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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99화 (99/687)

099화

멈추거나 방향을 틀 사이도 없이, 섬의 부드러운 모래톱 위로 나룻배가 그대로 올라가버렸다.

그러나 앙라고와 듀크마는 상황을 깨닫기는커녕 고개를 바짝 숙이고 모래 위에서 노질을 해댔다.

분노한 물의 정령들이 날린 공격이 날아올까봐 겁을 먹은 것이다.

이한은 왜 하필 흰 호랑이 탑 놈들 중에서 이런 놈들과 한 배를 탔는지 슬슬 후회되기 시작했다.

더르규까지는 아니더라도, 모라디만 해도 저것들보다는 똑똑할 것 같은데...

“좌초됐다. 멍청이들아.”

“!”

앙라고는 그제야 자신의 노가 부드러운 모래톱 위에서 헤엄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붉히며 앙라고가 말했다.

“크음. 그래도... 벗어나는데 성공했군.”

“맞아, 워다나즈. 긍정적인 면을 봐라. 우리는 호수 위에서 분노한 물의 정령들을 따돌렸다고.”

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의 말에 이한은 대답 대신 지팡이만 까딱거렸다.

빨리 내려서 배를 다시 밀라는 신호였다.

두 학생은 계속 반항하는 것보다는 내려서 배를 미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물의 정령을 따돌릴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워다나즈 덕분인 것 같고...

“워다나즈.”

앙라고는 나룻배에서 내린 다음 조심스럽게 말했다.

“말해라. 듣고 있으니.”

“섬에서 조금 쉬었다 가면 안 될까? 내가 지친 건 아닌데 노를 오래 젓다 보니 팔에 피로가 조금...”

“나도 지친 건 아니지만, 워다나즈 네가 마력도 많이 썼을 거고... 정령도 아직 남아 있을 수 있을 거고...”

그러니까 쉬었다 가자!

이한은 속으로 혀를 찼다. 저 자식들은 그냥 말하면 될 걸 쓸데없이 돌려서 길게 말하는 재주가 있었다.

“마음대로 해라.”

“고... 고... 고맙다!”

앙라고는 이상할 정도로 고마워했다.

‘이 자식, 설마 내가 허락을 안 해줄 줄 알았나?’

이한은 그 반응에 떨떠름했다.

이것들이 기껏 목숨 지켜주고 살려줬더니...

“?”

이한은 드워프 학생, 듀크마를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무언가 위화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이봐.”

“뭐... 뭐지? 왜? 벌써 출발하려고?”

“네 키가 조금 작아진 것 같은데.”

그러자 듀크마는 펄쩍 뛰며 분노했다. 얼굴을 붉히고 푸들푸들 떨었다.

“감, 감히?!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고 날 모욕해?! 네가 날 공격해도 말릴 사람이 없다는 거냐!”

‘그냥 팰까?’

이한은 지팡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주변에 말릴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 입조심이나 할 것이지...

“아니야, 듀크마! 네 키가 작아졌어!”

“??!!”

듀크마는 앙라고의 외침을 듣고 나서야 이상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키가 작아진 게 아니었다.

듀크마가 모래톱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

이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섬의 안쪽을 둘러보느라 눈치 채지 못했는데 어느새 나룻배도 절반 가까이 가라앉아 있었다.

‘위험하다!’

이한도 부츠를 신은 발이 부드럽게 가라앉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앙라고는 다급하게 달리려고 했다.

“모두 앞쪽으로 뛰어! 모래사장 위를 벗어나야 한다!”

“잠ㄲ...”

말리기도 전에 앙라고는 성급히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더욱 빨리 푹푹 가라앉았다.

순식간에 허리까지 가라앉은 앙라고는 늪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거렸다.

‘늦었군.’

이한은 앙라고와 듀크마는 빠르게 포기했다.

지금 이한이 사용할 수 있는 염동력 계열 마법은 <하급 조종>.

이 마법은 기껏해야 구슬 정도가 한계였지, 이한처럼 크고 무거운 사람에게는 걸 수 없었다.

마법 주문의 구조 자체가 견디지 못하고 부서져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움직여라!”

이한은 쇠구슬을 공중에 못박듯이 고정시켰다. 그리고 다른 한쪽 팔로 쇠구슬을 꽉 붙잡고 몸을 들어올렸다.

마치 한손으로 턱걸이를 하는 것처럼 이한의 몸이 모래사장에서 떠올랐다.

