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38화 (138/687)

138화

흰 말이 바로 그거라는 듯이 난리를 쳤다.

샤르칸이 기껏 갖고 온 물약으로 간신히 오해를 풀었나 싶었는데, 두 학생의 모습을 보니 뭔가 다른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 된다!

하지만 요네르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이한을 보았다.

“진짜 그리폰일 가능성이 없냐니. 그게 무슨 소리야?”

“아까 선명한 녹색 물약이 두 개 있다고 했었지.”

저주 해제의 물약과 동물 변신의 물약.

둘 다 같은 색을 가지고 있는 물약이어서, 샤르칸이 물약 상자를 헤집고 달아났을 때 요네르도 바로 구분하지 못했었다.

만약 흰 말이 마신 게 그리폰 변신의 물약이 아니라 저주 해제의 물약이었다면?

“하지만... 이한.”

요네르는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망설였다.

이한의 말이 너무나도 터무니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번개걸음 교수님이 그리폰을 말로 변신시켜서 학생들한테 줄 리가 없잖아.”

“......”

-......

이한도, 흰 말도 침묵했다.

요네르의 논리가 너무나도 완벽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한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요네르는 아직 교수들을 조금 믿고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마법학교의 교수들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그게 그리폰을 말로 변신시켜서 신입생에게 강제로 주는 것이라도!

가능성 희박한 일이었지만, 이한은 왠지 모를 찜찜함을 느꼈다.

게다가 흰 말과 샤르칸이 계속 난리를 치며 답답해하는 것도 조금...

“그래도 확인해보고 싶어.”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어떻게 확인하려구?”

“다른 녹색 물약을 확인해보자.”

“동물한테 변신 물약을 함부로 먹이면 위험해.”

요네르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이성이 있는 사람과 달리 동물은 자신의 육체가 변화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하기 힘들었다.

“물론 나도 폰리그한테 먹일 생각은 없어. 가이난도한테...”

말하던 이한은 멈칫했다.

갑자기 흰 말의 이름이 신경쓰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니겠지 설마?

‘번개걸음 교수가 그냥 그리폰의 이름을 거꾸로 부를 정도로 막나가는 사람이... 맞긴 하지.’

이한은 흰 말을 쳐다보았다.

흰 말은 깊고 커다란 눈동자로 이한을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믿어줘!

“가이난도한테 먹이려고?”

“응. 역시 좀 그런가?”

“아니야. 좋은 생각이네.”

요네르는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수긍했다.

동물들한테 변신물약을 먹이는 건 말리고 싶었지만 가이난도는 괜찮았다.

“잠깐. 요네르. 생각해보니까 사제님들한테 다시 확인해달라고 하면 되잖아.”

이한의 말에 요네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게?

“그러네...?”

“그런데 다른 물약도 확인해야 하느라 바쁘시겠군. 그냥 가이난도한테 먹여서 확인해볼까?”

“네 판단에 맡길게. 이한. 뭐든 좋을 것 같아.”

두 푸른 용의 탑 학생은 수상쩍은 꿍꿍이를 꾸미며 다시 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흰 말은 발굽으로 바닥을 두드리며 기대에 가득 찬 시선으로 이한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곧 이 말도 안 되는 누명이 풀리겠구나!

샤르칸이 조금만 더 기다리라는 듯이 컹컹댔다. 흰 말은 고마움의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         *         *

월요일.

주말이 끝나고 봄 축제와 함께하는 새로운 한 주가 찾아왔지만 이한의 마음은 따뜻한 설렘과 거리가 멀었다.

아침부터 볼라디 교수의 강의가 있었던 것이다.

볼라디 교수는 들어오는 이한을 보자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한으로서는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뭐지? 더럽게 무섭군.’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무섭기 마련이었다. 하물며 그게 볼라디 교수 같은 사람이라면 두 배로 무서웠다.

볼라디 교수는 천천히 말했다.

“과욕이라고 말했을 텐데.”

“예?”

앞뒤 다 자르고 시작하는 볼라디 교수의 화법은 언제나 새로웠다.

이한은 긴장했다.

상대가 뭔 짓을 할 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골렘을 쓰러뜨렸을 때, 기억나나?”

