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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37화 (137/687)

137화

이한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자신이 재능없다고 주장해야 하는 지금 상황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 이한은 최선을 다해서 변호했다.

“많은 마력만 믿고 이런 식으로 마법진을 만드는 건 단순한 방법 아닙니까?”

“겸손하기까지. 마법사들한테서는 보기 힘든 덕목이야.”

“아니...”

“잠깐. 진심으로 한 소리였나?”

켄드리는 의아해했다.

당연히 이한이 겸손의 뜻으로 한 말인 줄 알았던 것이다.

마법진 제작에 뛰어난 타입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두뇌파.

마법진의 이론과 구조에 뛰어난 타입으로, 마법진을 만들기 전 철저한 공부로 머릿속에 완전히 이해를 끝낸 뒤 들어가는 이들이었다.

하나는 감각파.

마법진을 감각과 직감으로 만드는 타입으로, 계산이나 이해는 덜 됐어도 직접 마력을 흘려가면서 자신의 감각과 직감으로 마법진을 만드는 이들이었다.

얼핏 보면 후자가 단순하거나 무식해보일 수도 있었지만 이게 더 어려운 일이었다.

마력이 많다고 마법진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 외 모든 것들은 마법사가 채워 넣어야 하는 것이다.

이걸 단순하거나 무식한 반복이라고 하는 놈은 마법이 뭔지 모르는 놈이었다.

천부적인 감각을 타고 나지 않으면 마력이 아무리 많아도 이런 방식으로 마법진을 만들 수 없었으니까.

‘적성에 맞다고 칭찬을 들었는데 이렇게 기쁘지 않은 건 또 처음이군.’

마법진 작성에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한은 기쁘기보다는 당혹스러웠다.

“후자도... 제국 관직에 어울릴 것 같습니다만.”

설명을 들은 이한은 소극적으로 반항해보았다.

그러나 켄드리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너는 둘 다지.”

“예?”

“너는 둘 다라고. 아무리 감각이 뛰어나도 그렇지 신입생이 이만큼 마법진을 완성하려면 머리가 팽팽 돌아가야 해.”

감각에도 한계가 있는 법.

신입생이 이 정도 속도로 완성했다는 건 단순히 감각을 떠나서 마법진에 대한 이론적 이해도 꽤 깊다는 걸 증명했다.

하나만 할 줄 알아도 제국 관료의 자질이 있었다.

둘 다 뛰어나면?

그건 제국의 미래를 위해 마법에 전념해야 했다.

‘역시 교수님 친구답게 말이 안 통하는군.’

이한은 빠르게 포기했다.

이 정도 반응이 돌아오는 걸 보면 그냥 다른 사람을 설득해서 관직을 노리는 게 빠를 것 같았다.

제국 관료에 이런 사람만 있지는 않을 테니까!

“칭찬 감사합니다.”

“그래. 우리 관료들을 칭찬해줘서 고맙다. 마법사들은 보통 안 좋아하거든.”

“저는 좋아합니다만...”

“하하하! 농담도.”

‘한 대 치고 싶군.’

지위 좀 높다고 신입생을 무시하는 켄드리의 태도에 이한은 속으로 분노했다.

“어쨌든... 좋은 걸 봤어. 응원하도록 하지. 이런 학생을 키워 내다니 고나달테스를 그렇게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닌 것 같네.”

‘나쁘게 보셔도 됩니다.’

이한은 속으로 말을 삼켰다. 해골 교장의 귀가 언제 어디 있을지 몰랐으니까.

“나중에 도움 필요하면 연락하도록 해. 너 같은 마법사를 지원해주는 게 우리 관료들의 역할이지.”

“!”

이한의 얼굴이 밝아졌다.

“어떤 연구든 간에 한 번은 지원해보도록 노력할 테니까.”

“......”

이한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그런 도움은 별로 필요 없었던 것이다.

‘연구 말고 젊은 마법사들의 창업은 지원 안 해주시나?’

“이번 주에 외부 손님들이 좀 있을 텐데 흔들리지 말고 집중하고. 알겠지?”

“사제님들 말고 다른 분들도 있습니까?”

“그건...”

켄드리는 신입생한테 말해줘도 되나 잠깐 망설였다.

이한은 숨도 쉬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교장 선생님께 들었는데 농담이 아니었군요.”

“아. 들었어? 하여간 고나달테스는 진짜... 참. 미안해. 학생들 앞에서 스승을 비난하면 안 되는데 말이지.”

해골 교장이 먼저 말했다고 착각한 켄드리는 입을 열었다.

