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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462화 (462/473)

462화. 함정

“끄어어어!”

기지개를 켜며 눈앞의 건물을 바라봤다.

오랜만에 방문하는 헌터청이었다.

“오늘 너무 여기저기 쏘다녔네.”

안으로 걸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누군지 모를 새끼들 때문에 더럽게 긴 하루를 보내고 말았다.

“자동차 납치범.”

“응?”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주차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웬일로 은갈치 정장 대신 츄리닝을 입은 비광이었다.

“왜 여기 있어요? 당연히 장관실에 계시는 줄 알았는데.”

“영감님도 여기에 있어.”

비광이 가리키는 차로 올라타자 미리 와있던 강태황이 손을 들어 보였다.

“본 지 얼마 안 됐지만 반갑구만! 진시황릉을 무너뜨리고 왔다면서.”

“하하… 본의 아니게 그만.”

뒤이어 올라탄 비광이 날 지긋이 쳐다봤다.

“왜, 왜요?”

“아니 대단하다 싶어서. 한강 다리 위에서 차 납치하는 놈은 너밖에 없을걸.”

“와하하하! 잘했지 뭐! 그렇게 당해도 싼 놈들이니까!”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다 강태황을 돌아봤다.

“그런데 왜 여기에 계세요? 안 들어가시고.”

“지금 날 찾는 사람이 많아서 말이야. 잠시 주차장에 숨어있던 중이었네.”

“혹시 저 때문에…!?”

미안한 마음에 묻자 강태황이 고개를 저었다.

“다른 일이야.”

기다리고 있던 비광이 입을 열었다.

“네가 벽에 박아두고 갔던 세 명. 한 시간 전에 죽었다.”

“죽었다고요? 그렇게 세게 안 했는데!?”

“너 때문에 죽은 거 아니야. 우리가 벽에서 빼낼 때까지만 해도 멀쩡히 살아있었어. 그 후로 슬아랑 헌터들도 곁에 붙어있었고.”

비광이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죽은 요원들의 사인이었다.

“독이요?”

“어. 누군진 몰라도 헌터들이 지키고 있는 틈에 독을 넣었어. 셋 다 목에 주사 바늘 자국이 있더라고.”

“의사가 관련된 걸까요?”

“맞아. 병실에 접근했던 의사랑 간호사들을 상대로 조사해봤는데.”

이번엔 비광이 핸드폰을 건넸다.

뉴스 기사 하나가 띄워져 있었다.

집에서 죽은 채 발견된 간호사였다.

“죽은 간호사가 오늘 출근했더라고.”

“얼굴을 벗겨갔다니.”

“끔찍한 놈이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거 같고.”

“한강에서 죽은 놈은요?”

“그놈도 딱히 나온 건 없어. 데이터베이스에 등록 안 되어 있더라고. 심지어 주민등록도 안 된 놈이었고.”

“와우.”

“꼬리 자를 걸 작정하고 보낸 거지. 시체를 남겨놔도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놈으로 말이야. 녹음해놨다고 했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

정부 요원에게 갈 때 미리 녹음을 켜놨었다.

덕분에 놈들이 경호처장이라고 말한 건 잘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것만으론 부족하겠죠? 경호처장이 아니라고 잡아떼면 그만이니까. 말한 증인도 다 죽었고.”

“그렇겠지.”

조용히 듣고 있던 강태황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경호처장이 배후라면 어디까지 연관되어 있을지 감이 안 오는군.”

“영감님은 대충이라도 짐작 가는 거 없어요?”

비광의 물음에 강태황이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 적이 조금 많아야지. 알다시피 우리가 높은 사람들 눈치를 워낙 안 보잖아. 저번에 데몬 침공 때도 기업들 싹 다 잡아내면서 국회의원까지 건드렸고.”

“뒤져도 싼 애들 잡은 건데도 적이 생기다니. 역시 쉽지 않네요.”

강태황이 웃음을 터뜨렸다.

“데몬 침공에 가담하진 않았더라도 독립적인 기관인 우리가 국회의원을 건드렸다는 사실 자체를 불편해하는 인간이 많아. 어찌 됐든 헌터청이 마음만 먹으면 자기도 건드릴 수 있다는 게 증명된 거니까.”

