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6화 (66/687)

066화

산더미 같은 짐을 짊어진 상태에서 <하급 조종> 마법을 연달아 걸어 상자들까지 띄우다니.

보통 마법사라면 저런 상황에서는 더 상위 서클 마법을 썼을 것이다.

애초에 <하급 조종>은 저렇게 쓰라고 만들어진 게 아니었으니까!

기껏해야 깃펜이나 지우개, 무거우면 구슬 정도 띄우라고 만든 마법을 저렇게까지...

대단한 걸 넘어서 기괴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1서클 마법으로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아니, 육체 강화 마법이잖아요? 누가 가르친 거죠??”

<하급 조종> 마법으로 띄운 상자들에 감탄하고 있던 가르시아 교수는 뒤늦게 이한의 몸을 감싸고 있는 마력의 기운을 알아차렸다.

정교하게 배열된 기운이 이한의 몸을 감싸고 움직임을 도와주고 있었다.

저런 기운의 마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육체 강화 계열 마법.

효과가 확실한 만큼 인기도 좋은 마법이었지만, 아무래도 사람의 육체에 마력을 때려 박고 고정시키는 마법인 만큼 후유증이 있었다.

백전노장인 모험가나 용병이면 몰라도 대부분이 책상 앞에서 깃펜만 들었다 놨다 한 학생들은 워낙 허약해서 벌써부터 가르칠 필요가 없는 마법인데...

어디서 배운 거지?

글쎄?

해골 교장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시치미를 뗐다. 과연 리치다운 표정 관리였다.

“도서관에서 찾아서 배운 건가? 미리 경고를 해뒀어야...”

너무 그러지 말게. 가르시아 교수. 자꾸 그렇게 제약을 두면 마법사가 약해져.

‘이 사람이 범인 아니야?’

가르시아 교수는 갑자기 해골 교장이 의심스러워졌다.

딱히 근거는 없었지만 그냥!

*         *         *

이한이 강제로 익히게 된 <고나달테스의 기민한 발걸음>은 상당히 특이한 마법이었다.

보통 육체 강화 마법은 강화하는 부분이 세밀하게 정해져 있었다.

힘이면 힘.

민첩이면 민첩.

낮은 서클의 마법일수록 더더욱 그랬다. 낮은 서클의 마법에 괜히 욕심을 많이 부렸다가는 아무도 익히지 못하는 기괴한 마법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고나달테스의 기민한 발걸음>은 바로 그 기괴한 마법에 속했다.

무려 힘, 민첩, 심폐지구력, 반사신경 네 가지 분야를 강화하는 기괴한 1서클 마법!

때문에 수련도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단순하게 힘을 강화하는 마법이라면 천하장사의 이미지를, 민첩을 강화하는 마법이라면 빠르게 날아가는 새의 이미지를.

하지만 저 네 가지 분야를 모두 다 묶는 이미지는 쉽지 않았다.

-마법 이름에 왜 고나달테스가 들어갔는지 알 것 같군.

이한은 검은 책에게 이를 갈며 불평했다.

어떤 마법에는 그 마법을 만든 마법사의 이름이 붙곤 했다.

그건 마법사의 명예이자, 동시에 그 마법이 어떤 마법인지 알 수 있는 이정표가 되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고나달테스’라는 이름은 확실한 이정표였다.

마법 진짜 개같이 만들어 놨다!

‘최소한 마법 이름은 비슷하게 맞춰놔야 하지 않나? 보통 저런 마법이면 그냥 민첩만 다뤄야 하는데.’

시도하고 실패하고.

시도하고 실패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이한은 방향성을 잡아나갔다.

이한 본인은 잘 알지 못했지만, 이한이 가진 사고(思考)의 넓이와 유연함은 어떻게 보면 마력량보다 더 희귀한 장점이었다.

그 장점으로 이한이 고른 이미지는 해골 교장의 젊은 시절이었다.

물론 이한은 해골 교장이 젊은 시절에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다.

하지만 이한 나름대로의 상상력을 동원해 생전 젊은 시절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멀쩡하지만 광기가 이글거리는 눈빛에, 분명 성질이 더러웠을 테니 호전적이고 날카로운 인상. 이런 마법을 만들 정도로 싸움을 좋아했을 테니 날렵하고 단련된 체격...

거기에 대충 어두컴컴한 복장에 지팡이까지 쥐어주고 나자 어느 곳에서 악당으로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사악한 마법사의 이미지가 완성되었다.

