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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445화 (445/473)

445화. 왜 하필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며 의자로 몸을 기댔다.

숨쉬기조차 힘든 걸 보니 아무래도 너무 많이 먹은 모양이었다.

누가 와서 배만 톡 건드려도 그대로 역류할 기세였다.

“백운 님. 진짜 잘 드시네요.”

“그러게요. 깜짝 놀랐어요.”

“두 분이 너무 많이 남기셔서 무리했어요. 제가 돼지가 되면 여러분 탓입니다.”

메이와 전수희가 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돼지가 변명은 다양하구나란 표정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기다리면 되는 건가요?”

“네!”

고개를 끄덕인 전수희가 주변을 휙휙 둘러봤다.

진시황릉으로 들어가기 위한 입구 쪽 계단.

따로 밥을 먹은 대산 사람들과 합류하기 위해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백운 님 괜찮으신가요? 들어가자마자 행사 시작이라 안에 기자들이 대기 중이래요. 사진이랑 영상도 엄청 찍어댈 테고요.”

“괜찮아요. 흔한 얼굴이니까요.”

이마에 무기왕이라고 써서 붙이고 다니지 않는 이상 문제는 없었다.

날 아는 사람들이야 쟤는 또 저기서 뭘 하고 있나 의문을 품겠지만 말이다.

“아니. 이거 메이 님 아니십니까!?”

다리를 까딱이며 최리아와 김정윤을 기다리고 있을 때.

노랗게 물들인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남자가 다가왔다.

메이와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으.”

다가오는 남자에 메이가 작은 소리를 냈다.

아는 사이라기엔 메이는 남자를 영 반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하오안 님. 오랜만에 뵙네요.”

“하하하! 안 그래도 메이 님이 어디 계시나 찾고 있었는데 이런 인연이 다 있군요!”

“그러게요.”

관심없는 척하면서 곁눈질로 두 사람을 살폈다.

나름 표정 관리를 하고 있지만 메이의 온몸에선 숨길 수 없는 혐오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하오안이 메이를 고백해서 혼내준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시안 그룹의 홍보 실장이에요.”

어느새 샥 다가온 전수희가 목소리를 낮췄다.

“메이를 짝사랑하고요.”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메이가 그랬어요. 스토커 같은 자식이라고. 저 저 저 은근슬쩍 메이 어깨에 손 올리는 거 보세요.”

입술을 꽉 깨문 메이는 당장에라도 하오안의 면상에 주먹을 꽂아버릴 것 같았다.

“얘기 들어오면 완전 장난 아니에요. 온몸을 명품으로 치장한 건 기본으로 허구한 날 돈 자랑에 회사 자랑에. 휴우. 불쌍한 메이.”

전수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곁눈질로 열심히 두 사람을 구경했다.

그렇게 일방통행에 가까운 대화가 몇 마디 오고 가나 싶더니.

“아! 일행분들인가요? 인사가 늦었군요.”

하오안이 몸을 돌리며 나와 전수희 쪽으로 다가왔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인지 걸음걸이에서부터 허세가 잔뜩 느껴지는 하오안이었다.

“메이 님 친구분은 지난번에 한 번 봤었죠? 아주 비싸고 맛있는 거 한 번 사드려야 하는데 이거 참. 제가 회사에서 중책이다 보니 워낙 바빠서요.”

“하하… 괜찮아요. 제가 맛있는 거를 별로 안 좋아해서요.”

수희 님 또 고장난 건가.

땀을 주륵 흘리고 있을 때 전수희에게 인사를 마친 하오안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을 부라리며 날 위아래로 훑어보는 하오안.

메이와 전수희에게 인사할 때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명백한 적개심과 경계심이 다분한 눈초리였다.

“안녕하십니까. 시안 그룹의 홍보실 실장, 하오안이라고 합니다. 다른 중책도 맡고 있긴 하지만 탑시크릿이라서요.”

“그렇군요. 안녕하세요. 백운이라고 합니다.”

한껏 거들먹거리던 하오안이 손을 뻗었다.

피식 웃고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오안의 마음속에서 패배한 모양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하오안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

꽈아아악.

응?

손을 잡기 무섭게 하오안의 손아귀로 힘이 들어갔다.

개유치하네.