“아마 축제 기간이라 에인로가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거겠지. 다른 마법학교도 그렇고... 에인로가드의 명성은 유명하잖아?”

‘다른 마법학교에서?’

이한은 멈칫했다.

생각치도 못했던 손님이었다.

사제들 정도만 있을 줄 알았는데...

“오늘 본 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도록 하지.”

“아니... 괜찮습니다.”

“왜? 명성은 미리 가질수록 좋을 텐데. 나중에 연구할 때 도움이 될 거라고.”

“정말로 괜찮습니다.”

‘워다나즈 가문 출신인데 신기할 정도로 겸손하네?’

켄드리는 신기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뛰어난 마법사가 겸손해서 나쁠 건 없었다.

제국 관료들 사이에서 악명 높은 마법사들이 원한을 쌓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건방진 조동아리 때문 아니겠는가.

-견적서 설명이 부족하니 다시 작성하셔야...

-이 견적서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그건 바로 네놈이 저능한 패배자기 때문이다! 이 놈! 네가 재능이 없어서 날 질투하는 거지!? 내 넘치는 재능을?!

그걸 생각하니 켄드리는 새삼 이한이 신기했다.

‘이대로만 자라줬으면 좋겠군.’

부디 이 모습 그대로 뛰어난 마법사가 되었으면 했다.

세속의 잡다한 일들은 제국의 다른 사람들이 처리할 테니 말이다.

*         *         *

해가 완전히 저물자 이한은 작업을 멈추고 학생들에게 저녁을 먹였다.

마력을 소모할 대로 소모한 학생들은 고기가 구워지자마자 집어삼켰다. 기름이 아래로 떨어지며 불꽃에서 탁탁거리는 소리가 났다.

“요네르. 물약은 어떻게 됐어?”

“몇 개 확인하는데 성공했어!”

요네르는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플레맹 교단의 사제들이 도와준 덕분에 몇 개의 물약을 알아내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일단 하나는 술이었어.”

“......”

이한은 살짝 어이가 없었다.

‘왜 물약 상자에 술을 한 개도 아니라 여러 개 넣어 놓은 거지?’

하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이런 마법학교에 있다 보면 선배들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술에 손이 갈 테니까.

“다른 건?”

“변신 물약. 뭘로 변신하는지는 좀 더 확인해봐야 하겠지만 아마 동물 계열일 거야.”

‘나쁘지 않다.’

어떤 동물인지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변신 물약이라면 쓸모가 많을 가능성이 높았다.

만약 날개 달린 동물이라면...

‘마법학교의 하늘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해볼 만할 가치가 있다.’

“참. 저번에 가이난도가 먹은 건 자신감의 물약이 맞았어.”

“역시 그랬군.”

“그리고 저주 해제의 물약. 아주 강력한 물약이라고 하시더라. 맞아. 자신감의 물약 말고 침착함의 물약도 있었어.”

“...!”

옆에 있는 학생들도 관심을 보였다.

“침착함의 물약? 혹시 그걸 마시면...”

“교수님한테 들키면 위험하지 않을까?”

“안 들킬 생각을 해야지.”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빠르게 마법학교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시험을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교수와의 싸움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남은 것들도 다음 주에 확인해보려고. 사제님들이 계실 때 확인을 끝낼 생각이야.”

“고마워. 요네르. 바쁠 텐데.”

“너보단 아니지... 우레걸음 교수님이 네 걱정 하시던데.”

“?”

이한은 멈칫했다.

“무슨 걱정?”

“너 부르려다가 차마 못 부르겠다고 하셨어.”

축제 때 강제로 뭔가 준비하게 된 우레걸음 교수는 연금술에 뛰어난 학생들을 불렀다.

요네르도 당연히 불려갔다.

불려간 학생들은 이한이 없는 걸 보고 의아해했다.

-워다나즈는 없나요?

-걔는 차마 불쌍해서 못 부르겠더라.

“...잠깐.”

이한은 오싹함을 느꼈다.

설마 했는데 정말 해골 교장이 이한을 부르려고 한단 말인가?

‘잠깐. 우레걸음 교수가 해골 교장 하나 때문에 일을 안 시킬 사람은 아닌데.’

하나가 아니라면...

순간 이한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뱀파이어 교수가 한 명 있었다.

“으아아악!”

먼저 휴게실에 들어간 푸른 용의 탑 학생이 비명을 질렀다. 이한은 깜짝 놀라 고개가 들었다.

“교장 선생님의 재습격인가!?”

“그건 아니야!”