‘내가 생각했지만 정말 강해 보이긴 하는군.’

강하고, 빠르고, 오래 버티며, 반사신경도 좋아 보이는 마법사.

그리고 놀랍게도 이 이미지는 효과가 있었다.

계속해서 공허하게 실패하던 마법이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발이여, 땅을 주름잡아라!

-발이여, 땅을 주름잡아라!

-발이여, 땅을 주름잡아라!

연속되는 주문 영창.

끈질긴 시도 끝에 마침내 마법이 완성되었다.

이한은 마법의 마력이 마치 문양처럼 몸에 새겨져 이한을 도와주는 것을 느꼈다.

힘과 민첩은 물론이고 폐의 지구력과 반사신경까지.

파라라락!

검은 책은 이한의 성취를 축하하듯이 펄럭거렸다.

고생 끝에 얻은 결과에 만족스러워하던 이한은 멈칫했다.

문득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잠깐만. 육체 강화 마법은 그 반동이 있지 않나? 이렇게 여러 분야를 다루는 마법이라면...

검은 책은 이한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환상공간에서 이한을 내보내버렸다.

*         *         *

물론 불안하더라도 안 쓸 수는 없었다. 이한이 지금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는 아니었으니까.

그 정도로 짐이 많았던 것이다.

이한은 <고나달테스의 기민한 발걸음>을 걸고, 동시에 잉걸델 교수한테 배운 방식으로 마력을 일으켜 몸에 순환시켰다.

...아니, 정확히는 몸에 순환시키지는 않고 그냥 방출시켰다. 아직 그 정도 컨트롤까진 무리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육체를 강화하고 보호할 수 있었다.

거기에 <하급 조종>까지 연속 시전.

사실 이쯤 되면 잉걸델 교수도 ‘아니, 그렇게 마법을 걸면서 마력까지 통제하려고 하면 당연히 무리죠’라고 반응할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바로 어마어마한 마력 소모였다.

원래라면 한 몇 걸음 걷고 픽 쓰러져야 할 텐데...

‘마력이 넘치니까 재미가 없군.’

해골 교장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보아하니 <고나달테스의 기민한 발걸음>을 쓴 모양인데, 너무 멀쩡해서 재미가 없었다.

원래 저 마법은 익히고 나서 ‘1서클 마법이니까 마력 소모가 그리 심하지 않겠지?’라고 시전했다가 기겁하며 풀썩 쓰러져주는 게 마법을 만든 스승에 대한 예의였다.

실제로 해골 교장의 다른 제자들은 모두 다 그런 식으로 쓰러져서 해골 교장을 기쁘게 만들었던 것이다.

1서클 마법이지만 난이도, 효과, 마력소모량 모두 1서클이 아닌 함정 마법!

...인데 그냥 넘어가다니.

귀환한걸아주환영한다...

해골 교장의 못마땅한 말투는 이한을 기쁘게 만들었다.

함정을 다 통과했다는 뜻이었으니까.

“귀중한 외출, 감사했습니다. 교장 선생님의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이한 학생.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는데요.”

가르시아 교수는 살짝 당황했다.

이한이 뛰어난 업적을 세워서 내보내 준 거지 교장이 착해서 내보내 준 게 아니지 않은가.

어허. 가르시아 교수. 요즘 보기 드문 예절 아닌가.

가르시아 교수는 해골 교장의 말을 무시했다.

“이한 학생. 들어가고 나면 피로 회복에 도움이 되는 물약을 최대한 먹고 푹 쉬세요. 잠을 오래 자는 게 좋을 거예요.”

“......”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가르시아 교수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이한은 솔직히 좀 무서워졌다.

...마법을 쓰면 안 됐나? 마법 자체가 교장 최후의 함정이었나?

“알겠습니다.”

이한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열린 정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뒷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던 가르시아 교수에게 해골 교장이 입을 열었다.

잠깐. 그래서 돈은 어떻게 구한 거지?

“...!”

*         *         *

이한은 일단 쓰러지기 전에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해놓았다.

짐 정리하고, 친구들한테 설명하고 부탁하고, 물약 먹고...

“?”

대낮까지 푹 자고 일어나자, 이한은 당황스러웠다.

몸이...

‘너무 멀쩡한데?’

너무 멀쩡했던 것이다.

아파야 하는데 안 아프면 오히려 더 불안한 게 사람 마음. 이한은 불안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방을 나섰다.

“워다나즈!”