힘 관련된 능력을 개방한 건지 꽤 묵직한 힘이었다.

일반인의 기준에서는 말이다.

같이 유치해지고 싶지 않았지만 저 아프지? 란 킹 받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았다.

입가로 슬쩍 미소를 그리며 손으로 힘을 주었다.

“끄아악!!”

기세등등하던 하오안이 주저앉으며 비명을 질렀다.

“아! 죄송합니다! 중국식 인사인 줄 알고 그만. 괜찮으세요?”

“아악….”

킹 받아서 나도 모르게 힘을 너무 많이 줬던 걸까.

하오안이 손을 주물럭거리며 신음을 흘렸다.

옆에선 메이와 전수희가 못 본 척 먼 산을 바라보는 중이었고 말이다.

“!!”

고통이 좀 가신 건지 하오안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시뻘개진 얼굴로 메이와 날 번갈아 보는 하오안.

하오안을 바라보며 사람 좋은 미소를 그렸다.

“괜찮으신 거죠? 그렇게 세게 안 쥔 거 같은데 깜짝 놀랐어요.”

“하하…! 그럼요. 저도 모르게 좀 놀랐네요. 괜찮습니다.”

딱 봐도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는 하오안.

하오안이 무언가를 더 말하려는 순간 깔끔한 정장 차림의 남자 몇 명이 다가왔다.

“하오안 실장님. 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

“그래?”

하려던 말을 꾸욱 삼킨 하오안이 매서운 눈으로 날 노려봤다.

입가엔 여전히 허세 가득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백운 님이라고 하셨죠. 재밌는 분이네요. 중국에 계시는 동안 꼭 다시 뵙도록 하죠.”

“그러시죠.”

주머니에 손을 꽂고 고개를 몇 번인가 까딱거린 하오안이 빙글 몸을 돌렸다.

팔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로 보아 아직도 많이 아픈 것 같았다.

하오안이 충분히 멀어지자 딴청 피우던 메이와 전수희가 다가왔다.

“방금 먹은 거 다 소화된 거 같아요.”

“한 번 더 먹을 수 있을 듯요.”

“화가 많이 나신 게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실없는 말을 몇 마디 주고받는 사이.

차에서 내린 최리아와 김정윤이 곁으로 다가왔다.

가볍게 인사를 마치자 김정윤이 밝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다 모였군요. 그럼 들어가 볼까요? 진시황릉 발굴하러.”

“그러시죠!”

고개를 끄덕이며 진시황릉 쪽으로 몸을 돌렸다.

* * *

하품 나오겄네.

초등학교 시절 뙤약볕 아래에서 교장 선생님 훈화를 듣는 기분이었다.

단상에서 번갈아 가며 축사를 읽는 정부와 시안 그룹의 주요 인사들.

발굴에 참여하는 인원과 참관인, 그리고 기자들은 오와 열을 맞춰 서서 축사를 듣는 중이었다.

“그나저나 의외입니다. 백운 님은 참관만 하시는 줄 알았는데요.”

옆에서 물어오는 김정윤에 순박한 미소를 그려주었다.

이곳으로 오기 전 전수희에게 강력히 부탁했었다.

가능하다면 발굴 장소에 함께 있고 싶다고 말이다.

“정윤 님도 아시겠지만 제가 또 유물에 관심이 많잖아요. 역사적인 순간인만큼 저 먼 곳에서 보는 걸론 만족을 못하겠더라고요.”

팔자 좋게 참관석에 있는 게 몸이야 편하겠지만, 그러기엔 리스크가 너무 컸다.

발굴하는 게 잘 보이긴 하지만 참관과 현장의 영역은 명확히 나뉜 상태.

심지어 한 번 정해진 후엔 신분을 바꾸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렇게 참관인으로 앉아있는데 만에 하나 발굴 중에 무기의 흔적이라도 나타난다면?

그야말로 그림에 떡인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었다.

조금 귀찮더라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가까이 있는 게 나았다.

나타나는 순간 냅다 손부터 뻗어 슥삭할 수 있도록 말이다.

“거짓말이다.”

아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뜨끔하며 고개를 내렸다.

우미희는 오늘도 만사 귀찮다는 표정으로 하품을 해대고 있었다.

