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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416화 (416/473)

416화. 최강 전력 도착

창끝에 닿은 심장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잘게 찢어지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심장.

“숙… 적….”

날 필사적으로 막아서던 데몬도 마찬가지였다.

심장이 부서지며 더 이상 형태를 유지할 수 없게 된 모양이었다.

원통하다는 말을 남기고 데몬의 몸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사방에서 떨어지는 검은 액체의 비.

우산 대신 칼데아의 연기로 머리 위를 가렸다.

깊은 곳에도 숨겨놨네.

눈 아래 숨겨져 있던 건 심장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용도로 보이는 여러 장기도 함께였다.

심장이 사라지며 마찬가지로 무너져 내리는 중이었고 말이다.

“아, 안돼…!!”

설원으로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연기를 거둬내고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옥시나가 주저앉아 있었다.

눈밭으로 흩어진 검은 액체를 들어 올리며 안된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는 옥시나.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옥시나가 죽일 듯한 눈으로 날 노려봤다.

“이 미친 새끼! 이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는 알고 그딴 짓을 한 거냐! 내가 원하는 어떤 형태로도 변환이 가능한 존재였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신이었단 말이다!”

얘도 제정신이 아니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조금 전에 러시아 전력까지 휩쓸어버린 데몬이었다.

심지어 옥시나 자신도 죽을 뻔했고 말이다.

그런데도 저런 반응이라니 혀가 내둘러지는 수준이었다.

안 되겠네.

아까 한 대 얻어맞아 얼굴 한쪽이 반파되었음에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불균형 때문에 그런 것 같으니 밸런스를 맞춰줘야 할 것 같았다.

“뭣들 하는 거야!! 지금 당장 저 새끼 안 죽이고!!”

옥시나도 가만히 처맞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주변에 살아남은 러시아 인원들에게 날 죽이라며 소리 지르고 있었다.

“맞네. 원래 너네 죽이려고 했었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데몬에 한눈이 팔려 잠시 잊고 있었다.

어느새 다가온 기태랑도 손을 풀며 나란히 걸음을 내디뎠다.

“뭐해!? 멀뚱멀뚱 서서!?”

옥시나가 눈동자로 핏대를 세웠다.

열을 올리는 옥시나와 달리 러시아 전력은 주춤거리는 중이었다.

데몬에게 전력의 절반 이상이 순식간에 사라진 상태였다.

안 그래도 사기가 떨어졌을 텐데 앞에선 완벽한 컨디션인 나와 기태랑이 다가오고 있으니 저러는 것도 이해가 됐다.

“모스크바에 돌던 소문이 사실이었군.”

“…!”

안 온다면 이쪽에서 가줘야지 하며 도약하려는 순간.

오이먀콘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라크.

일단 기태랑과 걸음을 멈추었다.

금세 러시아 전력 측으로 걸어가 옥시나를 내려다보는 시라크.

시라크를 발견한 옥시나의 얼굴로 환한 미소가 어렸다.

“시라크 장군!”

“거, 검은 뱀…!”

“됐다! 이길 수 있어!”

주변에 있던 러시아 인원들도 갑자기 전의가 불타기 시작했다.

방금까진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이젠 아니란 반응이었다.

“눈앞에 있는 게 무기왕입니다! 당장 잡아 죽이세요! 지금까지 연락이 두절됐던 건 눈 감아드리겠습니다!”

옆에선 기태랑이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러시아의 최강 전력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네.”

나도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유명한 이야기가 있었다.

러시아엔 적을 모조리 삼켜버리는 검은 뱀이 산다는 이야기.

그 뱀은 너무 강력해 엄청난 땅 크기를 자랑하는 러시아에서도 최강으로 꼽힌다고 알려져 있었다.

동영상이나 매체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아 실존 여부를 두고 항상 갑론을박이 벌어졌던 존재이기도 했다.

역시 시라크였구만.

솔직히 처음 시라크를 봤을 땐 눈치채지 못했었다.

회귀 전에도 러시아의 검은 뱀은 소문만 무성할 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음 기둥 앞에서 시라크의 능력을 보며 알아차렸었다.

소문이 돌고도 남을 만큼 시라크는 충분히 강하기도 했고 말이다.

“태랑 님은 보신 적 있나요?”

“아니. 나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야. 소문만 무성했었으니까. 그런데 저쪽 분위기가 묘하군.”

