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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463화 (463/473)

463화. 용의자

이게 스파라는 건가.

보면 볼수록 기가 막힌 집이 아닐 수 없었다.

한강 다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스파 욕조를 설치하다니.

누가 만든 지는 몰라도 격하게 칭찬해주고 싶었다.

욕조로 기대자 몸이 노곤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잠들어도 되는 건가.

양을 셀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눈을 감기만 해도 그대로 꿈나라로 빨려들 것 같은 느낌.

스파의 힘을 온몸으로 만끽하고 있을 때 잠잠하던 전화벨이 울렸다.

응? 유빈 님이네.

당연히 비광일 거라 생각했었다.

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 있자니 혹시 저번에 집들이 안 부른 걸 알아차린 건 아닐까 걱정됐다.

유빈 님은 바쁠 테니까 조금 있다 물어봐야지 해놓곤 깜빡해버렸었다.

“여보세요?”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자 너머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쉬지 않고 터져대는 플래시 소리부터 웅성이는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어디 회식이라도 가서 전화하는 건가 싶었다.

# 백운 님!!

“네! 유빈 님! 듣고 있습니다!”

이제 집들이 왜 안 불렀냐고 한바탕 뭐라고 하려나 하는 순간.

# 큰일 났어요! 얼른 저희 방송국 채널 틀어보세요!

다급한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TV를 켰다.

그러자 믿기지 않는 문구가 눈앞에 나타났다.

# 헌터청 장관 강태황, 청와대 경호처장 살해 혐의로 긴급 체포!

“뭐야.”

무의식적으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래로 내린 전화기에선 송유빈이 계속 뭐라 말하고 있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 강태황이 카메라에 나타난 건 아니었다.

정보를 입수한 기자들이 청와대 방향으로 구름같이 몰려가고 있었다.

송유빈도 아마 저기 어딘가에 있을 듯했고 말이다.

옷을 챙겨 입으며 전화기를 들었다.

“유, 유빈 님.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에요?”

조금 전까지 몸을 지배하던 노곤함은 깔끔히 사라져 있었다.

이해가지 않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대통령을 만나러 간다던 강태황이 왜 갑자기 살해 용의자가 되었으며 난 왜 이 소식을 헌터청이 아닌 송유빈에게 제일 먼저 듣게 된 건지 말이다.

# 익명의 제보가 왔었어요! 강태황 장관님이 청와대에서 살인을 저질렀다고요!

강태황이 경호처장을 진짜 죽였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아직은 막연하지만 모든 게 잘 짜여진 함정일 터였다.

방송국에 전화한 놈도 함정을 판 놈들 중 한 명일 가능성이 높았고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청와대 내부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관보다 먼저 알아채고 방송국에 전화한다는 건 말이 안 됐다.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유빈 님. 제가 또 전화 드릴게요.”

송유빈의 전화를 끊고 두어 차례 심호흡하며 머리를 맑게 만들었다.

일단 비광이나 기태랑에게 전화를 걸려는 순간.

TV 화면으로 강태황의 모습이 나타났다.

아까 차에서 떠날 때와 달라진 것 하나 없는 모습이었다.

새빨간 피를 온몸에 뒤집어썼다는 걸 제외하면 말이다.

# 강태황 장관님! 정말 청와대 경호처장을 죽이셨습니까?!

# 권력 다툼에 의한 살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말씀 부탁드립니다!

# 수사 진행에 따라선 경호처장 살해뿐만이 아니라 대통령 암살 미수까지 적용될 거라 들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통령 암살 미수?”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강태황을 애타게 부른 건 대통령이었다.

쏟아지는 질문 공세 속에서도 강태황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때 카메라 한편으로 마이크를 든 송유빈의 모습이 잡혔다.

질문을 쏟아내는 기자들 틈에서 송유빈은 혼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복잡한 얼굴로 강태황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띠리리리!

“비광 님!”

# 뉴스 보고 있지?

비광의 목소리는 의외로 차분했다.

