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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46화 (146/687)

146화

이한은 떨떠름했지만 놀라진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할당량을 끝내지 못한 학생을 그냥 순순히 쉬게 내버려둔다면 그건 교수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하하. 내가 너를 괴롭힌다고 오해하지 마라.

“하하. 물론입니다.”

해골 교장은 이한에게 대들어달라는 듯이 미묘한 기대가 담긴 시선을 던졌지만 이한은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버두스 교수님은 그... 원래 그러신 분입니까?”

그래. 버두스 교수는 그... 원래 좀 그런 사람이지.

둘은 굳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뜻이 통했다.

그러게 적당히 하지, 왜 그렇게 열심히 해서 버두스 교수의 눈에 들고 그랬는지... 쯧쯧.

“?”

이한은 멈칫했다.

해골 교장의 말이 복합적으로 이상했던 것이다.

“적당히 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건 둘째 치고, 딱히 교수님 눈에 들지는 않았습니다만.”

이한이 보기에 버두스 교수는 이한을 그렇게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부여 마법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 지적과 불평을 했던 것이다.

-실패했어? 왜 그렇지? 아이참. 어렵지 않은데...

-재능이 너무 부족한 건가?

-이렇게 실패해서는... 참... 안타깝네... 내가 미안해지네...

-열정에 비해 재능이...

교수들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 있는 이한이라서 망정이었지, 다른 신입생이었다면 진지하게 멱살 잡아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정도면 엄청나게 마음에 든 거지. 버두스 교수는 제자들도 잘 안 돌보는 놈이거든.

“그건 다들 그러시지 않...”

뭐라고 했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한은 해골 교장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비블레 교수가 좀 괴팍한 사람이긴 했지만, 볼... 아니, 다른 교수들처럼 이한을 억지로 끌고 가서 가르칠 사람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한의 재능에 크게 기대하지도 않는 것 같았고.

‘아까는 그냥 말 잘 들어서 그러는 거지, 안 듣겠다고 하면 이해해줄 것 같은데.’

이번 축제 주간 동안 꽤 힘들겠구나.

해골 교장은 짓궂게 말했다.

당장 볼라디 교수의 천막도 며칠 동안 더 운영해야 했고, 해골 교장의 마법 폭죽은 아직 제작도 하지 않았으니...

‘잠깐. 알펜 교수 마법진 완성도 아직 다 안 됐는데.’

이한은 손가락을 접으며 계산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심했다.

시간이 되나?

“그런데... 제가 물리적으로 시간이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만.”

엄살은. 그래도 학생이라면 수업을 받는 것보다 축제를 준비하는 게 더 즐겁잖나?

“전 그냥 수업이 더 나을 것 같습...”

말하던 이한은 문득 이상함을 느끼고 멈칫했다.

“수업 안 듣습니까?”

축제 때는 쉬라고 전해 놨다. 감사하지?

“감사한데... 어... 볼라디 교수님은 강의를 하셨는데요?”

그랬나?

해골 교장은 의아해했다.

그러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

이한은 졸업하면 볼라디 교수를 먼저 찾아가야 할지 해골 교장을 찾아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         *

봄 축제라고 푸른 용의 탑 휴게실은 봄 기운이 가득했다.

친구들은 들판에서 따온 이름 모를 풀꽃들을 이곳저곳에 걸어놓고 칠판에 재밌었던 행사를 적어놓았다.

가이난도는 사제가 만들어 준 고깔모자를 쓰고, 밖에서 들어온 과자 장수가 선물로 준 크림 발라진 얇은 비스켓을 오물거렸다.

“가이난도! 이거 받아라!”

“흥! 받을 줄 알고!”

뒤에서 들어온 친구가 짚으로 만든 어설픈 인형을 던지자 가이난도는 황급히 몸을 옆으로 굴려서 피했다.

봄 축제에 자주 하는 행사 중 하나로, 불운을 담고 있는 인형을 던지는 행사였다.

다른 사람이 받는다면 계절 하나동안 자신의 불운이 그 사람한테 간다고 믿는 것이다.

“늦었어! 멍청하긴!”

“아, 안 돼!”

대기하고 있던 다른 친구가 재빨리 가이난도한테 인형을 던졌다. 가이난도는 인형을 받고 울상이 되었다.

“다른 사람! 다른 사람 나와!”

그러나 휴게실에 있는 친구들은 이미 가이난도가 인형을 받는 걸 보고 대비를 마친 뒤였다.

