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7화. 과거의 장수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
몸을 툭툭 털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한밤중인데도 밝게 밝혀진 청와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나저나 어떻게 들어간다.
급한대로 우미희에게 전화를 걸고 함대를 부수긴 했지만.
청와대로 들어가는 방법은 여전히 미정이었다.
바깥에 잔뜩 깔린 인원을 보니 입구에서 절차를 밟아가며 들어가는 건 한 세월일 것 같았다.
곱게 보내 줄 거 같지도 않았고 말이다.
쿵. 쿵. 쿵.
나지막하게나마 소리가 들리는 걸로 보아 우미희가 싸우는 중인 듯했다.
덕분에 바깥에 있던 인원들도 상황을 살피려고 청와대 쪽으로 몰려가는 중이었고 말이다.
“생각 멈춰.”
답이 없는 문제였다.
마스크를 쓰고 곧장 몸을 뒤집어 청와대로 방향을 잡았다.
무기왕 하늘에서 청와대 습격.
내일 기사를 장식할지도 모를 제목이었다.
아래로 천천히 떨어지다 연기를 터뜨리며 속도를 올렸다.
청와대 주변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선지 두꺼운 쉴드로 감싸져 있었다.
[유탈라스 - 1단계 의태]
비늘로 감싼 오른팔을 뒤로 젖혔다.
아래에서도 날 파악한 건지 고개를 드는 놈들이 있었다.
그러든가 말든가 냅다 쉴드로 주먹을 꽂아 넣었다.
콰아아앙!
커다란 굉음과 함께 쉴드 전체가 흔들렸다.
하늘로부터 공격받을 걸 염두에 둔 건지 엄청난 겹수의 쉴드였다.
몇 겹이 깨졌지만 여전히 일렁이며 길을 막고 있는 쉴드.
계속 주먹을 휘둘러 쉴드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굉음이 울려 퍼질수록 청와대 바깥도 분주해졌다.
자고 있던 기자와 카메라맨들도 몽땅 일어나 몰려나온 것 같았다.
잠시 후부턴 쉴 새 없이 카메라가 돌아가며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마지막.
남은 비늘을 집중해 아래로 휘둘렀다.
드디어 완전히 박살 나며 산산조각 흩어지는 쉴드 조각들.
아래로 착지한 후 고개를 들었다.
청와대 첫 방문 방법이 이렇게 무식할 거라곤 생각 못했었다.
“무, 무기왕!!”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바쁘게 몰려가던 사람들은 모두 걸음을 멈춘 채 멍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대한민국 소속 1급 헌터 무기왕입니다.”
요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훑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무기왕이란 걸 알고 계시니까 길게 얘기 안 할게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 아시죠?”
[사사키 코지로 - 스이카]
“이제부터 적에 붙은 분이면 움직이시고. 아니면 가만히 있으세요.”
“허세 부리지 마….”
끼아아아아아악----!
귀신의 울음이 터져 나오고.
허공으로 방금 움직인 남자의 팔이 솟아올랐다.
“끄아아아악!”
남자가 피를 뿜으며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그 모습에 안 그래도 얼어있던 요원들이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움직이면 보시는 것처럼 어디 하나 날아갈 거예요. 팔다리가 될 수도 있고, 모가지가 될 수도 있고. 그건 랜덤. 그럼 이제부터 시작할게요.”
말을 끝마치기 무섭게 건물 방향으로 발을 뻗었다.
“자, 잡아!!”
“못 가게 막아라!”
“쯧.”
내가 등을 돌리고 나서야 움직이는 요원들에.
혀를 차며 다시 한번 스이카를 뽑아 들었다.
끼아아아아아악---!
* * *
“허어.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쇼파에 앉아있던 허저가 바깥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커다란 진동이 청와대를 울리는가 싶더니 잠시 후엔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무, 무기왕이다!”
“이, 이런!”
기겁을 한 의원들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해갔다.
무슨 일을 하든 항상 가장 큰 변수가 되는 존재.
무조건 성공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데몬 침공도 한 번에 뒤집어버린 인간이 도착한 것이었다.
“뭔데 그렇게 기겁을 해? 유명한 놈인가 보네.”
허저가 의원들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웃을 일이 아니야! 완전 괴물이란 말이다!”
