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9화. 제자리로
한밤중 청와대에서 굉음이 들려오며 다시 시작된 특종 경쟁.
비슷비슷한 시청률을 기록하며 중계 중이던 방송사들은 현재 난리가 나 있었다.
“뭐, 뭐야! 시청자들 다 어디 갔어!”
“라이브 채널에서도 실시간으로 빠져나가는 중입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에요! 다른 방송국도 마찬가지예요!”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직원이 입을 열었다.
“C, CBC예요!”
“뭐? CBC가 어쨌다고? 걔네 강태황 장관한테 질문도 안 해서 완전히 나가리된 거 아니었어?”
“CBC 틀어보세요! 빨리요!”
우렁찬 외침에 근처에 있던 방송사들도 채널을 돌리기 시작했다.
“허.”
그리고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시청률이었다.
라이브 방송의 채팅창은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빠르게 올라가는 중이었고 말이다.
각 방송사에서 빠져나간 시청자가 모조리 CBC로 몰린 것이었다.
“이, 이거 뭐야. 지금 나오고 있는 거 뭐냐고!”
시청자가 몰린 이유는 간단했다.
화면에 나오고 있는 건 청와대 내부의 상황이었다.
무기왕이 청와대로 들어간 후의 1인칭 시점 영상.
청와대로 가까이 다가가지 못해 외관만 찍어대는 중인 다른 방송사들 입장에선 벙찔 수밖에 없는 영상이었다.
@ 와 CBC 클라스 뭐냐 이거.
@ 말도 안 되네. 무기왕이 직접 준 건가?
“이런 샹… 이건 반칙이잖아.”
책임자들이 손톱을 물어뜯으며 방송에 집중했다.
시청률이 나락 간 건 당장 어쩔 수 없더라도 무슨 내용이 흘러나올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를 든 송유빈은 동영상에 맞춰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 1급 헌터 무기왕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직접 찍은 영상입니다!
송유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청와대 요원들의 진술이 흘러나왔다.
강태황이 경호처장을 죽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함정을 팠다는 이야기였다.
대중에 공개되지 않은 정보들로 실제 가담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 이거 봐! 내 말이 맞지! 강태황 장관님이 그럴 리가 없잖아!
@ 만약 진짜 죽였어도 경호처장이 나쁜 새끼일 거라 했잖아!
@ 무기왕 미쳤다. 청와대로 떨어지길래 반역인가 했는데.
@ 헌터청! 믿고 있었다구우우!
“국장님. 우리 방송국 게시판에 실시간으로 댓글이 달리고 있습니다. 강태황 장관을 범인인 것처럼 몰아가더니 꼴좋다고요. 기레기라면서 난리가 났어요.”
보고를 받은 국장이 눈을 질끈 감았다.
시선을 끌기 위해 최대한 자극적이게 방송해야 하는 게 정석이긴 했지만.
이번엔 줄을 잘못 서도 단단히 잘못 선 것 같았다.
“청와대는 글렀다. 검찰청 중계로 방향 틀어. 다른 방송국보다 빨리 도착해서 강태황 장관 무죄 쪽으로 진행하라고!”
“예!”
모두가 죽상이 되어 발에 불똥이 떨어진 것과 달리.
CBC 방송국 차량엔 웃음이 가득했다.
“시청률 완전 미쳤어요! 40% 넘어가고 있습니다!”
“뭐, 뭐? 40%?”
조영천이 자기도 모르게 귀를 문질렀다.
쉽게 와 닿지 않는 수치였다.
눈을 돌린 조영천이 방송을 진행 중인 송유빈을 응시했다.
이제부터 입 꾹 다물고 아무 질문도 안 할 거라며 뛰쳐나갔던 송유빈.
갑자기 돌아와서 빨리 방송 준비하라길래 이게 드디어 미친 건가 싶었는데 엄청난 걸 가지고 와버렸다.
안 그래도 슈퍼 인기스타인 무기왕이 직접 건넨 동영상이라니.
여기에 더해 유일하게 강태황한테 질문하지 않았던 송유빈과 CBC 방송국을 칭찬하는 글이 폭발적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 역시 CBC다! 대한민국의 전설한테 예의를 지켰어!
@ 시청률 따위에 의를 저버리지 않는 송유빈과 CBC! 몹시 칭찬합니다!
