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4화
“그러니까 이 뼈를 모르툼 교수님께서 주셨다고?”
“워다나즈 님. 제가 마법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저희 업계에는 흑마법사들과는 상종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
두 친구는 냉정하게 현실을 지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뼈 소환수는 좀 소름끼치는 선물이었던 것이다.
저런 걸 주는 교수가 있다니...
이한은 자신도 모르게 변명했다.
“그래도 쓸모가 없지는 않잖아.”
“그렇긴 한데 소름끼칩니다.”
랫포드는 충성스럽게 말했다. 물론 말의 내용은 별로 충성스럽지 않았다.
그래도 요네르는 이한의 복잡한 마음을 눈치 챘는지 애써서 뼈 소환수의 장점을 찾아주었다.
“그래도 먹을 것 안 줘도 되고, 충성스럽고, 이것저것 할 수 있는 일 많고...”
“뭘 할 수 있습니까?”
요네르는 랫포드의 말을 못 들은 척 무시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좀 귀여울 수도 있지 않을까?”
“고마워. 요네르. 근데 들으니까 정신이 확 드는데. 이건 확실히 이상한 게 맞아.”
나름 선물 받은 게 쓸모 있다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이한은 더 이상 현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뼈 소환수는 이상한 게 맞았다.
“대체 이 뼈 소환수를 왜 선물한 걸까?”
“글쎄... 그보다 왜 뼈를 따로 선물해 준 건지 더 궁금한데.”
“학교 곳곳에 있는 뼈를 더 찾아서 합치라는 뜻 아닙니까?”
랫포드의 말에 요네르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웃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잠깐. 말도 안 되는 거 맞지?”
“......”
그러나 이한은 웃을 수가 없었다.
랫포드의 말이 너무 그럴듯했던 것이다.
‘진짜 그런 뜻으로 준 거 아니야?’
그렇지 않다면 검은 거북이 탑 학생이 주운 손뼈가 이렇게 착 달라붙어서 합체할 리가 없었다.
물론 정상적인 사고방식이라면 ‘대체 그런 뼈 수집 게임을 누가 좋아해요?’라고 생각하겠지만, 알다시피 교수들은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
자기 딴에는 ‘학생들이 이 뼈를 찾아다니며 즐거워하겠지?’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소름 돋는군.’
이한은 전율했다.
뼈 소환수 자체보다도, 교수들의 비뚤어진 사고방식이 더 무서웠다.
정상인으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무시무시한 생각!
“워다나즈! 암시장 구경은 다 했어? ...잠깐, 그 뼈는 뭐야?!”
뒤늦게 돌아온 아산 달카드는 이한 주변을 돌아다니는 뼈 소환수의 모습에 기겁했다.
대체 무슨 일이?
* * *
잉걸델 교수 앞에 모인 학생들의 숫자는 상당했다.
푸른 용의 탑이나 검은 거북이의 탑뿐만이 아니라, 불사조의 탑은 물론이고 흰 호랑이 탑 학생들까지 다 모인 것이다.
연금술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전부 다 재료가 필요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교수까지 함께하는 이번 같은 기회를 놓치면 학생들 수준으로는 산맥 안의 재료를 구하기 힘들었다.
잉걸델 교수는 학생들이 다 모이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입니다. 먼저 같은 탑 학생들끼리 모이십시오. 그리고 같은 탑 학생들끼리는 서로 얼굴을 확인하고 숫자를 외워놓으십시오. 주기적으로 인원을 확인해서 숫자가 줄어들지 않았나 점검하겠습니다.”
“......”
“......”
잉걸델 교수는 학생들한테 겁을 주는 재주가 있었다. 벌써부터 학생들의 얼굴은 긴장으로 팽팽하게 물들고 있었다.
‘하지만 긴장하는 게 낫긴 하지.’
괜히 산맥에 소풍 가는 느낌으로 갔다가 참사가 나는 것보다는 긴장을 더 하고 가는 게 맞았다.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다 얼굴을 아는 학생들이었다.
이한이나 요네르는 물론이고 아산, 거기에 황녀까지.
아산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워다나즈. 아까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한테서 들어보니까 네가 해준 요리가 그렇게 맛있었다던데.”
“과장이 심하군. 평범한 스튜였어.”
이한은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이 과장한다고 생각했다.
원래 굶었다 먹으면 뭐든 맛있기 마련.
