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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415화 (415/473)

415화. 심장을 향해

머리 옆으로 땀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임솔빈은 여러분 놀랐죠!? 라는 느낌으로 정체를 깜짝 공개했었다.

러시아에서 한국 정부로 숨어든 연구원이며 어떻게 지금까지 들키지 않고 숨어있었는지 등을 줄줄이 읊었던 임솔빈.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임솔빈이 아니었다.

왜냐면 그렇게 정체를 밝힌 지 10초도 되지 않아 목숨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대산의 기둥.

널브러진 임솔빈의 시체 옆엔 작은 키의 여자가 서 있었다.

연한 파스텔색 머리를 늘어뜨린 여자는 눈 아래로 아주 진한 다크써클이 있었다.

“하나도 안 궁금한데 시끄럽게 굴긴.”

혼자 나지막이 중얼거린 여자가 고개를 흔들었다.

뭐랄까.

약간 참을성이 없다고 해야 할지 기둥의 행동은 정말 빨랐었다.

내가 임솔빈을 향해 저런 나쁜 년이라는 욕을 채 완성하기도 전이었다.

“우미희가 기둥…?”

사실 가장 많은 충격을 받은 건 김정윤이었다.

우미희는 탐사실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직원이었다.

내가 방문할 때마다 조용히 구석에서 자료를 찾아줬던 우미희.

항상 잠을 못 잔 듯 피곤한 얼굴이라 일이 빡세구나 했었는데 기둥이었다니.

임솔빈이 러시아에서 심은 연구인이었다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놀라웠다.

“커억…?!”

나머지 직원들도 마찬가지로 입을 쩍 벌린 채 우미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항상 작은 체구에 말이 없는 우미희를 동생처럼 챙겨주던 사람들이었다.

“혹시 러시아 소속인 분 계신가요?”

우미희가 물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까 들었을 때도 느꼈지만 특이한 목소리였다.

속삭이듯 작지만 그곳엔 많은 게 담겨 있었다.

만사가 귀찮다는 듯한 귀차니즘과 울적함 등등 이었다.

“있으면 빨리 나와 주세요. 두세 번 하기 귀찮으니까.”

한동안 정적이 계속되자 고개를 끄덕인 우미희가 나와 김정윤 쪽으로 걸어왔다.

“실장님. 저 이제 짤리는 건가요?”

“기둥은 회장님만 짜를 수 있는데…?”

“다행이네요. 탐사실 구석탱이가 제일 편안하거든요. 몰래 자기도 좋고.”

한차례 하품한 우미희가 이번엔 내 얼굴을 올려다봤다.

잠시 멍하니 쳐다보는가 싶더니 작게 웃음을 터뜨리는 우미희.

“바가지 머리도 잘 어울려요.”

뜬금없는 말을 한 우미희가 공당 출구 쪽으로 걸어가 몸을 앉혔다.

기둥이란 건 놀랍지만 이전과 달라진 건 없었다.

대산에 놀러 갔을 때도 머리가 잘 어울린다는 등 뜬금없는 말을 했던 우미희였다.

“저쪽은 완전 바짝 얼었는데요.”

그나마 같은 대산 소속인 사람들은 놀라고 말았지만 정부 쪽 사람들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우미희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해가 가긴 했다.

갑자기 뚜벅뚜벅 걸어 나오더니 그림자에서 무언가 튀어나와 임솔빈을 죽여버렸으니.

저러는 게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 아까 말한대로 자료 수집하자고.”

“네, 네…!”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김정윤의 말에 대산 인원들이 공당으로 흩어졌다.

“정윤 님. 전 밖으로 나가볼게요. 이제 곧 태랑 님이 도착할 거 같아서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조사가 끝나도 제가 다시 올 때까진 밖으로 나오지 마세요.”

공당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깊은 동굴임에도 데몬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으로선 용병과 군, 기둥이 지키고 있는 이곳이 가장 안전했다.

그에 반해 바깥은 잠시 후에 전쟁터가 될 것이었고 말이다.

“예.”

크게 숨을 내쉰 김정윤이 미소를 그리며 날 바라봤다.

“말씀하신대로 얌전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출구 쪽으로 걸어갔다.

“바이 바이.”

우미희가 뜬금없이 손을 흔들었다.

이젠 숨길 필요가 없는지 우미희의 그림자도 엇박자로 함께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 안녕.”

어색하게 손을 흔들고 공당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오이먀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설원.

