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449화 (449/473)

449화. 유리한 고지

해가 지며 어둠이 찾아오기 시작한 시간.

“여기입니다.”

멈춰선 차에서 내린 유하랑과 대원들이 건물을 올려다봤다.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붐비는 식당이었다.

신호는 이 안에서 전달되고 있었다.

“나 혼자 갔다 올게.”

“예? 혹시 모르니 같이 가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고개를 흔든 유하랑이 구든을 올려다봤다.

“일반인이 가득한 식당이야. 너희랑 들어가면 눈에 바로 띄잖아. 싸움 일으키려고 가는 거 아니니까 대기해.”

“알겠습니다.”

시무룩한 구든을 뒤로 하고 평상복 차림을 한 유하랑이 식당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식당으로 들어서자 밝은 목소리의 점원이 유하랑을 반겼다.

“일행이 있어서요. 좀 찾아보겠습니다.”

“네!”

고개를 꾸벅인 점원이 멀어지고.

유하랑이 핸드폰에 찍히는 신호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2층으로 이루어진 식당이었다.

천장이 없어 2층에선 1층을 내려다보기 좋았고 말이다.

‘어디냐. 검은 모자.’

최대한 티내지 않으며 유하랑이 식당 안의 사람들을 살폈다.

나이가 많거나 가족끼리 온 손님은 제외했다.

혼자 혹은 연인끼리 온 손님 중 젊은 남자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어제 들었던 목소리로 미루어보건대 남자는 20대 혹은 30대 초의 나이일 터였다.

‘2층이구나.’

신호를 곁눈질하던 유하랑이 2층으로 몸을 돌렸다.

신호와 겹치는 1층 자리엔 대가족이 모여 화기애애하게 식사 중이었다.

유명한 식당인지 2층도 1층 못지않게 붐비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겨 신호 위치에 도착한 유하랑.

‘…!’

걸음을 멈춘 유하랑의 눈이 커졌다.

도착한 테이블엔 어제 남자에게 건넸던 핸드폰만이 덩그러니 올려져 있었다.

유하랑이 빠르게 주위를 둘러봤지만 당장 눈에 띄는 사람은 없었다.

올 때완 달리 급하게 내려간 유하랑이 점원을 찾았다.

“죄송합니다만. 2층 자리에 올려져 있던 이 핸드폰 주인, 혹시 누군지 보셨을까요?”

깜짝 놀란 점원이 유하랑이 든 핸드폰을 바라봤다.

“아! 검은 모자를 쓴 분이었어요. 밤인데 마스크까지 쓰고 계셔서 기억나네요.”

“지금 여기에 있나요?”

“아뇨.”

“아니라니… 그럼 핸드폰은 누가 올려놓은 건가요?”

점원이 해맑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스스로를 가리켰다.

“오셔서 핸드폰만 주고 가셨어요. 금방 올 테니 2층 테이블에 좀 올려달라고 부탁하셨고요. 메뉴도 엄청 예약하고 선불로 돈까지 주고 가신 터라 사장님도 허락하셨어요.”

유하랑의 눈이 커졌다.

‘함정이다.’

지체없이 식당을 빠져나온 유하랑이 차로 올라탔다.

“빨리 출발해.”

좀처럼 보긴 힘든 유하랑의 다급한 모습에 대원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차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대장.”

입술을 깨물고 있던 유하랑이 미간을 찌푸렸다.

“함정이다.”

“예?!”

“알고 있었어. 핸드폰을 따라서 우리가 찾아올 거란 걸.”

대원들이 벙찐 얼굴로 서로를 쳐다봤다.

“우리를 유인했다는 겁니까?”

고개를 끄덕인 유하랑이 창문 너머로 주위를 살폈다.

“몇 바퀴 돌아서 가. 다른 팀에 연락해서 우리한테 미행 붙는 거 있는지 확인하라 하고.”

“아, 알겠습니다!”

의자로 몸을 기댄 유하랑이 주먹을 움켜쥐며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진정하자. 노출된 건 내 얼굴뿐이다.’

상대가 얻을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유하랑의 얼굴만으로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데이터베이스에서 조회하든 유하랑이 조회될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미행만 잘 방지한다면 잠시의 해프닝으로 끝날 터였다.

