덕분에 도끼 탐색은 시작도 못 하고 엄한 일에 휘말리고 말았다.

“일주일 뒤에 대통령이 연설을 맡은 행사가 있어요. 그때 어떻게든 접촉해볼 생각이에요. 수많은 사람 앞이라면 로컨도 대놓고 무언가를 하진 못할 테니까요. 아무리 모든 경로를 다 틀어막았어도 실제로 만나는 걸 어떻게 할 방법은 없을 테고요.”

“아니면 누가 로컨을 때려눕히던가요.”

약간 멍할 얼굴로 날 바라보던 아이리가 미소를 지었다.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네요.”

“하하 그렇겠죠.”

아이리와 함께 덩달아 미소를 지으려는 순간.

사아아아….

“…?”

아직 멀지만 피부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차가운 밤공기가 아닌, 이질적이면서도 섬찟한 냉기였다.

* * *

“봉인구를 풀면 녀석들의 진행 방향엔 있지 마라. 혹시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늘어선 헌터들이 긴장된 얼굴로 트럭을 바라봤다.

몇 겹의 잠금장치로 둘러싸인 트럭 안.

그곳엔 기계와 검은 얼음을 결합시킨 존재, 타룬이 탑승해 있었다.

“위치는 제대로 확인한 거지?”

“예. 확실합니다. 일반인이 이 시간에 구시가지를 돌아다닐 일은 없을 테니까요.”

책임자로 보이는 남자가 모니터를 응시했다.

구시가지를 비추고 있는 레이더에선 두 개의 점이 천천히 이동 중이었다.

전 환경부 차관 아이리와 영국 왕실의 귀빈 백운으로 추정되는 이들이었다.

“명심해라. 타룬은 절대 누군가의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 띄게 된다면 필시 증거를 지워야 하고.”

“알겠습니다. 주의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남자가 트럭 쪽으로 신호를 보냈다.

철컥!

둔탁한 소리와 트럭의 잠금이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다.

여러 번의 상황 실험을 거치긴 했지만 아직 실전에서 활용된 적이 없는 타룬.

첫 실전에선 항상 많은 변수가 생기는 만큼 배치된 헌터들은 몹시 긴장한 상태였다.

우우우웅.

마침내 트럭 문이 열리고.

고개를 숙인 타룬 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단단해 보이는 푸른색 티타늄 소재와 심장 부분을 덮은 검은 얼음이 타룬을 구성하는 주성분이었다.

“구속구 해제.”

감싸고 있던 줄을 끊자 타룬의 눈으로 빛이 감돌았다.

사납고 날카로운 늑대의 형상을 한 얼굴 생김새.

고개를 든 타룬이 몸을 일으키며 트럭 밖으로 걸어 나왔다.

‘이게 비밀리에 만들고 있었다는 병기 타룬.’

헌터 중 한 명이 긴장한 얼굴로 2미터 가까이 되는 타룬을 올려다봤다.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으나 철저히 설정된 AI를 따라 움직이는 녀석들이었다.

사아아…!

그런데 어째서일까.

녀석들의 몸에서 뿜어지는 한기와 일렁이는 눈빛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섬찟함.

이 두 가지가 왠지 모르게 타룬이 살아 숨 쉬는 생물이란 착각을 주고 있었다.

“뭐해? 타겟으로 안 보내고.”

“예, 예!”

정신을 차린 헌터가 들고 있던 패드를 두드리자.

드드드…!

한껏 냉기를 뿜어내던 타룬이 두 명의 타겟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 * *

“달려요!”

아이리가 백운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벌써 찾았지.’

로컨의 정보력이 엄청나단 건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발견될 줄은 몰랐었다.

‘그리고 이 한기는…!’

전에 받았던 실험실 보고서에 쓰여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온몸의 털을 쭈뼛 서게 만드는 한기가 느껴졌다고 말이다.

- 한기.

‘어떻게 먼저 안 거지.’