시라크는 주변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고 차가운 눈으로 옥시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데몬과 거래하고 사람을 제물로 바친다는 소문, 사실인가? 옥시나 연구 위원장.”

예상했던 대로 옥시나는 단순한 대사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지금 시라크가 부른 호칭 때문에 러시아 헌터들은 필사적으로 옥시나를 지키려 했던 것 같았다.

“그게 지금 뭐가 중요해!! 눈앞에 있는 무기왕부터 죽이라고!”

옥시나가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시라크에게 건네었다.

멀리서 봤을 땐 커다란 직인이 찍힌 것이 공문서 비슷한 것 같았다.

“당신의 상관인 군 총수의 직인이다! 나한테 전권 일임했으니까 당신은 내 명령을 들어야 돼!”

한참 씩씩거리던 옥시나가 손을 들어 날 가리켰다.

“나라의 커다란 자산을 날려버린 저 새끼를 당장 죽이라고!!”

잠시 침묵하며 옥시나를 바라보는 시라크.

시라크가 들고 있던 종이를 구겨 뒤로 휙 던져버렸다.

“거절한다.”

“뭐? 지, 지금 뭐라고…?”

네 글자였지만 충분했다.

시라크의 도착 이후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처럼 굴던 러시아 진영에 찬물이 끼얹어지는 데는 말이다.

옥시나가 잘 안 들린다고 생각해서인지 시라크가 몸을 숙였다.

“거절한다고 말했다. 옥시나 연구 위원장. 아니지, 실험에 정신이 나가 데몬한테 영혼을 판 년이라고 불러야 하나?”

“이유 없는 항명은 즉결 처형이란 걸 모르는 거냐!!”

“이유가 없긴 왜 없어. 내가 거절하는 이유는 간단해.”

고개를 든 시라크가 날 바라봤다.

“못 이기거든.”

“…?”

벙찐 옥시나와 달리 날 쳐다보며 미소를 지은 시라크가 입을 열었다.

“난 못 이기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

“군 장성이란 인간이 지금 싸워보지도 않고….”

“100%.”

“!?”

“100% 지니까 안 싸우는 거다.”

어깨를 으쓱인 시라크가 주변을 둘러봤다.

시라크와 옥시나의 대화에 어느새 러시아 전력은 힘이 쭉 빠진 모양새였다.

“그쪽들이랑 난 소속이 다르니 싸우든 말든 자유야. 다만, 굳이란 생각이 드네. 정신 나간 애 한 명 때문에 굳이 목숨을 버린다고?”

러시아에서도 시라크가 가지는 존재감은 큰 것 같았다.

들고 있던 무기까지 늘어뜨리며 고개를 숙이는 헌터들.

더 이상 싸울 생각은 없어 보였다.

“물론 그쪽들 살려둘지 말지를 정하는 건 내가 아니야.”

시라크가 나와 기태랑 쪽으로 걸어왔다.

조금 전 옥시나에게 말할 때와는 표정 자체가 달랐다.

어느새 시라크의 얼굴은 라피타 마을에서 함께 지냈을 때로 돌아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기태랑 1급 헌터님. 러시아 소속…. 음, 소속은 아니고 종종 일 받아서 싸우는 시라크라고 합니다. 유명한 분을 여기서 뵙네요.”

“반갑습니다.”

자리와 어울리지 않는 화기애애한 인사를 주고받는 기태랑과 시라크.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시라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미안하구만. 추한 꼴을 보여서.”

“장군인 줄은 몰랐는데 다르게 보이네.”

“난 그냥 종종 싸워 준 것뿐인데 달아주더라고. 그거 때문인지 명령해도 된다고 착각한 모양이고. 그나저나.”

얼굴을 긁적인 시라크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이쯤에서 봐주는 게 어때? 지금 와있는 저 헌터들도 일단은 아무것도 모르고 불려온 거긴 하거든.”

어느 정도 짐작은 했었다.

데몬의 등장부터 옥시나의 반응까지.

러시아 헌터들은 상황이 대체 어떻게 굴러가는 건가 당황스러워하고 있었다.

“물론 이 모든 일의 원흉인 저 정신 나간 대사는 예외고. 또 모스크바에서 이번 무기왕 작전에 연관된 놈들은 내가 직접 찾아내서 박살 낼게. 약속한다.”

사실 고민하고 있었다.

관련된 놈들을 어떻게 다 찾아내 족칠까 하고 말이다.