애써 불안함을 떨쳐낸 유하랑이 심호흡하며 창문 밖을 바라봤다.

‘그것… 뿐이다.’

* * *

옥상에 걸터앉아 건너편 건물을 바라봤다.

조금 전 여자가 탄 차가 주차된 곳이었다.

“하아. 꽈배기야 뭐야.”

드디어 도착했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식당부터 이곳까지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은 못해도 두 시간이었다.

미행이 붙을 거라 생각한 건지 차량이 아주 그냥 꼬불꼬불 왔다리갔다리 온갖 난리법석을 떨며 이동했기 때문이다.

중간부터 오토바이 몇 대가 붙었던 걸 보면 철저한 것이 보통이 아니었다.

“무슨 정보기관 같은 건가. 첩보 영화 제대로 찍네.”

철저하긴 했지만 하늘에서 따라올 거라곤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역시 나 스파이 소질 있는 건가.

다시 생각해봐도 훌륭한 판단력이었다.

관련 영화를 많이 봐서일까.

오늘 새벽 돌아가던 중 떠오르는 가능성에 난 핸드폰을 가지고 숙소로 들어가지 않았었다.

끄고 가져가는 것도 불안해 전원을 끈 뒤 산 구석탱이에 휙 던져놨었다.

오늘 돌아와 다시 켠 후 식당에 맡겨놨었고 말이다.

핸드폰의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식당에 나타났을 땐 나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었다.

“저기란 말이지.”

안에는 어떨지 몰라도 외관만 봤을 땐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건물이었다.

잠시 건물을 바라보다 아래로 뛰어내렸다.

여전히 모자와 마스크를 쓴 채로 지체 없이 건물로 들어갔다.

보통이라면 녀석들이 또 움직일 때까지 시간을 두고 더 지켜보는 게 낫겠지만, 딱히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무기를 찾는 거지 진짜 스파이 활동을 하려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 유리한 위치면 됐어.

직접 들어가 봐야 알겠지만 놈들의 기지엔 여러 정보가 있을 터였다.

단순히 붙잡아서 목숨을 위협하는 것보다 정보를 뜯어내기 훨씬 유용할 것 같았다.

조금 더 걸어가자 굳게 닫힌 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나머지는 텅 빈 채로 먼지가 쌓여 있었지만 최근까지 사람이 오고 간 건지 저 문 앞만이 깔끔했다.

똑똑.

망설임 없이 문을 두드렸다.

아직 아무 소리도 안 들렸지만 느껴지고 있었다.

미리 설치해둔 카메라로 본 건지 조용히 문 앞에 모여있는 인원들의 기척이 말이다.

“거기 앞에 옹기종기 모여 계신 거 다 아니까 얼른 열어 주세요. 멀쩡한 문 뜯고 들어가기 전에.”

약간의 정적이 흐르고.

철컥.

녹슨 쇳소리와 함께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문 앞엔 무미건조한 표정을 한 짧은 머리의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무기를 든 채 방독면을 쓴 상태였다.

여자는 자신의 얼굴이 노출됐다는 걸 아는 모양이었다.

“아까 식당에서 마주쳤었죠?”

건넨 질문에 여자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게 모자랑 마스크를 쓰고 할 질문인가?”

덩달아 입가로 미소를 띠었다.

“패널티와 어드벤티지죠. 미끼를 문 사람과 물지 않은 사람의.”

조용히 날 바라보던 여자가 말을 이었다.

“솔직히 놀랐어. 여길 찾아낸 건 제쳐두고라도 무작정 쳐들어올 줄은 몰랐거든.”

“밍기적거리는 걸 싫어해서요. 그런데 좀 들어가도 될까요? 빈손이긴 하지만.”

고민하는 듯하던 여자가 주변 인원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의 신호에 인원들이 무기를 내리며 문에서 비켜섰다.

여전히 모두가 바짝 긴장한 채였다.

자리에 앉자 정면에 따라 앉은 여자가 입을 열었다.

“원하는 게 있어서 온 거겠지.”

“네. 사실 여러분이 누구신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아요. 제가 알고 싶은 건 딱 두 가지입니다. 시안 그룹이 유물을 빼돌리는 목적. 그리고 여러분이 어제 트럭에 담긴 케이스 중 딱 그 유물만 골라 간 이유. 이거만 말씀해주시면 조용히 떠나겠습니다. 다시 찾아오는 일도 없을 테고요.”