대기 중인 러시아 인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열차가 들어옵니다!”

앉아있던 옥시나도 몸을 일으켰다.

육안으로도 보이고 있었다.

무기왕을 태운 채 저 멀리서 다가오는 열차가 말이다.

‘역시 부족했나.’

옥시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몇 시간 전부터 열차와의 연락이 완전히 끊겼었다.

기관장이 무기왕을 처리하겠다고 보고한 직후였다.

그리고 오이먀콘으로 다가오는 열차의 외관은 엉망진창이었다.

복구가 아니라 새로 다시 만들어야 할 정도였다.

‘다행히 본체는 멀쩡한 거 같군.’

반파됐음에도 열차가 이동하는덴 지장이 없었다.

애초에 사람의 기술로 움직이는 열차가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원 전투 준비.”

옥시나의 나지막한 명령에 대기 중이던 인원들이 무기를 꺼내 들었다.

이윽고 옥시나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열차가 멈춰 서고 그곳으로 대형 라이트가 쏘아졌다.

가면을 쓴 남자가 열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한 상태였다.

‘부상도 못 입혔다고…?’

옥시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기관장이나 다른 인원은 그렇다 치더라도 열차 안엔 1급 헌터 이바노프가 타 있었다.

무기왕을 완전히 잡는 건 불가능하더라도 유의미한 대미지 정도는 줄 거라 기대했었다.

기대와 달리 완전히 실패한 모양이었고 말이다.

“많이도 모여 있군.”

“마지막 여행은 즐거웠나요? 무기왕.”

애써 진정하며 묻는 옥시나에 남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마지막 여행이라…. 그나저나 날 뭐라고 부르는 거지? 무기왕이라고?”

의미심장한 말에 옥시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남자가 천천히 쓰고 있던 가면을 벗었다.

“!!!”

동시에 옥시나의 눈이 커졌다.

무기왕이 아니었다.

천일과 유지열이 죽어나간 섬에서 만났던 1급 헌터 기태랑이었다.

“이 약소국 새끼들이!!”

상황을 파악한 옥시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겁대가리도 없이! 이대로 넘어갈 거 같아?! 지금 러시아를 상대로 국가적 거짓말을 한 거라고!”

“사람을 다짜고짜 죽이려고 든 놈들이 목소리는 참 크군. 원래 그렇게 염치가 없나?”

“입 닥쳐! 다이아몬드라 안 죽을 거라 생각하고 무기왕을 대신해 혼자 기어온 거냐!? 후회하게 해주지!”

“대신 열차 탄 건 맞는데… 대신해서 혼자 온 건 아니야.”

“뭐?”

화가 나 얼굴이 붉어진 옥시나에 기태랑이 재밌다는 듯 미소를 머금었다.

“지난번 섬에서 직접 만났으면서도 몰랐다니. 너도 참 감이 없군.”

“지금 무슨 소리를….”

“인천공항에서부터 쭉 같이 있었으면서도 모르다니 말이야.”

“!?”

의미를 알 수 없는 기태랑의 말에 당황하고 있길 잠시.

옥시나의 머리 위로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가 싶더니 본능이 경고하기 시작했다.

당장 도망치라고 말이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옥시나가 불길함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언제부터 와있었던 걸까.

라이트가 닿지 않는 범위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러시아 전력이 위치한 곳의 상공.

그곳에 무기왕이 있었다.

짙은 불길함을 내뿜는 검은 연기의 날개와 함께 말이다.

* * *

“너…!!”

눈으로 욕한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옥시나가 부릅뜬 눈으로 날 노려봤다.

그러든가 말든가.

러시아 놈들이 반응하기 전에 옥시나 곁으로 다가간 후.

“!?”

빠아아악!

그대로 옥시나의 죽빵을 내리꽂았다.

이빨이 우수수 박살나더니 그대로 눈밭으로 쓰러진 옥시나.

최대한 참을 인을 새기며 힘 조절을 한 터라 숨은 잘 붙어있었다.

물어볼 게 많았기에 당장 죽일 순 없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두기에도 열불이 터져 내린 선택이었다.

“후우우우! 속이 다 시원하네.”

“이 개자식이!”

“옥시나 님!!”

단순한 대사는 아닌 모양이었다.

높은 급수의 러시아 놈들이 이렇게까지 지키려는 걸 보면 말이다.

놈들보다 한발 빨리 연기를 터뜨리며 하늘로 솟아올랐다.

“태랑 님!”

