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6화. 어디로 갔을까
마음 같아선 무기의 흔적을 향해 냅다 달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현장 영역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어 대산 구역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순간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현장 밖에선 실시간으로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으며 참관석에 앉은 이들은 역사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내가 지금 저기로 뛰어가서 유물 만지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하려고? 재밌겠다.”
주저 없이 대답한 우미희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연신 끄덕이는 걸 보니 그림자가 말을 건 모양이었다.
“그림자도 한 번 해보래. 보고 싶다고.”
하지 말자.
애초에 안 할 생각이긴 했지만 광기 그 자체인 그림자까지 이렇게 말하니 더더욱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지금은 마음이 찢어지지만 일단 후퇴였다.
발굴이 완료될 때까진 유물을 밖으로 가져나가지 않는다고 들었으니 방법이 있을 터였다.
“아무것도 아니야. 가자.”
“뭐야. 왜 안 해?”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한 목소리를 못 들은 척하며 김정윤과 탐사팀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기서도 유물이 나오기 시작했는지 보관함이 차오르고 있었다.
발굴을 감독 중이던 김정윤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엄청나네요. 파는 곳마다 유물이 나오고 있습니다. 탐지 결과 안쪽에도 숫자가 엄청나고요.”
“역시 진시황릉이네요.”
“예.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매장할 때 큰 충격이 가해진 건지 훼손된 유물이 상당수입니다. 잘 만들어놓고 마무리를 왜 이렇게 급하게 한 건지 의문이군요.”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다.
실제로 보관함에 담긴 유물은 상당수가 부서진 상태였다.
잘게 쪼개져 조각을 이어붙여야 하는 것들도 보였고 말이다.
“정윤 님. 혹시 발굴된 유물은 어디로 옮기나요?”
“진시황릉 한편에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발굴이 끝날 때까지 거기서 보관 예정이죠. 듣기로는 경비를 맡은 시안 쪽이 힘을 빡 주고 있다고 합니다. 첨단 장비부터 인원 배치까지 엄청난 액수를 퍼부었다고 하더군요.”
말을 마친 김정윤이 조용히 날 응시했다.
약간의 불안감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백운 님. 설마…?”
“에이. 아니에요. 무슨 말씀이세요. 저 그렇게 앞뒤 안 가리는 무대뽀 아닙니다.”
여전히 마음이 안 놓인 듯한 김정윤에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사실 보고 싶은 유물이 하나 있거든요. 시안 그룹 탐사팀이 발굴해서 가져갔고요. 혹시 방법이 없을까요?”
“아 보시는 거라면 문제없습니다.”
그제야 김정윤이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장 구역은 여러 군데지만 발굴된 유물을 보관하는 건 한 곳뿐이니까요. 원활한 관리를 위해 모아놓기로 했거든요. 마침 보관함도 한 번 비울 겸 갈 예정이었습니다. 백운 님도 함께 가시죠.”
“감사합니다!”
주먹을 움켜쥐며 고개를 꾸벅였다.
황금빛이 아닌 보랏빛이었다.
만진다고 사라질 일도 없으니 유물 도둑이 되어야 하는 상황도 아니었다.
곁으로 다가온 탐사 팀원들이 보관함을 카트로 실었다.
“카트라도 제가 밀게요. 여기 와서 한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고맙습니다. 유물에 모래까지 섞여 있어서 무게가 보통이 아니네요.”
카트 손잡이를 잡자 반짝이는 시선으로 날 쳐다보는 우미희가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 허락을 기다리는 얼굴이었다.
대충 짐작이 갔기에 고개를 끄덕이자 환하게 웃으며 카트 구석탱이로 발라당 몸을 눕히는 우미희.
옆에 있던 김정윤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비닐을 우미희 주변까지 올려쳤다.
역시 책임자의 자리는 쉽지 않은 것 같았다.
“가시죠.”
앞장서는 김정윤을 따라 카트를 밀었다.
전체적으로 유물이 많긴 많은 모양이었다.