“알려달란다고 누가…!”

무언가 말하려던 덩치를 여자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덩치를 보니 어제 나한테 처맞고 기절한 녀석 같았다.

“질문 두 개면 나쁘지 않은 패널티네.”

여자의 대답에 미소를 그렸다.

역시 무식한 덩치에 비해 말이 잘 통하는 여자였다.

“첫 번째 질문에 대답하지. 시안 그룹이 그런 짓을 하는 이유는 간단해. 역사 조작을 위해서야.”

역사 조작이라니 뜻밖의 대답이었다.

“시안 그룹은 막대한 자금을 들여 진시황릉 발굴을 추진했죠. 그렇다면 그들이 노리는 건 진시황릉에 관한 역사 조작인가요?”

“머리가 잘 돌아가네. 놈들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원하는 건 단 하나. 진시황릉의 주인을 바꾸는 거야.”

“누구로요?”

“자신들의 선조로.”

유하랑이 손짓하자 대원 중 한 명이 프린트된 종이 뭉치를 건넸다.

그곳에 적힌 건 시안 그룹이 지금까지 진시황릉에 관해 이어 온 주장들이었다.

대충 진시황릉의 주인은 따로 있다는 내용들로 지난번 메이와 갔던 식당에서도 들은 적이 있었다.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전에 이슈 몰이를 해 밑밥을 깔고. 세계가 지켜보는 앞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를 내보인다. 이게 시안 그룹의 계획이야. 반대로 불리한 증거는 제거하고.”

이 말인 즉슨 어제 아이스크림 트럭으로 옮기던 유물들이 불리한 증거란 것이었다.

항우의 견갑도 그중 하나였고 말이다.

“이 정도면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으론 충분할 거 같고. 두 번째 질문의 답도 길진 않아. 그게 시안 그룹의 만행을 밝히는데 제일 중요한 걸 알았으니까 가져간 거야.”

“중요하다는 건 어떻게 안 거죠?”

이번엔 여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순순히 대답해줬으니 페어플레이 해야지. 그건 처음 말한 두 가지 질문 밖의 내용이야. 어쨌든 우리의 목적은 시안 그룹이 하려는 역사 조작을 막으려는 거야. 이게 전부다. 다른 의도는 없어.”

일리 있는 말에 숙이고 있던 몸을 원위치시켰다.

“알겠습니다.”

시안 그룹이 대충 뭘 하려는지는 알게 되었으니 충분했다.

여자의 말을 마냥 신뢰할 순 없겠지만 유물을 빼돌리던 시안의 꼬라지를 봤을 땐 안 믿을 이유가 없었다.

이제 그놈들을 조져봐야겠구만.

본격적으로 건드릴까 말까 고민하던 참이었지만.

이젠 그래도 되겠다는 확신이 섰다.

아직도 진시황릉을 만든 게 누군지, 그리고 만든 목적은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과 별개로 시안 그룹이 조작하려는 역사의 주인은 진시황 아니면 항우였다.

둘 중 누가 됐든 내가 모른 척할 순 없었다.

“이만 가볼게요. 그쪽 얼굴이랑 이곳 위치는 나가는 순간 깨끗하게 잊겠습니다.”

“대, 대장! 진짜 이대로 그냥 보내려는 겁니까!”

덩치놈이 거칠게 소리 지르며 총구를 올렸다.

그런 덩치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기절 한 번 더해야 정신 차릴래?”

“뭐? 이 새끼가!”

“이번엔 못 깨어나도 내 책임 아니다.”

“그만.”

의자에 앉은 여자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이…!!”

더럽게 분한지 덩치가 이를 갈며 천천히 물러섰다.

화가 잔뜩 쌓였는데 억지로 참아내는 느낌이었다.

“단순한 호기심인데 말이야. 어떻게 그리 여유로운 거지? 대답은 자유야.”

물어오는 여자에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어제보다 인원수는 확실히 많았다.

못해도 오십은 거뜬히 넘을 듯했다.

“자신 있으니까요?”

가볍게 답변을 남긴 후 느긋한 걸음으로 문을 나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