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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74화 (74/687)

074화

마법의 새로운 속성에 눈을 떠서 그 길로 가려고 하는 학생을 말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 그 길로 들어서는 순간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려주면 됐다.

볼라디 교수는 미친놈처럼 구슬을 휘둘렀다. 농담이 아니라 진지하게 살의가 느껴졌다.

게다가...

‘구슬의 무게가 올라갔다!’

이한은 구슬끼리 충돌할 때 느껴지는 감각에서 볼라디 교수가 무게를 늘렸다는 걸 깨달았다.

허튼 회전에 집착하지 말고 물 구슬을 더욱 압축시키란 뜻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걸 그냥 말로 했어도 이한은 알아들었을 것이다.

둘 밖에 없는 강의실 안에 불꽃이 튀었다. 아까와는 다른 긴장된 공기 속에서 파열음만이 들려왔다.

서로가 침묵한 채 눈동자만을 노려보며 마법의 구(球)를 조종했다.

‘...교수를 죽여야 하나?’

이한의 머릿속에서 딱히 처음 한 건 아닌 생각이 떠올랐다.

물론 죽인다는 건 농담이었고 어딘가 한두군데 부러져서 아프게 만드는 것에 가까웠다.

감정적인 판단이 아니었다.

지금 볼라디 교수는 진지하게 살의를 담아서 구슬을 날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한의 마법 통제력은 짧은 사이에 부쩍 늘긴 했지만 백전노장인 볼라디 교수와 1:1로 붙어서 이길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한이 살아남으려면?

교수를 죽... 이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제대로 된 집중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해야 했다.

‘할 수 있을까?’

이한은 온 정신을 집중시켰다. 눈앞에서 압축되어 빙글빙글 도는 물 구슬을 유지시킴과 동시에 새 주문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샘솟아라!”

주문과 함께 새로운 물이 허공에 형태를 갖추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법 경험이 적은 신입생에게 이런 동시 마법은 금기에 가까웠지만 이한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다.

마력 좀 낭비된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이미 몇 번이고 몸으로 확인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마력 낭비보다는 눈앞의 볼라디 교수가 더 목숨에 위험한 존재였다.

“!”

볼라디 교수의 무감정한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구슬의 숫자를 늘릴 생각인가?’

궁지에 몰린 신입생이 할 법한 생각이었지만, 좋은 생각은 아니었다.

구슬의 숫자를 늘려봤자 컨트롤만 힘들어질 뿐 볼라디 교수는 그 사이를 얼마든지 뚫을 수 있었다.

가만히 있지 않고 행동하는 건 좋았지만 방향이 틀렸...

“방패여, 펼쳐져라!”

이한은 강한 염원을 담아 외쳤다. 순간 거대한 물 덩어리가 단단한 방패의 모양으로 변해 이한을 감쌌다.

그 모습에 볼라디 교수의 입꼬리가 아주 살짝 비틀리듯이 올라갔다.

<물 방패>는 물을 불러내서 방패 형태로 고정시키는 2서클 마법이었다.

마법 자체는 그리 어려운 마법이 아니었다.

그러나 눈앞의 워다나즈 가문 출신의 소년은 <물 방패>를 직접적으로 따로 배운 적이 없었다.

스스로 생각해서 마법을 깨달은 것이다.

물을 불러내는 법은 <물 생성> 1서클 마법으로.

그리고 그 물을 움직이고 형태를 만드는 법은 <하급 조종> 1서클 마법으로.

누군가는 마법 자체의 주문과 동작을 알려줘도 그 마법을 깨닫지 못하는데, 스스로 추론해서 마법을 발전시켜나가는 건 매우 좋은 징조였다.

뛰어난 마법사가 되기 위해서는 주문책에 적혀 있는 마법만 따라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개량하고 창조할 줄 알아야 했다.

‘구슬의 숫자를 늘리는 것보단 낫겠지만 물 방패 역시 좋은 선택은 아니다.’

감탄은 감탄이고 볼라디 교수는 눈앞의 학생에게 가르침을 내릴 준비를 했다.

마력이 집중된 구슬이 살벌한 속력을 내며 방패를 향해 달려들었다.

즉석에서 만든 방패는 그대로 뚫어버리면 그만...

캉!!

“!”

볼라디 교수의 눈동자가 아주 살짝 커졌다.

교수의 예상보다 물 방패의 강도가 단단했던 것이다.

그제야 볼라디 교수는 물 방패의 정체를 깨달았다.

평범한 물 방패보다 몇 배는 되는 양의 마력이 느껴졌다.