“경제 사범한테 형벌 가볍게 주는 거랑 비슷한 맥락이네요. 서로서로 해 먹고 걸려도 벌 적게 받으려고.”

고개를 끄덕인 강태황이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평소에도 그렇긴 하지만 오늘따라 엄청난 수의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었다.

“경호처장이 연관되어 있다는 말을 듣고 나니 생각이 많아지더군. 그놈 선에서 멈춘 건지, 아니면 더 위까지 뻗어 있는 건지 알 길이 없으니까.”

“죽은 놈들이 딱히 거짓말했을 거 같진 않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문제는 그걸 어떻게 밝히냐지.”

“그 한강에서 죽은 놈이 이런 말을 했어요. 헌터청은 어차피 무너질 운명이라고.”

“허어.”

듣고 있던 비광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가끔 이럴 땐 회의감 든다니까. 우리가 뭐 권력 얻자고 싸우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뭐 너무 열 내지 말자고. 하하하!”

비광의 어깨를 퍽퍽 두드린 강태황이 창밖을 바라봤다.

“데몬 침공에 가담한 놈이 다 솎아지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었어. 단지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깊은 곳까지 썩어 있어서 놀랐을 뿐이고.”

강태황이 뒷문을 열며 나와 비광을 바라봤다.

“일단 청와대 들어갔다 올 테니까. 갔다 와서 방법을 한 번 찾아보자고. 이번엔 뿌리를 뽑아야겠으니까.”

“옙!”

“다녀오십쇼.”

손을 흔들며 강태황이 멀어지고.

앞좌석에 앉은 비광이 어깨를 으쓱였다.

“쉬다가 장관님 오시면 보자고. 이번엔 저번처럼 국회의원 몇 명 잡는 걸로 싱겁게 끝날 거 같진 않으니까.”

“예입. 그럼 저도 집에 가서 씻고 대기 타고 있겠습니다.”

“태워 줄까?”

“아뇨. 날아갈래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비광에게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하아.”

아직은 좀 쌀쌀한지 뿜어져 나온 입김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이렇게 가만히 서 있으면 참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한국인데.

지금이 왠지 모르게 폭풍전야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좀 씻자.

어깨를 으쓱이고 한강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사해놓고 제대로 쉬지도 못한 마이 스윗 홈.

오늘이야말로 욕조에 물을 받고 푹 쉬어 줄 생각이었다.

* * *

베이징에 위치한 조직 바시안의 본부.

보고를 받은 린샤오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상한데.”

보고 중인 유하랑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감이 안 잡혀서요. 그런데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을 거 같아요.”

“목적이 대체 뭐길래 이런 짓을…?”

린샤오가 읽고 있는 문서엔 지금까지 발생한 도굴 사건이 적혀 있었다.

중국에선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보니 크게 관심 두지 않았었는데.

모아놓고 보니 각지에서 생긴 사건엔 한 가지 공통점이 존재했다.

모두 무덤만 파헤쳐졌을 뿐 함께 묻혀 있던 유물 등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도굴꾼이 돈이 되는 유물은 놔두고 유골만 가져간다고?”

“말이 안 되는 일이에요. 한 가지 꺼림직한 부분이 있다면.”

유하랑이 문서에서 한 군데를 짚었다.

이름 없는 무덤이라 기사에서 아주 작게 난 사건이었다.

하지만 린샤오의 미간은 이 부분에서 가장 깊이 패었다.

“허저의 무덤이잖아.”

삼국시대 위나라의 장수 허저.

몇 년 전 린샤오와 바시안은 오랜 추적 끝에 허저의 무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아주 구석지고 인적이 끊긴 곳이라 딱히 세간에 알리거나 하진 않았었고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 그 무덤마저 파헤쳐진 것이었다.

일반적인 도굴꾼이라면 절대 파헤칠 리 없는 무덤이었다.

“누구 무덤인지 알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찾아간 거고.”

린샤오가 심각한 얼굴로 파헤쳐진 무덤들을 살폈다.

모르는 무덤이 태반이지만 알고 있는 무덤은 전부 과거의 영웅들이 묻힌 곳이었다.