백운이 한기란 단어를 말한 건 아이리가 한기를 느끼기 한참 전이었다.

보통 사람보다 감각이 수십 배는 뛰어난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런 쪽으로 능력을 개방한 건가. 아니면 신체 강화?’

열심히 따라 달리는 백운을 돌아봤다.

딱히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백운은 체력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환경부 차관이 되기 이전에 여러 가지 임무를 수행하며 몸을 단련해왔던 아이리.

몸에는 체력의 증진을 돕는 장비까지 장착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백운은 이런 아이리보다 체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난 것 같았다.

‘아무리 내가 순간이동을 썼다 하더라도.’

처음에도 그랬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자신과는 달리 백운은 약간의 호흡 흐트러짐조차 없었었다.

여기다 영국 왕실의 전세기까지 타는 귀빈이라니.

점점 더 백운의 정체가 궁금해지고 있었다.

휙휙!

아이리가 고개를 흔들어 이런 생각을 털어냈다.

지금은 이곳을 벗어나는 게 우선이었다.

쿵!

뒤에서 들리는 굉음에 아이리가 고개를 들었다.

“!!!”

어둠 속에선 열댓 쌍의 푸른 안광이 무서운 속도로 아이리와 백운을 쫓고 있었다.

‘저건 실험실의!’

아이리가 입술을 깨물었다.

어두워 자세히 보이진 않으나 분명 실험실에서 검은 얼음으로 개발 중이던 병기였다.

“이동할게요!”

“넵!”

아까와 마찬가지로 백운을 데리고 장소를 이동했다.

인원수가 늘어날수록 부담이 되다 보니 평소보다 두 배로 체력이 소모되는 중이었다.

쿵!

이동하고 아주 약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귀신처럼 두 사람을 쫓아오는 병기들.

아이리의 얼굴로 낭패감이 깃들었다.

‘벗어날 수 있을까.’

혼자라면 충분히 벗어나겠지만 지금 상태론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백운 님. 꽉 잡으세요. 이제 무리해서라도 연속으로…!?”

쑤우우욱!

백운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는 찰나.

발을 디딘 지붕에서 여러 개의 손이 튀어나와 백운의 발목을 붙잡았다.

“아…?”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

백운이 일부러 놓은 건지 잡고 있던 손이 먼저 풀리고.

여러 마리의 병기에 끌려간 백운의 모습이 순식간에 아이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곳을 추가적으로 덮치는 열댓 마리의 병기들까지.

지금 다시 가서 백운을 데리고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 질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아이리가 두 눈을 감았다.

‘미안해요.’

“크라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다가오는 또 다른 병기에.

‘미안합니다….’

몸을 돌린 아이리가 순간이동을 사용했다.

* * *

철푸덕!

“아코!”

공중에서 발목을 잡힌 덕에 얼굴부터 아주 제대로 땅에 처박혔다.

스윽.

고개를 돌려 내 발목을 붙잡은 녀석들을 바라봤다.

멋있는데….?

미래형 첨단 로보트 같은 생김새였다.

거참 별 게 다 있….

쿵쿵쿵쿵쿵쿵!

“꾸어!”

햄버거 놀이라도 하려는 걸까.

추가로 온 열댓 마리의 로봇이 내 몸 위로 겹쳐지며 팔과 어깨, 목, 다리를 차례로 붙잡았다.

“….”

그렇게 맨 밑에 깔려 잠시 가만히 있다가.

“야 나와봐.”

조용히 말을 건넸다.

나머진 괜찮은데 목을 잡은 건 조금 답답했다.

“….”

아무 반응도 없는 녀석들에.

텁.

손을 올려 내 목을 누르고 있는 녀석의 팔을 붙잡았다.

[도윤 - 비전 수리검]

“좀.”

빠각!!

놈의 팔을 반대로 꺾어 박살 낸 후.

“나와 보라고.”

드드드드드득!!

억누르는 놈들을 힘으로 이겨내며 몸을 일으켰다.

“깡통 새끼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