나도 흥분을 가라앉히며 비광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 뭔진 몰라도 제대로 당한 거 같네. 잘 들어 백운. 이제부터 나랑 기태랑, 희수는 장관님이 조사받게 될 검찰청으로 갈 거야. 내 생각엔 지켜볼 것도 없이 유죄가 나올 거 같거든. 모든 기관이 짜여진 것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걸 보면 말이야. 어쨌든. 우리 세 명이 강태황 장관님을 지키고 있을 거야. 막강한 사람이지만 놈들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전 어떤 새끼들이 한 짓인지 알아볼게요. 강태황 장관님 무죄를 입증할 수 있게요.”

# 역시 이해가 빠르구만. 1급 헌터 중에 얼굴이 안 알려진 건 너뿐이야. 다른 1급은 움직이는 족족 눈에 띌 거라 경계심만 심어주겠지. 우리가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 볼 테니까 고생 좀 해줘.

“걱정하지 마세요. 범인 새끼 머리채 잡고 데려갈 테니까.”

몇 마디 인사를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열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곧장 베란다 문을 열고 밖으로 몸을 날렸다.

먼저 사건 현장인 청와대로 가볼 생각이었다.

* * *

경비 더럽게 삼엄하네.

가득한 인파에 섞여 주위를 살폈다.

예상은 했지만 다 때려 부수는 게 아닌 이상 청와대로 들어가긴 힘들 것 같았다.

잔뜩 모여든 기자들과 구경 인파도 문제였다.

보는 눈이 이렇게 많으니 뭘 하든 금방 눈에 띌 터였다.

인파를 헤치며 조금 더 나아가자 구석진 곳에 서 있는 CBC 방송국 차량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차량 뒤에서 고함에 가까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임마! 너 기자야!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든 일단 질문했어야지! 카메라 앞에서 입 꾹 다물고 있으면 그게 기자야?!”

누가 이렇게 혼나나 봤더니 송유빈이었다.

아까 강태황에게 질문하지 않은 것 때문에 가루가 되어 가는 중인 듯했다.

“…!”

조용히 훔쳐보는 시선을 느낀 걸까.

탈탈 털리던 송유빈이 내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잠시 놀란 눈을 하더니 못 본 척 다시 시선을 내리까는 송유빈.

“야 송! 할 말 있어? 내 말이 맞아 틀려?! 검찰청 가서 또 입 꾹 다물고 있어라!”

가만히 듣고 있던 송유빈이 갑자기 눈을 치켜떴다.

“네! 입 꾹 다물고 있을게요!”

“뭐? 야! 너 이리와!”

“팀장님이 시키셨으니까 꾹 다물고 있을 거예요! 아무 질문도 안 해! 안 들려! 에베베!”

오랜만에 보는 카메라맨 진유석이 흥분한 팀장을 말리고.

그 사이 송유빈이 호다닥 자리를 빠져나와 내 쪽으로 달려왔다.

“이쪽으로!”

이리 오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팀장을 뒤로하고.

송유빈을 따라 차가 빼곡한 주차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거 참 창피하네요. 가루가 되도록 털리는 모습이나 보여드리고. 많이 놀라셨죠? 백운 님.”

“놀라긴 했는데 일단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좀 알아보려고요. 경호처장은 진짜 죽은 건가요?”

“네. 병원에서 일하는 친구한테 들었는데 검시 결과 경호처장 본인이 맞대요.”

주위를 두리번거린 송유빈이 핸드폰으로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이거 불법이니까 저 잡아가지 마세요. 경호처장 사인이에요.”

천천히 화면에 떠오른 문서를 읽어나갔다.

엄청난 괴력에 의한 구타라니.

이것만 봐선 딱히 감이 오지 않았다.

“사진까진 못 받았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뼈가 성한 곳이 하나도 없대요. 금이 가거나 부러진 수준이 아니라 거의 가루가 되도록 얻어맞은 거죠.”

“이건 사실 강태황 장관님이 아니어도 가능한 일이잖아요.”

“보통이라면 그럴 거 같은데요.”

화면이 넘어가며 새로운 정보가 나타났다.

청와대 경호처장의 개방 능력이었다.

