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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63화 (163/687)

163화

흰 호랑이 탑 학생들과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이한을 싫어하든 경계하든 간에 이한의 마법 실력 하나만큼은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젤은 속으로 생각했다.

‘워다나즈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 대단한 마법사인가보군.’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제법 기사답게 인사했다.

물론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인 발도르오른은 그런 인사를 받는다고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숨이 막혀왔다.

‘기사들이잖아!?’

딱 봐도 기사 가문 출신인 것 같은 신입생들이 저렇게 정중하게 인사하니 더 부담이었다.

나중에 진실을 알게 되면 칼을 휘두를지도...

“같이 가겠나?”

이한의 제안에 다른 탑 학생들은 머뭇거렸다.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그러지 못했다.

왜냐하면 돈이 없었으니까!

“아. 돈이 없군.”

이한은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살짝 발끈하는 사이 이한은 이어서 말했다.

“빌려주지.”

“뭐?”

“빌려주겠다고. 물론 소정의 이자를...”

“워다나즈...”

앙라고는 믿기 힘들다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아까 검은 거북이의 탑 방드르가 은화 몇 개 가지고 으스댔던 걸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후한 제안이었다.

대체 왜?

이한은 반짝거리는 눈망울로 바라보는 앙라고의 모습에 매우 부담스러워졌다.

“내가 공짜로 준다고 했나? 이자 받고 빌려준다고 한 것 같은데?”

“들었다. 워다나즈. ...고맙다.”

‘이 자식 미친 거 아닌가?’

도착하기 전에 흰 호랑이 탑 학생들과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모르는 이한 입장에서는 앙라고의 반응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이자 받고 돈 빌려준다는데 왜 감동을?

“그, 그래. 기쁘다니 다행이군.”

앙라고가 악수를 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이한은 뒷걸음질치며 거리를 벌렸다. 앙라고는 머쓱한 표정으로 손을 내렸다.

“워다나즈... 널 보니까 은화 몇 푼으로 잘난척한 게 부끄러워진다.”

‘이 자식은 또 왜 이러는 거고.’

검은 거북이 탑 학생이 자기 혼자 납득한 표정으로 말을 걸어오자 이한은 더 황당해졌다.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대귀족 가문들이 말하는 명예가 뭔지 몰랐는데 바로 이런 걸 말하는 거였군.”

“오기 전에 무슨 대화를 했지?”

“그런 걸 믿지 않았는데 이렇게 두 눈으로 보게 되다니.”

“오기 전에 무슨 대화를 했...”

“인정할 수밖에 없...”

“맞고 말하겠나. 그냥 말하겠나?”

“왜, 왜 이래? 워다나즈?”

잠시 후.

‘아니. 이자를 더 받을 걸 그랬군.’

자세한 상황 설명을 듣고 이해를 마친 이한은 급격히 아쉬워졌다.

그런 사정이 있었다니!

이자를 더 받아도 흰 호랑이 탑 놈들은 받아들였을 것 아닌가.

“여기입니다.”

<야광귀의 뒤엉킨 보물더미>란 간판을 단 가게는 상당히 수상쩍고 어두침침한 겉모습을 갖고 있었다.

학생들끼리만 있었다면 ‘뭐하러 이런 곳에 들어가나?’하며 들어가지 않았을 정도로.

그러나 모인 학생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발도르오른 님이 가려고 한 곳이었으니까.”

“워다나즈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한 마법사가 소개해 준 곳이니까.”

“당연히 믿을 만하겠지.”

“들어가자!”

‘...싸서 자주 가는 건데...’

*         *         *

<야광귀의 뒤엉킨 보물더미>의 주인장은 살면서 이렇게 많은 신입생들이 마법학교 밖으로 외출 나온 건 처음 보았다.

...아니, 애초에 마법학교 학생들이 여기 <야광귀의 뒤엉킨 보물더미>에 들르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여길 왜??’

마법이 반영구적으로 부여된 아이템, 아티팩트는 제국에서도 상당히 비싼 물건이었다.

그런 만큼 사람들은 아티팩트를 살 때 아무 곳에서나 사지 않았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마법사의 공방에서 확인을 받고 사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런 안전하고 보증된 아티팩트만을 찾지는 않았다.