“세계에서 인정하는 괴물이 온 거라고!”
“허어 괴물이라. 내가 제일 많이 들었던 이름인데 반갑구만.”
허저 역시 과거 전장에서 괴물 전차라 불린 인물이었다.
앞을 가로막는 게 누구든 닥치는 대로 베고 길을 뚫었기에 생긴 별명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부류이기도 하지.”
움직이지 않던 허저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고 있는 놈이 괴물이라면 두 팔 벌려 환영이었다.
큰 기대를 안고 한국에 왔는데 누구를 일방적으로 두들기기만 했을 뿐 싸움이라고 부를만한 걸 해보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샹! 헛소리하지 말고 여기나 도우라고!!”
허저 옆에 나타난 위연이 날카롭게 소리 질렀다.
아까와 달리 위연은 더 이상 긴 머리가 아니었다.
단발 길이까지 잘려나간 건 물론 몸 여기저기에 베인 상처가 가득했다.
깔끔했던 정장은 어느새 피로 붉게 물든 상태였고 말이다.
“어리기만 한 새끼가 아니란 말이다!”
우미희를 바라보며 위연이 인상을 찌푸렸다.
본체는 들러리라고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다.
안 졸리다고 말하더니 그림자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 우미희.
정면은 우미희가, 나머지 빈 공간은 그림자가 카바하니 순간 이동이 가능한 위연임에도 상처만 쌓여가고 있었다.
“네 싸움은 네가 알아서…!!”
대꾸하던 허저의 눈동자로 푸른 기운이 감돌았다.
땀을 흘리며 어떻게든 버텨내던 허저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 새끼들… 이.”
잠시 후 초점이 흐려진 허저가 손으로 거대한 기를 둘렀다.
“진작 했어야지! 젠장!”
허저의 상태를 확인한 위연이 인상을 찌푸렸다.
유골을 이용해 허저를 무덤에서 불러온 강령술사.
조종당한다는 게 기분 나쁘긴 했지만 결국 불려온 자들은 부른 자의 명령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응? 아저씨도 싸우…!?”
쩌어어엉!
허저가 주먹을 휘두른 찰나.
공기를 가른 엄청난 충격파가 우미희에게 쏘아졌다.
방어하기 위해 그림자가 앞으로 나섰지만 소용없었다.
“그림자야!”
우미희가 눈을 크게 뜨며 흐릿해진 그림자를 불렀다.
그림자라고 무적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허용 가능한 대미지를 넘어서면 휴식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방금 전 허저의 공격 한 방으로 그림자의 대미지 허용 가능치가 넘어 가버리고 말았다.
흐물흐물거리더니 사라지는 그림자에 우미희가 허저를 바라봤다.
허저는 제자리에 서 기를 모으고 있었다.
방금처럼 다시 한번 충격파를 쏘아내려는 것이었다.
“피, 피하십시오! 어차피 저놈들은 절 죽이지 못할 겁니다!”
다급해진 이석준이 소리 질렀다.
바다의 함대가 사라지며 저들의 말을 들을 이유가 사라진 이석준.
저들도 이 사실을 알기에 자신을 살려두리란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설령 그럴지라도 우미희는 도망치게 해야 했다.
우미희 혼자라면 왔을 때처럼 그림자로 숨을 수 있을 터였다.
“그림자는 자러 갔지만 난 안 졸리니까 괜찮아. 그리고.”
“이제 그만 뒤져라!”
위연이 우미희의 사각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림자의 방어 때문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던 방향이었다.
예상한대로 우미희는 반응하지 않고 있었다.
대신 작은 손가락을 펼쳐 천장 위를 가리켰다.
“왔어.”
콰아앙!
* * *
콰드드드!
“끄으윽!”
“뭐야. 이 날파리 새끼는.”
발에 밟혀 있는 남자를 내려다봤다.
우미희를 공격하고 있길래 일단 목부터 밟고 봤었다.
“발 당장 안 치….”
우드득!
적이 맞는 거 같아 목을 부서뜨렸다.
그러자 아까 배에서 봤던 놈들과 마찬가지로 남자의 몸에서 푸른 기운이 새어 나왔다.
기운이 허공으로 흩어지자 그제야 남자의 호흡이 잦아들었다.
응?
