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왜... 문을 열어주지 않는 거냐...? 왜...?
학생들이 대답하지 않자 목소리는 한 술 더 떴다.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발끈해서 대꾸했다.
“작작 좀 하십시오!”
“진짜 왜 이러시는 겁니까?!”
눈치 빠른 놈들 같으니...
해골 교장이 아련한 목소리로 아쉬워했다. 문을 지키고 있던 학생들은 이를 빠드득 갈았다.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한다!
만약 해골 교장의 신분만 믿고 문을 열어줬다면 어떤 꼴을 당했을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쪽지시험을 보실 거면 그냥 보시면 되지 왜 이렇게 방해를 하시는 건데요!”
무슨 소리냐?
해골 교장에게 따졌지만, 돌아온 반응은 학생들의 예상과 달랐다.
어라?
쪽지시험 공부를 방해하려는 게 아니었나?
이게 시험인데?
“......”
“......”
학생들은 보이지 않는 문밖의 해골 교장을 노려보았다.
저걸 말이라고...!
“과연. 하긴 강의실에서 문제를 푸는 것만이 시험은 아니니...”
이한은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골 교장이 쪽지시험 공부 못하게 하려고 왜 이렇게 귀찮은 방법을 골랐나 싶었는데, 이것 자체가 쪽지시험이라면 말이 됐다.
물론 이게 <기초 마법 인성 교육>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물을 수는 있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애초에 과제로 함정 가득한 섬에 보내는 강의인데 뭘 새삼스럽게...
“워다나즈?! 납득해버리면 안 되지!”
“저런 말도 안 되는 궤변에 넘어가지 마!”
“넘어간 게 아닌데... 교장 선생님!”
이한은 해골 교장을 불렀다.
이 얄미운 목소리는 워다나즈로구나. 왜 부르지?
“저희는 내일 다른 쪽지시험도 있는데 이러셔도 되는 겁니까?”
그래! 왜냐하면 다른 교수의 강의보다 내 강의가 더 중요하단다!
‘실수했다. 생각보다 미친놈이었어.’
다른 교수들의 이름을 끌고 오는 건 실패였다. 해골 교장이 생각보다 미친놈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건 없다!
“?”
다른 기숙사도 똑같은 일을 겪고 있으니까!
“오...!”
“뭘 ‘오’야! 지금 좋아할 때냐?!”
하지만 그렇게 말해도 몇몇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의 얼굴이 밝아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와! 다 같이 공부 못한다!
다른 강의를 들으러 가긴 해야 하니 아침에는 치워주마.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면 말이다.
해골 교장은 선심 쓰듯이 말했다.
분노한 요네르가 주먹을 들어 올리고 손가락 하나를 올리려고 하자 이한이 고개를 저으며 말렸다.
‘밖에서 보고 있을 수도 있어.’
‘아차!’
이한은 휴게실 안을 다시 점검했다.
바리케이드는 몇 번의 보강을 해서 그런지 아직 튼튼했다.
‘한두시간 정도는 더 버티겠군.’
지금 당장 안전하다고 해서 이한은 절대 방심하지 않았다.
상대방의 배배 꼬인 속마음을 생각해봤을 때 정면만으로 공격할 리가 없는 것이다.
“샤르칸! 휴게실 정문 말고 다른 방향을 확인해라.”
짙은 하늘빛의 표범이 크르릉거리는 소리를 내며 탑의 다른 쪽으로 향했다.
말한 지 얼마나 됐다고 샤르칸이 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언데드가 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계단 창문! 계단 창문 쪽으로 언데드들이 기어오른다!”
“진짜 장난하나!!”
학생들은 그 소식에 욕설을 내뱉었다. 서로 다급히 창문 쪽으로 달려가려고 하자 이한이 말렸다.
“당황할 것 없다! 아직 그럴 상황이 아니니까. 내가 지시를 내리겠다!”
원래 이런 급박한 상황일수록 서로 내가 맞니 네가 맞니로 다투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나 푸른 용의 탑에서는 그런 일이 조금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한이 말하면 모두 다 일사불란하게 행동에 나섰던 것이다.
“요네르, 둘 데리고 창문 쪽을 맡아줘. 샤르칸! 창문 쪽은 확인했으니 이제 들어올 수 있는 다른 방향을 확인해라! 가이난도. 식량창고는 지금 안 지켜도 되니까 바리케이드 쪽으로!”
‘다음부터는 저 녀석부터 제거해야겠군.’
자신의 공방 안에서 각 기숙사를 탐지하고 있던 해골 교장은 푸른 용의 탑 상황에 입맛을 다셨다.