마음 같아선 직접 가고 싶었지만 모스크바로 내가 갔다간 그야말로 한국 대 러시아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걸 믿을만한 시라크가 해준다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거기다 러시아에 도착한 후 한국 측 인원은 단 한 명도 다치거나 하지 않았다.

반대로 러시아 쪽은 셀 수 없이 많이 죽은 상태였고 말이다.

단지.

“우린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궁금해. 여기 왔던 한국 수색대는 어떻게 된 건지가 제일 중요하고.”

“당연하지. 그런데 관련된 사람은 대부분 죽고 저거만 남은 거 같고…. 상황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악쓰는 거 보니 쉽게 말할 거 같지가 않네.”

턱을 문지르며 무언가 생각하던 시라크가 손가락을 튕겼다.

“저거 한국으로 데려갈래?”

“응?”

“내 생각에 옥시나는 러시아에 있으면 3일도 못 넘기고 죽을 거야. 그럼 여기서 저 열차랑 관련된 일은 다 묻혀버릴 테니까.”

시라크가 간단히 이야기해주었다.

러시아 정부라고 다 또라이만 있는 건 아니며 이번 무기왕 작전도 극구 반대했던 이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옥시나가 해 오던 일도 워낙 극비리에 진행된 터라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고 말이다.

여기에 옥시나와 그 뒤의 세력이 이번 무기왕 작전으로 선을 넘어가자 반대하던 세력에서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들에게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옥시나는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였다.

“고문해서 정보 다 알아내고 바다에 버리든 말든 그건 마음대로 해.”

“넌 그래도 괜찮은 거야?”

미소 지은 시라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열불 터지겠지만 어쩌겠어? 나랑 싸울 것도 아니고.”

상상 이상의 엄청난 무대뽀였다.

러시아 정부 측에선 골치 아플 수 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이렇게 화끈하다니.

옆에서 웃음을 터뜨린 기태랑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국의 누구랑 비슷한 느낌이네. 결은 좀 다르지만.”

“저는 말은 잘 듣는 편… 아닌가.”

긁적이며 머리를 굴려보았다.

확실히 옥시나를 한국으로 데려가면 진실을 알아내기는 훨씬 수월할 것 같았다.

당장 대산만 해도 최리아가 있었다.

최리아의 능력이라면 아무리 고집불통인 옥시나라도 입을 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쁘지 않네.

들어야 하는 걸 모두 불게 해 러시아를 완전히 등지게 한 뒤 돌려 보내줄 생각이었다.

배신자를 죽이기 위해 이를 갈고 있는 사자 우리로 말이다.

지금 바로 죽이는 것보단 이쪽이 옥시나에게 있어서도 더 지옥일 터였다.

“좋아! 끌고 갈게!”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내가 준비해 줄게. 모스크바에서 움직이기 전에 훨씬 더 빨리.”

“자, 잠깐!”

자신의 처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걸까.

주춤거리며 일어나던 옥시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네가 무슨 권한으로 그걸 결정해! 당장 전화기 가져와! 안 들려!? 야!!”

옥시나가 악을 쓰며 주위에 있는 헌터들에게 달려들었다.

“날 모스크바로 데려가! 엄청난 보상을 약속할 테니까! 대답해! 대답 안 해!?”

헌터들은 고개를 돌려 그런 옥시나를 외면하고 있었다.

이미 속으로 계산을 마친 것이었다.

여기서 시라크를 거역하고 옥시나를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이 없기도 하거니와 상황이 덮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이상 옥시나를 지탱하던 끈도 이미 끊어진 것이나 마찬가지.

내다 버려질 게 확실한 옥시나에게 협력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바로 준비하자고. 나도 연락해놓을 테니까.”

“오케이!”

우렁차게 대답하고 기태랑을 돌아봤다.

“왜?”

“제가 그… 잠깐 들렀다 올 곳이 있어서요.”

기태랑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으니까 갔다 와. 내가 떠날 준비해놓을 테니까.”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이고 오이먀콘 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어디 가 이 새끼야!! 이리 와!!”

그 와중에도 지나치는 내게 악을 쓰는 옥시나에.

쩌억!

반대쪽 얼굴로 주먹을 꽂아주었다.

그제야 엉굴의 밸런스가 맞춰지며 잠잠해진 옥시나.

“각오해라.”

축 늘어진 옥시나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대가를 치러야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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