파손되거나 반쯤 부서진 아티팩트, 실험이나 연구 도중에 반출된 아티팩트, 원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실패한 아티팩트 등등.

이런 아티팩트들을 왜 찾나 싶겠지만 이유는 간단했다.

싸니까!

돈은 없지만 아티팩트가 필요한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들르는 곳이 바로 <야광귀의 뒤엉킨 보물더미>였다.

중고, 파손, 불완전 아티팩트들을 전문적으로 구입하고 판매하는 곳.

모험가들이나 들르지 왜 마법학교 학생들이 여기 들른단 말인가.

“와. 별 게 다 있는데?”

“이 망토는 무슨 망토지? 마법이 걸려 있는 것 같은데.”

“발도르오른 님이 자주 들르는 곳이라 그런지 보통이 아니다.”

발도르오른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여러분... 제발 목소리 좀 낮춰주십...”

학생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이한은 성큼성큼 가게 사이를 걸어 카운터로 다가갔다.

주인장은 딱 봐도 대귀족 가문 출신의 소년이 다가오자 긴장했다.

‘설마 어처구니없는 트집을 잡는 건 아니겠지?’

여기 들르는 모험가들은 이 가게가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는 만큼 별다른 사고를 치지 않았다.

하지만 마법학교의 학생들은 달랐다.

제국 유수의 대가문 출신인 만큼 세상물정에 어두울 것이고, 그 에인로가드에서 배우는 학생들인 만큼 마음만 먹으면 여기를 뒤집어 엎을 수 있었다.

주인장은 매우 긴장했다.

‘제발 사고치지 마라. 제발...’

“안녕하십니까.”

“안... 녕하시오.”

이한은 고개를 숙이고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자 주인장의 자세도 자연스럽게 낮아졌다.

“혹시...”

“?”

“여기 보니까 불완전한 아티팩트도 구입하시는 것 같은데, 이걸 사신다면 얼마 주실 겁니까?”

“......”

주인장은 학생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이한의 얼굴을 확인했다.

‘진짜 대귀족 출신... 맞나?’

*         *         *

이한은 방호의 망토(어차피 절반 확률로 날붙이를 막아주는 거라 이한은 그냥 마법으로 막기로 했다)와 하급 은밀의 부츠 같은 애매한 아티팩트들을 팔아서 돈으로 바꿨다.

새삼 발도르오른에게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값을 잘 쳐주는 곳을 알고 있다니. 과연 뛰어난 마법사다.’

주머니가 넉넉해지자 이한의 마음도 넉넉해졌다.

다른 학생들이 이미 둘러보고 있는 것처럼 이한도 쓸만한 아티팩트를 찾아 나섰다.

“잘 아시는 것 같은데, 혹시 몇 가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우.”

‘아니?!’

발도르오른은 속으로 놀랐다.

<야광귀의 뒤엉킨 보물더미> 주인장은 까칠하고 퉁명스럽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발도르오른이 뭐 하나 물어보면 ‘자꾸 물어볼 거면 딴 데 가시우’하고 구박하던 사람이, 이한의 질문에는 그래도 꼬박꼬박 대답을 해주는 것이다.

‘사람 차별하나!?’

물론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발도르오른이 주인장이었어도 이한의 질문에는 대답해줬을 것이다.

다른 학생들과 풍기는 아우라부터가 달랐으니까.

...그리고 워낙 쓸만한 아티팩트들을 갖고 오기도 했고.

“교장 선... 아니, 대마법사의 눈을 피하거나 미리 움직임을 알아낼 방법이 없겠습니까?”

“그런 아티팩트가 여기 있을 리가 없잖수.”

“하긴... 그러면 침입자를 미리 알아내는 아티팩트는? 아니면 침입자를 제압하는 아티팩트나...”

주인장은 슬슬 이한이 대귀족 가문 출신 학생인지 아니면 시정잡배 출신 깡패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어디 저택이라도 털려고 하나?

“이 회중시계는 어떤 마법이 걸려있는 겁니까?”

아티팩트를 훑어보던 이한은 유리에 살짝 금이 간 은색 회중시계를 보고 의아해했다.

마력이 전혀 안 느껴졌던 것이다.

혹시 이한이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 높은 마법인가?

