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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404화 (404/473)

404화. 오이먀콘

속도를 줄여가던 열차가 마침내 멈춰 섰다.

방송으론 목적지인 오이먀콘에 도착했다는 안내가 흘러나왔다.

“하아.”

눈을 감은 김정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별일 없었군요.”

내게 고개를 돌린 김정윤이 미소를 머금었다.

“항상 도움만 받는군요.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저도 염치없이 자주 도움받았는데요. 뭘.”

손을 내저으며 짐을 챙겨 일어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안도의 한숨을 내쉰 건 김정윤뿐만이 아니었다.

함께 탄 대산의 인원들뿐만 아니라 다른 칸에서 건너오는 한국 측 인원들도 다행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수색은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심적으론 많이 지쳐버린 모습은 덤이었다.

“열차의 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여러 곳에서 펜을 사용해주신 덕에 많은 데이터가 모였으니까요.”

나지막이 말하는 김정윤에 고개를 끄덕였다.

틈이 날 때마다 열차 여기저기를 돌며 펜으로 공간을 스캔했었다.

마지막으로 들렸던 지하도 마찬가지였다.

풍기는 분위기만 봤을 땐 가장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 같은 장소.

김정윤은 팀원들과 함께 오이먀콘에서 수색을 진행함과 동시에 내가 보내준 데이터로 열차를 조사할 계획이었다.

저벅.

드디어 열리는 열차 문에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와우.”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세계에서 가장 추운 곳이라길래 얼마나 추우려나 궁금했었는데.

입이 절로 벌어질 만큼 더럽게 추웠다.

눈보라가 치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맑은 하늘인데도 기온 자체가 바닥을 찍은 느낌이었다.

“으아…!”

“너무 추운데요?”

“방열팩 좀 더 터뜨려야겠어요.”

내리는 족족 작은 비명이 들려왔다.

도로 열차로 올라가 옷을 더 껴입고 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정말 엄청 춥군요.”

날 따라 내린 김정윤도 헛웃음을 터뜨렸다.

손으론 바쁘게 핫팩을 터뜨려 몸에 넣고 있었다.

“추위는 덜 타시겠지만 몇 개 가져가시죠. 따듯합니다.”

김정윤이 건넨 핫팩을 받아 주머니 여기저기로 넣었다.

서서히 몸으로 퍼지는 온기에 미소가 지어졌다.

홀딱 벗고 다녀도 얼어죽진 않겠지만 추운 건 추운 거였기에 반가울 수 밖에 없는 온기였다.

“이제부턴 어디로 가시나요?”

“당장은 동행할 거 같아요. 가려고 하는 곳이 초반 수색 위치랑은 겹치거든요.”

핸드폰으로 지도를 켰다.

간신히 기억을 되살린 키도가 말해준 위치들.

이곳을 중심으로 아주 오래전 치쿠 족과 교류했던 사람들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찾으신다는 사람들에 관한 특징 같은 건 없나요? 만약 저희가 탐사 중에 흔적을 발견하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음…. 하도 추우니 두꺼운 털옷 입는 건 다 똑같을 테고. 무슨 목걸이를 하고 다닌다고 했어요. 푸른빛을 내는 돌조각을 이어 만든 거요.”

“목걸이라. 저도 당장 떠오르는 건 딱히 없군요.”

“네. 정확한 연도는 몰라도 꽤 오래 전일 거라서요.”

“마을에 도착하면 주민분들께 저번 수색대와 관련한 것들을 좀 물어볼 계획이었습니다. 말씀하신 것도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어쨌든 마을까지는 동행이었다.

“마을까진 가까우니 걸어가겠습니다! 절 따라오시죠!”

커다란 깃발을 든 러시아 인원이 앞장서고.

그 뒤를 따라 한국 인원들이 차례로 걸음을 옮겼다.

생각보다 조용하네.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분명 러시아도 피바다가 된 지하실을 발견했을 텐데 아무런 대응이 없었다.

돌려보낼 생각은 없더라도 한국에 1차 보고를 할 때까지는 이빨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심산 같았다.

인내심이 조금은 있으신 편이고.

열차에서 내리는 옥시나를 바라봤다.

성격만 봤을 땐 노발대발하면서 폭발할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대산도 출발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대산이 행렬에 참가했다.

열차에서 칸은 중간쯤이었는데 마을로 향하는 행렬에선 꼬리 부분이었다.