“예.”

우레걸음 교수의 간계에 빠진 이한은 살기 위해서 길을 막는 진흙 골렘을 쓰러뜨렸었다.

막대한 마력을 쏟아 부어서 회전 속성이 담긴 거대한 물 구슬을 완성시킨 것이다.

그리고 볼라디 교수는 그걸 어디서 이상하게 듣고 오더니 ‘왜 그렇게 욕심이 많지? 벌써부터 회전 속성을?’같은 소리로 이한의 속을 뒤집어놓았다.

이한은 그런 부분에 욕심이 없을 뿐더러, 심지어 있다고 하더라도 볼라디 교수는 저런 말을 하면 안 됐다.

지금 마법학교 교수 중에서 가장 마법 진도에 욕심 많은 사람 아닌가!

“그 때 초조해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래서 그 이후로 회전 속성은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다중 수옥(水玉) 조종을 시도했다고 들었다.”

“......”

이한은 절망했다.

잉걸델 교수 이 사람, 대체 어디까지 말하고 다닌 건가?

‘미치겠군.’

마법학교의 교수들끼리 모이는 시간이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이렇게 알차게 퍼질 리 없었다.

“상황이 급박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렇겠지.”

볼라디 교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이한은 안심하지 않았다.

볼라디 교수는 납득하는 표정을 하고서 속으로는 자기만의 논리로 다른 생각을 완성시키는 사람이었으니까.

이한의 추측은 정확했다.

볼라디 교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르침이란 얼마나 어려운가.’

길이 앞에 있는데 가지 않는 사람은 마법사의 자격이 없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나이는 어렸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마법사다운 소년이었다.

저번에 이한이 회전 속성을 탐구하는 걸 멈춘 것은 볼라디 교수의 충고 때문이 아니었다.

진정한 마법사는 그런 얄팍한 말로 충고한다고 멈추지 않았다.

그건 오로지 스스로가 납득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볼라디 교수도 추가 수련을 준비하지 않았던가.

강제로 집중시키기 위해서.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다.’

볼라디 교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한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저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멈추지 않을 것이란 걸.

저번처럼 볼라디 교수는 얄팍한 말로 충고만 할 생각이 없었다.

“받도록.”

“?”

이한은 볼라디 교수가 준 꾸러미에 당황했다.

뭐지 이게?

“둘러라.”

꾸러미를 펼쳐보니 낡은 망토 같은 게 나왔다. 마력이 느껴지는 걸 보니 마법이 걸려 있는 게 분명했다.

“무슨 마법이 걸려 있는 겁니까?”

“방어 마법.”

“......”

이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볼라디 교수가 방어 마법이 걸린 망토를 주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저번보다 더 세게 패려나보군.’

대체 얼마나 패려고...

그러나 볼라디 교수는 마법을 날리는 대신 돌아섰다. 그리고는 강의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따라와라.”

“??”

이한은 살짝 당혹스러운 기분으로 볼라디 교수의 뒤를 따라 나갔다.

지하 1층에 위치한 강의실 복도는 인기척 하나 없이 어두웠다. 아침인데도 전혀 다른 곳처럼 느껴질 정도로.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저번에 원소 탐지 훈련을 했었지.”

“그랬습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라고 화를 내고 싶었지만 이한은 인내했다.

볼라디 교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으니까.

“네 원소 탐지 능력은 충분하다. 더 이상 훈련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감사합니다.”

볼라디 교수 기준으로 저 정도면 어마어마한 칭찬이 맞았다. 이한은 순순히 감사했다.

“그리고 기본 번개 마법과 그 응용에 대한 책을 줬었다.”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만 아직 완벽하게는...”

“한 번에 다 이해할 거란 생각을 하진 않았다.”

“!”

이한은 놀랐다.

저 말에 놀란 게 아니라 볼라디 교수가 저런 말을 해서 놀란 것이었다.

아니, 볼라디 교수가 저런 정상적인 말을 하다니?

‘...좋아할 게 아니라 책 난이도가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한가보군.’

기뻐할 때가 아니었다. 이한의 마음이 다시 우울해졌다.