조영천이 마른침을 삼켰다.
국장을 포함해 방송국 임원들이 상주하는 대화방도 불이 나 있었다.
당장 송유빈이 소속된 중계팀에 크게 보상하라는 말도 끊이지 않는 상태였다.
“유석아.”
“예?”
조용히 진유석을 부른 조영천이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앞으로 내가 유빈이한테 화내려고 하면 뺨 때려라.”
“뺘, 뺨요?”
“저런 복덩이에게 뭐라고 하는 놈은 맞아도 싸니까.”
조영천이 눈을 반짝이며 송유빈을 바라봤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송유빈은 CBC 방송국의 복덩어리였다.
* * *
“아,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예.”
전화를 마친 오영욱이 고개를 들었다.
검찰청 윗선에서 걸려온 전화에 아주 제대로 털린 것이었다.
검찰총장은 당장 강태황을 풀어주라고 아주 노발대발이었다.
“구속 수사는 여기서 중단하겠습니다.”
오영욱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자 비광과 기태랑이 굳게 닫혀 있던 문을 열었다.
“영감님. 가도 된대요.”
“가시죠. 장관님.”
두 사람의 말에 조용히 앉아있던 강태황이 몸을 일으켰다.
“이거 아쉽구만! 오랜만에 머리도 식힐 겸 아주 좋았는데 말이야!”
문에서 걸어 나온 강태황이 널브러진 시체들을 바라봤다.
어쩐지 밖이 소란스럽더니 한바탕 난리가 나 있었다.
“이건 우리가 안 치워도 되겠지?”
“예, 예.”
강태황이 쭈구리가 된 오영욱을 내려다봤다.
한껏 건방지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은 무거운 처벌을 기다리는 겁쟁이 한 명이 서 있을 뿐이었다.
“알아서 잘 치워주게나. 아, 이름이 뭐라고 했지?”
이번엔 아까처럼 건방지게 대답할 수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인 오영욱이 입을 다물었다.
그런 오영욱을 쳐다보다 강태황이 몸을 돌리고, 1급 헌터 세 명이 강태황의 뒤를 따랐다.
“대통령은 무사하십니다. 바다 쪽에 있던 함대도 전멸했고요.”
비광이 백운과 영상 통화 중이던 핸드폰을 강태황에게 건넸다.
뭐라 뭐라 귀를 후비며 말하다가 강태황이 보이자 호다닥 자세를 고쳐 잡는 백운.
“저 간사한 놈.”
나지막한 비광의 혼잣말을 뒤로하고.
백운을 조용히 보던 강태황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신세졌구만.”
# 어휴 신세라뇨! 하나도 안 힘들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비광에게 당장 소고기 사달라고 울부짖던 백운이었는데.
1초도 안 돼서 태세를 전환한 모습이었다.
# 강태황 장관인가.
잠시 후 화면으로 대통령 이석준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석준이 미안함 가득한 표정으로 강태황을 쳐다봤다.
당장에라도 무거운 사과를 할 것 같은 이석준에 강태황이 선수를 쳤다.
“하하하하! 왜 그런 표정을 지으십니까! 아무 말씀 마시고 돌아가서 뵙도록 하죠.”
# … 알겠네.
덩달아 미소를 지은 이석준이 화면에서 사라지고 다시 백운이 나타났다.
“지금 바로 갈 테니 조금만 기다리게.”
#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강태황이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백운 옆에 있는 이석준을 보고 있자니 뭐랄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푹 놓였다.
몇 발자국 앞서간 기태랑과 비광이 검찰청 입구의 문을 열어젖혔다.
기다렸다는 듯이 터져 나오는 카메라의 플래시.
엄청난 수의 기자가 대기 중이었다.
그럼에도 강태황의 지나갈 길이 막혀있거나 하진 않았다.
“고생하셨습니다. 강태황 장관님.”
어느새 도착해 일렬로 늘어선 각 지부의 헌터들이 기자들을 막으며 길을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업무는 정상적으로 진행 중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와하하하! 걱정 같은 거 한 적 없네! 어련히 잘했을까.”
크게 웃은 강태황이 큼지막한 걸음을 옮기고.