“너 왜 아직도 탐사실에 있어. 정윤 님. 얘 왜 안 내보내나요?”

지난 러시아 방문에서 기둥이란 신분이 드러난 우미희였다.

당연히 탐사실에서 나와 장판석처럼 개별 행동할 거라 생각했었다.

질문을 받은 김정윤이 허허 난처한 웃음을 터뜨렸다.

“내보내다뇨. 기둥 분들은 자체적인 직책 결정이 가능하십니다. 기본적으로 인사권이 회장님 바로 아래기도 하고요.”

“나 탐사실 좋아. 회의실 그늘진 구석 자리가 잠자기 딱 좋거든. 실장님이 전용 침대도 마련해줬어.”

우미희가 배시시 웃으며 김정윤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주륵 땀을 흘리며 덩달아 엄지를 세워 보이는 김정윤.

실장이란 역할도 쉽지 않다는 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럼 진시황릉 발굴을 시작하겠습니다!”

잡담을 나누는 사이 길고 길었던 훈화가 끝난 모양이었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들리더니 리드를 맡은 시안 그룹 탐사팀이 첫 발굴 장소로 투입됐다.

“그럼 저희도 가볼까요.”

김정윤을 필두로 대산의 탐사팀도 이동을 시작했다.

천천히 발을 내딛자 옆에 있던 우미희가 내 옷깃을 붙잡았다.

“백운은 내 옆에 붙어 있으면 돼. 발굴할 줄 모르잖아.”

“그렇네.”

“이거 하나 들어.”

우미희가 커다란 붓 하나를 건넸다.

“나랑 같이 붓으로 모래 털자.”

“좋은 생각이야.”

확실히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옆에서 뽈뽈거리는 것보단 슈퍼 잉여 땡보인 우미희랑 함께 있는 게 나은 선택일 것 같았다.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탐사 현장을 바라봤다.

각 위치에서 탐사원들이 능력을 사용해 발굴을 진행하고 있었다.

진시황릉은 크기와 면적이 말도 안 되게 넓어 발굴 완료까지 100년 이상이 걸릴 거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봤었다.

개방 이후 각종 능력이 나타나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이었고 말이다.

세상에 불가능이 없어지긴 했어.

장비의 발달과 관련 능력자들이 나타나며 100년 예상했던 기간을 한 달로 줄여버린 상황.

특히 시안 그룹엔 탐사와 발굴에 특화된 능력자들이 바글바글거린다고 들었었다.

예상 발굴 시간을 줄이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곳도 시안이었다.

“엄청 빠르네.”

함께 구경 중이던 우미희가 혀를 내둘렀다.

확실히 엄청난 속도였다.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눈에 띄게 파고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조금 의외네.”

“뭐가?”

턱을 슥슥 문지르며 현장을 바라봤다.

“황릉를 완성한 다음에 좀 체계적으로 묻었을 거라 생각했거든. 그런데 이건 뭐랄까. 다 만든 후에 급하게 냅다 매장해버린 느낌이랄까.”

아래는 더 파봐야 알겠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곳만 봤을 땐 그랬다.

무덤 위로 엄청난 수의 유물과 조각상이 놓인 걸 고려했을 때 납득이 가지 않는 형태였다.

실제로 지금 모습을 드러내는 유물들은 훼손 상태가 심각했고 말이다.

“일단 내려가자.”

그런가? 하며 흐음거리는 우미희를 데리고 아래로 향했다.

둘 다 잉여 자원이긴 해도 일단 탐사팀 신분이니 너무 떨어져 있을 순 없었다.

“유물 올리겠습니다!”

여러 스팟에서 동시 발굴을 진행 중인 탐사팀들.

멀리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시안 그룹이 담당 중인 곳이었다.

확실히 인원이 많으니까 제일 빠르… 어?

걸음을 멈추고 눈을 크게 떴다.

“백운. 왜 그래?”

“잠깐만.”

두 눈은 시안 그룹 인원들이 둘러싼 유물 카트에 꽂혀 있었다.

“하아.”

카트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곧이어 입가로 난처한 미소가 그려졌다.

왜 하필 저기냐.

유물 카트 안에선 은은한 보랏빛이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그리고.

카트는 시안 그룹의 손에 들려 내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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