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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86화 (186/687)

186화

‘아차. 상대는 가이난도가 아니었지.’

이한은 뒤늦게 깨닫고 후회했다.

황녀가 아무리 디저트를 못 먹었다고 하더라도 독 케이크를 먹을 정도로 가이난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손은 움직인 뒤였다. 이한은 이럴 때 해야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알고 있었다.

“과연. 독 탐지와 해독 기능이 부여된 아티팩트였군요.”

독 케이크에 닿은 은 숟가락은 아까 탐지 마법이 걸렸을 때처럼 연기를 만들어냈다.

동시에 그 연기의 색이 천천히 변해갔다. 조금씩 해독이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황녀는 몇 번 눈을 깜박이며 당황에서 벗어나더니,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입을 열려고 했다.

무슨 말이 나올지는 몰라도 좋은 말은 나오지 않으리라.

“일단 빨리 나가야 합니다. 나갑시다!”

이한은 황녀의 분노가 차갑게 폭발하기 전에 틈을 주지 않고 돌아서서 움직였다.

오해를 풀기도 전에 대화를 끌고 나가는 이한의 모습에 황녀는 반응이 한 박자 늦었다.

“지금 무...”

“어서!”

이한은 못 들은 척 황급히 달려 나갔다.

황녀는 어이없다는 듯이 그 등 뒤를 노려보았다.

*         *         *

탑 밖으로 나오자 먼저 들어갔던 친구들이 엉망인 꼴로 앉아 있었다.

앙라고는 먼지와 흙투성이였고 누구한테 맞았는지 옷이 거의 누더기처럼 변해 있었다.

살코는 헤엄이라도 치고 온 것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푹 젖어 있었다.

다른 친구들도 대부분 비슷하게 꼴이 엉망이었다.

그런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 멀쩡한 이한과 황녀는 확실히 눈에 띄었다.

...도전을 잘못 골랐군.

해골 교장은 매우 아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생각해보니 저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에게 저런 독은 별 효과가 없었을 것이다.

운 좋게 저런 걸 고르다니!

“워다나즈. 무슨 도전을 했는데 그렇게 멀쩡한 거지?”

앙라고는 부러움과 시샘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이한은 담담하게 말했다.

“겉으로 멀쩡하게 보일 뿐, 내가 들어간 도전도 상당히 위험한 도전이었다. 독을 먹어야 하는 도전이었지.”

“!”

“...!”

그 말에 친구들의 표정이 변했다.

독을 먹어야 하는 도전이라니.

말을 들으니 자기들이 들어간 도전이 갑자기 낫게 느껴졌다.

“그런... 미안하다. 워다나즈. 내가 무례한 말을 했군.”

앙라고는 매우 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한은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지. 이해한다.”

“......”

......

황녀와 해골 교장은 이한을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저런 뻔뻔한...!

한 층 더 도전하는 게 어떠냐? 너라면 충분히 가능할지도 모른다.

“아닙니다. 교장 선생님. 저를 그렇게 평가해주시다니 황송할 뿐입니다.”

‘이런 얄미운 놈.’

‘절대 안 간다.’

*         *         *

황금 같은 주말의 오후.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모처럼 찾아온 평화를 만끽하며 휴게실 곳곳에 늘어져있었다.

심지어 황녀도 추종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한은 바구니에 주먹밥과 떡, 유과들을 차곡차곡 채워넣고 마실 음료도 몇 병 알차게 담은 뒤 일어났다.

“어디 가게? 도서관?”

요네르가 의아해했다.

저렇게 먹을 것까지 챙겨갈 정도면 밖으로 탐사를 가거나 도서관 정도밖에 없지 않나 싶었던 것이다.

물론 오늘 같은 날에 도서관을 가는 것도 충분히 이상한 일이었지만 이한이라면 가능했다.

“사식 넣어주려고.”

“......”

요네르는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까지...!?

“그렇게까지 해줄 필요 없지 않아?”

“그만큼 더 비싸게 받을 수 있는 법이지.”

“이한... 넌 너무 착한 것 같아.”

“방금 내가 한 말을 못 들었나?”

“그걸 감안해도 착한 거야.”

요네르의 말에 이한은 의아해했다.

이게 왜 착한 거지?

덜그럭!

징벌방은 입구부터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아직 봄인데도 여기만 다른 계절인 것처럼 차가웠다.

‘정말 오기 싫은 곳이군.’

단순히 징벌방이라서가 아니라 무언가 마법적인 이유 때문에 이렇게 거부감이 드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까지 강한 불길함이 들 리가 없었다.

‘하긴 해골 교장 성격에 학생들이 탈출하는 걸 그리 내버려 둘 리는 없을 테니...’