가구 뒤로 피하거나 양손을 뒤로 돌리고 대기하는 친구들을 본 가이난도는 손가락질로 비난했다.

“비겁해! 비겁하다고!”

“봄 축제에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도 허용된다고. 가이난도.”

그 때 휴게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가이난도는 화색이 되어서 짚 인형을 뒤로 돌렸다. 상대를 방심시킨 다음 던질 생각이었다.

벌컥.

이한은 세상에서 가장 피곤한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해가 지면서 강렬해진 저녁노을이 이한의 얼굴에 드리운 음영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

“......”

방금까지 신나있던 푸른 용의 탑 친구들은 갑자기 괜히 미안해졌다.

몇몇 학생들은 방금까지 갖고 놀고 있던 장난감들을 슬쩍 옆으로 치워버렸다.

칠판에 낙서를 하고 있던 아산은 자신도 모르게 칠판을 뒤로 뒤집었다.

추종자와 체스를 두고 있던 황녀는 옆에 있던 학생을 잡아당겨서 체스판 앞에 앉혀놓고 자신은 책을 읽는 시늉을 했다.

언제나 식사를 만들어 준 친구의 지친 얼굴은 푸른 용의 탑 학생들 모두를 부끄럽고 미안하게 만드는 강렬한 힘이 있었다.

“다들 왜 그러지? 나 때문에 그러는 건가?”

이한은 의아해했다.

“나 신경 안 써도 되니까 하던 대로 놀아. 왜 이상하게 눈치를 보는지 모르겠군.”

“그, 그렇지?”

“하하. 나도 모르겠네.”

친구들은 치워놓았던 장난감을 슬며시 꺼냈다. 아산은 다시 칠판을 뒤집었다. 황녀는 책을 집어넣고 다시 체스말을 잡았다.

가이난도는 눈을 빛내며 이한에게 다가갔다. 등 뒤에 숨긴 인형이 흔들거렸다.

“이한...”

“야 이 비겁하고 비열한 자식아!”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푸른 용의 탑 학생 둘이 가이난도에게 달려와서 양팔을 붙잡고 끌어냈다.

사람이라면 저렇게 지친 워다나즈한테 짚인형을 줄 수는 없었다.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모든 수단과 방법이 허용된다면서!”

“조용히 해!”

끌려가는 가이난도를 보며 이한은 소파에 털썩 쓰러졌다.

지칠 대로 지쳐서 가이난도가 왜 저러는지도 물어볼 힘이 나지 않았다.

“다들 축제 재밌었나?”

“물론이지. 워다나즈. 너는 뭘 했지?”

“난 볼라디 교수의 천막을 운영하고 그 다음에는 해골 교장의 부탁을 받아서 마법 폭죽을 제작하느라 공방에 갇혀 있었지.”

“...야. 장난감 치워. 치워.”

이한의 말을 들은 친구들은 축제 때 받아온 장난감을 허겁지겁 치우려고 했다.

이한은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됐다니까... 그리고 다들 교장 선생님이 마법 폭죽 터뜨릴 때 조심해. 가까이 다가가지 마.”

“왜?”

친구들에게 짚 인형을 압수당한 가이난도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냥 하라면 하지 마 이 자식아.”

“내가 뭘 잘못했다고...!”

가이난도는 억울해했다.

물론 피곤해하는 이한에게 짚 인형을 던지려는 수작을 부리긴 했지만...!

붉은 머리칼의 소녀가 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양철 컵을 하나 건넸다.

작은 쪽지가 붙어 있었다.

-무료!(가격 물으면 가이난도)

“...고마워. 요네르.”

“뭘 이런 걸 가지고.”

“...내가 너무 가격에 집착했나?”

이한은 갑자기 조금 신경 쓰여서 요네르에게 물었다. 요네르는 시치미를 뗐다.

“그다지?”

설탕이 잔뜩 들어간 뜨거운 커피가 들어가자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이한은 친구들에게 물었다.

“다들 오늘 축제 때 뭐 했지?”

“나는 우레걸음 교수님 도와드렸어. 이것저것 물약 만들고 마셔보는 행사 하셨는데, 밖에서 온 손님들도 좋아하시더라구.”

“과연... 나중에 장사하게 되면 주기적으로 이런 행사를 해도 될지도 모르겠어...”

“이한. 넌 금화를 위해서 태어난 걸지도 몰라.”

요네르는 지쳐서 쓰러진 와중에도 이런 불꽃같은 장사 아이디어를 내놓는 이한에게 감동했다.