“마법 안 걸려 있수. 그냥 회중시계요.”

“아.”

이한은 살짝 머쓱해졌다.

하긴 그냥 회중시계여도 충분히 귀한 아이템이긴 했다. 정확하게 시간을 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아티팩트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발도르오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까 아티팩트를 판 덕분에 은화가 좀 생기신 것 같던데... 사시는 게 어떻습니까? 저렇게 상태 좋은 회중시계는 한 번 놓치면 상당히 구하기 힘들 겁니다.”

“과연. 발도르오른 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아니, 아니. 그렇게 깊은 뜻으로 말한 건 아닌데요!”

발도르오른이 황급히 말을 바꿨지만 이미 이한은 자기 편한 대로 알아들은 상태였다.

‘확실히... 앞으로 정확히 시간을 재야 할 일이 많겠지.’

연금술은 물론이고 마법의 수준이 올라갈수록 배우는 난이도는 올라가리라.

마법학교에서 회중시계를 줄 리는 없을 테니 미리 준비해놓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발도르오른 님의 충고가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까 그렇게까지 필요하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애처로운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이한은 회중시계를 샀다.

그 모습에 주인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발도르오른의 말을 저렇게 귀담아듣지?’

발도르오른보다 마법학교의 학생들이 더 실력이 뛰어날 텐데...?

외투에 회중시계를 집어넣은 이한은 다른 아티팩트들을 둘러보았다. 벽에 걸린 뭉툭한 단검이 기묘한 기운을 내뿜는 게 눈에 들어왔다.

“거긴 다가가지 마시우!”

“이유가 뭡니까?”

“마력을 흡수하는 요물이우. 잘못 손대면 마력을 흡수해서 쓰러지거나 폐인이 될 수도...”

“아하.”

“?!?”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한이 그냥 단검을 잡아들자 주인장은 기겁했다.

아무리 마법학교 학생이라고 해도 너무 과한 행동이었다.

‘대체?!’

그러나 더 놀라운 일은 이한이 단검을 잡아든 뒤에 일어났다.

...벌써 몇 명의 모험가를 기절시키고 피 흘리게 만든 단검을 집어 들었는데도 마법학교의 학생은 멀쩡했던 것이다.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세상에!’

주인장은 다시 한 번 경악했다.

에인로가드가 제국 마법학교 중 제일이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보니 새삼 충격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신입생이 이 정도라니...

정말로 괴물들만 모이는 학교가 분명했다.

“이건 얼마입니까?”

“저주 받은 물건들은 무조건 은화 하나만 받수. 안 그러면 사가질 않으니까.”

“아니. 그런... 혹시 저주 받은 물건들이 더 있습니까?”

보고 있던 발도르오른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효과를 먼저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설마 싸다고 무작정 사는 건 아니겠지?

*         *         *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다 발도르오른 님 덕분입니다.”

네 탑의 신입생들 모두 발도르오른을 둘러싸고 고마워했다.

발도르오른은 지친 표정을 숨기고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아무것도아닙니다여러분. 여러분들을만나서정말즐거웠습니다. 어디가서저한테배웠다는소리는절대하지마시고...”

“예.”

“물론입니다!”

“다음 외출 때 꼭 찾아뵙...”

발도르오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허둥지둥 도망갔다.

미련 없는 마법사의 쿨한 모습에 학생들은 감탄했다.

저게 마법사지!

“이한. 넌 뭐 샀어?”

“시계하고 단검. 다른 저주 받은 물건들은 저주가 좀 별로더군.”

“...저주는 원래 별로 아니야??”

가이난도가 알쏭달쏭해하는 동안 이한은 아무르 마구간으로 향할 준비를 했다.

요네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과연 진실 그대로 말해도 괜찮을까?”

“괜찮아. 그 분은 말이 통하는 분이거든.”

“그래?”

요네르는 따라가면서도 의아해했다.

아무리 말이 통하더라도 그리폰을 구했다고 하면 놀랄 것 같은데...

*         *         *

“반갑소! 탈 것은 구했소?”

“예!”

“잘했소! 어떤 놈을 구했지?”

“그리폰입니다.”

“......”

쿵!

아무르는 말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이한은 당황해서 외쳤다.

“괜찮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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