주변 구역에서도 쉴 새 없이 카트가 나오고 있었다.
덕분에 카트를 밀면서도 내 눈은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운이 좋다면 또 다른 무기의 흔적을 발견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나저나.
일단 눈에 들어오는 게 없는 걸 확인한 후 생각에 잠겼다.
누구의 무기일까.
두어 달 전이었다면 당연히 무덤의 주인인 진시황의 무기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란 걸 확실히 알고 있었다.
도대체 이번 무기의 주인이 누구길래 진시황릉 안에서 흔적이 나올 수 있는 건지 의문이었다.
여전히 감이 안 잡히긴 하지만 진시황릉을 만든 이와 연관이 있을 것 같았다.
“이쪽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아 넵.”
현장을 벗어나자 새로운 구역이 눈앞에 펼쳐졌다.
조금 전까진 오래된 유적지였다면 지금은 최첨단 설비 시설의 중심에 와있었다.
곳곳에 배치된 경비 인원들이 살벌한 눈으로 나와 탐사팀을 노려봤다.
잘못한 게 없는데도 괜히 쫄리는 기분이었다.
“이곳 아래를 통과해 주십시오. 신원 확인을 위해서입니다.”
경비의 안내에 따라 공항 검색대 비스무리한 기계를 지나갔다.
지나면서 내심 드러누워 있는 우미희를 걱정했지만 딱히 별말은 없었다.
인증이 완료된 인원이면 걸어서 가든 누워서 가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와우.”
검색대를 지나자 보관을 위한 공간이 나타났다.
단순히 보관실이라 부르기엔 정말 거대한 크기였다.
몇 개의 유물이 나오든 모두 보관이 가능해 보일 정도로 말이다.
“대산의 구역은 시안보다 안쪽입니다. 이제 곧 지나칠 겁니다.”
조용히 말해주는 김정윤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유물에 별도의 보안 장치 같은 건 없었다.
있기만 하면 충분히 만질 수 있는 거리와 높이기도 했다.
도착한 시안 그룹의 구역에서 열심히 여기저기를 살폈다.
그렇게 한참 매의 눈으로 살피길 잠시.
왜 없냐.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아무리 둘러봐도 찾고 있는 유물이 보이지 않았다.
보랏빛이 새어 나오고 있어 멀리서 봐도 눈에 띌 텐데도 말이다.
시안 그룹의 구역을 지나자 김정윤이 날 돌아봤다.
“말씀하신 유물은 보셨나요?”
“아뇨. 없네요.”
“예?”
“유물 보관하는 곳은 여기가 끝인 거죠?”
“예. 임의로 바꿀 순 없습니다. 여길 빠져나가는 순간 규정 위반이거든요.”
김정윤이 덩달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있어야 하는 유물이 없다라.”
그런 김정윤에 호다닥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정윤 님은 안 그래도 바쁘신데 신경쓰지 마세요. 제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혹시나 알게 되는 게 있으면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옙. 감사합니다.”
어느새 도착한 대산 구역에 카트를 멈춰 세웠다.
김정윤과 탐사팀이 유물을 나르는 사이.
고개를 돌려 사방으로 흩어져 있는 시안 그룹 인원들을 바라봤다.
여러 기업이 출입하며 유물을 옮기고 있지만 경비는 어디까지나 시안에 일임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유물을 빼돌리거나 감추는 게 가능한 기업은 단 한 곳, 시안 그룹뿐이었다.
이 새끼들 봐라.
입구에서 만난 하오안 때문인지는 몰라도 첫인상이 별로였었는데.
아무래도 숨기고 있는 구린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평소라면 그러든가 말든가 상관 안 했겠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었다.
주변 일대를 다 뒤져서라도 찾아낼 생각이었다.
포기할 수 없는 내 무기의 흔적을 말이다.
* * *
멀지 않은 작은 산의 나무 위.
샌드위치를 우물거리며 정면의 진시황릉을 응시했다.
1일 차 일정이 종료되며 발굴에 참여했던 기업과 참관인들은 일찌감치 복귀한 상태였다.
