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52화 (152/687)

152화

다행히 유미디후스는 볼라디 교수처럼 미친 사람이 아니었다.

볼라디 교수라면 이한을 강물 아래로 깊숙이 처박은 다음 ‘증발시켜서 빠져나와라’라고 했겠지만, 유미디후스는 그러지 않았다.

애초에 오늘 소풍의 목적은 어린 마법사를 개안(開眼)시키고 물 마법의 드넓은 세계를 인식시키는 것.

그렇게 무리하게 시킬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물 마법의 여러 속성을 체험해보고 경험해보는 정도면 충분했다.

“주문은 다음과 같다.”

유미디후스는 1서클 마법, <물 증발>의 주문과 동작을 세세하게 가르쳐주었다.

사실, <물 증발>은 1서클 마법이라고 하기 민망한 마법이었다.

대표적인 함정 마법!

같은 서클에 위치한 마법이라고 하더라도 그 난이도는 천차만별.

동일한 서클 마법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은 마법을 보통 ‘함정 마법’이라고 불렀다.

<물 증발>은 1서클에 위치해있지만 초보 마법사들이 절대 배울 수 없는 난이도의 마법이었다.

그만큼 증발 속성은 어려웠다.

“해보려무나.”

간단한 강의를 끝낸 유미디후스는 이한을 지켜보았다.

보통 증발 속성을 연습하는 물 원소 마법사들은 앞에 증발시킬 액체들을 떠놓고 연습했다.

처음에는 쉽게 증발하는 독한 술 같은 액체로 연습하다가, 점점 더 끓는점이 높은 액체로 바꿔가며 마법의 강도를 올려나갔다.

그러나 유미디후스는 이한 앞에 아무것도 내놓지 않았다.

일단 동작과 주문을 연습해서 마법부터 완성시키란 뜻이었다.

지금 막 배웠고 연습도 하지 않았는데 바로 액체를 ‘증발시켜라!’할 정도로 유미디후스는 가혹하지 않았다.

“......”

이한은 유미디후스를 한 번 쳐다보고, 도도하게 흘러가는 강물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지금 강물을 증발시키란는 건가?’

유미디후스가 설명을 너무 적게 했기에 이한은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유미디후스 잘못도 아니었다.

보통 처음 배우는 마법 해보라고 하면 동작과 주문부터 연습하려고 하지 누가 바로 옆의 강물을 말리려고 하겠는가.

굳이 잘못을 따지자면 이건 볼라디 교수의 잘못이었다.

볼라디 교수 때문에 이한은 유미디후스를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군. 최선을 다해보자. 시늉이라도 내야지 물에 빠지지 않을 테니.’

이한은 자신이 마법을 계속 실패할 경우 어떻게 될지 직감하고 있었다.

아마 강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았다.

“증발하라!”

“아니...?”

유미디후스는 동작도 주문도 연습하지 않고, 일필휘지로 바로 강물을 향해 마법을 시전하는 이한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연습 안 하...?!

쉬이익!

강 위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유미디후스처럼 증기 폭발까지는 아니어도 상당한 양의 수증기였다.

“......”

유미디후스는 경악했다.

‘진짜... 천재군.’

제국의 마법사들 사이에서 ‘천재’라는 단어는 좀 남용되곤 했다.

개나 소나 다 자기가 천재라고 주장하곤 했던 것이다.

유미디후스에게 마법 배우겠다고 찾아온 마법사들도 볼라디 배그렉을 제외하면 모두 다 자신이 천재라고 주장했다.

-유미디후스 님. 제국 마법의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제게 마법을 가르치셔야 합니다. 저는 제국 마법사들 중 손꼽히는 천재입니다.

-유미디후스 님. 제가 말하니 민망하지만 저는 마법의 천재입니다. 이런 마법 하나 하나 다 가르쳐 주실 필요 없다 이 말입니다.

-유미디후스 님. 천재적인 마법 능력을 가진 제가 보기에 이 마법도 그리 좋은 마법이 아닙니다. 좀 더 개선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유미디후스를 찾아온 마법사들은 제국에서 나름 뛰어난 마법사들이었으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애초에 찾아올 수도 없었다.

하지만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유미디후스 같은 마법사의 눈은 엄격하고 가혹했다.