저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뛰어나도 너무 뛰어났다.
원래 사자가 이끄는 양 무리가 양이 이끄는 사자 무리를 이기기 마련이었다.
사자가 아니라 드래곤 정도 되는 녀석이 이끄니 빈틈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신입생들이 들어오면 언제나 우두머리 역할을 할 수 있는 녀석들이 하나둘씩 자연스럽게 나타나곤 했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친구들이 고난을 겪으면서 성장할 기회를 모조리 뺏어가는 이기적인 놈 같으니!
다른 탑 상황을 보자.
해골 교장은 심통난 심기를 달래기 위해 원견 마법의 시야를 바꿨다.
기대했던 대로 다른 탑은 기습당한 덕분에 혼란 그 자체였다.
휴게실 문을 열고 스켈레톤 전사들이 들어와 학생들을 끌어내고...
해골 교장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다음 문을 닫고 버티는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에게 음성을 날렸다.
무쇠대가리들아... 문을 열어다오... 도와주러 왔다...
* * *
이한은 자신이 지내고 있는 탑에 생각보다 빈틈이 많다는 걸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계단 쪽 창문부터 시작해서 벽난로 쪽 굴뚝 등 생각치도 못했던 통로로 기어들어오는 스켈레톤 전사들의 모습에 학생들은 비명을 질렀다.
‘실전교육 확실히 시켜주시는군.’
원래라면 탑의 마법이 이런 침입자 놈들을 쫓아내야 하는데 해골 교장이 직접 뚫은 게 분명했다.
반칙 아냐?
크르르르릉!
그래도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비교적 잘 대처하고 있었다.
다른 탑과 달리 기습을 당했을 때 바로 역공을 날린 다음 문을 닫은 게 컸다.
휴게실 정문이 바리케이드로 막힌 덕분에 다른 쪽으로 한두마리씩 들어오더라도 학생들이 대처할 여유가 생긴 것이다.
게다가 샤르칸은 몇 사람 몫을 해주고 있었다.
웅크리고 있다가 짖으면서 달려가면 그쪽 방향으로 언데드가 나타나곤 했다.
“번쩍여라!”
이한이 쏘아 보낸 번개가 창문을 기어오르는 언데드를 정확히 떨어뜨리자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들어온 지 몇 주일이 지나자 학생들 모두 하나둘씩 마법을 배워가곤 있었지만,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보여주는 마법은 언제나 차원이 다르단 걸 느끼게 만들었다.
아까부터 계속 마법을 쓰고 있는데 조금도 지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지금 소환수도 하나 따로 부리고 있는데!
키락 가문의 네블렌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의 탄성을 토해냈다.
황녀에게 충성을 바치고, 황녀가 학생들 중 가장 뛰어나다고 확신하는 네블렌이었지만 워다나즈의 능력은 볼 때마다 사람을 전율하게 만들었다.
제국 최고 마법명가 출신은 결코 허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정말 대단... 아. 죄송합니다. 황녀님.”
“?”
황녀는 네블렌이 사과하자 의아하다는 듯이 눈썹을 올렸다.
“그게... 워다나즈도 대단하긴 하지만 저는 황녀님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력량이 마법사의 전부는 아니니까요! 물론 워다나즈가 요리를 조금 많이 잘하긴 하고 인망이 있긴 하지만...”
요리 이야기가 나오자 황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블렌은 당황해서 말했다.
“그, 요리도 황녀님께서 하시면 분명 더 잘하실 거라 믿습...”
황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닌가요? 하긴 요리를 정말 잘하긴 하는...”
“둘이 뭐하냐?!”
가이난도가 낑낑대며 의자를 들고 나르다가 울컥해서 소리쳤다.
왜 놀아!
“방금까지 마법을 쓰신 탓에 마력 회복을 위해 쉬고 계시는 거잖아!”
“일하면서 쉬어! 마력만 다 쓴 거지 체력은 남았잖아!”
“가이난도, 앞에! 조심해라!”
“?”
의자를 들고 나르던 가이난도는 휴게실 정문에서 들리던 소리가 좀 더 커지고 삐걱대는 소리까지 추가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쾅!
물방울이 바위를 쪼개듯 스켈레톤 전사들의 끈기 있는 두드림이 결국 휴게실 정문을 부수고 바리케이드를 쪼갠 것이다.
틈새로 튀어나온 스켈레톤 전사들이 대뜸 가이난도를 붙잡았다.
“으아아악!”
“가이난도!!!”
“내버려둬! 가이난도는 틀렸어!”
