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8화. 순대국밥
“스으으으읍!”
비행기에서 내린 직후.
드디어 도착했구나란 생각에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으음…!”
그리고 곧장 마스크를 착용했다.
엄청난 미세먼지였다.
상쾌한 공기가 들어오길 바랐는데 욕심이었던 모양이다.
다들 부지런하네.
활주로엔 여러 대의 차량이 대기 중이었다.
소속도 제각각이었는데 크게 보면 정부와 대산, 헌터청 정도로 나눠질 것 같았다.
“백운 님.”
한쪽에 모여 무언가 의논하던 김정윤이 다가왔다.
“대산은 정부 측 인원과 옥시나를 데리고 이동할 예정입니다. 백운 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전 헌터청 차량 타고 돌아갈게요.”
“알겠습니다. 조사 결과가 나오면 바로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날 바라보던 김정윤이 미소와 함께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번에도 감사했습니다.”
“저도요!”
덩달아 고개를 숙이자 웃어 보인 김정윤이 빙글 몸을 돌렸다.
너머에선 대산 직원들도 내 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꾸벅이고 있었다.
“조심히 가세요.”
아직 멀지 않은 곳엔 정부 측 인원이 남아있었기에.
작은 동작으로 슬쩍 손을 흔들며 입 모양으로 인사를 건넸다.
“가자.”
“옙.”
기태랑을 따라 대기 중인 헌터청 차로 걸어갔다.
VIP 전용 차량인지 아주 튼튼해 보이는 녀석이었다.
앞 좌석 문이 열리더니 강태황이 모습을 드러냈다.
커다란 차량과 잘 어울리는 시원시원한 덩치였다.
“둘 다 고생했어.”
“고생은요. 태랑 님이 고생하셨죠. 하하….”
머리를 긁적이는 사이 뒷좌석 문이 열렸다.
강태황 장관을 운전시키고 뒤에서 내리는 사람이라니.
몰래 대통령이라도 온 걸까 싶어 마른침을 삼켰다.
번쩍.
당연하겠지만 대통령은 아니었다.
내가 본 옷 중 햇빛을 가장 강하게 반사하는 은갈치 정장.
비광이 반짝이는 은색 구두를 또각거리며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별일 없어 보이는구만! 그런데 뭐지? 그 실망스러운 표정은?”
“장관님이 운전하시는 차 뒷자리라 귀한 사람이라도 타고 있는 줄 알았어요.”
“나도 귀한 사람인데?”
“음… 네. 그건 그렇고 그래도 되는 거예요? 비광 님이 운전하고 장관님이 뒤에 타는 게 정상 아닌가 해서요.”
이야기를 듣던 강태황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워낙 싸가지가 없어야지. 당연하다는 듯이 뒤에 타더군.”
“거짓말하지 맙시다. 운전하는 거 좋아한다고 앞에 탔으면서.”
“이거 장관한테 말대꾸하는 거 봐. 답도 없다니까. 기강이란 게 없어. 옛날엔 내 얼굴도 똑바로 못 쳐다보던 놈이었는데.”
어깨를 으쓱인 강태황이 차로 걸어가 운전석으로 몸을 실었다.
그런 강태황을 멍하니 보던 비광이 목소리를 낮췄다.
“다 거짓말이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난 장관님 얼굴 똑바로 쳐다봤어.”
끝까지 지지 않으려고 작게 속삭이고 차로 걸어가는 비광.
기태랑과 함께 차로 걸어가다 난 조수석으로 호다닥 몸을 날렸다.
뒤에서 다리를 꼬고 있는 비광과 달리 앞에서 음악 선곡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차기 장관이라도 할 셈이냐.”
“거절하진 않겠습니다.”
비광의 비아냥을 넘기는 사이 차가 부드럽게 출발했다.
“비광 님 생각보다 안전을 중요시하시네요. 뒷좌석에서 벨트에 손잡이까지 잡고 계시… 어?”
이제 보니 비광 뿐만이 아니었다.
제일 다칠 일 없는 기태랑도 벨트를 매고 두 손으로 손잡이 파지를 완료한 상태였다.
다들 왜 이러나 벙쪄 있는 사이.
부드럽게 달리던 차량이 공항을 벗어나자마자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몸이 붕 뜨는 느낌에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차 주위의 사물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달리는 건지 날아가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빠른 속도.
어느 정도 달리다 등장한 커브길에 손을 올렸다.
“커, 커브!”
끼이이이이이이익!
“갸아아아아악!”