발을 떼고 나서야 옆에 앉아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허어억.
가면이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 화들짝 놀란 표정을 가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대, 대통령!
TV에서나 봤지 실제로 마주하는 건 처음이었다.
마찬가지로 이석준도 많이 놀랐는지 입을 쩍 벌린 채 날 쳐다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무기….”
“저거 뭐 날아와.”
공손하게 자기소개를 하려는 찰나.
옆에서 커다란 충격파가 날아들었다.
우미희를 테이블 아래로 끌어 내리며 몸을 숙였다.
콰가가가!
충격파가 그대로 벽을 부수며 밖으로 쏘아졌다.
시원시원한 위력이었다.
“쟤 뭐야?”
“허저래.”
“응?”
우미희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앞에 서 있는 놈은 경호처장을 죽인 녀석이었다.
그런데 허저라니.
삼국지 장수 중 한 명이라 나 역시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얘는 위연.”
우미희가 널브러져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코드명으로 삼국지에서 장수의 이름을 따온 걸 수도 있으나.
정체불명의 푸른 기운을 보고 있자니 단순히 이름만 따라한 게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여기 있어.”
돌아나가며 손으로 기를 모으는 허저에게 달려갔다.
쇼파 아래 쥐새끼처럼 숨어있는 의원들이 보였지만 놈들은 나중이었다.
“밖으로 나가자.”
[도윤 - 비전 수리검]
수리검을 크게 스윙해 허저의 몸을 쳐냈다.
기 모으던 걸 멈추며 막아서더니 문을 뚫고 뒤로 밀려나는 허저.
수리검에 닿은 팔이 덜렁거리는데도 허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날 죽이는 게 목표인 건지 기를 모으던 주먹을 내 옆통수로 휘둘렀다.
날아드는 주먹으로 수리검을 치켜들었다.
쩌어어어엉!
수리검이 꽤 무거운 중량을 가졌음에도 몸이 반대편으로 쭉 밀려났다.
사이마다 기를 모으는 텀이 있지만 역시 위력 하나만큼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잭 더 리퍼 - 면도칼]
“난타전에 자신이 있나 보네.”
대답을 기대하고 물은 건 아니었는데.
고개를 몇 번 흔든 허저가 입을 열었다.
“으 이거 참 당할 때마다 기분이 더럽구만.”
초점이 흐릿하던 눈은 어느새 또렷해진 상태였다.
“팔은 또 왜 이래.”
인상을 찌푸린 허저가 달랑거리는 팔을 내려다봤다.
“그거 내가 그랬어.”
“허. 역시 나약하기 짝이 없는 몸뚱이구만.”
친절하게 알려주자 허저가 껄껄껄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팔이 저 지경인데도 저렇게 웃다니 역시나 기괴한 놈들이었다.
“당신 진짜 허저야? 그 삼국지의?”
“날 아는 건가?”
“알지. 위나라의 장수.”
“껄껄껄! 이 시대까지 내 이름을 아는 자가 있다니 영광이구나! 난 중강 허저다!”
허저가 다시 한번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몸이 이렇게 나약하진 않았다! 이건 덩치만 컸지 단련이라곤 전혀 되지 않은 쓰레기거든!”
본인 몸이 아닌 건가.
남자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남자가 정말 허저이고 어떤 방법으로 인해 되살아난 거라면.
다른 사람의 몸을 빌어 영혼이 불려오는 방식일 것 같았다.
“뭐 내 몸 얘기는 그만하고. 아까 들어보니 네가 이 세계에서 괴물이라 불린다고 들었다. 맞는가?”
“글쎄. 맞을 거 같은데.”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하자 허저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괴물이라 불렸던 자.”
허저가 덜렁거리던 팔을 거추장스럽다는 듯 뜯어 저 멀리로 던져버렸다.
“과거의 괴물과 현대의 괴물이라.”
자세를 숙이며 남은 팔로 기를 모은 허저가.
“이거 오랜만에 재밌는 싸움이 되겠구나!”
바닥을 박차며 내 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게.”
삼국지에서 용맹하다 알려진 맹장 허저.
그런 허저와의 싸움이라니 나 역시 절대 마다하고 싶지 않았기에.
“재밌겠구만!!”
자세를 낮추며 달려든 허저를 향해 수리검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