“난 아까 과자 받으려고 줄섰는데. 밖에서 과자 만드는 사람 들어왔더라.”

“그래도 되나?”

“허가 받고 들어오셨다던데? 사제님들이 불렀나봐.”

“역시 사제님들이시다...”

학생들은 수군거리면서 감동했다.

교수들마저 버린 이 땅에 믿을 만한 건 사제밖에 없었다.

“그리고 은근히 외부에서 온 손님들 많던데? 나 아까 다른 학교에서 온 사람들 봤어.”

“뭐? 진짜? 어디?”

“어딘지는 말을 못 걸어서 모르겠는데... 물어볼 분위기가 아니었어. 코피를 줄줄 흘리면서 가더라고.”

“아. 그러게? 나도 아까 흰 호랑이 탑 놈들 코피 흘리면서 가는 거 봤었는데. 뭐지?”

누워있던 이한은 친구들에게 경고했다.

“맞다. 볼라디 교수님 천막에도 가까이 다가가지 마.”

“왜?”

가이난도가 별 생각 없이 물었다.

“그냥 하라면 하지 마 이 자식아.”

“넌 왜 자꾸 워다나즈를 괴롭혀!”

“아... 아니!”

친구들의 구박에 가이난도는 두 배로 억울해졌다.

궁금해 할 수도 있지!

“워다나즈가 마법 폭죽 이야기하니까 생각난 건데, 교장 선생님께서 마법 폭죽 행사하겠다고 하시지 않았나?”

“마법 폭죽 말고도 뭐 다른 거 하시겠다고 들었는데... 갑자기 찜찜해지는데.”

“근데 원래 교장 선생님이 하는 일은 다 찜찜했어.”

“하긴. 모든 행사를 피해야 하려나?”

이한은 누워서 친구들이 떠드는 걸 들었다.

‘외부에서 이렇게 손님이 많이 들어올 줄은 몰랐는데. 아쉽군.’

만약 알았다면 이걸 이용해서 탈출을 시도했을 텐데...

정말로 아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한이 볼라디 교수와 해골 교장과 기타 등등의 일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처럼 봄 축제는 오늘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남은 시간에 최대한 외부에서 온 손님들과 접촉해서 탈출 방법을 찾아보리라!

...물론 볼라디 교수의 천막도 운영하고 해골 교장의 마법 폭죽도 만들고 알펜 교수의 마법진도 완성하고 남는 시간에 접촉해야겠지만 어쨌든...

“이한.”

이한이 커피를 다 마시자 요네르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다른 친구들이 듣지 못하도록 조심하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야? 가이난도를 팰 일이라도 있어?”

“아냐. 그런 건 아니고...”

요네르가 물약병을 꺼냈다. 그리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내가 하는 말 놀라지 말고 들어줘.”

“그래.”

“...그 말, 진짜 그리폰일 수도 있는 것 같아.”

“그렇군.”

“안 놀라워?”

“난 이제 가이난도가 사실 크라켄이었어도 놀라지 않을 생각이야. 요네르. 가자.”

이한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피곤과 별개로 이건 직접 확인해봐야 했다.

*         *         *

이한의 말을 들은 요네르는 반신반의하며 플레맹 교단의 사제들에게 부탁했다.

그 결과 놀라운 진실이 드러났다.

...마구간의 폰리그가 마셨던 물약은 동물 변신의 물약이 아니라, 저주 마법 해제의 물약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한... 아무리 그래도 번개걸음 교수님이? 말이 안 되잖아.”

“요네르. 교수님을 믿지 마. 아니, 학교에서는 아무도 믿지 마.”

이한은 진지하게 말했다. 요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저 말이 정말로 그리폰이었다면 요네르는 어느 교수도 믿지 못할 것 같았다.

-컹.

이한을 따라 나온 샤르칸이 옆에서 짖었다. 이한이 표범어(語)를 할 줄은 몰랐지만 샤르칸이 뭐라고 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아마 대충 내가 뭐라고 그랬어라고 하고 있겠지.’

이한은 미안하다는 듯이 샤르칸을 쓰다듬었다. 축제 때문에 신경 못 써준 것도 있어서 더욱 미안했다.

그렇게 마구간에 도착했을 때, 끼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이한과 요네르는 마구간 안에서 나오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온몸과 얼굴을 시커먼 천으로 가린 사람이었다.

“...랫포드...가 아니군! 요네르! 도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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