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높은 평가를 받는 부여 마법에는 몇 가지 조건들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깔끔함.
스크롤을 찢었을 때 시전 속도가 오래 걸린다거나, 다른 효과가 일어난다거나 하지 않고 정해진 효과를 정확하게 발동시키는 게 바로 깔끔함이었다.
마법사가 주문의 구조를 짜서 넣을 때 쓸데없는 군더더기를 넣지 않아야 이런 깔끔함이 나왔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아름다움.
마법에 아름다움을 따지는 게 이상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중요했다.
같은 아티팩트라도 커다랗고 시커먼 쇳덩어리보다는 작고 가벼운 반지가 나은 것이다.
당연히 작고 가벼운 반지에 마법을 짜 넣으려면 커다랗고 시커먼 쇳덩어리에 마법을 거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섬세하고 복잡한 작업이 필요했다.
이런 까다로운 과정을 포기하지 않고 해내는 마법사들이 바로 부여 마법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조건들 중 하나에는 출력도 있었다.
부여 마법에서 출력은 핵심적인 요소였다.
같은 마법이 담긴 스크롤이라 하더라도 하나는 80의 효과가 나오고, 다른 하나가 100의 효과가 나온다면 전자를 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 만큼 부여 마법사들은 가능한 상황에서 최대한의 출력을 추구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다른 조건들처럼 이것 또한 노력한다고 되는 건 아니었다.
어떤 부여 마법사는 본능적으로 강한 출력을 담아낼 줄 알지만, 어떤 부여 마법사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일정 이상의 출력을 담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비블레 교수 앞의 소년은 다른 재능은 몰라도 출력 하나만큼은 빼어났다.
“대단한데?!”
“그렇습니까?”
이한은 실패한 줄 알고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빛이 심하게 번쩍였던 것이다.
“아냐. 정말로 대단해!”
“그렇게 잘 만든 겁니까?”
“잘 만든 건 아니고. 사실 솜씨는 형편없긴 해.”
비블레 교수는 단호했다.
뛰어난 부여 마법사라면 시행착오 없이 빠르게 빛 마법 폭죽을 한 번에 완성했을 것이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빛도 좀 더 형형색색으로 꾸미거나 다른 형태로 장식을 했을 터.
...물론 이한은 아직 1학년이었고, 비블레 교수가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않은데다가, 심지어 타고난 마력이 많아서 부여 마법의 저런 부분에서는 매우 불리한 편이었지만...
그런 사실은 이미 교수의 머릿속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그런 단점들을 감안해도 네게는 확실한 장점이 있어! 출력이 아주 좋아.”
비블레 교수는 신이 나서 자기만 아는 이야기를 연신 떠들었다.
아티팩트를 만들 때 미감이나 깔끔함이나 섬세함이나 복잡함이나 뭐 이런 것들이 있는데 이 중에서 출력도 아주 중요한 무언가고...
‘행복한 생각을 하자.’
이한은 졸려오는 정신을 다잡고 행복한 생각을 했다.
그러자 비블레 교수가 자기만 아는 이야기로 연신 떠들어도 미소를 지으며 버틸 수 있었다.
비블레 교수는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몇 시간이나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한은 교수가 지만 아는 이야기를 몇 시간이나 해도 버틸 수 있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만나자 대화는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졌다.
* * *
“...그래서 부여 마법이 재밌는 거야. 재밌지?”
“예. 정말 재밌었습니다.”
“아주 좋아! 고나달테스가 이렇게 선물을 줄 줄은 몰랐는데!”
비버 교수는 기특한 신입생의 반응에 매우 기뻐했다.
부여 마법은 정말로 재미있는 세계였지만 아쉽게도 이 재미를 모르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학생은 재능은 좀 부족해도 그 재미를 아는 것 같았다.
이렇게 열심히 들을 줄이야.
그거면 충분했다.
“재밌으면 된 거야. 그렇지? 재능 좀 없으면 어때. 재밌으면 남는 거지.”
‘흠. 부여 마법은 넘어갈까.’
이한은 비블레 교수의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부여 마법이 탐이 나긴 했지만 잘 맞지 않는다면 억지로 추가하는 건 위험할 수도 있었다.
가르시아 교수가 경고했던 것처럼 너무 많은 마법을 같이 배우려고 하면 인생이 피곤해지는 것이다.