강태황이 사이드 브레이크를 당기며 핸들을 틀었다.
처음이었다.
영화나 만화에서나 보던 드리프트를 실제로 경험하다니.
볼 때는 참 멋있구나 했었는데 그 안에 타 있는 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음악 튼다면서 안 틀고 뭐 해?”
“무슨 음악이야!”
비광의 말을 되받아치며 두 손으로 허겁지겁 손잡이를 잡았다.
다음 커브가 다가오고 있었다.
“기아아아아아!”
* * *
“우욱.”
몇 개의 커브를 지나온 걸까.
차에서 내리며 입을 틀어막았다.
칼데아로 허구한 날 날아다닌 만큼 멀미랑은 거리가 먼 몸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한번 본인의 나약함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탈 때마다 적응이 안되는구만.”
속이 안 좋아 보이는 건 비광과 기태랑도 마찬가지였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흔드는 두 사람.
유일하게 운전자인 강태황만이 개운하다는 얼굴로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구만! 하하하!”
아무래도 스트레스받게 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었다.
“자 들어가자고. 밥 먹어야지.”
밥?
도착한 곳의 가게를 올려다봤다.
# 더 리얼 순대국밥.
이름 뭔데.
묘하게 부조화가 느껴지는 이름.
뭔가 내가 검색했다면 오지 않았을 것 같은 가게 이름이었다.
“여기 엄청 맛있어.”
내 생각을 읽은 건지 기태랑이 어깨를 두들겼다.
뒤이어 비광도 약간 허옇게 변한 얼굴로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름은 이래도 꽤 전통 있는 가게야. 기태랑이랑 나랑 영감님이랑 헌터 주니어 시절부터 자주 오던 곳.”
비광과 기태랑이 추억이구만 하는 표정으로 가게를 올려다봤다.
“국밥 먹다가 근처에 데몬 나와서 간 적도 있었지.”
“돌아와서 먹은 식은 국밥도 더럽게 맛있었고.”
한동안 추억을 떠올리던 두 사람이 가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순대국밥이라.”
나도 멍하니 가게를 올려다봤다.
러시아로 가기 전부터 순대국밥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었다.
맨날 먹는다 먹는다 말만 하고 못 먹었었기 때문이다.
“군침이 싹 도는구만.”
속이 울렁거려 아무것도 못 먹겠다 싶었는데.
코로 스며드는 순대국밥 냄새에 식욕이 샘솟기 시작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주인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날 바라봤다.
“오? 오늘은 한 명 더 있구만. 매번 세 명이서 오더니.”
“오늘부터 국밥 모임에 새로 가입한 친구예요.”
“그래? 은갈치가 말하니 영 믿음이 안 간다만. 일단 어서 오시게. 저쪽에 앉아.”
“비광 님을 제대로 파악하고 계시군요.”
슬쩍 할머니에게 엄지를 치켜세운 후 테이블로 걸어갔다.
“여기가 얘네 지정석이야. 넓은 자리도 있는데 항상 이 구석탱이를 고집하더군.”
물과 반찬을 가져온 할머니가 고개를 흔들었다.
다른데 좀 앉으라 그래도 말 더럽게 안 듣는다는 핀잔과 함께였다.
“여기 순대국밥 특 4개랑….”
“수육. 수육. 수육.”
음침하게 읊조리자 주문하던 비광이 말을 이었다.
“수육 대로 두 개 주세요.”
“세 개. 세 개.”
“세, 세 개 주세요.”
“오냐.”
할머니가 인자하게 웃으며 주방으로 걸어가고.
한동안 가게를 둘러본 강태황이 미소를 머금었다.
“오랜만에 오는구만.”
“그러게요. 옛날엔 하루가 멀다하고 왔었는데.”
“그때보다 많이 바빠졌으니까. 그나저나 순대국밥이라 실망한 거 아니겠지? 비싼 소고기를 사줄 걸 그랬나?”
내게 묻는 강태황에 호다닥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저 순대국밥 엄청 먹고 싶었거든요.”
고기는 외국에서도 질리게 먹었었다.
지금은 한 뚝배기 하는 순간 속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순대국밥이 먹고 싶었다.
“다행이구만. 여기 정말 맛있으니까 앞으로 여유가 되면 또 같이 오자고. 희수는 오자 그래도 싫다고 해서 말이야.”
“어려서 아직 국밥 맛을 모르는 거지. 안 그래?”
“그렇죠. 목으로 넘기는 순간 속이 뜨듯해지는 이 맛을 모르다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말을 하다 보니 약간 궁금하긴 했다.