한동안 걷고 있자 뒤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대산과 걸음을 맞춘 러시아 인원들이 이것저것 물어온 것 같았다.

저건 또 왜 이쪽으로 오냐.

노린 건지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옥시나가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곁눈질로 바라보며 저리 꺼지라고 기도하길 잠시.

바로 옆까지 걸어온 옥시나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평소와 달리 옥시나는 잔뜩 힘을 뺀 상태였다.

재수없게 눈웃음까지 지어 보인 옥시나가 말을 이었다.

“대산에서 오신 연구원이시죠? 분명 이름이….”

“김강산입니다.”

“아 네. 기억나네요.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셨다고.”

“이제 3년 차니까 완전 신입이죠. 아직도 러시아에 있다는 게 얼떨떨하네요.”

“그래도 좋은 기회잖아요. 러시아에서 여러 가지를 볼 기회일 테니까요.”

“그렇죠. 하하.”

머리를 긁적이며 웃고 있자 고개를 든 옥시나가 날 정면으로 바라봤다.

“사실 저도 이런저런 유물에 관심이 많아서요. 전문가분들께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취미가 겹치는 거 같아 너무 반갑네요. 제가 평소에 궁금해하던 것들이 있는데 좀 물어봐도 될까요?”

안 어울리게 왜 착한 척하며 말을 거나 했는데.

간단한 테스트를 해보려는 모양이었다.

이러는 걸 봤을 때 옥시나는 대산에 파악하지 못한 전력이 있다는 걸 눈치챈 듯했다.

“그럼요. 아직 모르는 게 많지만 아는 선에서 열심히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티는 안 내고 있지만 옆에서 걷고 있는 김정윤은 약간 긴장한 것 같았다.

“제가 궁금했던 건….”

미소를 지은 옥시나가 질문을 시작했다.

꽤나 알아보고 온 건지, 아니면 진짜 유물 관련된 취미가 있는 건지 질문들이 제법 날카로웠다.

실제 관련된 일을 하지 않으면 모를 만한 것들이었다.

“아 다행이네요. 제가 아는 것들이라서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질문에 막힘 없이 답변해나갔다.

지냈던 곳이 골방이긴 해도 회귀 전엔 나름 유물관에서 잔뼈가 굵은 나였다.

웬만큼 이상한 질문이 아니라면 전부 답변이 가능했다.

“정말 잘 알고 계시네요.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고마워요.”

짧은 듯하면서도 길었던 질의응답 시간이 끝나고.

만족한 건지 미소 지은 옥시나가 내게서 멀어져 갔다.

옆에서 작은 한숨을 소리가 들려왔다.

질문을 받은 나보다 듣고 있던 김정윤이 더 긴장한 모습이었다.

“어떻게 그런 것까지 전부…?”

토끼 눈을 한 김정윤이 날 바라봤다.

무슨 실시간으로 정보를 알려주는 AI라도 있느냐는 눈이었다.

“대산 단골인데 이 정도는 기본이죠.”

대충 둘러댄 후 양손의 엄지를 치켜세웠다.

“오이먀콘입니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새하얀 눈뿐인 공간에서 따듯해 보이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

근방에서 유일한 마을인 오이먀콘이었다.

* * *

따듯한 차를 홀짝이며 마을을 거닐었다.

대부분의 한국과 러시아 인원들은 마을 쪽에서 준비해 준 체육관으로 들어가 몸을 녹이고 있었다.

“여기서 어떻게 사는 거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 홀짝이지도 않았는데 뜨끈했던 차는 나오자마자 차갑게 식어버리고 말았다.

눈이 닿는 마을 곳곳도 전부 얼어붙은 상태였고 말이다.

공간 자체가 거대한 냉동고 그 자체였다.

“자넨 안 추운가보군.”

작은 집 옆에서 무언가를 옮기던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왔다.

새하얀 눈썹에 눈이 가려진 할아버지였다.

앞머리로 눈을 가리고 있는 나와 묘하게 비슷한 느낌이었다.

“원래 좀 튼튼해서요. 도와드릴까요?”

가까이 다가가 짐 옮기는 걸 거들어주었다.

어디선가 가져온 장작과 생필품이었다.

“고맙군. 한국에서 온 건가?”

“네. 수색대와 함께 왔어요. 혼자 사시는 건가요? 옮길 게 꽤 많은데 매번 힘드시겠어요.”