구슬처럼 재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없는 만큼 마력을 아낌없이 불어넣어 물의 양을 늘리고 압축시켜 강화한 것이다.

물 구슬은 컨트롤이 필요하지만, 물 방패는 상대적으로 컨트롤이 덜 필요한 만큼 압도적인 마력량이 더 빛을 보기 쉬웠다.

감탄하기도 전에 옆에서 물 구슬이 우회하며 볼라디 교수의 머리를 부수러 날아왔다. 공수가 전환된 것이다.

볼라디 교수는 살짝 고개를 젖혀서 피했다. 그 표정에는 조금의 당황도 엿보이지 않았다.

“가서 물어뜯어!”

이한은 뼈 소환수에게 명령했다. 벨트에서 대기하고 있던 뼈 소환수가 달려들었다.

동시에 이한은 물 방패 아래로 의자를 걷어차서 날렸다. 어떻게든 볼라디 교수를 박살내겠다는 집념이 느껴졌다.

그 모든 공격에 볼라디 교수는 미소지었다. 이한은 지옥의 악마 대공을 만난 것처럼 불안해졌다.

이제까지 구슬 하나만 다루던 볼라디 교수 뒤로 구슬 하나가 추가로 나타났다.

새로 나타난 구슬은 뼈 소환수를 박살내고(깨갱!) 날아온 의자를 그대로 박살냈으며(콰직!) 물 방패를 그대로 일도양단해버렸다.

볼라디 교수는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한은 지옥의 악마 대공이 무슨 소리를 하나 지켜보았다.

“잘했다.”

“......”

혹시 지옥의 악마 대공이 아니라 지옥의 악마 대왕인가?

*         *         *

열일곱개의 질문을 던지고 나서야 이한은 볼라디 교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짐작할 수 있었다. 볼라디 교수의 생각은 아마 영원히, 그리고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아. 그러니까...’

지금은 물 구슬의 통제력을 다루는 수업이었지만, 볼라디 교수는 기본적으로 학생의 창의적인 시도를(그게 효과적이라면) 좋게 보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이한이 물 방패를 불러오고 의자를 걷어차고 뼈 소환수를 보냈어도 좋게 봐준 것이다.

그 말을 듣자 이한은 강의실에 불을 질러도 볼라디 교수가 똑같이 잘했다고 할지 좀 궁금해졌다.

다음에도 목숨 위협을 받으면 강의실에 불을 지를 것 같은데...

‘아니. 그럴 경우에는 해골 교장이 날 죽이겠군.’

이한은 안타까워했다.

“회전에 대한 생각은 줄어든 모양이군.”

“교수님 덕분입니다.”

이한은 자신의 목소리에 살기가 담기지 않도록 노력해야했다.

“지금 회전 속성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초조해하지 마라. 회전 속성은 언젠가 집중적으로 익히게 될 테니까. 때로는 돌아가는 길이 지름길일 수도 있다.”

“......”

다른 교수가 말했다면 감동적이겠지만 매번 지름길로 가라고 뒤에서 칼 들고 쫓아오는 볼라디 교수가 저렇게 말하니 별로 감동적이지 않았다.

‘지금도 이미 충분히 지름길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예. 저는 회전 속성은 꿈에도 꾸지 않고 지금 배우는 것에만 집중하겠습니다.”

“아마 짐작하고 있겠지.”

“...?”

볼라디 교수가 말을 생략하는 게 한두번도 아니었기에 이한은 놀라지 않았다.

‘침착하게 읽어내 보자.’

“다음에 도전할 수련이 바로 그것이다.”

“...실례지만 무슨 말씀이십니까?”

“방금 네가 보여준 것.”

구슬 하나의 통제력이 쓸만해지면 이제 그 다음으로 나아가야했다.

마법사는 잠시라도 멈추면 안 됐다. 끊임없이 발전하고 탐구해야했다.

볼라디 교수가 손짓했다. 주변에 있는 탁자들과 의자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마치 이한을 위협하는 것 같았다.

“앞으로는 주변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집중하는 법을 배운다.”

“...와우.”

“방금 네가 보여준 것들을 다시 사용해도 좋다.”

“그렇습니까?”

이한은 살짝 놀랐다.

볼라디 교수라면 ‘실력을 늘리기 위해서 구슬로만 막아라’라고 할 줄 알았던 것이다.

방패를 허락해주다니...

“그래. 맞춰서 난이도를 올려줄 테니, 너는 초조해하지 말고 눈앞의 과제에만 집중하면 된다.”

