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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51화 (151/687)

151화

빠르게 숫자를 세던 가르시아 교수는 생각을 멈췄다.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몇 개든 간에 지금 눈앞의 뛰어난 제자가 마법에 깔려 죽기 직전이라는 건 달라지지 않았다.

‘말려야 하나...?’

가르시아 교수는 말을 꺼내려다가 멈칫했다.

이걸 가르시아 교수가 말릴 자격이 있는가?

이한 학생이 부여 마법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그걸 꺾어버리면 제국에도, 마법계에도, 이한 학생 개인에게도 커다란 손해일지 몰랐다.

정작 가르시아 교수도 마법학교를 다닐 때 들을 수 있는 강의란 강의는 다 듣지 않았던가.

그런 가르시아 교수가 과연 이한을 말릴 자격이 있을까?

트롤 교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 이거까지만. 이거까지만 배우게 하자.’

다음 마법부터는 정말로 말리고...

“힘내세요. 이한 학생.”

“언제나 감사합니다. 교수님.”

이한은 예의바르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르시아 교수는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이제 친구들과 축제를 즐기러 가나요?”

“네.”

이한이 옆구리에 낀 보물상자를 본 가르시아 교수는 미소지었다.

신입생 때 너무 마법에만 몰두하는 것도 좋지 않았다.

저렇게 친구들과 우정, 추억을 쌓는 것도 해야 할 일...

“유미디후스 님을 만나서 가르침을 받고, 아프하 교단 사제님들을 만나서 불 원소 마법 훈련을 하고 나서요.”

“......”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가는 이한의 뒷모습을 보며, 가르시아 교수는 그냥 말렸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         *         *

유미디후스는 곧 소풍을 갈 사람처럼 차려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햇빛을 가리기 위한 밀짚모자와 질긴 천으로 만든 바지에서는 마치 시골 농장을 직접 운영하는 것 같은 넉넉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한은 방심하지 않았다.

‘저 사람은 볼라디 교수의 스승이다.’

그것만으로도 유미디후스는 이 마법학교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 중 하나였다.

“출발해도 되겠니?”

“산을 올라가실 겁니까?”

“그렇지.”

이한은 ‘산에서 뭘 하려고요?’라고 묻지 않았다.

“산에 올라가신다면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좀 챙겨가겠습니다.”

“이런... 점심을 못 먹은 거냐? 먹고 와도 되는데.”

“아닙니다. 저도 점심은 먹었습니다만, 산을 오르면 유미디후스 님께서 시장하시지 않겠습니까.”

“...!”

유미디후스는 경악했다.

제자가 스승을 챙겨주려고 하다니.

이제까지 유미디후스에게 마법을 배우기 위해 찾아온 놈들에게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놀라운 모습이었다.

-유미디후스 님. 마법을 배우러 왔습니다. 언제 시작합니까? 빨리 시작하시죠. 제가 시간이 별로 없어서 말입니다.

-유미디후스 님. 절 지금 무시하십니까? 제가 이런 마법 하나 하지 못할 줄 아시다니. 정말로 무례하시군요!

-유미디후스 님. 제가 객관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 마법은 별로 좋은 마법이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다른 마법을 가르쳐주시죠.

눈을 감자 이제까지 찾아왔던 놈들의 언행이 스쳐지나갔다.

사실 이건 어느 정도 유미디후스의 잘못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마법사는 재능이 있고 실력이 뛰어날수록 싸가지가 없어지는 법.

유미디후스는 자신이 거주하는, 외진 곳에 위치한 탑 주변에 온갖 시련과 함정을 깔아놓았다.

그런 걸 돌파하고 찾아올 정도의 마법사들은 대부분 다 콧대가 높고 무례할 수밖에 없었다.

‘...볼라디 배그렉 같은 놈 밑에서 어떻게 저런 제자가?’

“괜찮으십니까?”

유미디후스가 눈을 감고 가만히 서있자 이한이 당황해서 물었다.

“좀 많이 놀랐지만 괜찮다. 그러면 한 번 대접을 받아보마.”

“예.”

이한은 발걸음을 돌리더니 오두막으로 찾아갔다.

-교수님. 먹을 것 좀 주십시오.

-...맡겨놨냐!?