친구들이 그렇게 말하는 동안 이한은 새벽별을 뽑아들고 달려들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스켈레톤 전사 세 구가 그대로 베어지더니 나뒹굴었다. 이한은 끌려가는 가이난도의 발목을 잡고 강하게 끌어당겼다.
머리카락이 몇 움큼 뽑히긴 했지만 가이난도는 무사히 구출되었다. 혼이 빠진 얼굴로 황자가 외쳤다.
“저... 저런 미치광이 언데드 놈들! 교장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뭘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가이난도는 뒤로 빠지고, 다들 입구 조심해! 다가가지 마!”
이한은 친구들에게 조심하라고 말한 다음 검을 들고 휘둘렀다.
틈새로 들어오려던 스켈레톤 전사들이 새벽별에서 느껴지는 마력 흡수의 기운을 느꼈는지 감히 들어오지 못했다.
달그락달그락달그락!
스켈레톤 전사들이 바리케이드 밖에서 요란하게 소리를 냈다.
아산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왜 갑자기 저러는 거지?”
“마법사가 마력 흡수의 검을 휘둘러서 화내는 거 아닐까?”
“...!”
요네르는 별 생각 없이 대답한 거였지만 은근히 그럴듯했다.
스켈레톤 전사들은 바리케이드에 난 틈새를 넓히고 한 번에 달려들기 위해서 다시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한이 그걸 내버려두지 않았다.
“공간이여, 인지되어라!”
공간 인지 마법을 다시 한 번 걸고 이한은 바리케이드 밖에 있는 스켈레톤을 향해 수옥(水玉)을 날리기 시작했다.
살벌하게 날아드는 물 구슬들이 바리케이드에 난 틈새를 뚫고 뛰쳐나와 스켈레톤 전사들의 오래된 뼉다귀들을 으깨버렸다.
‘이건 막았다!’
이한이 그렇게 확신했을 때 새로운 무리가 저 멀리서 밤의 어둠을 뚫고 나타났다.
“설... 설마?”
“아니야! 언데드가 아니야! 저건...”
-도와주십시오!
나타난 건 불사조의 탑 학생들이었다.
학생들 뒤로 스켈레톤 전사들이 우글거리며 쫓아오는 걸 보니 무슨 상황인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쪽은 휴게실이 뚫려서 탈출했구나!’
“어... 어떡하지?”
“워다나즈. 받아주면 위험할 수도 있어. 저기 뒤에 따라오는 언데드들까지 생각해보면 90% 확률로...”
“받아주자.”
“!”
“!!!”
일말의 고민도 없이 즉답하는 이한의 모습에, 받지 말자고 말하던 친구들은 갑자기 부끄러움을 느꼈다.
아무리 언데드들한테 겁에 질렸어도 그렇지 이런 모습을 보여주다니.
“워다나즈... 내가 말실수를 했어. 내가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명예를 더럽혔어. 미안하다!”
“나도 같이 나가서 데리고 올게! 워다나즈! 같이 가자!”
“???”
이한은 갑자기 알아서 반성까지 해버린 친구들의 모습에 당황했다.
‘뭐라는 거야 이 자식들?’
이한이 받아주자고 한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저 학생들을 누가 여기에 보냈겠는가.
해골 교장밖에 범인이 없었다.
그리고 해골 교장의 성격상 저 학생들을 받아주지 않을 경우 <기초 마법 인성 교육>의 의의를 훼손시켰다면서 트집을 잡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사소한 트집이라도 조심해야 한다!
“그... 그래. 다들 동의해줘서 고맙군.”
설득할 시간도 없었는데 알아서 저렇게 나와주면 편했다.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불사조 탑 무쇠대가리들이 탈출해서 도망치고 있다고?
쉬고 있던 해골 교장은 소환수들이 보내는 보고에 다시 시야를 열었다.
정말로 불사조 탑 학생들이 허겁지겁 밤의 어둠을 뚫고 도망치고 있었다.
원래라면 유쾌하게 웃어야 할 상황이었지만...
‘푸른 용의 탑으로 도망치고 있잖아?’
운도 좋지 왜 하필이면 지금 가장 잘 막아내는 곳으로 간단 말인가.
해골 교장은 툴툴대며 염원을 보냈다.
‘받아주지 마라, 받아주지 마라, 받아주지 마라...’
그러나 이한은 그런 해골 교장의 기대를 짓밟고 친구들과 같이 바리케이드 사이를 빠져나와 불사조 탑 학생들을 구하러 달려 나갔다.
해골 교장은 분통이 터져서 외쳤다.
저런 이기적인 놈! 저런 이기적인 놈!!
공방 안에 있던 다른 소환수들은 해골 교장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