“방어에 특화된 능력자였어요. 무협 용어로 하면 호신강기라 그러나요? 반투명한 기를 둘러 광범위하게 방어를 할 수 있었대요. 자기 몸엔 항상 두르고 다녔고요. 하도 단단해서 이걸 뚫을 수 있는 사람은 한국에서도 강태황 장관님이랑 무기왕 뿐이라고 사람들이 말할 정도였고요.”

“마침 현장에 장관님이 계셨던 거군요.”

“맞아요. 무기왕은 그 자리에 없었으니까요. 거기다 발견 당시 장관님이 경호처장의 피까지 뒤집어쓰고 계셨으니.”

송유빈이 고개를 숙이며 말끝을 흐렸다.

모든 정황 증거가 강태황을 범인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턱을 문지르며 청와대를 바라봤다.

제일 만나고 싶은 건 강태황을 불러들인 대통령이지만 지금 상황에 가능할 리가 없었다.

암살 미수 의혹도 있는 만큼 아주 꽁꽁 둘러싸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뭐라도 집어 와야 하는데.

그래야지 이청아에게 지난 기억이라도 봐 달라고 부탁할 수 있었다.

내 마음을 안 건지 송유빈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백운 님이 1급 헌터라도 지금은 힘들 거예요. 모든 기관에서 헌터청의 수사 권한을 박탈했거든요. 오히려 1급 헌터라고 밝히면 더 경계하고 배척하겠죠.”

“참, 조치가 빠르네요. 미리 짜놓은 것처럼.”

“맞아요. 걸려왔던 제보 전화도 그렇고 잘 짜여진 각본 같아요.”

무언가 생각하던 송유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강태황 장관님은 왜 아무 말씀도 안 하셨을까요? 그거 때문에 여론이 더 안 좋아지고 있거든요.”

아까 TV에서 봤던 강태황의 모습을 곰곰이 떠올려보았다.

송유빈의 말대로 함정에 빠졌다고 한마디 말이라도 하는 게 훨씬 나았을 터였다.

국민 대부분은 헌터청에 우호적인 만큼 전설적인 영웅인 강태황이 누명이라고 주장하면 분명 옹호 여론이 크게 일었을 테니까.

하지만 강태황은 그러지 않았다.

강태황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을 리도 없었다.

“강태황 장관님이 하시는 일엔 항상 이유가 있었어요.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말하지 않은 게 아니라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던 거죠.”

생명의 위협 같은 건 씨알도 안 먹힐 터.

강태황에게 먹힐 정도의 협박이라면 헌터청 아니면 국민과 연관이 있을 듯했다.

뭐가 있을까 떠올리던 중.

응?

CBC 차량 근처에서 서성이는 여자가 보였다.

쉴 새 없이 여기저기 눈치를 보는 게 몹시 불안정한 모습이었다.

여자는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원하는 사람이 안 보이는 건지 손톱을 깨물던 여자가 몸을 돌렸다.

잠시 여자를 바라보다 떠오르는 생각에 급히 송유빈의 손목을 붙잡고 걸음을 옮겼다.

“배, 백운 님?!”

“유빈 님. 저기 걸어가는 여자 분 보이시죠?”

“네, 네!”

“죄송한데 한 번만 여자분 앞을 지나가 주실래요?”

내 다급함을 봐서일까.

송유빈이 더 이상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인가 헛기침을 하더니 여자 앞으로 자연스럽게 걸어가는 송유빈.

가까워지는 두 사람에 속으로 기도를 시작했다.

부디 내 생각대로 여자가 송유빈을 보고 반응하길 말이다.

이윽고 송유빈이 여자의 시야에 들어간 순간.

“!!!”

송유빈을 보며 눈을 크게 뜬 여자가 걸음을 멈추었다.

송유빈도 영문을 모르겠는 여자의 행동에 잠시 벙찐 얼굴이었다.

묘한 정적에 송유빈이 내 쪽을 슬쩍 쳐다봤다.

오긴 왔는데 다음은 어떻게? 라는 표정이었다.

저벅.

대답 대신 지체 없이 두 사람에게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리를 뜨려는 여자.

여자가 더 멀어지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1급 헌터 무기왕입니다.”

자리를 피하려던 여자가 멈칫하며 걸음을 멈췄다.

“절 찾아오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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