-유미디후스 님께서 산맥을 구경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냥 맨손으로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네가 축제에서 고생하는 걸 알아서 주는 거다. 알겠냐?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교수님밖에 없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는...

이한은 광주리에 넉넉하게 먹고 마실 걸 담아왔다.

훈제를 마친 큼지막한 햄과 소시지, 시큼하게 절인 오이와 채소들이 담긴 병, 흰 빵과 거기에 발라먹을 부드러운 잼과 소스들. 거기에 우레걸음 교수가 막 마시려고 끓인 홍차와 우유까지 빌려서 갖고 왔다.

기껏해야 육포나 가죽 수통에 물 좀 받아올 줄 알았던 유미디후스는 깜짝 놀랐다.

“이걸 다?”

“앗. 부족하십니까? 더 갖고 오겠습니다.”

“아니, 아니. 충분하다! 충분해!”

유미디후스는 푸짐한 간식에 당황해하면서도 신기해했다.

여기 마법학교의 신입생들이 고나달테스한테 어떻게 괴롭힘 당하고 있는지 유미디후스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소년은 음식을 자기 주머니 물건 꺼내듯이 구해오고 있었다.

실로 대단한 수완이었다.

“그러면 가시죠. 유미디후스 님. 제가 짐을 들어드리겠습니다.”

“마법으로 강화해서 전혀 무겁지 않은데?”

“그래도 제게 가르침을 주시려는 건데, 제가 들어드리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혹시 볼라디 배그렉한테 계속 배울 생각인가?”

유미디후스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꺼내버렸다.

볼라디 교수 같은 놈이 저런 착한 제자를 두고 호의호식할 거라고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피가 끓었던 것이다.

*         *         *

‘놀랍군. 정말 놀라워!’

이한과 같이 걸어가면서 유미디후스는 몇 분마다 감탄했다.

이한의 마법적인 능력이나 재능 때문에 놀라는 게 아니었다. 그건 사실 저번의 지하던전에서 이미 볼 만큼 본 상태였다.

애초에 신입생이 나찰아귀를 혼자서 잡을 정도면 마법적인 능력이나 재능을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유미디후스가 감탄하는 건 이한의 곧바른 인성이었다.

제국의 뛰어난 마법사들에게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찬란하게 빛나는 인성!

사람의 성품은 끝까지 숨길 수 없었다.

한두번은 속셈을 숨기더라도 계속 대화를 주고받으면 그 속마음이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한은 유미디후스와 대화하면서도 일말의 자만이나 교만 하나 드러내지 않았다.

유미디후스가 간단한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매우 공손한 태도로 집중해서 들을 뿐.

이쯤 되자 유미디후스는 진지하게 고민이 들었다.

세상의 법도는 왜 이렇단 말인가?

‘고나달테스나 배그렉한테 왜 이런 제자가?’

물론 유미디후스도 나이가 나이인 만큼 꼭 정의로운 사람이 보답을 받는 게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고나달테스나 배그렉 같은 작자들이 보답을 받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건 정말로 너무했다.

‘무슨 눈빛인지 모르겠군.’

유미디후스가 복잡미묘한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자, 이한은 더더욱 긴장했다.

안 그래도 볼라디 교수의 스승이란 말을 듣고 흠잡히지 않게 평소보다 더욱 철저하게 행동하고 있는 이한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지?’

유미디후스는 이한을 안타깝다는 듯이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던 노마법사는 혀를 몇 번 차고 입을 열었다.

“저 강을 봐라.”

산맥 안에는 제법 두터운 강들이 여럿 있었다. 유미디후스는 지팡이로 강을 가리켰다.

“내 소문을 들었다면 알고 있겠지만, 나는 물 원소에 제법 능하다.”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제법 능하다’는 표현은 매우 겸손한 표현이었다. 정말 제법 능한 정도였다면 제국에 그 명성이 널리 퍼질 수 없었으니까.

“혹시 내가 물 원소 마법을 연구하고 있는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겠느냐?”

“적성과 관련이 있습니까?”

“그것도 정답 중 하나겠구나.”

유미디후스는 지팡이를 휘둘렀다.

꽝!!

그러자 거대한 굉음과 함께 강의 물이 수증기로 변해 폭발했다. 흰 기둥이 솟구치더니 뭉게구름으로 변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산 속의 새들은 깜짝 놀라 사방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유미디후스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말했다.