그 정도 재능은 진지하게 마법을 탐구할 마법사라면 당연히 갖고 있어야 하는 거지, 갖고 있다고 자랑할 수준의 보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눈앞의 소년은 확실히 달랐다.

개나소나 자칭으로 갖다 붙이는 천재와는 전혀 다른, 진짜만이 가질 수 있는 아우라가 느껴졌다.

타고난 마력량과 섬세한 통제력, 깊고 풍부한 사고력 등 하나만 갖고 있어도 재능 있다고 평가받을 요소들을 전부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강물인가? 결국 강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인가?’

유미디후스가 조용히 감탄하는 동안 이한은 조용히 불안해했다.

이한이 보기에는 제법 성공한 것 같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유미디후스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했다.

역시 실패인가?

‘처음에 이 정도면 잘 된 것 아닌가?’

이한이 자만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증발 마법은 제법 잘 된 것 같았다.

다른 마법들과 비교해 봐도 증발 속성은 이한과 상성이 좋은 편이었다.

일단 ‘증발’이라는 이미지 자체를 이한은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물 증발>은 힘으로 밀어붙이는 게 가능했다.

이한만큼 마력이 없는 마법사들은 세심하고 세밀하게 마력을 조종해서 주문을 완성해야했지만, 이한은 그냥 마력으로 밀어붙여서 주문 완성이 가능했다.

이한에 한해서는 물 구슬 조종보다 물 증발이 훨씬 쉬운 것이다.

“잘 했다. 아주 훌륭하구나.”

“!”

이한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강물 속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사실 강물을 증발시키라고 한 건 아니었다. 처음 마법을 연습하는데 저렇게 흘러가는 강물은 적절한 목표가 아니니까.”

양도 양이지만 계속 흘러가는 강물은 마법을 시전하기가 몇 배로 어려웠다.

그걸 해낸 만큼 눈앞의 소년은 자부심을 가져도 됐다.

그러나 이한은 그러는 대신 굳은 표정을 지었다.

‘...방금 뭐라고 하신 거지?’

생각해보니 유미디후스가 강물 상대로 바로 실전 테스트를 하라고 하지는 않았었다.

볼라디 교수를 떠올리고 멋대로 오해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한 번에 해낸 걸 보니, 강물을 상대로 마법을 시전한 이유를 알 것 같구나. 합당한 자신감이다.”

“아니... 오해입니다.”

“그래. 오해겠지.”

유미디후스는 인자한 미소를 입가에 드리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볼라디 배그렉이 억지로 강요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그게 맞습니다.’

이한은 속으로 말했다. 그러나 유미디후스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지금 보니 그게 아니었어.”

배그렉이 억지로 강요한 게 아니라, 내주는 마법마다 제자가 너무 빨리 습득한 게 분명했다.

유미디후스는 배그렉에 관한 오해 하나는 취소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예...”

이한은 은은한 슬픔이 담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볼라디 교수를 대놓고 욕할 수 없는 슬픔 때문이었다.

이한은 나중에 졸업하게 되면 해골 교장보다 볼라디 교수를 먼저 찾아가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         *         *

유미디후스는 이한에게 더 마법을 쓰라고 하지 않았다.

방금 한 번에 익힌 걸 봤는데 무엇 때문에 그리하겠는가.

“나보다는 네가 많이 먹어야 할 것 같구나.”

그 대신 휴식을 취했다.

이한은 유미디후스가 앉을 만한 자리를 마련하고 담요를 깐 다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준비해서 바쳤다.

유미디후스는 잔잔한 감동이 섞인 시선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런 대접을 받을 줄은 몰랐는데.”

“어... 다른 제자분들은 이런 걸 하신 적이 없습니까?”

“없었지.”

“...?”

의아해하던 이한은 볼라디 교수를 떠올렸다.

그리고 납득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겠군.’

이한은 우레걸음 교수한테서 훔쳐 온 홍차로 밀크티를 만들었다. 설탕이 듬뿍 들어간 달달한 음료가 피곤해진 뇌를 회복시켜줬다.

마력이 무한하다 하더라도 마법을 쓰다보면 집중력이 줄어들고 정신적으로 피곤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마법학교의 학생이라면 틈틈이 회복해두는 게 좋았다.

우레걸음 교수도 자신의 음료가 이렇게 쓰이는 것에 기뻐할 게 분명했다.

‘3학년들인가?’