교수의 말을 들어보니 부여 마법과 그렇게 잘 맞는 것 같지도 않고...
그나마 장점이라고는 교수님이 귀엽다는 것 정도밖에 없었으니, 냉정한 판단을 내려야 했다.
“그러면 교수님. 재밌게 폭죽을 만들고 싶습니다.”
판단을 내린 이한은 예의바르게 말했다.
대충 견적이 나왔으니 이제 해골 교장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할 일만 빠르게 하면 될 것 같았다.
‘해골 교장이 마법 폭죽에 무슨 예술성을 원하지는 않을 테니, 최소한의 마법만 빨리 빨리 부여해야지.’
“그래. 만들고 싶어서 손가락이 근질거렸지?”
“예.”
“빨리 시작하자!”
“일단 빛 마법 폭죽부터 만들겠습니다.”
이한은 한 번 배워서 손에 익은 마법 폭죽을 먼저 만들었다.
아까보다 시행착오가 적게 새로운 빛 마법 폭죽이 만들어졌다.
그러자 비블레 교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니야.”
“예? 시전에 실수가 있었습니까?”
이한은 마법 폭죽을 들고 훑어보았다.
딱히 실수를 한 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한은 눈치 채지 못하지만 교수는 눈치 챌 수 있는 그런 실수가 있었던 걸까?
“너무 심심하잖아.”
“...교수님. 사실 저는 심심한 폭죽을 좋아합니다.”
“아니야. 그러면 재미가 없어. 네가 지금 다른 방식을 몰라서 그래. 다른 방식으로 하면 분명 더 재밌을 거야.”
비블레 교수는 부여 마법을 좋아하는 제자가 더 많은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손을 잡고 끌어당겼다.
재능보다 중요한 게 재미 아니겠는가.
게다가 제자에게는 출력이라는 장점이 있었다.
그 장점을 살린다면 더욱 부여 마법이 재밌어지리라.
‘느낌이 불길한데.’
물론 이한은 슬슬 불길함을 느끼고 있었다.
“자. 단순히 빛 마법을 터뜨리는 게 아니라, 빛의 형태를 변형시킨 다음에 유지시키는 거야. 이 새겨진 부여 마법의 문양이 보여? 느껴지는 게 있어?”
“빛 마법 기반으로... 형태를 변형시키고 유지하는 마법 같습니다만... 동물의 형태입니까?”
종이에 걸려 있는 부여 마법의 문양과 마력 흐름을 느끼고 어떤 마법인지 추측하는 건 매우 예리한 직감을 갖고 있는 마법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비블레 교수는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서 그런 걸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그래. 맞아! 귀엽고 간단한 동물이지. 그게 나타나면 더 재밌지 않겠어?”
“...예. 그렇긴 하네요.”
이한은 자신의 본능과는 정반대로 움직이는 입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상대는 교수인걸...
‘그래도 귀엽고 간단한 동물이면 그리 어렵지 않겠군. 다행이다.’
이한은 슬라임 같은 단순한 형태의 몬스터를 생각했다.
그런 거라면 빛으로 유지하기 좀 더 쉬울 것 같...
“어떤 동물입니까?”
“드래곤.”
“...드래곤.”
“드래곤. 귀엽고 간단하잖아.”
비블레 교수는 시범을 보여주겠다는 듯이 현란하게 지팡이를 휘두르면서 주문을 외웠다.
복잡하게 꼬이고 얽히는 마력의 흐름만 봐도, 저 마법이 얼마나 복잡하고 섬세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빛의 형태를 키우고, 늘리고, 당기고, 꼬고, 잡아끌고, 비틀어서 엮고...
볼라디 교수와 목숨 걸고 싸우면서 나름 원소 통제에 관해서는 온갖 걸 다 해봤다고 생각한 이한이었지만 비블레 교수를 보니 그게 아니라는 걸 느꼈다.
마법의 세계는 정말 무한히 넓었다.
‘...그 넓은 세계가 나한테 강제로 닥쳐온다는 게 문제지.’
저 드래곤 형태를 만드는 빛 마법을 과연 이한의 수준으로 해낼 수 있을까?
* * *
놀랍게도 해낼 수 있었다.
“잘 했어! 잘 했어! 재밌었지?”