푸른 용의 탑 학생들 몇 명이 불안하고 초조한 표정으로 휴게실에서 이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워다나즈!! 일어났구나!”

“걱정했어!”

몇몇은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이한은 더 당황했다.

‘뭐지?’

밖에서 먹을 거 많이 갖고 와서 서로 누가 더 호들갑 많이 떠나 시합하는 건가?

“내가 좀 무리를 하긴 했는데, 이렇게까지 걱정할 건 아니었는데?”

“어? 그래? 가이난도가 너 죽을지도 모른다던데...”

“......”

이한은 대꾸하는 대신 휴게실 앞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휴게실 한구석에 이한이 갖고 온 짐들이 쌓여 있었다. 개인실에 다 넣자니 부피가 큰 것들이 많아서 쌓아 놓은 것들이었다.

새삼 보니...

‘미친놈처럼 갖고 오기는 했구나.’

뿌듯하면서도 스스로가 좀 미친놈처럼 느껴지는 물자량이었다.

이걸 어떻게 혼자서 들고 왔지?

“너 자는 동안 마구간 말은 대신 돌봐줬어.”

“고마워. 요네르. ...잠깐. 그 말 성격이 좀 지랄 맞을 텐데? 괜찮았어?”

“응?”

요네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괜찮았는데? 먹이 주고 빗질해주는데 가만히 있었어.”

“......”

이한은 분노했다.

‘이 자식이...?’

이한이 돌봐줄 때는 그렇게 난리를 치던 놈이 다른 사람이 돌봐주면 가만히 있었다고?

물론 이한한테 너무 혹독하게 당한 탓에, 다른 사람이 돌봐주게 되자 감사한 마음이 생겨 가만히 있었던 걸 수도 있었지만...

‘두고 보자.’

“자. 코코아.”

이한은 따뜻한 코코아가 담긴 잔을 받아들었다. 몸은 멀쩡해도 피로가 조금은 남아 있었는지 달달한 코코아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이한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요네르는 의아해했다.

“뭐 찾아?”

“은화.”

“...그냥 내가 준 거니까 마셔...”

이한은 감동 받은 표정으로 요네르를 쳐다보았다. 요네르는 어이없다는 눈빛을 보냈다.

정신이 좀 돌아오자 이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새로운 주가 시작됐군...”

휴게실에 있던 모두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주를 맞이했을 때의 건방짐과 오만함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대체 이번 주는 어떤 괴로움과 시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다들 과제는 다 했나?”

“했지. ...그걸 과제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난 완성했어. ...쓰레기더미를.”

모두 시선을 피하는 모습에 이한은 살짝 미안해졌다.

괜한 질문을 했나?

“우레걸음 교수 과제도 다 끝내놨는데 그것만 남았지. 흰 호랑이 탑 깃발.”

“......”

흰 호랑이 탑 깃발 이야기가 나오자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의 얼굴이 굳었다.

해골 교장의 <기초 마법 인성 교육> 과제.

사실 이게 왜 인성 교육 과제인지는 아직도 좀 의문이긴 했지만 어쨌든 과제는 과제였다.

“시도해 본 사람?”

“뭘 해도 안 되더라.”

“젠장. 흰 호랑이 탑 놈 하나한테 사탕 주면서 꼬시려고 했는데 실패했어. 거의 다 됐었는데...!”

“......”

다른 친구들이 모두 이한에게 맡긴 채 손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다들 나름대로 이런저런 방법을 궁리해가며 시도를 해봤던 것이다.

몰래 침입부터 시작해서(다들 튕겨 나왔다), 매수(다른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방해해서 실패했다), 위조 등등.

하지만 어떤 방법도 쓸만하진 않았다.

뒤늦게 휴게실에 도착한 가이난도가 말했다.

“그냥 흰 호랑이 탑 놈들하고 손을 잡고 깃발 교환하면 안 되냐?”

“무슨 그런 철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

“흰 호랑이 탑 놈들이 워다나즈를 얼마나 잔인하게 공격했는지 잊어버린 거냐 넌!”

“?”

이한은 듣고 있다가 멈칫했다.

딱히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다들 진정해라. 내가 생각해놓은 방법이 있으니까.”

“!”

이한의 말에 시끄럽던 자리가 조용해졌다. 가이난도는 알 것 같다는 듯이 말했다.

“교환이지? 그것 밖에 없지?”

“아니. 밤에 습격해서 갖고 나올 건데.”

“...역시 워다나즈야!”

이한의 말에 푸른 용의 탑 휴게실에서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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