재벌집 손녀인 류희수는 과연 순대국밥을 먹어본 적이 있을까 하는 쓸데없는 의문이었다.
“자 여기 국밥이랑 수육!”
“오오!”
얼마 안 되어 김이 풀풀 나는 국밥과 수육이 모습을 드러냈다.
꽤 커다란 뚝배기인데도 넘치기 직전까지 꾹꾹 눌러 담아진 국밥이었다.
“많이들 먹고 또 오라고.”
“옙. 감사합니다!”
그렇게 테이블 세팅이 완료되고.
“잘 먹겠습니다!”
힘차게 외친 후 다진 양념과 청양고추, 들깻가루를 한 움큼 집어넣었다.
“비광이랑 같은 양념파였군.”
“그러네. 나보다 조금 더 극단적이고….”
마무리로 깍두기 국물을 첨가하며 국밥 제조를 마치자.
“올드하네.”
비광이 내 국밥에 대한 평가를 마쳤다.
그러든가 말든가 밥을 말고 머릿고기와 함께 한 수저 크게 떠 입에 넣었다.
홀리…!
나도 모르게 고개가 저어졌다.
아주 제대로 우려낸 국물과 목을 때리는 칼칼함, 그리고 야들야들한 고기의 쫄깃함까지.
씹으면서도 이게 정녕 인간계의 음식인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복스럽게 먹는 걸론 세계 1등이겠어.”
“앞으로 자주 데려와야겠구만.”
세 사람도 국밥과 수육 흡입을 시작했다.
“여기 소주 다섯 병 주세요!”
그러던 중 냅다 소주를 시키는 비광.
사실 나도 격하게 한 잔 먹고 싶었으나 운전해야 하는 강태황이 있어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다 휴가냈어. 근처에서 자고 가면 되니까. 맞죠?”
“그래. 소주도 한 잔 마시자고.”
“옙!”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도착한 소주를 각자의 잔에 따르기 시작했다.
* * *
드르륵.
안에서 몇 시간이나 마신 걸까.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조금 더 걸어가니 나오는 바닷가 풍경.
바위에 걸터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따듯한 가게 안에서 쌓인 온기가 입김을 타고 새어 나왔다.
배가 부르다 못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이렇게 만족스러운 한 끼라니.
마음 같아선 매일 한 뚝배기하며 소주를 들이켜고 싶었다.
“많이 먹었나?”
“장관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강태황이 내가 앉은 바위로 다가왔다.
옆에 걸터앉으며 내가 했던 것처럼 깊은 한숨을 내쉬는 강태황.
한동안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던 강태황이 입을 열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땐 아마 스무 명이 넘었을 거야. 헌터고 뭐고 그런 게 정립되기 전이라 가진 돈이 얼마 없었거든. 그냥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는 정의 하나로 데몬과 싸우던 시절이었지.”
고개를 돌려 강태황을 쳐다봤다.
왠지 모르게 그리움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다시 한번 한숨을 쉰 강태황이 말을 이어나갔다.
“정말 많이 싸웠어. 자다가도 눈앞에 피가 아른거릴 정도였지. 그리고… 항상 모두가 살아남을 순 없었지. 그러다 보니 이곳에 올 때마다 한두 명씩 사람이 줄어들었고.”
강태황이 고개를 돌려 순대국밥 집을 바라봤다.
“매번 오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데도 사장님은 그 이유를 묻지 않았어. 그래서 좋았지. 그때 당시 우린 누군가의 죽음을 돌아보며 슬픔에 잠겨있을 여유가 없었거든. 그저 항상 같이 오던 장소로 와 술잔을 기울이며 각자 속으로 애도를 표하는 게 최선이었지.”
그때가 떠오른 건지 강태황이 고개를 끄덕이며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계속 줄어가더니 결국엔 기태랑과 비광, 나까지 달랑 세 명이 남았더군.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내 어깨로 손을 올리는 강태황.
“더 줄어들지 않고 네 명으로 늘어났지.”
뭔가 대답하진 않았다.
대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도 티낸 적은 없지만 기태랑과 비광이 죽을 뻔했다는 걸 알고 있어. 그걸 자네가 구해줬다는 것도 알고.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네.”
“별말씀을요.”
“… 자네도 죽지 말게나. 나도 최선을 다해 살아남을 테니.”
강태황의 입가로 미소가 그려졌다.
“또 와서 같이 국밥 먹자고.”
그런 강태황에 나도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