“원래는 혼자 옮기지 않았다네. 내가 뭐라도 들려고 하면 바로 뛰어나와 도와주던 아들놈이 있었거든. 지금 도와주러 온 자네처럼 말이야.”

“오늘은 안 계신가 보네요.”

“죽었다네.”

장작을 안으로 들여놓던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죄송합니다…!”

“이젠 잊을 만큼 오래 지난 일이니 괜찮다네. 딱 자네 나이 쯤이었어. 죽는 순간까지도 개방을 못 해서 계속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지.”

“힘드셨겠어요. 제 주변에도 한 명 있었거든요. 늦게까지 개방하지 못한 사람이.”

훨씬 늦은 나이까지 개방하지 못했던 회귀 전의 내가 떠올랐다.

모두가 하는 걸 나만 하지 못했다는 상실감은 삶의 모든 걸 우울하게 만들 정도로 견디기 힘든 녀석이었다.

“속은 모르겠지만 겉으론 전혀 티 내지 않았었어. 매일 밝게 웃으며 지냈었지.”

짐을 마저 옮긴 할아버지가 허리를 곧게 폈다.

“난 틈이 날 때마다 오이먀콘을 떠나라고 했었다네. 넓은 세상으로 나가면 개방 조건을 알아낼 가능성도 커질 테니까. 하지만 아들은 떠나지 않았지. 평생 나와 함께 이곳에서 살겠다고 말이야.”

여기까지 말한 할아버지가 잠시 쉬더니 날 바라봤다.

“자넨 이전에 왔던 수색대를 찾으러 온 거라고?”

“예. 그것도 있고…. 옛날에 이 부근에서 살았던 부족을 찾고 있어요.”

“부족?”

“네. 아마 여기서 더 들어가야 살던 구역이긴 할 텐데.”

할아버지에게 키도가 말했던 부족의 특징을 말해주었다.

대략적인 생김새와 푸른 돌조각 목걸이에 관한 내용이었다.

“푸른 돌조각 목걸이라면 라피타군.”

“넵?”

깜짝 놀라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별 기대 없이 던진 말이었다.

답변이 돌아올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구체적인 부족 이름까지 나오다니.

“오이먀콘에서 나이 좀 먹은 사람이라면 다 알 만한 이름이지. 우리의 선조기도 하니까.”

곧장 다가가 할아버지의 손을 움켜쥐었다.

“그분들 어디에 있는지 아시나요?”

“어, 어. 알긴 알지. 자네가 말한대로 더 깊숙한 곳이라네. 웬만해선 사람과 만나는 걸 피했었거든. 하지만…. 그들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굳이 가지 않는 걸 추천하네. 헛걸음일 게야. 숫자가 줄며 간신히 부족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들었지만 그마저도 못 본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거든. 오이먀콘 사람들은 막연히 생각하고 있다네. 라피타 사람들은 점점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다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죽었을 거라고 말이야.”

아니길 바랐지만 어느 정도 가능성을 열어두고 오긴 했었다.

키도가 사람들과 교류했던 것도 꽤 오래 전 일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라피타 족이 더 들어갔다는 곳 위치 좀 알 수 있을까요?”

키도가 알려줬던 지점이 찍힌 지도를 내밀었다.

잠시 지도를 살피더니 내가 찍어놓은 지점에서 선을 쭉 그어 주는 할아버지.

“내 기억이 맞다면 이쪽으로 움직였을 거야.”

할아버지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바라봤다.

“이곳은 정말 추위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죽음의 땅이야. 생명체란 게 존재할 수 없는 곳이거든. 만약 있다면 추위에 강한 데몬 뿐이겠지.”

“괜찮습니다. 저도 나름 한 추위 견디거든요.”

지도를 저장하며 미소를 그렸다.

그곳에 라피타 족이 있든 없든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부족이 없더라도 키도가 말했던 동굴이라도 찾아야 했다.

더 옮길 짐이 없나 한 번 살핀 후 꾸벅 인사를 건넸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할아버지에 빙글 몸을 돌렸다.

굶어 죽으면 안 되니 먹을 걸 좀 챙겨 떠날 생각이었다.

“이곳으로 돌아오지 말게.”

“네?”

뜻밖의 이야기에 걸음을 멈추고 할아버지를 돌아봤다.

“다시 돌아오지 말고….”

무언가 한차례 말을 삼킨 듯한 할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멀리 도망치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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