“......”

이한이 다른 마법을 사용해가면서 구슬을 다룰 수 있다면 굳이 그걸 말릴 필요는 없었다.

다른 마법을 사용해가면서 동시에 구슬을 통제한다면 더 유익하리라.

“회전을 포기한 것처럼 방패나 소환수도 포기해야 집중이 잘 되지 않을까요?”

“아니. 회전은 물 구슬의 통제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지만 방패나 소환수는 아니다. 일찍 적응할수록 좋겠지.”

이한은 해골 교장에게 감사해했다.

산에서 화염을 일으켜서 진흙 골렘을 구워버렸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잖은가.

화염 이야기까지 했다면 무슨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         *         *

저녁.

번개걸음 교수는 오두막 뒤 텃밭을 가꾸는 이한의 얼굴이 유난히 피곤해 보이자 걱정했다.

물론 피곤함은 이 학교의 모든 학생들이 갖고 있는 것이었지만,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다른 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훨씬 더 단단한 소년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피곤해하다니.

“요즘 뭘 하길래 그렇게 피곤해하지?”

“그렇습니까? 전 괜찮은데요.”

이한은 감자를 캐서 광주리에 집어넣었다. 담담하려고 해도 감자를 쥐고 있는 손가락이 탐욕스럽게 꿈틀거렸다.

“하루 일정을 말해봐라.”

“정말 괜찮습니다만.”

이한은 왜 그러냐는 듯이 하루 일정을 설명했다.

일단 새벽 일찍 일어나 마구간에 가서 말 안 듣는 말을 강제로 협박해서 밥 먹이고 몸 씻기고 빗질 좀 해준 다음 같이 산책하고 돌아오고, 식료품들 중에서 빨리 먹어야 할 걸 골라 비교적 양 늘리기 쉬운 요리로 아침을 준비했다.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을 넉넉히 먹인 다음에 오전 수업을 듣고 점심은 다시 돌아와서 식사 준비하고 다음에 오후 수업을 들으러 가는데...

“......”

“왜 그러십니까?”

“아, 아니. 계속해라. 무슨 수업을 듣지? 그러고 보니 궁금하군.”

“오늘은 볼라디 교수님의 <기초 마법전투의 반복적 학습> 강의를 들었습니다만.”

“......”

번개걸음의 표정이 요란하게 씰룩거렸다.

하필 들어도 왜 볼라디 교수 같은 광인의 강의를...?

“...하여간 대충 강의 다 듣고 와서 이렇게 텃밭 가꾸고 있습니다만.”

“너는 진실로 푸른 용의 탑 대표가 되기 위해 태어난 녀석이다.”

“?”

“됐다. 그래서... 그렇게 힘들게 하루를 보냈는데 텃밭에서 일하는 것에 별 불만이 없냐?”

이한은 순간 의심했다.

교수들이 보통 ‘불만 있으면 말하세요’라는 말을 할 때는 의심부터 해야 했다. 함정일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걸 떠나서라도 텃밭 일 자체는 별로 불만이 없었다.

“별로 없습니다만?”

이한은 양 손에 감자와 당근을 하나씩 들고 말했다. 텃밭에서 얻는 보수가 매우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번개걸음은 그 모습에 갑자기 괜한 죄책감이 들었다.

...제국 최고의 인재들이 이러고 있어도 되나??

“그... 그래. 참. 저 뒤편에 내가 데리고 온 소가 있는데, 원한다면 필요할 때마다 우유를 좀 짜서 가져가도 좋다.”

“교수님...!”

이한은 이제까지 본 적 없는 존경심을 담아서 번개걸음 교수를 쳐다보았다. 번개걸음 교수는 어이가 없어서 뭐라고 하려다가 참았다.

*         *         *

이한이 텃밭에서 작업을 하는 동안 번개걸음 교수는 심심했는지 계속 질문을 던졌다.

정령이 두려워서 도망치는 이야기도 나왔고(나무 정령이 있는데도?), 나무 정령 덕분에 텃밭의 작물들이 생각보다 잘 자라서 이것저것 더 길러 봐도 되겠다는 말도 나왔으며(우레걸음 주지 말고 가져가라)...

작업을 마치고 흐르는 개울물에 손을 씻고 탈탈 털어내던 이한은 문득 생각이 나서 물었다.

“교수님. 그런데 학교에서 날아다니는 탈것을 구할 수 있습니까?”

“...왜, 왜 그런 걸 묻지?”

번개걸음 교수의 목소리가 묘하게 갈라졌지만, 이한은 눈치 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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