“나머지 무덤도 알아봐야 확실해지겠지만.”

말끝을 흐리는 린샤오에 유하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모두 역사적 인물의 무덤일 터였다.

도굴을 지시하고 있는 게 누군지는 몰라도 바시안보다 폭넓은 정보력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영웅들의 유골을 모으는 놈이라.”

알 수 없는 불길함이 밀려들었다.

유골을 가지고 뭘 할지는 몰라도 유쾌한 이유는 아닐 터였다.

여기에 한 가지 의아한 점이 더 있었다.

“그리고 왜 한국이지?”

바시안은 범인은 쫓던 중 도굴된 유골 몇 개가 한국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 당장 바시안이 쫓을 수 있는 유일한 흔적이었다.

“안 되겠다.”

자리에서 일어난 린샤오가 유하랑을 바라봤다.

“한국 갈 준비해.”

“예? 지금 바로요?”

“응. 스케줄 다 비우고 다시 잡아줘.”

허리에 손을 짚은 린샤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뜬금없지만 유명 배우의 내한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 * *

늦은 밤.

청와대에 도착한 강태황이 주위를 둘러봤다.

‘수상할 정도로 조용하군.’

대통령이 직통으로 호출한 만큼 다른 주요 인사들도 모두 소집되었을 텐데.

그렇다고 하기엔 청와대가 지나치게 조용했다.

보안 검색대를 지난 강태황이 청와대 건물로 들어갔다.

당장 묘한 고요함을 제외하고 이상한 점은 없었다.

청와대에 상주하는 요원이나 정원사, 요리사 등은 바뀐 사람 없이 모두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중.

툭!

코너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요리사가 강태황에게 부딪혔다.

“죄, 죄송합니다!”

청와대에 올 때마다 자주 본 사람이었다.

다급하게 사과하는 요리사에 강태황이 껄껄 웃어 보였다.

“아이고 제가 죄송하죠! 한눈팔고 걷다가 그만…?”

요리사를 바라보던 강태황이 눈을 가늘게 떴다.

평소와는 달랐다.

무언가에 겁을 먹은 건지 지나치게 손을 떨어대고 있는 요리사.

강태황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요리사의 눈을 따라갔다.

“…!”

괜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게 아니었다.

요리사의 시선이 닿는 곳엔 아무렇게나 구겨진 종이가 버려져 있었다.

어디에서 돌아다니든 쓰레기 정도로 보일 만한 종이 뭉치.

종이를 잠시 쳐다보던 강태황이 요리사를 다독이는 척 자연스럽게 몸을 숙였다.

그리고 빠르게 종이를 주워 옷 안으로 챙겨 넣었다.

“또 다른 분과 부딪히지 않게 정신 차리고 다니겠습니다. 나중에 또 뵙죠.”

인사를 건넨 강태황이 자연스럽게 요리사를 지나쳤다.

그리고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졌을 때쯤.

주위를 살핀 강태황이 요리사가 건네준 쪽지를 살폈다.

# 강태황 장관. 빠져나가세요. 함정.

급하게 휘갈겨 쓴 글씨였다.

“함정…?”

강태황이 미간을 찌푸렸다.

왠지 모르게 낯익은 글씨체였다.

핸드폰을 꺼내 무언가 검색한 강태황이 종이와 화면을 비교해보았다.

‘대통령…!’

대통령이 남긴 글씨였다.

무슨 상황인지는 몰라도 몹시 다급한 상황인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걸 요리사에게 대신 전달해달라고 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급해진 강태황이 대통령이 머무는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빠져나가라고 했지만 쪽지를 본 이상 이대로 그냥 나갈 순 없었다.

방 앞까지 도착한 강태황이 빠르게 노크를 했다.

“강태황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잠잠한 방에 강태황이 문고리로 손을 뻗었다.

“들어가겠습니다.”

끼익 소리와 함께 열리는 방문.

방문이 전부 열려 시야가 확보되었을 때쯤.

쿵.

작은 소리가 들리더니 방의 불이 꺼졌다.

“…?”

묘한 위화감에 강태황이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불이 꺼진 건 방뿐만이 아니었다.

청와대를 밝히던 모든 빛이 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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