이한이 아까 한 요리는 야채와 채소들을 즉석에서 잘라 넣고 기름과 소금, 후추와 토마토소스로만 조리한 단순한 스튜였다.
“아니. 그거 진짜 맛있었어.”
“정말로 맛있었습니다.”
“?”
이한은 의아해했다.
랫포드야 그렇다 치더라도 요네르까지 저렇게 반응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고기도 안 들어갔는데? 평소 기숙사에서 먹던 게 더 낫지 않아?”
“아니야. 밖에서 다 같이 먹어서 그런가? 그게 훨씬 더 맛있었던 것 같아.”
‘재료 때문인가?’
짐작가는 이유는 스튜에 들어간 갓 수확한 야채밖에 없었다.
우레걸음 교수의 오두막에서 갑작스럽게 자란 만큼, 우레걸음 교수가 뭔가 특별한 약을 뿌린 게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이런. 설마 교수님이 귀한 영약을 뿌렸는데 내가 눈치 없게 가지고 온 건 아니겠지.’
이한은 잠깐 후회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만약 그랬으면 텃밭 건드리지 말라고 우레걸음 교수가 남겨놨어야 했다. 심지어 저건 이한의 텃밭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역시 내 잘못이 아니군.’
이 정도로 평가가 좋을 줄 알았다면 이한도 먹어볼 걸 그랬다고 살짝 후회했다.
대체 맛이 어땠길래...
“잠깐. 넌 흰 호랑이 탑이잖아.”
아산 달카드는 긴 검은 머리칼을 가진 엘프에게 말했다.
저번에도 한 번 대화한 적 있는 흰 호랑이 탑 출신 학생이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흰 호랑이 탑의 다른 학생들과 같이 움직이는 대신 황녀에게 충성을 바친다는 것!
“같은 탑의 동료들에게는 이미 허락을 구했습니다. 저는 황녀님을 모시겠습니다.”
보아하니 벌써 황녀 주변에는 다른 탑 학생들이 몇몇 모여 있었다.
놀라울 정도의 충성심이었다.
그에 비해...
이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검은 거북이 탑 학생 한 명이 슬쩍 말을 걸어왔다.
“역시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다른 사람들을 모아서 시비를 걸어볼까요?”
“......”
너희들은 날 대체 어떻게 생각하는 거냐?
* * *
“여기가 좋겠습니다. 각자 재료를 수집해오도록 하십시오.”
몇 시간쯤 산길을 걸었을까. 잉걸델 교수는 꽃밭을 발견하고서 발걸음을 멈췄다.
학생들이 삼삼오오 나눠져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이 엘프 교수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학생들은 질서정연하게 잘 움직였다.
학생들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로 뭉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들 잘하고 있습니다.’
어느 탑이든 몇몇 리더 역할을 하는 학생이 있었다.
성격이나 방법은 다 제각각이었지만 위기를 맞이했을 때 이 리더 역할을 하는 학생이 친구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도 그 중 하나였다.
명가 출신다운 얼음장 같은 카리스마로 푸른 용의 탑뿐만이 아니라 다른 탑 학생들한테까지 강한 영향력을 뻗어내고 있는 소년.
차갑고 냉정할지언정 심성이 나쁘지 않아서 망정이었지, 만약 고약한 심성을 갖고 있었다면 탑이 여러모로 시끄러웠을 것이다.
‘언제나 우두머리 같은 학생은 나오기 마련이지만, 좀 차원이 다르긴 하군요.’
다른 탑 학생들 몇몇한테 이한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잉걸델은 약간 오해를 하고 있었다.
이한은 딱히 ‘마법명가에서 태어났으니, 다른 이들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은 내 의무다’같은 미친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짹짹짹.
“?”
잉걸델 교수는 앉아 있다가 뒤에서 들리는 새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팟!!
그 순간 잉걸델 교수는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 * *
“워, 워다나즈.”
이한은 구름버섯과 드워프망치버섯을 바구니에 넣다가 무언가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멀리서 검은 거북이 탑 학생 몇몇이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찾아온 것이다.
“무슨 일이지?”
“교수님이... 교수님이...! 사라지셨어!!”
“?!”
이한은 경악했다.
순간 머릿속에 몇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잉걸델 교수가 설마 학생들한테 교훈을 가르쳐주려고 일부러 안심시킨 다음 사라진 것일까?