지금 안에 남은 건 경비를 담당하는 시안 그룹과 중국 정부 쪽 사람뿐이었다.
옮긴다면 지금이겠지.
아무리 시안 그룹이라 해도 보는 눈이 가득한 대낮에 빼돌린 유물을 옮기진 않았을 터.
진시황릉 내부의 특정 장소에 숨겨놨다가 주변이 조용해졌을 때 옮기려고 할 게 분명했다.
가볼까.
몸을 일으켜 진시황릉 주변을 살폈다.
낮에 사람이 바글거리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방이 산이라 그런지 지금은 고요한 적막과 어둠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카로스 - 칼데아 윙]
날개를 꺼내 하늘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
오늘만큼은 달도 내 편이었다.
구름에 가려져 누군가의 시야를 밝혀줄 만한 빛을 뽐내지 못하고 있었다.
진시황릉 내부에 켜져있던 마지막 불이 꺼지고 잠시.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되어 있던 트럭 한 대가 진시황릉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까 낮부터 세워져 있던 아이스크림 트럭이었다.
심증만 갖고 있던 가능성이 확신으로 변해갔다.
지금 트럭이 들어간 곳은 시안 그룹에 의해 관리되는 보안 구역이었다.
일반적인 트럭이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건 확인했지?”
“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기업과 참관인 숙소도 꽤 멀리 배치해뒀고 오는 길엔 검문소도 있으니까요. 누가 오기라도 하면 바로 알 수 있을 겁니다.”
“좋아. 얼른 옮기자고.”
익숙한 목소리에 얼굴이었다.
낮에 만났던 시안의 홍보실장 하오안.
하오안의 감독 아래 진시황릉에서 나온 철제 박스 몇 개가 아이스크림 트럭으로 옮겨졌다.
“어쩐지 마음에 안 들더라.”
역시 관상은 과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 봐도 나쁜 짓 할 것처럼 생겼었다.
“그나저나 하늘에서 쫓아가다간 놓칠 거 같은데.”
진시황릉에서 뻗어 나가는 길들을 살폈다.
사방이 산이다 보니 터널로 이어지는 길이 대부분이었다.
터널 안에서 갈라지는 길도 적지 않았고 말이다.
“어쩔 수 없나.”
몸을 돌려 아까 앉아있던 나무의 아래로 향했다.
발굴이 끝나고 나오면서 메이에게 소음이 작은 오토바이 한 대만 구해달라고 부탁했었다.
결제는 옆에서 듣고 있다 따라간 전수희가 법인카드로 냉큼 해줬었고 말이다.
“웬만해선 안 타고 끝냈으면 했는데.”
터널이 많아 보여 일단 준비해놓긴 했지만 아무래도 날개보단 들킬 확률이 높았다.
정말 어쩔 수 없을 때만 타려고 했는데 지금 하늘로 올라가 전체적인 지형을 살피니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출발하려는 건지 멀리서 시동 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토바이를 껴안고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검문소를 빠져나갈 때까지는 하늘에서 쫓아야 했다.
움직이는 트럭을 따라 천천히 비행을 시작했다.
빼돌리는 유물은 무슨 기준이려나.
아이스크림 트럭의 크기는 아담했다.
오늘 발굴된 유물 중 정말 극소수만 담겼을 터.
분명 어떠한 기준이 있을 것이었다.
“고생하십시오!”
어느새 검문소를 통과한 트럭이 속도를 올리며 터널로 향했다.
트럭이 터널로 사라지기 무섭게 나도 착지해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열쇠를 꽂고 시동을 걸자 잔잔한 소리와 진동이 몸으로 느껴졌다.
대충 조용한 거 아무거나 구해달라고 했는데 아주 좋은 걸 구해 준 메이와 전수희였다.
“그럼.”
목 폴라를 코 아래까지 끌어올리고 검은 모자를 푹 눌러썼다.
그렇게 트럭이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릴 때까지 기다린 후.
“가보자고.”
천천히 오토바이의 악셀을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