징벌방에 갇혀도 탈출에 성공하면 무죄가 됐지만, 그건 학생들을 위한 규칙이 아니었다.

해골 교장의 즐거움을 위한 규칙이었지.

저번에 징벌방 깊숙한 곳에서 지상으로 탈출하기 위해 이리저리 헤맸던 이한은 이 징벌방의 규모가 상당하다는 걸 체감하고 있었다.

똑똑-

“계십니까?”

적막.

똑똑-

“계십니까?”

“...크르륵. 크르르륽. 크르르르르륵.”

“많이 실례했습니다.”

이한은 바로 다음 방으로 건너갔다.

여러 번 문을 두드리며 갇힌 학생들을 찾아봤지만, 이한은 만만치 않겠다는 걸 곧 깨닫게 되었다.

‘낭패군. 상당히 깊숙한 곳에 있는 모양인데.’

징벌방이 크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낙제한 신입생은 입구 쪽에 가까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닌 모양이었다.

‘징벌방의 정보가 너무 부족해. 저번에 탈출할 때 기록한 걸로 비교하는 건... 무리겠군. 페르쿤트라는 저번에 불렀으니 한동안 못 부르고.’

이한은 복도 아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서 이번에도 찾지 못하면 다른 방법을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똑똑-

“계십니까?”

“누구야?”

“!”

놀랍게도 안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같은 학생이 분명했다.

“학생 맞으십니까?”

“야. 너 몇 학년인진 모르겠는데 나중에 만나고 저주 걸리기 싫으면 까불지 말고 꺼ㅈ... 잠깐만.”

디레트는 멈칫했다.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상당히 낯익었던 것이다.

그 순간 디레트의 머릿속에 번뜩임이 찾아왔다.

“!”

저번에 징벌방 들어왔을 때 옆방에 들어온, 말도 안 되는 되는 이야기를 한 신입생.

그리고 흑마법을 배우기 위해 모르툼 교수의 흑암관에 찾아온 신입생.

마지막으로 중간고사 때 교수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자신의 파멸도 모르고 강의를 무작정 추가한 신입생.

이 세 신입생이 하나로 합쳐졌다.

“...너! 너지!? 너지?!?”

‘미친 사람인가?’

이한은 움찔했다.

아까도 그랬지만 징벌방 안에 갇혀 있는 게 꼭 멀쩡한 학생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어쩌면 학생 흉내를 내는 괴물일지도...

“너 워다나즈 가문 출신의 신입생이지? 지금 중간고사 전에 벌써 원소마법, 흑마법, 소환마법, 환상마법을 고르고 시험을 보고, 첫 번째 주에는 지하 통로로 탈출했다가 붙잡혔던 신입생!”

“!”

이번에는 이한이 놀랄 차례였다.

마법학교의 마법사들은 참으로 놀라웠다.

‘고학년쯤 되면 징벌방 안에서도 상대를 꿰뚫어보는 능력이 생기는 건가?’

“대체 어떻게?”

“뭘 어떻게는 어떻게야? 저번에 네 옆방에 있었고, 중간고사 때 모르툼 교수님 도우려고 참가했으니까 아는 거지.”

“아...! 그 사람이었나?”

이한은 아직 얼굴을 모르는 징벌방 옆방의 선배를 떠올렸다.

여러모로 친절한 사람이었다.

첨탑 마구간의 존재도 알려줬고(간식을 뇌물로 받긴 했지만), 강의 적당히 들으라는 조언도 해줬고(듣진 않았지만), 편하게 대하라고 말해주기도 했고...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다니.

“잠깐. 설마 그 때부터 지금까지 갇혀 있었던 건가?”

“미쳤어? 당연히 나갔다가 들어온 거지.”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이한은 순간 ‘대체 이 선배는 뭘 하고 다니는데 맨날 징벌방에 있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디레트는 그 생각을 간파했다.

“후배. 너 지금 내가 뭘 하고 다니는데 맨날 징벌방에 있는 건가 생각했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선배님.”

“왜 갑자기 존대를 하지?”

“사실 제가 예의를 중요시합니다.”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저번에 징벌방 안에 사식을 갖고 온 솜씨를 생각해봤을 때 저 후배는 검은 거북이 탑 출신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응? 잠깐. 워다나즈 가문 출신인데 검은 거북이 탑?’

디레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이상했던 것이다.

“그래. 흑마법 배우는 거면 나한테 선배라고 존대해도 괜찮겠지. 그리고 넌 나한테 신세졌어. 후배.”

“마구간은 감사했습니다.”

“그거 말고! 중간고사 때!”