그 뒤를 줄줄이 따라나서는 헌터들에 기자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의 강태황은 단순한 한 명의 헌터가 아니었다.
강하고 아니고를 떠나 저 많은 수의 인원을 휘어잡는 통솔력과 카리스마, 국민에게서 쏟아지는 무한한 신뢰까지.
대한민국에선 없어선 안 되는 기둥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이런 존재를 단신으로 구덩이에서 끄집어낸 존재, 무기왕.
무기왕은 어떤 최악의 상황에서든 단번에 판을 뒤집어버리는 헌터청의, 대한민국의 최후의 보루이자 무너지지 않는 상수 그 자체였다.
“이게 마지막일 거다.”
“예?”
선배 기자의 혼잣말에 옆에 있던 후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말입니까?”
“어떤 형태로든 헌터청을 건드리는 거 말이야. 대한민국의 모든 기관이 오늘 일로 알게 되었을 테니까. 무기왕이란 괴물이 존재하는 이상 무슨 수를 써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걸.”
후배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검찰청 방향을 바라봤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 선배 기자뿐만이 아니었다.
밖으로 나온 검찰청 인원들이 공포와 경이가 섞인 눈으로 강태황과 헌터들의 뒷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
* * *
“와 해 뜨네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살면서 겪은 것 중 가장 긴 하루였다.
“고생 많았어. 이렇게 빨리 끝낼 줄은 상상도 못 했네.”
“그러니까. 몇 시간 만에 함대 부수고 청와대 쳐들어가고 영상 촬영해서 방송국에 넘기고.”
기태랑과 비광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류희수도 흔들리는 눈동자로 날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12시간 안엔 힘들 거 같아서 어떻게 시간을 끌까 고민 중이었거든. 안되면 문 앞에서 무력시위라도 하려던 참이었고.”
“국가 반역자 될 뻔했지.”
“하하… 여기저기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인천 지부에 있는 이청아 님이라고 했지? 범인 지목해 준 거.”
“네 맞아요. 경호처장의 유품에서 찾아줬어요.”
“영감님이랑 같이 한 번 찾아가려고. 감사 인사는 제대로 해야지. 그리고.”
비광과 기태랑, 류희수가 좌석 아래로 눈을 돌렸다.
“대산에도 신세를 졌네.”
멀쩡한 자리를 놔두고 우미희는 구석에 박혀 쿨쿨 자는 중이었다.
차에 타자마자 졸려어 라는 한 마디를 남긴 직후였다.
그림자는 멀쩡해졌네.
시선이 모이자 웅크리고 있던 그림자가 손을 흔들었다.
그런 그림자에 처음 비광이 그랬던 것처럼 움찔하는 기태랑과 류희수.
잠든 우미희를 바라보다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맛있는 거 사줘야겠다.
아까 전화를 걸 땐 하도 별난 녀석이라 단칼에 거절하면 어떡하나 약간 걱정했었다.
걱정한 게 무색할 정도로 바로 승낙하고 청와대로 가주었지만 말이다.
고맙네.
우미희가 아니었다면 시간이 훨씬 지체됐을 터였다.
어쨌든 양동 작전을 벌이려면 청와대로 들어가 대통령을 확실히 지켜 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저기 영감님 나오시네.”
청와대로 들어가 대통령과 일대일로 대화를 나누었던 강태황.
이야기를 잘 마친 건지 아까보다 훨씬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힘차게 문을 연 강태황이 차 안을 쭉 둘러봤다.
“다들 배고프지?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뭐 먹게요?”
밥 먹자는 말에 류희수가 불안한 눈으로 물었다.
“고생했는데 든든하게 먹어야 하지 않겠어?”
류희수의 불안이 점점 확신으로 변해갔다.
“혹시 순대국밥이라면 전 중간에 내릴게요.”
“하하! 내리긴 어딜 내려! 내리는 건 없어. 그리고 오늘은 순대국밥 아니니까 안심해.”
“정말요?”
“그럼! 내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본 적 있나?”
류희수가 여전히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강태황이 호쾌하게 웃으며 운전석으로 올라탔다.
에?
잠시 멈칫했지만 이번엔 망설이지 않았다.
호다닥 안전 벨트를 메고 두 손으로 손잡이를 붙잡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럼 출발하자고!”
엄청난 배기음과 함께 차가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