기태랑 쪽으로 손을 휙휙 흔들어 보였다.

웃으며 손을 슬쩍 들어 올리는 걸로 인사를 대신하는 기태랑.

열차는 박살났지만 예상한대로 기태랑은 작은 상처 하나 없이 아주 멀쩡했다.

꿀렁.

“!?”

이제 러시아 놈들을 박살내려는 찰나.

열차가 스스로 움직이는가 싶더니 거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숙적!!!”

기둥 옆에서 들었던 거대 데몬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뭐랄까.

“너였구나.”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들었다.

저 새끼여서 다행이란 묘한 감각이었다.

“무기왕!”

옆에서 러시아 헌터가 달려들었지만 대응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도망갈세라 곧장 열차 쪽으로 방향을 틀어 연기를 터뜨렸다.

내가 다가오자 열차에서 찐득한 검은 액체로 형태를 바꾼 데몬.

녀석이 눈 아래로 파고들어 모습을 감추는가 싶더니.

푸화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악!”

“끄…어….”

눈 아래서 수천 줄기의 촉수가 뿜어져 나왔다.

진형을 잡고 대기 중이던 러시아 측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높은 급수의 헌터들을 제외하곤 쉴 새 없이 날아드는 촉수에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리고 만 것이었다.

“밑에 뭐가 있구나 했는데 저런 거였다니.”

혀를 차는 기태랑 옆으로 천천히 착지했다.

“아마 커질 거예요. 흡수하면서 힘을 얻는 타입이거든요.”

얘기가 끝나기 무섭게 데몬은 사로잡은 러시아 헌터들을 빨아먹기 시작했다.

명줄 하나는 질긴 건지 옥시나는 다른 헌터에게 구해져 자리를 뜨고 있었다.

“숙적…. 죽이기 위해 기다렸다…!!”

오이먀콘으로 오며 조금 걱정했었다.

다시 한기를 되찾은 설원에 저 자식이 겁을 집어먹고 도망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놈은 내 걱정과는 반대의 선택지를 골랐다.

도망치는 대신 자신의 숙적과 함께하게 된 날 죽이기로 말이다.

“저놈이 말하는 숙적이 설마…?”

날 돌아보는 기태랑에 맞다는 의미로 미소를 지었다.

“잠깐 다녀올게요.”

다시 날아올라 데몬의 정면으로 다가갔다.

“죽… 인다!!”

기다렸다는 듯이 날아드는 공격들을 연기로 붙잡아놨다.

“크르…!?”

“마지막으로 생긴 꼬라지 좀 보러 왔다.”

날 노려보는 붉은 눈동자를 보며 말을 이었다.

“내 친구 팔 날린 새끼가 누군지 말이야.”

“크라아아아악!”

놈은 포기하지 않고 액체를 촉수를 비롯한 갖가지 무기 형태로 바꾸며 뻗어왔다.

오는 족족 연기에 붙잡히고 있었지만 말이다.

“대가를 치러야겠지?”

“넌… 나 죽일 수… 없다!!”

우렁차게 울부짖는 녀석에.

“이번엔.”

[쿠훌린 - 게이볼그]

창을 꺼내며 미소를 그렸다.

“아닐걸.”

전과 달리 지금은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 얍삽하게 눈 아래로 숨겨놓은 녀석의 심장이 말이다.

“안 그래도 힘든 내 친구의 팔을 날린 죄.”

정면이 아닌 아래쪽으로 창을 겨누었다.

“…!!!”

내 의도를 알아챈 건지 데몬이 크게 동요했다.

동시에 심장이 있는 곳으로 내달리기 시작한 녀석.

모아뒀던 연기를 단번에 터뜨려 놈을 순식간에 따라잡았다.

그리고 녀석을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

“사형.”

나지막이 판결을 읊어주었다.

[이카로스 칼데아 윙 & 쿠훌린 게이볼그]

칼데아의 연기가 핏빛을 띤 게이볼그를 감싸나갔다.

핏빛과 검읜 연기가 한데 뒤섞이며 오묘한 빛이 만들어졌다.

“못… 간다!!!”

크게 포효한 데몬이 액체를 모조리 쏟아부어 길을 가로막았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수천 줄기의 촉수가 뻗어왔지만 상관없었다.

콰가가가가가가!

창에 두른 연기로 검은 액체를 완전히 뚫어낸 후.

[심장을 찢어내는 흑연의 창]

온 힘을 다해.

녀석의 심장으로 창을 내리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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