“?”

디레트는 이한이 선배의 희생을 알아차리지 못하자 괜히 억울해졌다.

물론 잘못한 건 해골 교장이었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게 딱 잘라지는 게 아니었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 후배 너, 저번에 징벌방에 있을 때 내가 경고했었잖아?!”

디레트는 기억이 떠오르자 방금보다 몇 배로 더 억울해졌다.

-너 정도 능력이면 여러 교수가 탐낼 테니, 미리 조심하는 게 좋겠지.

이렇게 징벌방에서 미리 경고하지 않았던가.

이 후배가 그 경고를 귀담아들었으면 디레트가 이렇게 징벌방에 끌려올 일도 없었다.

“아... 그 경고 말입니까. 물론 귀담아듣고 있습니다.”

“귀담아듣고 있는 후배가 그런 짓을 해?!”

디레트는 더 어이가 없었다.

저게 귀담아들은 거면 무시한 건 뭐지? 전 강의 수강?

“아닙니다. 선배님.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저도 나름 계산을 세워서 합리적으로 듣고 있습니다.”

“...그 합리적인 계산 말해봐. 들어보자.”

이한은 침착하게 선배한테 자신의 선택 분야를 설명했다.

먼저 흑마법은 적성에 잘 맞아서 골랐고, 소환마법도 여러모로 쓸모가 좋아서 골랐으며, 환상마법도 필요해서 배우기로 했고, 부여마법은 고민 좀 했는데 적성도 맞고 가르시아 교수님이 추천해주기도 해서 배우기로 했고...

“잠깐. 후배. 부여마법?? 부여마법은 중간고사 이후에 듣지 않아???”

“아. 우연한 기회로 교수님을 먼저 만나게 되었거든요.”

“오... 우연한 기회로 과로사할 걱정은 안 들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름 다 통제하고 있습니다.”

디레트의 비꼼에도 불구하고 이한은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그러나 디레트가 보기에 이한은 아무리 봐도 가르시아 교수의 길로 걷고 있었다.

신입생 때부터 모든 마법 분야를 다 듣는 아수라의 길!

일단 기본적으로 정상적인 사고가 박혀 있는 신입생은 적성에 맞거나 유용하거나 쓸모가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이걸 잘 배울 수 있을까? 음. 아니야. 너무 힘들겠어’하고 브레이크를 잡는 것이다.

근데 눈앞의 후배는 ‘내가 이걸 잘 배울 수 있을까? 음. 그래도 적성에 맞고 유용하니까 이거까지만 배워볼까?’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으니...

“후배. 진짜 조심해라. 진짜 진짜 조심해라. 진짜 진짜 진짜. 알겠어?”

“걱정 감사합니다. 선배님.”

‘이 자식 내 말 안 들을 것 같아.’

디레트는 왠지 모르게 그런 예감을 받았다.

“선배님. 사식을 좀 갖고 왔는데 드시겠습니까?”

“뭐? 사식을? ...너 정말 워다나즈 가문 출신 맞아??”

일학년 신입생이 징벌방에 사식을 갖고 방문하는 이 노련함에, 디레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갖고 온 음식의 질이었다.

신입생들이 주로 먹는 딱딱한 검은 빵이나 다 식어서 굳은 주먹밥이 아닌 것이다.

갓 지은 쌀로 만든 주먹밥에, 말랑말랑한 팥떡. 바삭바삭한 유과까지.

대체...?

‘아차. 가이난도 줄 음식까지 드려버렸군.’

이한은 오다가 해골 교장한테 뺏겼다고 핑계를 대기로 했다.

“...다른 건 몰라도 넌 정말 3학년들이 좋아하겠다.”

“그렇습니까?”

“그래. 여러 후배를 봐왔지만 너 같은 후배는 본 적이 없어.”

떡을 한 입 베어 물은 디레트는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냥 보내기에는 너무 푸짐하게, 맛있게 잘 먹은 것이다.

징벌방 기간이 연장될 수도 있었지만 말 안 해줄 수가 없었다.

“후배. 중간고사가 끝났지.”

“예.”

“조심해.”

“언제나 조심하고 있습니다.”

“...훌륭해. 아주 좋은 자세야. 하지만 내 말은, 조금 더 조심하란 거야. 중간고사가 끝나면 보통 학교가 미쳐 돌아가거든.”

‘여기서 더 미쳐 돌아갈 수가 있나?’

*         *         *

다음 날.

침대에서 일어난 이한은 개인실의 창문을 열었다.

‘이상하게 추운데?’

새하얗게 쌓인 눈이 탑 1층의 절반까지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한은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더 미쳐 돌아갈 수가 있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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