볼라디 교수가 봤다면 좋아했을 광경이었다.

원래는 깃펜에서 구슬 정도까지의 작은 물건들을 조종하는 <하급 조종> 마법은 애초에 전투용 마법이 아니었다.

염동력 계열 마법을 전투에 쓰고 싶다면, 시전 시간이 조금 더 오래 걸리더라도 쓸만한 마법들이 여럿 있는 것이다.

마법의 기초를 가르쳐주는 용도의 마법을 굳이 전투용으로 쓰겠다고 고집부리는 사람은 없었다.

...볼라디 교수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볼라디 교수는 <하급 조종> 마법 같은 저서클 마법들이 가진 빠른 주문 시전 속도에 주목했다.

저서클 마법이든 고서클 마법이든 상대의 급소를 꿰뚫기만 하면 치명적인데, 무엇하러 고서클 마법에 집착하겠는가?

중요한 건 효율성이었다.

<하급 조종>도 단련만 한다면 충분히 위력을 가질 수 있다!

지금 그걸 이한이 자신의 몸으로 증명해보이고 있었다. 쇠구슬은 굳건하게 허공에서 버티며 이한의 체중을 견뎌냈다.

이한은 이를 악물고 모래사장 위를 천천히 날아갔다.

쇠구슬을 유지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팔힘과 등근육으로 붙잡는 것까지, 무엇 하나 힘들지 않은 게 없었다.

털썩!

간신히 모래사장을 빠져나와 단단한 바위 위에 올라간 이한은 고개를 돌렸다.

나룻배가 모래사장 아래로 사라져있었다.

“이런...”

이한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침음성을 흘렸다.

생각해보니 나룻배 말고 앙라고와 듀크마도 사라져있었다. 그것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교장의 함정이겠지.’

-우연이란 없다, 모든 것은 필연적이다.

이한은 만약 학교 정문에 문구를 새길 수 있다면 저걸 새기고 싶었다.

신입생들이 속지 않도록 말이다.

이 섬은 해골 교장이 가라고 한 섬이고, 해골 교장이 직접 외출권을 던져넣은 섬이었다.

그렇다면 저 빠져나올 수 없는 모래사장도 해골 교장이 만든 함정이리라.

스르륵-

신입생이 용케도 빠져나왔군.

아니나 다를까 모래사장 속에서 낮은 목소리와 함께 소환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신에서 느껴지는 음의 에너지.

이한은 상대가 언데드라는 걸 알아차렸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놀라거나 당황스럽지는 않나?

두 발로 걷는 커다란 거북처럼 생긴 언데드 소환수는 이한의 반응에 당황스러워했다.

신입생이 언데드 소환수를 보면 놀라서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고, 혹은 기절까지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눈앞의 신입생은 매우 침착했다.

“놀랐습니다. 그래서 여기 계신 이유가 뭡니까? 제가 뭘 해야 하는 겁니까?”

언데드 소환수는 이한의 질문에 자신의 페이스를 잃고 다시 당황했다.

원래 자기가 먼저 설명을 해줘야 했는데 이렇게 심문당하듯 질문을 받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잠시 후 침착을 되찾은 언데드 소환수가 말했다.

원래라면 너도 저 모래사장 밑으로 같이 가라앉았어야 했다.

“......”

이한은 절대로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일단 듣기로 했다.

눈앞의 신입생이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언데드 소환수가 말을 이었다.

모래사장 밑으로 같이 가라앉으면, 그 때부터 신입생들이 서로 협력해야 하는 시련이 시작된다.

“그렇습니까...”

이한은 지팡이를 쥐었다.

이렇게 열심히 학생들이 친해질 공간을 준비해 놓은 해골 교장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애초에 원흉이 해골 교장이었으니까.

이한이 꿈틀거리는 사이 언데드 소환수는 다시 말했다.

너는 모래사장에서 빠져나온 만큼 내가 직접 설명해준 것이다.

거북이처럼 생긴 언데드 소환수는 선심쓰듯이 말했다.

그리고 그건 진심이었다.

원래라면 다시 붙잡아서 끌고 가야 하는 걸, 재주가 기특해서 이렇게 설명해준 거였으니까.

자. 다시 들어가라. 시련을 통과해야지.

“들어가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이한의 질문에 언데드 소환수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듯이 대꾸했다.

강제로 끌고 가주길 원하나? 어서 다시 들어가라.

“알겠습니다.”

이한은 순순히 바위에서 일어섰다. 언데드 소환수는 잘 생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이한은 지팡이를 휘둘렀다.