비블레 교수는 해맑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한은 비버 교수의 주둥이를 한 대 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비블레 교수는 화를 내지도 않았고, 욕을 하지도 않았고, 이한을 압박하지도 않았다.
그저 이한이 실패할 때마다 ‘실패했어? 왜 그렇지? 아이참. 어렵지 않은데...’하면서 중얼거렸을 뿐.
이한이 이 비버 교수 상대로 어떤 타협이나 흥정도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자. 당겨봐! 당겨봐!”
이한은 지쳐서 제대로 대꾸도 하기 힘들었다. 교수가 하라는 대로 완성된 폭죽을 당겼다.
팡!
빛의 덩어리로 구성된 드래곤이 오연하게 공방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투박하고 거칠긴 해도, 누가 봐도 드래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비블레 교수는 이한이 마법 폭죽을 당기자마자 회중시계를 꺼내서 시간을 쟀다.
“뭘 재시는 겁니까?”
“지속 시간.”
“원래라면 얼마나 가는데요?”
“원래라면 터지자마자 사라지지.”
“...오.”
그 말에 이한은 살짝 뿌듯해졌다.
부여 마법을 하면서 딱히 잘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는데, 그래도 지속 시간 하나는 제법 잘 나왔던 것이다.
물론 그걸 감안하더라도 부여 마법은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비블레 교수가 너무 힘들었던 거지만 어쨌든...
‘폭죽 빨리 끝내고 도망가야지.’
내가 왔다.
해골 교장이 돌아왔다.
그리고는 공방 안의 상황을 보고 눈을 깜박였다.
공중에 떠있는 빛으로 된 드래곤.
비블레 교수는 마법 폭죽 만들어 놓으랬더니 왜 쓸데없는 예술을 시도하고 있는 거지?
‘시간을 너무 많이 줬나?’
폭죽을 얼마나 빨리 만든 거지? 그리고 저건 왜 띄워놓은 건가?
“내가 안 했는데?”
뭐라고?
“내가 안 했다고. 여기 얘가 했어.”
......
해골 교장은 황당해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노련한 리치 중의 리치인 해골 교장으로서는 참으로 드문 일이었다.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마법 폭죽 만들라고 했더니 웬 미친 난이도의 환상 부여 마법을 가르치질 않나, 배우는 놈은 그걸 또 해내질 않나...
마법 폭죽을 만들라고 했잖아!
“이게 마법 폭죽으로 만든 거야.”
...잠깐! 저건 또 왜 안 사라지지?
해골 교장은 뒤늦게 빛으로 된 드래곤이 안 사라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워다나즈 가문 출신 소년의 특이체질 때문이었다.
됐다. 둘만 붙여놓은 내가 어리석었지.
“자네가 언제나 그렇지 뭘. 괜찮아.”
그래서 마법 폭죽은 다 완성됐나?
“어...”
비블레 교수는 말을 머뭇거렸다.
방금 쏜 마법 폭죽 하나를 완성시키기 위해 모든 시간을 썼던 것이다.
해골 교장은 비블레 교수가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상황을 바로 파악했다.
...자네가 그러고도 교수가 맞나?!
“미, 미안해. 다음부터는 꼭 만들게.”
다음은 무슨 다음인가! 매번 그러면서... 너는 일부러 알고도 그런 거지!
불똥이 자신한테 튀자 이한은 매우 억울해졌다.
지금 누구 때문에 축제 기간에 부여 마법 무한반복을 하고 있었는데...!
“교장 선생님. 생각해보십시오. 제가 대체 뭐가 아쉬워서 일반 마법 폭죽을 만드는 대신 저런 난이도 높은 걸작 마법 폭죽에 도전을 하겠습니까?”
그건 확실히 맞는 말이다.
“왜? 이렇게 재밌는데 당연히 도전하고 싶어 하지 않나?”
이한과 해골 교장은 동시에 비블레 교수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
해골 교장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혀를 차며 말했다.
됐다. 어쩔 수 없으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라.
“고나달테스! 저 제자 다시 보내줘야 해! 쟤는 부여 마법을 좋아한다고!”
자네는 반성이나 하게! 대체 언제쯤 되면 내 말을 기억할 건가!
자신을 데리고 탑에서 나가는 해골 교장을 보면서, 이한은 처음으로 교장의 든든함을 느꼈다.
“감사합니다.”
그래. 그런데 내일 다시 보낼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