“다행이다!”

‘다행인가?’

이한은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도둑이라도 든 것처럼 휴게실 꼴이 엉망이었다.

탁자와 의자들이 넘어져서 구석에 널브러져있었고 책꽂이의 책들도 바닥에서 뒹굴었다.

친구들은 가이난도를 보며 물었다.

“너 설마 먹을 것 때문에...”

“미친놈들아! 같이 있었잖아!”

“아. 그랬지.”

범인은 금세 밝혀졌다.

마법진 작업을 위해 휴게실에 두고 간 샤르칸이 입에 뭔가 문 채 그르렁대고 있었던 것이다.

이한은 샤르칸을 보며 강하게 말했다.

“샤르칸!”

처음 듣는 주인의 화난 목소리에 샤르칸은 겁에 질렸다. 강대한 마력이 파르르 떨리며 소환수를 위축시켰다.

하지만 불쌍한 오해를 산 흰 말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었다.

샤르칸은 입에 저주 해제의 물약을 소중하게 문 채 그르릉댔다.

“다들 미안하다. 샤르칸을 데리고 다녔어야 했는데.”

“네 잘못이 아니야. 우리도 샤르칸을 귀여워했으니까.”

“샤르칸이 저런 짓을 할 줄 누가 알았겠... 저게! 워다나즈! 샤르칸이 도망친다!”

샤르칸은 반성하는 대신 기회를 엿보고 재빨리 밖으로 달려 나갔다.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당황해서 샤르칸을 놓쳤다.

‘뼈다귀일 때가 그리워지는군!’

이한은 속으로 불평하며 내달렸다.

뼈다귀일 때는 말썽을 안 피우던 놈이 몸을 되찾으니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주인 죽이려고 덤벼드는 것보단 낫긴 했지만 저런 장난기도 상당히 귀찮았다.

“요네르. 샤르칸이 물약을 훔쳤어! 무슨 물약이지?”

“그게... 잠깐만...!”

요네르는 도망치는 샤르칸의 입에 물린 물약을 노려보았다.

선명한 녹색.

저주 해제의 물약이거나 동물 변신의 물약이었다.

“확실하지 않아! 비슷한 물약이 있어서...!”

그러는 사이 샤르칸은 후다닥 거리를 벌려 마구간에 도착했다.

샤르칸이 마구간에 들어가자 안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말들이 갑자기 단체로 겁을 먹은 것처럼 미친듯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대체?!’

이한은 두려움과 걱정으로 긴장하며 내달렸다.

마구간 안에 들어서자 샤르칸이 무슨 물약을 훔쳐갔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변신의 물약을 훔쳐갔군.”

뒤늦게 도착한 요네르가 놀란 표정으로 숨을 내쉬었다.

그리폰이 마구간 안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폰으로...!”

“그래. 그리폰 변신의 물약이었나봐.”

말들을 잡아먹는 그리폰으로 변신했으니, 저렇게 난리를 치는 것도 당연했다.

요네르가 샤르칸을 보며 속삭였다.

“아마 말한테 부탁을 받은 것 아닐까? 샤르칸 같은 몬스터는 지능이 상당히 높거든.”

“변신하는 물약을 찾아달라고?”

“응. 그랬을 수도 있어. 그... 있잖아. 너한테 능력을 과시하고 싶었을지도.”

이한은 요네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자존심 강한 동물들 중에서는 무시당하면 어떻게든 자기 능력을 더 보여주려는 놈들이 있었다.

물론 그건 몬스터한테서나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보기 드물게 흰 말이 그런 자존심을 갖고 있을 수도 있었다.

요네르의 말대로, 이한이 하도 믿어주지 않아서 답답해진 흰 말이 샤르칸한테 강해질 수 있는 걸 찾아와달라고 부탁했을지도 몰랐다.

“사과하마. 널 너무 의심했군.”

그리폰으로 변신한, 아니, 돌아온 흰 말은 이한의 말에 기쁨에 차서 앞발을 들었다.

펑!

마신 물약의 효과가 떨어지자 그리폰은 흰 말로 다시 돌아왔다. 저주가 워낙 강력해서 물약으로 완전히 해결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래도 그리폰은 만족했다.

이한이 드디어 자신의 정체를 깨달았을 테니까!

요네르는 그리폰을 달래기 위해 말했다.

“넌 똑똑해. 널 믿어줄게.”

-...푸히힝??

“그런데 요네르. 변신이 아니라 진짜 그리폰일 가능성은 없나?”

-푸히힝! 푸히히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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