“움직여라!”

번쩍이는 소리와 함께 쇠구슬이 날아가 언데드 소환수의 머리통을 정확히 가격했다.

*         *         *

이한이 언데드 소환수를 기습해서 공격한 건, 상대방의 말이 오만하고 건방져서만은 아니었다.

‘그 두 놈을 믿기는 어렵다.’

만약에 더르규였다면 이한은 모래사장 밑으로 들어가는 걸 선택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두 놈이라면?

아무리 생각해도 순순히 들어가는 건 미친 짓이었다.

차라리 진지하게 언데드 소환수를 기습해서 쓰러뜨리는 게 더 승산이 높아보였다.

빡!

둔탁한 소리와 함께 뼈가 박살났다.

그러나 당연히 살아 있지 않은 언데드 소환수가 두개골 좀 부서진다고 쓰러지진 않았다. 상대는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신입생, 이게 감히 무슨 짓이냐?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실수였습니다.”

이한이 진지하게 사과하자 언데드 소환수는 순간 진짜 실수인가 생각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공격이 날아왔다. 쇠구슬이 포탄처럼 살벌하게 쇄도해 들어왔다.

언데드 소환수는 급히 모래를 불러내서 벽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쇠구슬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빙글 우회했다.

그리고 아까 가격한 언데드 소환수의 머리통을 다시 한 번 후려갈겼다.

빡!!

언데드 소환수가 비틀거렸다. 그리고 극도로 분노했다.

감히 신입생이 날 능멸해?!

“나는 밤에 숨노니!”

이한은 투명화 주문을 걸고 옆으로 달렸다. 동시에 다음 주문을 시전했다.

“발이여, 땅을 주름잡아라!”

교장의 마법이 시전되자, 교장이 불러낸 언데드 소환수는 그 기운을 알아차리고 경악했다.

주인님의 마법을 너 같은 놈이 어떻게... 마법을 훔친 것이냐!? 이런 건방진 놈!

‘소환수라고 주인을 지나치게 좋게 보는군.’

이한은 빠르게 달려 나갔다.

<고나달테스의 기민한 발걸음>으로 활성화된 육체능력이 활기를 불러왔다.

투명해졌다고 가만히 서있으면 잡아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

“가라!”

이한은 표범 뼈 소환수를 불러냈다. 저번보다 훨씬 덩치가 커진 표범 뼈 소환수는 우렁차게 짖으며 모래사장 위를 내달렸다.

육체를 찾지도 못한 소환수 놈이 나한테 덤벼들어!

언데드 소환수는 화난 목소리로 앞발을 휘둘렀다. 모래와 함께 표범 뼈 소환수가 튕겨나갔다.

언데드 소환수는 이한이 있던 자리를 향해 모래를 뿌리기 시작했다.

신입생 주제에 잔머리를 굴리는 건 인정해주마. 하지만 거기까지다!

모래를 사방으로 뿌려대며 언데드 소환수는 이한이 있었던 곳으로 향했다.

섬 안쪽으로 도망쳤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붙잡아 줄 생각이었다.

여기냐? 아니면... 여기? 아니구나. 여기구나!

언데드 소환수는 시끄럽게 소리를 내며 이한을 압박했다.

정말로 찾은 게 아니라, 상대를 겁먹게 만들어서 나오게 하려는 생각이었다.

언데드 소환수는 숨어 있을 만한 곳에 모래를 뿌려대며 계속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그러나 소환수는 알지 못했다.

이한은 애초에 섬 안쪽으로 도망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안에 뭐가 있을 줄 알고 도망친단 말인가.

서걱-!

옆에서 숨어 있던 이한이 뛰쳐나왔다.

흑자석(黑紫石)으로 된 검, 새벽별이 휘둘러지면서 소환수의 둔중한 몸뚱이를 지탱하고 있는 다리를 그어버렸다.

새벽별이 음에너지의 마력을 흡수하고, 힘을 잃어버린 언데드 소환수의 다리 부분이 역소환됐다.

균형을 잃어버린 언데드 소환수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옆으로 넘어졌다.

이... 이 신입생 자식이...!

언데드 소환수는 기습을 당한 게 어지간히도 황당했는지 소리를 질렀다.

마법사가 반-마법 무기를 쓰다니, 정신이 나간 거냐! 네가 그러고도 마법사냐! 신입생!

‘......’

이한은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다.

대답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애초에 무시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정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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