“하지만 정답은 물 원소 마법이 가장 전투에 걸맞기 때문이다.”

“......”

눈앞의 어린 제자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조각 같은 얼굴은 묵묵히 강물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걸 본 유미디후스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취적이군.’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대마법을 보고 얼어붙는 사람은 마법사로서 대성할 수 없었다.

좋은 마법사는 그 대마법을 보고 호승심을 불태우며 뛰어넘으려고 해야 했다.

‘역시 볼라디 교수님 스승답게 갑자기 미친짓을 하시는군.’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물 마법이 전투적이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 굳이 저렇게 살벌한 짓을 하시다니...

단순히 물을 증발시킨다고 해서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급격히 증발시켜야 그 부피가 빠르게 팽창함에 따라 폭발 현상이 일어났다.

유미디후스는 그 원리를 이용해 수증기 폭발을 마법으로 구현한 것이다.

놀랍고 신기하긴 했지만 제자한테 한 마디도 안 하고 바로 물을 폭발시킬 필요는...

‘없지 않나?’

하지만 이한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유미디후스가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말없는 제자의 태도를 오해한 유미디후스가 살짝 유쾌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방금 내가 보여준 마법이 어떤 것인지 짐작이 가느냐?”

“물을 빠르게 증발시켜서 충격을 만드신 것 아닙니까?”

“!”

유미디후스는 정말로 놀랐다.

단순히 마력이 많고, 마력을 세밀하게 잘 다루고, 통제력이 강한 걸 떠나서...

‘예리하다!’

뛰어난 마법사는 깊고 풍부하게 사고할 줄 알아야했다.

마법을 배우는 마법사들은 이렇게 불평하곤 했다.

-단지 마법 하나만을 공부하는 건데, 왜 이렇게 필요한 능력이 많은 거지?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게 현실이었으니까.

깊고 풍부한 사고능력은 스스로의 심상을 현실로 갖고 와야 하는 마법사에게 필요한 능력이었다.

그리고 눈앞의 소년은 그걸 이미 갖고 있었다.

다른 마법사들은 몇 년 넘게 제국을 돌아다니며 관찰력을 갈고 닦아야 가질 수 있는 걸 벌써부터 갖고 있다니...

유미디후스는 소년의 재능에 감탄하고, 볼라디 배그렉을 진짜로 죽이고 싶어졌다.

‘아무것도 한 것 없을 놈이...’

“맞췄다. 예리하구나.”

“감사합니다.”

이한은 노마법사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진행된 생각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물 마법에 대해 잘 모르거나 서투른 마법사들은 고작해야 물을 불러내고, 뭉치고, 이리저리 모양을 변화하는 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건 시작일 뿐이다. 물의 세계는... 훨씬 더 넓고 깊지.”

유미디후스는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강의 수위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주변의 대지가 생명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수분 흡수!’

확실히 놀라웠다.

물 마법이라고 하면 볼라디 교수한테 하도 시달려서 그런지 형태 변환이나 조작 정도만 생각했었는데...

증발이나 흡수 등 얼마든지 영역을 확장시켜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물 마법이 전투에는 좀 미묘하다고 생각했었는데, 틀린 생각이었군.’

“너는 기본적인 형태 변환과 조작에는 이미 통달했다. 그렇지?”

“그 정도는 아닙니다.”

이한은 진심을 담아서 말했지만 유미디후스는 그냥 겸손이라고 생각하고 한 귀로 흘렸다.

“그래서 회전 속성을 연습하고 있는 것일 테고. 그렇지?”

“아닙니다. 그건 우발적인 사고였습니다.”

“그건 당연한 과정이자 마법사라면 마땅히 밟아야 할 길이지만...”

‘혹시 가는 귀가 먹으셨나?’

이한은 속으로만 생각했다.

유미디후스가 눈 하나 깜박하면 이한의 피를 그대로 말려버릴지도 몰랐으니까.

“동시에 조작에만 너무 몰두하는 것도 시야가 좁아질 수 있지. 오늘 이렇게 부른 건 네게 물 원소를 다루는 다른 영역도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유미디후스는 인자한 할머니처럼 말했다. 물론 방금 한 짓이 있었기에 이한은 분위기에 속지 않았다.

“자. 그러면 해보렴.”

“...예?”

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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