유미디후스는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고 저 멀리로 시선을 던졌다.

복장을 보아하니 에인로가드의 3학년 학생들이 분명했다.

산에 뭘 숨겨놨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땅을 향해 지팡이를 휘둘렀다. 흙이 솟구치며 안에 담긴 마법재료들과 시약들이 나왔다.

나름 비밀리에 하기 위해 이것저것 준비했지만 유미디후스 같은 마법사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저기 보이나?”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지. 안 보이겠구나.”

유미디후스는 해골 교장을 떠올렸다.

신입생을 따로 분리시켜놓는 데에 매우 진심인 만큼, 마법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도 당연했다.

“잠깐 풀어주도록 하마. 괜찮겠지?”

유미디후스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이한의 눈에도 저 멀리 마법재료들과 시약을 챙기는 선배들이 보였다.

“이제 보이나?”

“예. 보입니다. 저게...?”

“아마 너도 학년이 올라가면 알게 되겠지만, 자기 공부에 필요한 재료나 시약을 구하는 것도 마법사의 일이지.”

유미디후스는 놀랍지 않다는 듯이 담담하게 설명했다.

저렇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숨기는 걸 보니 훔치거나 뺏은 게 확실했다.

‘3학년이 되어서도 저래야 한다니 너무 슬프군.’

이한은 자신 앞에 드리워진 운명에 전율했다.

재료나 시약 정도는 그냥 넉넉하게 주면 안 되나?

“네가 가서 뺏어보려무나.”

“...예?”

“어떻게 싸우는지 보고 싶어서 그래. 너라면 이길 수 있을 거란다.”

“......”

이길 수 있냐 없냐의 문제가 아니라 선배를 상대로 공격을 해야 한다는 게 문제였다.

아무리 도둑질을 했다고 하더라도 선배는 선배 아닌가.

이한은 황당함을 담아서 유미디후스를 쳐다보았지만, 유미디후스는 자신의 생각을 바꿀 기색이 전혀 없어보였다.

“전투 마법사는 상대의 피를 먹고 큰다. 실전은 빠르게 경험할수록 좋고 많이 경험할수록 좋지.”

인자한 할머니 같은 모습으로 살벌한 말을 하는 유미디후스의 모습에 이한은 속으로 진저리쳤다.

그냥 나이 든 볼라디 교수 맞잖아!

“유미디후스 님.”

“못 한다는 소리는 하지 말려무나. 네가 할 수 있다는 걸 확실히 아니까. 겸손도 지나치면 독인 법. 너도 머지않아 알게 되겠지만 마법사는 선배라고 해서 봐줄 필요 없단다.”

“아뇨. 못한다는 게 아니라... 복면 써도 됩니까?”

“......”

유미디후스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         *         *

이한은 유미디후스의 말만 믿고 무모하게 덤벼들지 않았다.

에인로가드의 3학년이면 이한과 친구들이 겪은 고난을 몇 배로 겪고 올라온 사람 아니겠는가.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는 이한이 역으로 당할 수 있었다.

이한은 복면을 쓰고 투명화 마법을 걸었다. 상대가 투명화 마법을 해제할 경우를 대비해서 복면은 꼭 필요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뒤에서 접근한 다음 두 선배에게 마법을 날렸다.

“컥!”

“크어어어억?!”

기습당한 두 선배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이한은 바로 재료와 시약이 담긴 상자를 챙겼다. 상자에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오수 고나달테스

그걸 본 이한은 경악했다.

‘미친 거 아닌가??’

3학년쯤 되면 교장 창고도 터나?

아니, 아마 이들이 일부러 훔쳤다기보다는 교장이 유도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쨌든 믿기지가 않는 건 사실이었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이한은 빠르게 자리를 이탈했다.

“잘 했구나.”

돌아온 이한을 본 유미디후스는 대만족했다.

배그렉이 그래도 시간낭비는 안했는지 완벽에 가까웠다.

기습, 선공, 달성, 이탈.

마법전투의 핵심 자체였다.

“누구의 물건인지 혹시 쓰여 있더냐?”

“교장 선생님의 창고에서 나온 물건 같습니다.”

“그래. 그러면 돌려주지 말고 네가 가지는 게 좋겠다.”

“...?!”

이한은 놀랐다.

그리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말 잘 듣는 제자의 모습에, 유미디후스는 따뜻한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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