“원소 탐지 능력, 통제 능력, 형태 변환 능력... 모두 충분하니, 사실 다중 수옥 조종을 시도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습니까?”

이한은 반색했다.

원래 시도해도 괜찮은 상황이었다니 다행이었다.

볼라디 교수의 지ㄹ... 가르침이 조금 덜 가혹해질 것 아닌가.

교수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지하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벽을 향해 지팡이를 휘둘렀다. 숨겨진 계단이 나타났다.

‘대체 숨겨진 길들이 몇 개나 있는 거지?’

이한은 길을 메모해가며 교수의 뒤를 쫓았다.

그 뒤로도 한동안 말이 없자 이한은 의아해하며 다시 물었다.

“그래서 교수님...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방금도 어디로 가냐고 물었는데 갑자기 이제까지 했던 훈련 이야기만 꺼내고 말이 없었다.

뭐지?

볼라디 교수는 우뚝 멈춰서더니 이한을 쳐다보았다. 눈빛에는 희미한 당혹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이한은 숙련된 제자답게 상황을 파악했다.

‘음. 방금 말하신 걸로 자기는 설명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대체 저게 어떻게 설명이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한은 당황하지 않았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지금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부터 말입니다.”

“던전에 가고 있다.”

“......”

이한은 순간 괜히 물었다고 후회했다.

*         *         *

던전.

특정한 지역에 고여 있는 마력으로 인해 밖과는 다른 규칙을 가진 이질적인 공간.

고대의 유적일수도 있었고, 미치광이 해골 리치가 시약 보관을 위해 세운 탑일 수도 있었고, 어떤 곳이든 될 수 있었다.

평화롭게 마력만 고여 있고 규칙만 다르면 좋겠지만 보통 던전에는 몬스터들이 있었다. 마력에 이끌리는 놈들인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당연히 이 마법학교의 역사를 생각해봤을 때 교내에 자연적이든 인공적이든 던전이 없을 리가 없었지만...

‘그걸 내 발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지하의 숨겨진 통로를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점점 깔려 있는 벽돌이 사라지고 자연적으로 변하더니 공기의 마력이 진해졌다.

그리고 저 앞의 깊숙한 어둠속에서 몬스터가 내는 음산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한은 앞장서서 걸어가는 볼라디 교수의 등을 쳐다보았다.

지금 볼라디 교수를 제압하고 탈출하는 게 쉬울까 아니면 던전의 몬스터들과 싸우는 게 쉬울까?

슬프게도 후자였다.

“교수님. 망토 말고 갑옷은 없습니까?”

“마법에 방해된다.”

볼라디 교수는 단호하게 말했다.

흔히 위험한 전장에서 전투마법사들이 갑옷을 선호할 것 같았지만, 그건 편견이었다.

마법사는 마법에 집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했다. 두껍고 무거운 갑옷은 마법사의 움직임을 제약하고 집중력을 흐트러뜨렸다.

안 그래도 전장의 소음과 혼란은 마법사를 방해하는 만큼 이런 부분에서 미리 준비해놓는 게 좋았다.

‘...근데 목숨이 위험하지 않나?’

볼라디 교수의 말은 이해가 갔지만 아직 해결 안 된 부분이 있었다.

갑옷 안 입으면 마법 쓸 때 좋긴 하겠지만...

공격을 맞으면 더 치명적이지 않겠는가.

“아. 혹시 갑옷을 입지 않는 대신 마법으로 방어하는 겁니까?”

그런 거라면 말이 됐다.

이한은 자신이 쓸 수 있는 물 방패 마법을 떠올렸다. 뛰어난 마법사들이라면 좀 더 다양한 방어 마법을 쓸 수 있으리라.

걸어가던 볼라디 교수가 다시 고개를 돌려서 이한을 쳐다보았다.

“방어 마법을 사용하면 다른 마법에 방해된다.”

“그러면... 방어는 어떻게 합니까?”

“피해라.”

“......”

이한은 결심했다.

볼라디 교수가 뭐라고 하든 간에, 이한은 방어 마법을 쓰면서 싸우기로.

‘마력 많은 게 언제 쓸모가 있나 싶었는데 이럴 때 쓸모가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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