‘아니. 난 잉걸델 교수를 믿는다. ...교수를 믿는 게 확률적으로 좋은 선택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한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제국 반마법주의자 같은 사악한 적들이 몰래 들어와서 잉걸델 교수를 납치한 걸까?
‘이것도 말이 안 되는군. 저번에 그런 습격이 있었던 만큼 경계와 방비를 몇 배로 올렸을 텐데, 그걸 뚫고 들어왔다고? 그랬다면 교장의 자격이 없지.’
이것도 아니라면 다음에 드는 생각은...
‘몬스터한테 당하신 건가? 하지만 잉걸델 교수는 알라르롱에 맞먹는 고수인데. 그런 고수가 몬스터한테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당하는 게 말이 되나? 그리고 그런 몬스터가 이런 산맥 외곽에 나타나는 게 말이 되나?’
사실 생각해보니 이 마법학교 근처에서는 무슨 몬스터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서 씁쓸해졌지만, 이한은 그래도 잉걸델 교수의 실력을 믿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당할 사람이 아닌 것이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다들 진정하도록. 잉걸델 교수님이 잠깐 다른 곳에 가신 걸 수도 있으니까.”
이한 본인도 딱히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침착하게 말했다.
지금 중요한 건 다른 학생들을 달래는 것이었다.
‘몬스터가 나타난 것도 아니고, 길도 잃어버리지 않은 상황. 괜히 당황할 게 없다. 그냥 그대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니까.’
산맥이라고 하면 다들 야생의 땅을 떠올렸지만, 사실 산맥 안에도 길은 이곳저곳 나있었다.
먼저 입학한 선배들이 지나가면서 만들어진 자연의 오솔길들.
지금 학생들이 꽤 오래 걸어오긴 했지만 이 길을 따라 들어온 만큼 그냥 그대로 돌아가면...
쏴아아아아아아아아-
“......”
“......”
갑자기 위에서 내리기 시작하는 폭우에, 이한은 슬슬 이 모든 게 함정이 아닌가 진지하게 의심되기 시작했다.
* * *
이한과 몇몇 학생들은 근처 절벽 밑으로 비를 피하기 위해 모였다.
닐리아는 질린 표정으로 물기를 털어내며 말했다.
“이 상황에서 길을 찾는 건 무리야. 무조건 방향을 잃을 걸. 그리고 더 위험한 건 체온을 잃거나 몬스터를 만나는 거지. 비 오는 날에 몬스터를 만나는 건 악몽 중의 악몽이야.”
닐리아의 말에 친구들은 절망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닐리아는 괜찮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 지금 우린 괜찮은 곳에 있으니까. 비가 그칠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길을 찾아서 가자. 비가 더 심해지면 길을 더 찾기 힘들어 질 거야.”
“아니 버티기만...”
“지금 불사조 탑 학생들하고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안 보이는데. 이 비 속에서 어떻게 찾지?”
“그러니까 일단 버티...”
“교수님을 찾아야지! 교수님을 부를 방법을 찾아보자고.”
닐리아는 포기하고 시무룩해졌다.
이한은 이쪽으로 오라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닐리아는 쪼르르 달려가서 이한 옆에서 나무를 모았다.
그러는 동안 학생들은 각자 자기가 생각하는 것들을 떠들었다.
길을 찾아야 한다, 다른 학생들과 합류해야 한다, 교수님을 찾아야 한다 등등.
그러는 동안 이한은 곳곳에 불을 피웠다. 뼈 소환수가 비를 뚫고 이곳저곳 움직이면서 나뭇가지들을 더 주워왔다.
“그러니까 우리끼리라도 먼저 움직여야 한다니까!”
“다른 학생들을 찾아야지! 숫자가 많을수록 유리하다는 건 당연한 상식이잖아!”
“교수님을 먼저 찾는 게 맞다니까!”
학생들의 논쟁은 더욱 더 뜨거워졌다.
서로 의견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는 걸 깨달은 학생들은 심판관을 찾았다.
“워다나즈!”
“워다나즈, 넌 어떻게 생각해?”
“뭐?”
이한은 불 붙이다가 갑자기 화살이 자기 쪽으로 날아오자 당황했다.
“일단 비 그칠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 않나?”
“...그, 그렇군.”
“그러게. 기다려야 하겠군.”
“......”
닐리아는 친구들을 노려보았다.
내가 말할 때는 귓등으로 들어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